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예술 3회]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2023-07-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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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를 들면, 사람의 탄생과 죽음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의 출산방법과 장례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일도 예시가 될 수 있다. 고대에 요즘처럼 숏비디오를 찍으며 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진 않았겠지만 그 때도 '친구와 함께 논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의 질문을 받은 이후로 고대와 지금은 분명히 다르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 속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이 내가 한자 선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때로 고대 사람들의 어떤 ‘태도’가 되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들의 태도가 드러나는 한자를 소개한다. 옛 석昔은 아주 까마득한 과거를 의미하는 한자다. 그런데 옛날의 ‘옛날’, ‘고대’의 ‘옛날’이라고 한다면 과연 언제를 옛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하기도 이전인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고대 사람들에게 ‘옛날’은 아마도 처음 ‘이야기가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었던 시절 말이다. 구전설화의 주제들은 대부분 건국과 연관되어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삼국사기>의 환웅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환웅이 고조선을 세울 때 홀로 온 것이 아니라 신하인 우사와 풍사, 그리고 운사를 데리고 왔다는 점이다. 그가 전지전능한 신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비와 바람, 그리고 구름같은 자연을 다룰 수 있을 다루는 신하를 두어서 였던 것이 분명하다. 고대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그 속을 알수 없는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도 나일강의 범람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중국도 별로 다르진 않았다. 중국 고대 나라인 ‘하夏나라’의 순임금은 당시에 파격적으로 자신의 자손이 아니라 나라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다음 왕위를 이은 사람의 공적이 바로 범람의 피해를 막은 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홍수의 피해를 막은 것이라 생각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스케일이 다른 중국 황하의 범람을 막았다면 오늘날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때 거대한 범람을 의미하는 한자가 바로 昔이다. 昔 아래에는 태양이 있는데 초기 갑골문을 살펴보면 昔의 형태가 물결치는 파도 아래에 태양이 있는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昔은 사실 태양을 삼킨 파도가 넘실거리는 규모의 엄청난 자연재해를 의미하는 한자였다.

 

 

3. 어떻게 재해는 ‘옛날 일‘이 되었나

 

   범람은 비옥한 토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강가에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다. 산사태나 지진같은 재해와는 다르게 우기는 주기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이 한 해가 시작하는 기준이 될 정도였다. 재해는 사람들이 일궈놓은 밭, 농장, 마을과 사람들을 없앨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억까지 없앨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매년 돌아오는 범람 때문에 그 지역에 자리를 잡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한다. 고대 중국 사람들에게는 잊기 어려운 두 번의 범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중 첫 번째는 아득한 신화시대에 일어난 범람으로 이 때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어버려서 신들이 다시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어 줬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대 사람들이 몇 번이나 그 폐허 위에 새로운 시작을 반복했을지 오늘날의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범람이다. 두 번째 범람은 첫 번째 범람보다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바로 처음으로 범람의 피해를 막은 ‘우禹의 치수治水’이야기로 여기서 등장하는 우禹가 바로 범람의 피해를 막고 요임금에게 인정받아 왕위를 물려받은 주인공이다.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기원전 2300년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아마도 이 시기부터 사람들은 조금씩 범람의 피해를 줄이며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던 기록과 기억, 업적을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전해졌으며, 어찌할 줄 몰랐던 자연재해는 서서히 먼 옛날이 되어 昔은 서서히 ‘옛날‘을 지칭하는 말로 변해갔다. 어려움을 극복해 재앙을 글자 그대로 ‘과거의 일‘로 만들어낸 것이다.

 

 

치수 이야기의 주인공 우

 

   그런데 우는 어떻게 범람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걸까? 우의 아버지는 황하의 물을 다스리는 일을 해왔는데 우의 아버지는 제방을 쌓아 물길을 막는 일에만 열중해 매번 범람의 피해를 막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왕은 매번 실패하는 우의 아버지를 대신해 우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우는 제방을 없애고 오히려 더 많은 물길을 만들어 범람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실패의 경험으로 결국엔 인간이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재해를 극복해낸 것이다.

 

 

4.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昔은 오늘날 사용되는 의미와 다르게 고대에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을 이겨낸 사실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한자다. 뜻이 달라진 채 사용되고 있어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나는 이 한자가 재해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말고도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단숨에 무너뜨릴수 있는 자연재해도 언젠가는 옛날 일이라며 과거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 꼭 두려워만 하지 말라는, 그런 태도 말이다.

