[둥글레의 인문약방 / 3회] 바이오 기술의 과속 스캔들

둥글레
2019-07-19 02:14
819

[둥글레의 인문약방 / 3회]

 

 

바이오 기술의 과속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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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바이오 스캔들

최근 한 유전자 치료제가 큰 스캔들에 휩싸였다. 국내 최초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 주(이후 인보사)이다. 인보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이다. 그러나 79일 자로 식약청은 인보사의 허가취소를 확정했다. 인보사는 연골을 재생하기 위한 동종 연골세포(1)와 염증과 통증을 억제하기 위한 성장인자 유전자(TGF-beta1 gene)가 도입된 연골 세포(2)로 구성된다. 그런데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로 밝혀졌다. 식약청의 조사 결과, 개발사에서 허가서류에 허위정보를 기재했고, 2액의 세포가 신장 세포임을 알면서도 숨긴 것이 드러났다. 식약청은 이 회사를 형사 고발했다. 식약청의 허가취소 발표 후 이 개발사의 주식은 거래가 중지되었고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해가 예상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미 이 약을 투여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발현될지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 도입을 위한 벡터1)로 사용된 바이러스가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가진다. 유전자가 원치 않는 위치에 도입되면 오히려 종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인보사의 경우는 벡터나 유전자 문제는 크게 없어 보이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유전자가 도입된 세포가 신장 세포, 더욱이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할 수 있도록 형질 전환된 세포(GP2-293 세포)라는 것이다. 물론 개발사는 방사선 조사로 세포의 활성을 없앴고, 허가 자료는 바뀐 신장 세포를 근간으로 만들어져서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인보사의 2액은 연골세포로 디자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GP2-293 세포를 상정한 안전성 검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15년간 인보사를 투약한 환자들을 추적 조사한다는데 약 개발비에 맞먹는 큰돈이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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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 사건 이전에도 바이오 스캔들은 있었다.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 조작 사건이다. 난자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의 내용은 거짓이었다. 또 최근 미국에서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회사가 사기를 친 것이 발각되었다. 이 회사는 피 한 방울로 200여 개의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약 1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내부 고발로 그 기술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바이오 의약품, 특히 유전자를 이용하는 경우는 개발도 어렵지만 거기에 따른 검증도 어렵다.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제의 역사가 짧고 그에 따른 충분한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은 빠르고 그 범위도 넓어지고 있어서 생명윤리 문제도 늘 제기된다. 그러니 허가를 주는 관청도, 투자자들도, 의료인들도, 환자들도 판단이 잘 안 선다. 허위나 거짓이 있더라도 밝혀내기가 힘들다. 바이오 분야의 스캔들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유전자 변형된 일상 (Genetically Modified Life)

바이오 스캔들을 보면서 그들이 우릴 속였다는 사실에만 분개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관련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바이오 분야 특히 유전자 분야는 어렵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봐도 자세히 알려고 하기보다는 욕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정보와 책을 읽었는데 역시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현재 유전자 분야의 발전 사이에 갭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난 1세대 바이오 의약품까지 배우고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2세대와 3세대 바이오 의약품을 접하게 되었다. 약의 기전이야 알았지만 그 바탕 지식인 유전자 조작(유전자 변형,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다. 말이 나왔으니 잠깐 바이오 의약품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인슐린 주사가 1세대 바이오 의약품이다. 휴먼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장균 세포 내에는 플라스미드2)라는 고리 모양의 DNA가 있다. 이 플라스미드 한 부분을 잘라내고 그 부분에 인슐린의 DNA를 접합하여 대장균에 넣는다. 이 대장균이 번식하면서 변형된 플라스미드가 인슐린(단백질)을 생산한다. 이 배양액에서 인슐린만을 분리 정제하면 의약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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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항체 치료제와 3세대 세포 치료제 및 유전자 치료제는 더욱 정교해지고 발전된 형태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 특히 이 2, 3세대 치료제는 주로 암, 유전병, 자가면역질환 등 치료하기 힘든 질병들을 타깃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런 의약품들이 아주 드물게 사용되겠거니 짐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의약품 시장은 바이오 의약품이 견인하고 있다. 세계 의약품 판매 상위 10위 안에 항체 치료제들이 반 이상일 정도로 판매량이 많아졌고, 국내에도 40개 이상이 판매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도 마찬가지로 십수 종이 국내에서 허가되었다.

