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20대의 탄생 10회] 동은 - 나의 뉴욕여행 레시피

이동은
2018-09-04 02:18
606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10

 

 

나의 뉴욕여행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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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은(길드; 다)

 

문탁에 온 뒤 살아가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씩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순간을 늘려가고 싶다.

 

 

 

 

 

 

 

 

 

1. 책으로 뉴욕을 먼저 만나다

어느 가을날, 세미나 쉬는 시간에 문탁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런 말을 하셨다. “너네들 중에 뉴욕 갈 사람?!” 갑자기 뉴욕이라니? 난데없는 해외여행 제안 놀랐지만 해외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떠난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신이 났다. 게다가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날씨의 뉴욕이라니! 100일 수행을 함께 했던 고은이와 2030세미나를 함께하던 광합성(이하 합성), 문탁 선생님으로 뉴욕 여행팀이 꾸려졌다.

하지만 뉴욕 여행팀이 꾸려지자마자, 나는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난관에 봉착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도, 영어를 못해서도, 여행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바로 뉴욕여행팀이 꾸려지자마자 시작한 것이 세미나였기 때문이다. 흔히 여행을 준비한다면 어떤 짐을 챙겨갈지, 현지에 어떤 곳을 갈지, 무엇을 경험할지부터 떠올릴 것이다. 정말로 나는 책부터 읽어야지라는 말이 어떤 여행 가이드북을 읽을지 고민하는 줄 알았지, “뉴욕 여행준비세미나를 위해 같이 책을 읽어보자는 말일 줄은 몰랐다! 함께 읽게 된 책은 이와사부로 코소의 <뉴욕 열전>. 그렇게 단기 뉴욕 여행준비 세미나가 열렸고 나는 첫 발제를 맡았다. 하지만 첫 세미나 당일, 나는 한 시간 지각에 발제문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 나타났다.

내가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문탁쌤은 고은과 합성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당연히 문탁쌤에게 엄청난 불호령을 맞고, 너는 뉴욕에 가지 마! 라는 말씀까지 하시며 세미나실에서 나가버리셨다. 그러나 고은과 합성은 문탁쌤의 그런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주었다. 나는 만일 뉴욕에 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고은과 합성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번 책의 발제만은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성과 고은에게 사과를 하고 이후로 매주 <뉴욕열전> 전체를 발제를 해갔고, 내 노력이 갸륵해서인지, 안타까워서인지 다행히도 나는 뉴욕 여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파지스쿨이나, 다른 세미나에서 책의 일부를 읽고 발제를 했던 적은 있지만 책 한권을 전부 발제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여행에 왜 공부가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제일 열심히 뉴욕을 공부했다. 뉴욕은 정말 신기한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흔히 미국은 인종의 셀러드볼이라고 불리는데 그 중에서도 뉴욕은 가장 그 별명에 걸맞는 도시였다. 더욱이 뉴욕에는 단순히 이민자들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뉴욕이라는 공간 안에서 무수한 사건들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무시 받는 시골여자, 뮤지컬배우가 꿈인 흑인 게이배우, 이방인을 싫어하는 퀸즈출신 약쟁이 집주인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졌고, 그만큼 뉴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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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접 만난 뉴욕의 모습들

사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뉴욕 공부의 큰 보람이 느껴졌다. 뉴욕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은연중에 굳이 뉴욕에 가야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미 비행기에 탔으면서 말이다) 생각해보자. 사실 세상 어딜 가나 맥도날드랑 KFC가 있고 건물들의 모습도 전부 비슷하고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든 보고 듣는 것은 가능한데 이미 공부까지 한 마당에 꼭 그 현장에 가야만 하는 걸까?

비행기를 타고 가며 한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뉴욕에 도착하고 나서는 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예상하지 못한 여러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대도시임에도 한국보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뉴욕의 환경이나 풍경에 놀랐다. 게다가 더럽기로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도 내 눈에는 그다지 더럽지 않았다. 의외로 맥도날드랑 KFC도 많지 않았다!  대신 가장 뉴욕에서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거리 여기저기 널려있는 전시와 인파에 금방 피곤해졌다.

