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 / 2회] 전전긍긍에도 '급'이 있다

기린
2019-06-21 17:08
473

[사기, 인생극장 / 2회] 

 

전전긍긍(戰戰兢兢)에도 이 있다

 

 

 

게으르니 프로필.jpg

글 : 기린

 

 ______

 

사기를 읽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믿음으로 한 편, 한 편 상영하는 인간극장!

막이 올랐다.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뜻과는 다른 사자성어를 만나게 되곤 한다. ‘전전긍긍도 그 중 하나다. 이 사자성어는 바라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닥칠까 조바심 내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쓴다. 그러다보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부정의 의미로 더 자주 쓰였다. 하지만 원문에서 전전긍긍(戰戰兢兢)은 전쟁()에 나아갔을 때 두려워하는() 그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라는 의미였다.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 그렇다면 전전긍긍은 두려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늘 대비하는 태도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제대로 전전긍긍하는 삶, 무엇이 필요할까?

 

 

 

고난에서 배우지 못한 전전긍긍

 

 

염파는 인상여가 자신보다 윗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울화통이 터져서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조()나라 장수로서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세 치 혀밖에 놀릴 줄 모르는 인상여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거늘! 내 그 자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결판을 낼 것이다.

인상여는 그런 염파를 피해 다녔고 부하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나라 소왕 앞에서 위세에 눌리지 않고 담판을 지었다. 염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적이 되어 싸운다면 나라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그것이야말로 진나라가 진정 바라는 일이다.

 

염파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인상여를 찾아가 자신의 옹졸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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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두 사람은 합심하여 나라의 안위를 보살폈다. 세월이 흘러 조나라와 진나라는 다시 장평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염파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염파는 진나라의 선제공격에도 그저 방벽을 굳게 지킬 뿐, 맞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성마른 조 효성왕은 결국 염파를 파면하고 다른 장수를 임명했다.

()나라가 조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효성왕은 다시 염파를 불러들였다. 염파는 대대적인 공격으로 상대 장수를 죽이고 연나라를 포위하여 항복을 이끌어 냈다. 효성왕이 세상을 떠나고 도양왕이 즉위하자 염파는 다시 파면되었다. 염파도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왕이 등용한 장수를 공격하여 쫓아낸 후, 자신도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에서는 염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조나라에서는 계속 진나라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예전의 염파가 필요했다. 염파 또한 혹시나 조나라가 자신을 불러주지 않을까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드디어 조나라 사신이 염파를 만나러 왔을 때, 그는 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어치우고 갑옷을 입은 채 말에 뛰어 올랐다. 사신은 조나라로 돌아가 임금에게 고했다.

 

 -염파는 너무 늙었습니다. 그럼에도 식사는 예전 기량을 보였습죠. 그런데 자주 변을 지리는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조나라에 있던 염파의 정적이 사신을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염파는 조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전하다 초나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조나라 병사들을 지휘하고 싶소!

 

염파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그 덕에 삼군의 장수가 되었다. 주어진 자리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법, 염파는 쫓겨났다. 그러자 장수였을 때 자신을 따랐던 이들이 모두 떠났다. 필부에게는 얻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귀하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한순간에 달라지는 세상의 인심을 겪은 것이다. 또다시 파직되었을 때 염파는 반란을 감행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염파는 이미 실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왜 이번에는 반란을 택했을까? 다시 필부로 추락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다시 고난을 겪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결국 그의 삶을 더욱 진창에 빠트리고 만 것이다. 장수에서 필부로 전락했던 그 경험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또다시 환란이 닥칠까 전전긍긍하는 삶에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치를 터득한 전전긍긍

 

 

한 편, 효성왕은 염파를 실각시키고 조괄이라는 장수를 등용했다. 진나라에서 조괄이 사령관이 될까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진나라가 첩자를 보내 퍼뜨린 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인상여는 병중임도 불구하고 왕 앞에 나가 간언했다.

 

 -조괄은 실전에 능한 장수가 아닙니다. 제 아버지 조사의 병법서만 읊는 앵무새에 불과합니다.

효성왕은 아랑곳 않고 조괄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임명을 거두어 줄 것을 간청했다. 조괄의 어머니였다. 남편 조사가 살아생전에 아들과 병법에 대해 논하면 늘 아들이 이겼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아들의 능력이 모자랍니까?

  -능력이 넘치는 것이 문제요. 저 녀석의 머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말 뿐이오. 허나 전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오. 저러다 말면 그만이지만 혹여 나라에서 장수라도 삼으면 반드시 큰 탈이 날 것이오.

남편의 염려가 현실이 되었고 아들의 자신만만함은 큰 걱정거리였다. 결국 그녀는 왕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 않았습니다. 괄의 아버지는 병사들에게서 한시도 마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보살피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장수로 임명되자마자 왕에게 받은 재물로 제 재산 불리기에 급급합니다. 아버지와는 이렇게 다른 아들을 전쟁에 내보냈다가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입니다. 부디 임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왕은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편지를 썼다.

  -그렇다면 만약 제 아들이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제 목숨은 살려 주십시오.