유전자 조작은 비단 의약품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농업 분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기술이 쓰이고 있다. 이른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즉 유전자 변형 생물체이다. 이는 인슐린 생산에 쓰인 기술과 같다. GMO 첫 사례는 1994FDA(미국 식품의약청)의 승인을 받아 개발된 무르지 않는 토마토다. 이후 옥수수, , 유채, 감자 등 많은 작물들이 GMO로서 생산되고 있다. 유전자 변형은 식품, 의약품, 생활용품이 되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GMO나 바이오 의약품에 사용되는 유전자 변형은 실험실에서 조작된다. 인위적으로 세균의 유전자와 식물의 유전자를 접합하기도 하고, 사람의 유전자와 바이러스 또는 동물의 유전자가 접합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탄생한 유전자 변형체가 생물로 전환된다. 이 유전자 변형된 생물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기도 하고 한 세대에 국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변형이기에 염려가 된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 변형이 우리 인체와 삶에 어떤 변형을 가져올지 검토하고 추적할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플라스틱 자궁 공학 또는 새로운 우생학?

인위자연에 어떤 간극이 있을까? 유전자 조작이라는 인위가 주는 공포와는 별개로 사실 모든 생물의 세대는 변이체와 돌연변이체를 생성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다양성과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돌연변이는 생물학적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변이들의 축적이 진화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유전자 공학의 발전도 당연히 음과 양이 있다. 예컨대 항암제 분야에서는 바이오 의약품의 약진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기존의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법은 너무 독성이 강해서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이 심했다. 하지만 특히 항체 치료제의 경우는 암세포만을 표적 하여 치료하기 때문에 정상 세포에 대한 영향이 적어 부작용이 줄었고 항암효능도 좋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는 것은 위험하다. 인보사의 경우 성장인자 유전자를 넣어준다고 하지만 골관절염에 관련된 유전자가 유전병처럼 하나일 리가 만무하다. 대부분의 질병은 여러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있다. 또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술을 시행해서 유명해진 BRACA 1 돌연변이 유전자의 경우는 불완전한 침투도를 갖는다. 무슨 말이냐면 이 돌연변이를 가진 모든 여성이 유방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유방암도 여러 원인으로 발병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어떤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유전자가 그 병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독특한 능력이나 특성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 유전자에게 어떤 질병을 일으켰다는 오명만을 씌우기는 어렵다. 만약 그 유전자를 제거하면 그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그 특성은 없어질 것이다.

현재 유전 공학은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까지 와있다. 특정 변이 부분을 효소를 이용하여 잘라내고 그 부분에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안정화시키는 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라는 기술에서 한편 섬뜩한 느낌이 든다. 유전적 진단과 그에 따른 유전적 개입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치의 우생학도 유전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에 생겨났다. 그때는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전자를 내세워 결함 있는(?) 사람들을 수용소에 수용하고 불임화 수술까지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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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생학을 얘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일까? 내 여동생은 첫 아이를 늦은 나이에 임신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노산이라며 이런저런 검사를 시행했는데 마침내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유전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유전자 이상이 있으면 낙태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양수 검사를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행하는 양수 검사가 우생학적 생각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전자 가위기술은 종국에는 인간 유전체 편집을 향하고 있다. 즉 인간 배아 상태에서 돌연변이를 찾아내서 교정하거나, 아니면 정자나 난자를 교정하는 유전자 수술을 시행한 후 인공수정을 하거나. 결국 우리의 상상이 다다른 곳은 형질 전환된 인간의 탄생이다. 그야말로 나치 우생학이 바라던 바를 실현하게 될 수도 있다. SF 영화 속에 나오는 특이성이 사라진 균질화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이반 일리치는 의료와 결합된 생명공학을 플라스틱 자궁의 공학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심리적, 물리적 환경을 전문적으로 변화시키는 공학 프로그램이 결국은 인간의 자율성을 완전히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리치가 염려했던 일들은 유전공학과 의료의 만남으로 더욱더 전면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범죄자적 비정상과 비사회적 행동은 심리검사로 미리부터 점쳐지고

