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1회] 아포리아, 생각할 준비가 되었나요?

새털
2018-05-30 11:53
802

[플라톤이 돌이왔다 1회]

아포리아, 생각할 준비가 되었나요?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새털 프로필02.jpg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천재소녀의 OMR카드를 공유하라, 영화 <배드 지니어스>(2017)

   약속시간에 쫓겨 지하철을 타러 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교통카드를 찍자마자 전력질주로 계단을 내려가지만 전동차의 문은 곧 닫히려 한다. 탈 수 있을 것인가 못 탈 것인가? 미쳐버릴 것 같은 ‘0.0000......1의 짜릿함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약속에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는데, 배터리는 간당간당하고 신호가 잡히지 않아 머릿속이 하얗게 -아웃(burn-out)’되는 불안과 초조함 또한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런 건 어떨까? 지우개로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고사장에 들어갔을 때 빠른 비트로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수. 부정행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긴장감.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른다.

   201711월에 개봉한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해지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시험 감독관의 매의 눈을 피해 지하철역으로 도망치고, 도주중 휴대폰으로 정답을 전송하고, 부정행위의 증거물인 휴대폰을 신속히 처리하는 여고생 린의 고군분투는 긴장감 총량에서 은행을 털고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전문범죄집단의 난동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 <배드 지니어스>는 속이고 훔치고 달아나는 케이퍼무비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는 범죄영화다. 장르영화의 관습적 표현인 총격전과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 등장하지 않고, 이들이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려는 것이 시험답안지라는 점에서 귀여운범죄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훔치려는 것이 시차를 이용한 미국대학 입학자격시험 답안지라고 한다면, 이들의 일탈은 가볍지만은 않은 글로벌 사기극이 된다.

   범죄영화의 고전 <오션스일레븐>(2001)에서 조지클루니와 브레드피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잘 생긴 범죄자들과 한패가 되어 그들의 모의와 작당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공모자가 된다. <배드 지니어스>에서도 관객들은 부정행위를 주동하는 모범생 린에게 순식간에 빠져든다. 영화는 영리한 편집으로 시계 초침소리, 시험 감독관과의 눈싸움, OMR카드에 마킹하는 순간의 떨림을 감각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관객들 전원을 학창시절의 그 숨 막히는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고등학교 음악시험을 대비해서 들었을 법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 바흐의 미뉴에트가 부정행위의 도구로 사용되는 영화적 발상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과거의 추억을 소환한다. 하이든의 트럼펫협주곡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장학퀴즈(그 음악이 오프닝시그널로 사용되었던 방송프로그램)를 떠올리는 세대가 있는 것처럼, <배드 지니어스>나쁘지만 모두가 갖고 싶었던시험 정답지에 대한 범죄욕망을 환기시키며 관객들을 공모자로 만든다. 관객들은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마술피리>의 아리아 밤의 여왕을 들으며 완전범죄를 모의하는 주인공들의 허황된 기대감과 불안을 공유하게 된다.

 

 

    

2.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계산하라, “먼저 속이지 않으면 당하고 마는 게 인생이야

   한국에서 <배드 지니어스>가 개봉되었을 때는 수능시험을 앞둔 시점이었다. 예정대로 시험이 치러졌다면 수능을 본 수험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개봉날짜가 정해졌을 텐데, 2017전대미문의 수능시험 연기사태로 영화의 개봉은 수능 전에 이뤄졌다. <배드 지니어스>의 국내 흥행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태국영화라는 생소함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티켓을 끊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소비생활에 있어 철칙이 된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따져보았을 때, 정보가 희박한 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있는 리스크가 큰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크의 부담감을 안고 <배드 지니어스>를 본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분명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라는 20자 촌평을 남겼으리라 확신한다. <배드 지니어스>는 가성비 좋은 영화다. 그리고 <배드 지니어스>는 바로 가성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다. 영화는 인생의 가성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대학입시와 공부는 가성비 좋은 소비상품인가?

   글로벌 입시부정 사건의 공범들, 뱅크, 그레이스, 팟은 방콕 엘리트 사립고등학교의 동급생들이다. 장학생 린과 뱅크는 학교의 입시성적을 올려줄 우등생들이고, 그레이스와 팟은 학교의 재정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부잣집 아이들이다. 교내 연극공연을 위해서는 학점 3.5가 넘어야 하는 그레이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시작된 린의 지우개부정행위는 팟을 비롯한 부잣집 아이들에게 과목당 3천밧(한화로 10만원)을 받는 고액 알바로, 급기야 국제적인 규모의 입시비즈니스로 진화한다. 리스크가 큰 국제적인 시험이니만큼 투자자의 규모도 미국유학을 희망하는 태국의 학생들로 큰 판이 만들어진다. 우등생 린과 뱅크가 시차에 의해 4시간 빨리 시험을 치르는 시드니에서 먼저 시험을 보고 정답을 외워 태국으로 전송한다는 이들의 작전은 성공한다. 아니 반만 성공한다. 처음의 계획대로 정답은 무사히 전송되지만, 뱅크의 부정행위는 발각되고, 린의 성적은 무효처리 된다.