 

왕은 마지못해 그 제안을 수락했다.

조괄은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염파의 참모진을 전원 자신의 부하들로 갈아치우기부터 시작했다. 군령도 자신이 지휘하기 수월하도록 바꾸었다. 마침 진나라의 군대가 기습해오다 조괄이 지휘하는 군대의 위세에 몰려 뒷걸음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전세는 곧 역전되고 말았다. 진나라에서 성으로 들어가는 식량로를 차단했고, 첩자를 보내 병사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점점 굶주리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불만이 쌓여갔다. 수세에 몰린 조괄은 자신이 직접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참전했다. 그리고 진나라 군사가 쏜 화살에 맞고 전사했다. 조나라는 이 전쟁에서 40만의 병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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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병사들을 거두느라 식솔들 보살피는 일은 늘 뒷전이었다. 어쩌면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답답해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았다. 그래서 단 하나의 목숨도 헛되이 버리지 않는 장수가 되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남편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집안도 보존할 수 있었다. 아들은 그 이치를 거스르고 이제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의기양양했다. 그녀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장차 벌어질 일이 너무 두려워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전전긍긍이 집안까지 몰락하는 최악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

 

 

 

 

우정을 쌓는 전전긍긍

 

 

다른 요일보다 점심을 먹는 인원이 많은 화요일, 강의도 거의 끝나 점심시간 10분을 남겼을 때 문자가 왔다.

 -오늘 점심은 못 먹게 됐다고 회원들에게 전해 주세요.

점심을 준비하는 당번이 있는데 점심을 못 먹는다고? 주방에 무슨 일이 생겼나. 갑작스런 소식에 화도 나면서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일단 회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점심을 못 차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라 회원들도 어리둥절하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쳐 주방으로 달려갔다. 점심당번은 자신이 당번인줄 까맣게 잊고 오지 않았다. 세미나를 하고 있던 회원들은 1220분이 되도록 주방에서 점심 준비가 안 되고 있는 것을 몰랐단다.

신문에 내가 속한 공동체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평일 오전에 모여서 가열 차게 공부 하는 우리를 공주즉 공부하는 주부라고 했다. 싱글인 나로서는 주부로 뭉뚱그려지는 그 정의가 어딘지 마뜩치 않았다. 주방의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주부라는 사실은 점점 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자기 공부하랴 가족의 대소사 챙기랴 거기에 공동체 밥상까지 챙기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밥당번표 앞에서도 한 달의 스케줄을 펼쳐놓고 가장 나중 순위로 택할 때, 그나마도 못하겠다는 말에 이르면 정말 울화가 치밀었다. 여기가 무슨 독서클럽이야? 냉장고에서 남아도는 재료를 두고도 잘 안 다뤄봤다며 찬거리가 없다고 하소연할 때 주부 맞아 싶었다. 선물로 운영된다는 말에 당장 다듬어야 하는 재료를 넘치게 갖다 줄 때 주방을 영업하는 식당쯤으로 여기나 싶어 정나미가 떨어졌다.

들끓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지만 스스로 나선 일이니 감당해야 했다. 밥당번을 하는 것도 공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점점 말은 궁해지고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밥상이 차려지는데 차질이 없도록 때마다 살피고 점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을 못 차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순간 알았다. 나 혼자 아무리 전전긍긍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을.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없다면, 일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밥상을 못 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막상 일이 벌어지니 대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친구는 쌀을 씻어 밥부터 안치고 밥상 차릴 궁리를 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에게 일이 많다고 노여워하면서 혼자 전전긍긍했을 뿐이다. 이런 전전긍긍은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심지어 공동체에도 전혀 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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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공동체에서는 별일 없이 밥상이 차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별일이 없다고 여겨질 , 실제는 수많은 변수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요령껏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하여 그녀들과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쌓는다는 것은 어떤 변수에도 마음을 모아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떤

댓글 3
  • 2019-06-25 20:32

    예전 어느날이 생각납니다.

    웬일로 이렇게 여유로운 날이 있나 싶어 살짝 의심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영화라도 한 편 봐야겠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를 타고 영화관 앞에 내리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기 화면에 '요요샘'이라는 이름을 보자 뒤통수가 서늘해졌습니다.

    "느티나무 어디야?"

    "저 오랫만에 영화 한 편 보려구요."

    "오늘 밥당번이잖아."

    "헉"

    내 머리는 정말 하얗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게 기린을 당황시키는 가장 잦은 변수겠지요.

    그대의 급이 다른 전전긍긍으로 늘 귀하고 맛있는 밥을 감사히 먹고 있습니다.

  • 2019-07-01 08:20

    전전긍긍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전전긍긍을 열심히 해야하는거군요!!  ^^  

    기린샘의 전전긍긍도 계속 화이팅하시길!!

    잘~ 읽었습니다~~

  • 2019-07-02 15:58

    전전긍긍에도 급이 있군요

    하이 클라스 전전긍긍 

    함께 애써 봅시다 ㅋㅋ

한문이예술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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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82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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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23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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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224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213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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