댓글 8
  • 2019-07-21 10:49

    저 또한 인보사사태를 보며, 난 문제없이 잘 하고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생물학 실험을 할때면 세포주의 출처를 명확히 하지않을 때가 종종 발생하기도하거든요. 그렇다고 인보사사태를 절~대 옹호하는거 아닙니다. 반성합니다ㅠ

    삶을 모두 유전자로 환원하면 안된다는 말 와닿네요. 전 유전공학을 전공했는데 그 당시만해도 유전자가 모든걸 해결해줄수있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한개의 유전자만으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절대 설명할수없습니다. 한개를 없어거나 늘리면 그에 상응하는 시스템이 크고 작게 질서 정리를 다시 하게되는데, 이 영향이 생물체 여러 곳 또는 시간적변화에 의해서도 다르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과학의 전체 흐름도 바뀌고 있습니다.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라고해서 한 유전자를 넘어서서 유전체, 단백질체, 단백질변성학체등등 여러단계를 고려하고 다양한 전산학,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을 이용하여 생명현상을 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또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듯이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항상 경계성은 지녀야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전 개인적으로 생명현상이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 인류에 큰 도움이 될꺼라고 생각하는 비판적 생각 전혀없는 생물학자거든요ㅠㅜ

    사실 인문학 공부하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를 성찰한다는게 너무나 어렵게 와닿아서 전 사실 안하고있는 상태입니다ㅠ 조금 더 내공이 길러지면 차근히 접근해 싶다는 생각뿐.... 그 전에 둥글레샘 글을 보며 오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되네요. 

    감사합니다^^

    • 2019-07-21 12:31

      연차 내고 낮에 파지사유에서 출몰했던 며칠 전 금요일에도 

      짬을 내어 실험실의 미생물 살피러 회사에 다녀오는 미지님을 보았습니다.

      차근차근 공부의 내공을 쌓아가며

      조만간 자신이 일하는 분야를 성찰하는 미지님을 보게 되겠군요!!

      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상입니다~~

      • 2019-07-22 10:08

        저도 그런 날을 기대해봅니다^^ 내공을 키우자 으샤으샤~!

        위에 생물학자라고 쓴게 부끄러워 수정하고싶은데 비번을 까먹었네요~^^

        그냥 생물학하는 사람으로 봐주세요~ㅎㅎㅎ

    • 2019-07-23 10:48

      오오 미지님의 전공이 유전공학인 줄 몰랐네요.

      이번에 유전자 관련 책들 읽으면서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생세미나에서  읽으려고 하는데 함께 하심 차암 좋겠다는 생각이...

      직장땜에 어려우시겠죠? ㅋ

      언제 한 번 함께 얘기해봐요~

      • 2019-07-23 23:11

        아 같이 공부하면 좋은데... 아쉽네요~~

        세미나후기라도 열심히 읽고 소통해야겠네요~^^

  • 2019-07-23 19:11

    유전자...

    우리 몸 뿐만 아니라...식물들과 동물들도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9-07-24 20:58

    유전자는 우리가 수세월의 유산임을 알려주다는게 더 와닿아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닌듯..ㅎㅎ

  • 2019-07-26 01:45

    예전에 르몽드에서 유전자 가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다시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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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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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의 서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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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3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70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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