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삼보일배] 나는...참, 느리다.

히말라야
2015-05-3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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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는 일주일을 마감하며 여유롭게 월든을 지키는 금요일이지만, 이날은 계속 마음이 설레었다.

설레임...? 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준비하고 되새기는 마음.

그것을 설레임말고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동학들이 힘을 모아 밥을 하고 차에 싣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가슴은 계속 콩닥거렸다.

팽목항부터 삼보일배로 80여일을 길위에 서 있는 승현이 가족을 만나는 일이 어떤 일일지....

절이라고는 ... 설날에 한 번하는 내가, 과연 진짜로 길바닥에서 절을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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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낭 속에는 삼보일배를 위한 온갖 준비물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막상 삼보일배를 행해야 할 현장에서 나는 카메라를 잡겠다는 핑게로, 그 모든 준비물을 함께 간 달팽이샘께 양도했다.

절이 힘들어 보여서가 아니라, 왠지... 내가..나 같은 인간이... 이렇게 불쑥. 갑자기. 감히. 저 경건한 몸짓 속으로 들어가도 되는 걸까.

그런 느낌을 카메라 뒤에 숨어 느끼며, 묵묵히 대열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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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몸짓을 따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본다.

그러자,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이 더 높아 보인다.

"국민 여러분, 저의 절을 받으시고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품어주소서"

몸짓들과 함께 삼보일배 일행의 차량에 써 있는 문구를 읽으며, 눈물이 울컥솟는다.

힘든 사람들을 다시 이렇게 힘든 길에 서 있게 하는 세상. 그것이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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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멀리에서나마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빨리 좀 가자고 빵빵거리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만큼 지켜보고 나서야 나도 그 몸짓을 따라해도 되겠다는, 따라만이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참,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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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교회에 마련된 저녁식사 시간. 학생 한 무리가 찾아왔다.

어라? 낮에 월든에 와서 승현이 가족일행의 행방을 물었던 학생이다.

내가 너무 대충 가르쳐준 탓에 학생들은 삼보일배 일행에 합류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찾아다니기만 했단다...참말로 미안합니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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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넘고 물건너 찾아 온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마술시연을 보여주시며 활짝 웃는 승현아버지 이호진 님.

고통 속에서 절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고통 속에서 분노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지만....고통 속에서 웃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일것이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도 않고, 고통을 잊으려고 하지도 않고,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온전한 고통 속에서 웃는 웃음.

우리를 향해 절을 하고  우리에게 웃음을 웃는 그는, 지금 우리가 읽어내야 할 살아있는 길 위의 철학책이다.

그 책을 ...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건 우리의 몫이다.

댓글 2
  • 2015-05-31 10:53

    삼보일배에 참여한 이들,

    순례단을 위해 장보고, 밥짓고, 나르고, 설거지를 해낸 이들,

    모두 고맙습니다.

    덕분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사람노릇하기의 어려움을

    가슴깊이 통감했습니다.

  • 2015-06-04 14:29

    27일, 28일 이틀간 좀 우울해하셨다는 승현아버님이 활짝 웃어주셔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간 점심식사와 담쟁이 만주, 시원한 더치커피가 나름의 역할을 하였다고 해서

    뿌듯했습니다..

    짧은 시간 한거라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주말동안 계속 팔다리가 무겁더군요.

    오랜시간 거리에서 보내는 분들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