반면에, 뉴욕에서 재미있던 것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다. 고은과 합성, 문탁쌤과 함께 도시락 싸서 공원에서 도시락 까먹기, 열심히 지도 찾아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사람 구경하기, 매주 주말, 동네 학교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가보기, 현지에 열리는 북세미나에 하나도 못알아들어도 앉아 있어보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부리며 거리 거닐기... 정말 뉴욕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마주침이었다. 이런 말이 어쩌면 조금 식상할지도 모르겠다.

오큐파이 시위가 열렸던 주카티 공원과 얼마 떨어진 곳에 있었던 월가의 황소는 생각보다도 조그마했다. 거리를 축제 장식들로 뒤덮어 이곳이 뉴욕인지 이탈리아인지 헷갈릴 정도였던 산 제냐로 축제에서는 조금만 벗어나도 중국 뒷골목의 거리가 펼쳐지곤 했다. 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다른 공간이 펼쳐질 수 있는지! 백인들은 맨하탄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지냈던 퀸즈 지역에서는 히스패닉과 맥시칸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들마다 <뉴욕열전>에서 보았던대로 뉴욕은 정말 세계의 모든 것을 꽁꽁 모아놓았음에도 섞여있지 않은 잡다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뉴욕의 모습에 놀라고, 여행을 재미있어 했던 것은 그 순간들 속에서 <뉴욕 열전>에서 읽은 모습들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뉴욕에 3주동안 머물렀는데, 보통 그 정도 기간을 머문다고 한다면 주로 가까운 워싱턴이나 보스턴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나가는 거리마다 마주치는 뉴욕의 모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에서 있었던 특별한 마주침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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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욕에서의 만남#1, 맑스

그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은, 바로 맑스다. 그 당시 고은과 합성은 상반기에 <자본론>을 읽고 이어 하반기에도 맑스를 공부하고 있었다. 뉴욕에 다녀오는 동안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선 자체적으로 뉴욕에서도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야 했다. 뉴욕 일정을 계획하면서 주에 두 번 세미나 시간을 비워두었고 그 계획표를 보며 나는 맑스 공부 안하니까 따로 더 돌아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이미 뉴욕도 공부했는데 거기까지 가서 시간 아까워 어떻게 공부까지 한담! 그런 내 생각이 다 보인다는 듯 문탁 선생님은 놀 궁리 하지 말고 너도 책 챙겨 가!”라고 하셨고, 그렇게 뉴욕에서 맑스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읽었던 맑스의 글들은 <자본론>을 쓰기 이전의 초기 저작들이었다. 이미 <자본론>을 읽고 맑스에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는 고은과 합성과 달리 텍스트를 읽으며 나는 혼란에 휩싸였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왜 읽는 건지도 모르겠으며, 단지 뉴욕을 오는 댓가로 공부를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렇게 졸았는지 안 졸았는지 모를 세미나를 두 번 정도 듣고 나서였다. 우리는 맨하탄 소호의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맥날리 잭슨>(Mcnally Jackson)이라는 한 서점에 들리게 되었다. 그 곳에는 직접 제본도 할 수 있는 기계도 있었고 여러 일간지와 주간지도 진열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딱! 맑스를 마주쳤다! 주간지 표지에 코카콜라와 맑스를 합친 벽화가 실린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뉴욕에서 맑스를 마주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레디컬 북카페 <블루스타킹>(Bluestockings)에서도 맑스를 공부하는 세미나원들을 모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덕분에 이를 계기로 맑스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문탁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엔 별다른 질문 없이 새로운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런데 뉴욕에서 만난 맑스를 읽고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맑스를 공부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왜 사람들은 아직도 이 오래된 책을 읽고 있는 걸까? 나는 뉴욕 여행을 마치고도 맑스 세미나에 합류해 맑스의 글을 읽어나갔다.