 

   나는 고대 사람들이 범람을 문자로 만들어냈던 것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시각화시켜서 문자로 만들어보는 활동을 꾸몄다.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친구랑 싸웠던 일, 하기 싫은 숙제, 가족과의 관계 등등 다양한 문제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이 당시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 속에 여러 제약들이 만들어지던 시기라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라고 썼던 아이의 활동지가 기억난다.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코로나 때문에 시행착오들을 맞닥뜨리던 때였다.

 

 

마스크가 바꾸어 놓은 것들

 

 

   코로나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던 아이는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구체적인 내용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코로나가 걱정스러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는 단순한 개인 위생과 건강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 위생때문에 벌어지는 낭비와 소비들, 가려진 얼굴로 잊혀지는 표정들, 깨끗한 것과 불결한 것으로 나뉘는 세계... 무엇이 달라졌을지 확신할 수 없는, 불투명한 어려움들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코로나 또한 일종의 재해이기에, 그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2년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더이상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언론에서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는 것을 두려워한다. 등산을 하면서 숨이 차올라 답답해 하면서도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미 일상을 되돌린다거나, 되찾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로 돌아갈수도 없는데 우리는 일상의 무엇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걸까?

 

 

   한자공부를 통해 과거를 되찾자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이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고대사람들이 재해를 문자로 만들어 사용하면서 昔을 재해로 사용해온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아득한 시간동안 어려움을 직시하고, 끝끝내 그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처럼. 昔은 그들의 어려움과 오늘날의 어려움을 떠올려보게 만든다.

 

 

 

댓글 6
  • 2023-07-04 19:15

    잘 읽었습니다. 한자 석에 그런 깊은 의미가 있었군요. 결코 우리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겠죠. 그 돌아가는 행위 자체가 현재요 미래일테니까. 시간과 말의 변주를 오묘하게 풀어 잘 정리하셨네요..

  • 2023-07-06 13:51

    이번에도 조쿤🙃

  • 2023-07-06 14:22

    기후위기 앞에서 昔의 의미를 되짚어보아야겠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2023-07-10 23:32

    昔자에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재미있어요^^

  • 2023-07-11 14:20

    昔.. 멋진데요!? 글자 하나에 녹아든 과거의 어려움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마스크에 녹아든 이야기, 또 다른 물건이나 행위에 녹아든 이야기.. 선생이란 직업은 이야기꾼일수도 있겠어요

  • 2024-03-17 23:35

    재해에서 비롯된 한자라니... 이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놀라운 한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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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3.09.11 | 조회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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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3.09.11 | 조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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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정군
2023.09.11 | 조회 211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달관주의와 신비주의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자사가 문병을 가서 자여를 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그대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로 가서 자신을 비춰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자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습니다. “아니네, 그럴 리가 있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이 점점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올빼미를 잡아 구워먹겠네. 내 꼬리뼈가 점점 변해 수레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이 된다면, 그것을 탈 테니 따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 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이네.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였네. 그런데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사물이 자연의 이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장자』내편, <대종사(大宗師)>)   이 책의 제목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가 연유한 부분이다. 『장자』 <대종사>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호접몽(胡蝶夢)의 구절 못지않게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의 근대철학자 호적(胡適)은 이 부분을 한 마디로 ‘낙천입명(樂天立命)’이라고 비판했다. 낙천입명은 하늘의 명을 따라 즐기고 이에 순응한다는 뜻의 ‘낙천지명(樂天之命)’과 같은...
달관주의와 신비주의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자사가 문병을 가서 자여를 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그대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로 가서 자신을 비춰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자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습니다. “아니네, 그럴 리가 있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이 점점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올빼미를 잡아 구워먹겠네. 내 꼬리뼈가 점점 변해 수레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이 된다면, 그것을 탈 테니 따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 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이네.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였네. 그런데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사물이 자연의 이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장자』내편, <대종사(大宗師)>)   이 책의 제목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가 연유한 부분이다. 『장자』 <대종사>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호접몽(胡蝶夢)의 구절 못지않게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의 근대철학자 호적(胡適)은 이 부분을 한 마디로 ‘낙천입명(樂天立命)’이라고 비판했다. 낙천입명은 하늘의 명을 따라 즐기고 이에 순응한다는 뜻의 ‘낙천지명(樂天之命)’과 같은...
봄날
2023.09.05 | 조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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