   그렇다면 똑똑한아이들 린과 뱅크는 왜 이런 무모한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것일까? 장학금을 받으며 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퍼펙트한 스펙의 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탁소집 아들 뱅크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어머니를 편하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소수점 이하의 원주율을 암기할 정도로 학업에 집중하는 학생이다. 그러나 린과 엮이게 되면서 장학금 수혜자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고, 린의 입시비즈니스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뱅크를 설득하는 린의 대사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먼저 속이지 않으면 당하고 마는 게 인생이야!” 사실 이런 독한 말을 내뱉을 만큼 린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어쩔 수 없이 부정한 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강압적인 조건에 있지 않다. 린이 보기에 학교가 공정하게학비로만 운영되지 않고 부모들에게 뒷돈을 받고 있는 행태는, 자신이 부잣집아이들에게 정답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성을 운운할 자격이 없는 학교가 학생에게 높은 인격을 요구하는 이중적 잣대는 린에게 교육시스템의 공정성자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린보다 더 많이 세상을 산 사람들은 학교뿐 아니라 공정성을 기준으로 내세운 기업, 사회, ,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공정하지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린처럼 공정하지 못한 사기극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무방하다는 극단적인 입장에 설 수만도 없다. 린과 친구들의 사기극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가고, 또 다시 린과 뱅크처럼 불공정한 게이머들이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이 증가될 뿐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지리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뱅크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새로운 입시비즈니스를 계획한다.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한다고 해도 월급을 모아서는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액의 성공보상금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산되고 있다. 뱅크의 깨달음처럼 오늘날의 현실은 노력으로만은 안 된다.

   공정성이 훼손된 시스템 속에서 그 공백을 들여다본 두 아이 린과 뱅크,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원칙을 지키며 노력해서 살라고, 혹은 기회가 된다면 속임수를 써서 빠른 이득을 챙기라고, 둘 중 무엇이 정답일까?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따져 가성비를 계산해보자. 인생 자체가 비즈니스다. 그런데 계산이 쉽지 않다. 원주율만큼이나 끝나지 않는 계산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배드 지니어스>의 긴장감은 바로 이 복잡한 계산에 있다. 속임을 당하기 전에 먼저 속일 것인가, 그 리스크를 감당할 것인가, 뚝심의 노력으로 버텨볼 것인가? 이 가운데 정답은 있는가?

    

 

 

3. 아포리아(aporia), 생각의 내비게이션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이 무위로 돌아갈 때 나타나는 곤란함과 당혹감은

우리들로 하여금 다른 무엇을 찾아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포리아(aporia)는 항해술에서 배가 난관에 부딪게 되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관념이나 생각이 부정될 때 겪게 되는 헤어날 수 없는 난점을 가리킨다. 또는 그러한 당혹감과 마비의 상태, 또는 무지를 의식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린과 뱅크에게 닥친 일은 아마도 아포리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포리아는 출구 없는 막다른 길이 아니다. 곤란함과 당혹감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무엇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도록 만든다.

델피신전으로부터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의 직업은 아고라를 오가는 아테네 사람들을 아포리아에 봉착하게 하는 일이었다. 우정이 무엇인지, 용기가 무엇인지<span lang="en-us"

댓글 8
  • 2018-05-30 14:06

    새롭게 시작되는 새털의 연재 '플라톤이 돌아왔다!'

    앞으로 매달 마지막 주, 한 달에 한 꼭지씩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새털과 함께라면 플라톤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재미를 넘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냐고, 제발 생각 좀 하라고,

    매번 우리를 흔들어 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 2018-05-30 18:04

    아포리아 앞에서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인생을 비즈니스처럼 계산하면서 사는 것은 차라리 쉬운 결정같네요.

    그것은 인생을 대면하는 것이 아닌 도망가는 것이지 않을까...

    '배드 지니어스'의 린과 뱅크의 결정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똑똑하다 자부하는 아이들의 쉬운 결정이어서 슬기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무지한자의 슬기로운 철학 생활은 어떤 것일지 다음 글을 기대할께욧!

  • 2018-05-30 23:40

    드디어 시작인가요? 흐흐 무조건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이번 연재는 우리에게도 새털을 쪼을 수 있는 절호의 시간들입니다...

    그 동안 새털의 쪼아댐에 내심 기뻤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그 기쁨의 쪼아댐을 우리도 새털에게 전해줍시다~크하하하하

    ........라는 생각은 슬기로운 철학생활일까요?

  • 2018-05-31 00:00

    아포리아조차 인지하지못하는 무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런 연재글도 있군요~^^

    플라톤.. 국가... 철학...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인데 재미있게 읽혀지네요 ㅎㅎ

    연재글 기대할게요^^

  • 2018-05-31 18:16

    음 ᆢ 새털쌤의 이 연재가 증말 기대됩니다.   '국가' ᆢ느낌아니까~~

    정말 느낌뿐이지만서도요 ㅎㅎ 

    이래저래 일도 많으시면서 슬기로운 철학생활까지ᆢ 옥수수수염차말고 더 좋은차 챙겨드려야될듯

  • 2018-06-01 07:36

    (옥수수수염차로 브이라인 만드는 사람은 옛날 사람이구요~ 요즘은 우엉차가 대세예요.ㅎ)

    쌤의 글이 술술 읽혀요~ 역시 새털쌤! ^^

    쌤의 '국가' 이야기에  한 점으로라도 우리가 나올까요?

    앞으로 계속 눈 부릅뜨고 읽을게요~~~ㅎㅎㅎ

  • 2018-06-02 14:01

    글을 읽고 나니, 문탁에 처음와서 축제에 썼던 글을 다듬어주던 새털샘이 기억나네요. ^^

    일상에서 만나는 플라톤이 어떻게 쓰여질지 궁금하네요. 지치지 마시고, 화이팅!

  • 2019-03-15 20:14

    새털선생님..

    퇴근길 대중지성에서 고대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던중 플라톤이 돌아왔다라는 신선한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문탁에서 공부하신지 벌써 9년이나 되셨어요?

    '나도 9년쯤 공부하면 이렇게 글을 쓸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열공의 필요성도 느끼게 되었어요.

    전체글을 다 출력해서 읽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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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4.04.27 | 조회 14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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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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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64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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