맑스가 얘기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에 대해 가장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이 없는 노동자들이면서도 자본을 작동시키고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맑스는 이 사람들이 지금의 자본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스무살 이후로 취업에 실패한 이후, 알바 사장님 밑에서 불평하고 싫어하면서도 시급을 받아가며 지내고 있다. 문탁에서 공부를 하고 활동하는 것 이외에는 알바가 거의 유일하게 내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맑스를 읽기 전까지 내가 노동자라거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취직에 성공해 다른 일’, ‘진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진짜 일을 하더라도 자본을 더욱 공고히 하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공산주의당 선언) 내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 생각했던 이유는 맑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바로 나를 지칭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세계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말은 분명 마음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감동스러운 말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익히 알고 있듯 공산주의 혁명은 실패했고, 체제의 전복이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나 역시도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프롤레타리아트라면, 맑스가 자본의 전복이라고 말하는 행위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은 내가 프롤레타레아트에 속해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현실에 얌전히 수긍하고 싶진 않지만 적극적이지도 못하는 이중적인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맑스의 공부는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마음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맑스를 읽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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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욕에서의 만남#2, 해완

맑스와의 만남 이외에도 뉴욕에서는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만남이 또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여행하면서 머물렀던 크크성의 관리인이었던 해완언니의 만남이다. 크크성은 문탁과 비슷한 인문학 공동체, <남산 강학원>에서 만든 일종의 뉴욕지부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해완은 2014년부터 이 크크성을 운영하며 뉴욕에서 지내고 있었다.

해완은 뉴욕에서 정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조금 나열해보자면 뉴욕에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뒤,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공부를 해야 했고, 따로 생계를 위해서 알바를 하면서 크크성도 운영하고 있었다. 세 차원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차원의 일들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해완은 거기에 개인적인 공부를 위한 글까지 쓰고 있었다. 내가 해완에게 정말 힘들지 않냐 물었을 때, 해완은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공부가 뉴욕에서 지내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것은 돈이나 짐이 아니라 다름 아닌 공부라고 말이다. 나라면 당장에라도 도망쳤을 텐데, 해완이 말하는 공부가 무엇이기에 고된 뉴욕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일까?

귀국하기 전, 우리는 파티를 열어 해완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 친구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대만이나 베네수엘라에서도 온 사람도 있었고 인천에서 왔지만 뉴욕에서 알게 된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거기서 나는 언니가 말했던 공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바로 오기 전에 공동체에서 지냈던 경험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했던 공부였던 것이다. 해완의 공부는 장학금을 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법, 그리고 그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는 법이었다.

해완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말은 뉴욕은 특별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해완도 저마다 사연있는 과거에 놀라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모두 저마다의 다른 삶의 거쳐 뉴욕이라는 타지에서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뿐, 그저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해완의 공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다른 이를 이해하고 상대에 대해서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뉴욕 거리를 거닐며 마주쳤던 잡다한 뉴욕이 바로 해완의 거실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현재 언니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쿠바에서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쿠바 쪽에서 의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는 분명 그 곳에서도 다양한 공부를 만들어갈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누구에게나 해외여행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운 좋게도 뉴욕에 다녀온 이후로도 나는 몇 번 더 가족들과 해외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 번은 일본 오사카에 다녀온 것이고 다른 한 번은 독일을 전국적으로 10일동안 다녀온 것이었다. 두 곳 다 처음 가보는 곳이고, 뉴욕에 갔을 때처럼 영화에서 보던 곳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루하고 힘들었다. 싫었다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좋고 즐겁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해서 가장 돈 없이 지내고 잔소리도 제일 많이 듣고 일도 제일 많이 했던 뉴욕이 생각났다.

사실 사람들은 일상의 일탈을 위해 여행길을 오르곤 한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명절 때 친척집 가듯 연례행사로 해외여행에 다녀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에게 해외여행은 일상에서의 단절과 또 복귀를 위한 휴식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뉴욕에서 여느 일상과 비슷한 생활을 보내고 왔다. 여행을 준비하며 세미나를 시작했고, 뉴욕에 가서도 공부를 했으며, 여행에 다녀와서도 계속해서 공부했다. 내가 이런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한다면 친구들은 하나마나 한 여행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지점이 계속해서 뉴욕을 떠올리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에서 마주친 대부분이 바로 공부로 인한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는 계획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책을 펼쳐들 것이다. 가이드북이 아닌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책 말이다.

댓글 7
  • 2018-09-04 03:00

    여행에서 젤로 하기 어려운게 현지인처럼 어슬렁 거리기인 듯~

    다른 곳에 여행 갔을 때, 그래서 일부러 그네들처럼

    비닐봉다리에 슬리퍼신고 돌아다니다, 근처 경찰에게 검문 당했음.

    봉다리에 뭐가 들었냐, 여권은 왜 복사본을 들고 다니냐, 여기 온 목적이 뭐냐.

    어설프게 따라하면 그렇게 X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알았지. 여행가서 젤로 하기 어려운게 현지인처럼 지내는 거라는 걸.

    아~동은이 레시피를 읽으니 여행가고 싶다.

  • 2018-09-04 09:09

    하하...불과 2년 전인데 벌써 까마득하네. 

    그때만 생각하면 늘 생각하게 되지. 난 왜 너네를 데리고 가서 고초를 자처했을까? 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은, 고은, 합성 모두 새롭게 알게 되었지. 특히 동은!!

    길도 잘 찾고, 손재주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고,  사물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예민한 시선도 갖고 있고, 예술적 감수성도 풍부하고.................. 한마디로 재주가 많더군. 

    물론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하여,  나를 수시로 노발대발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난 새롭게 알게 된 동은이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현실화시켜 주고 싶었어.

    단, 조건을 내걸었었지. 한국 가서 운동하자. 그리고 일단 체중 좀 줄이자. 넌 살만 빼면 인생역전한다. 나를 믿어라. 내가 책임진다.

    근데....아직도 내 말을 안 듣네. 심지어 이제 일상이 좀 빡세지니...허리가 자주 나가네. ㅠㅠ

    아, 이 웬수같은 것! ㅋㅋ

    이 웬수를 어쭤지? ㅋㅋㅋ

  • 2018-09-04 09:55

    정말 재미난 여행기!

    당시 여행 후기에서도 뉴욕에서 맑스 셈나 한다는 얘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동은이도 그랬구나.

    문탁의 여행은 사람 귀찮게 하지만 그 만큼 달리보고 많은 걸 남기는 것 같다는....

    글고 문탁샘 육성이 들리는 듯~ㅋ

  • 2018-09-09 22:14

    아무리 봐도 마지막 사진이.... 스핑크스와 동은이 너무 똑같아.....

  • 2018-09-11 02:32

    루쉰을 공부하고 중국에 계신? 있는? 루쉰을 보러갔을 때.

    미리 해둔 공부가 당연히 도움이 됐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뉴욕을 가기 위해 뉴욕을 공부했다라 0으로 가서 1채우기를 좋아하는 

    내가 보기에는 신기한 여행 방법이여. 이글 보니까 언니처럼 여행도 가고 맑스도 궁금하네.

  • 2018-09-11 10:35

    동은이 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2년전 사진을 다시 열어보게 됐다 ^^

    맑스세미나 안하고 돌아다닐 궁리를 했었구나 완전 몰랐네

    다시 생각해도 동은과 문탁샘은 찰떡(?) 궁합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딸 궁합~

    추억의 사진 몇장~

    brooklyn1.jpg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Cloister Museum.jpg

    클러이스터(수도원) 뮤지엄 가는 길

    qlc.jpg

    동은이 눈에 포착된 색(빛)

  • 2018-09-18 15:50

    .

한문이예술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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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0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기린
2024.05.10 | 조회 17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띠우
2024.04.28 | 조회 173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61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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