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11회] 천천히, 예민하게 모든 일을 바라보다

봄날
2023-07-04 07:29
289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관계가 계속되다 보면 반드시 그 안에서 뭔가 좋지 않은 일, 좋지 않은 사건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가 늘 좋고 기쁘지만은 않게 마련인데. 서로 기뻐하고 따르다 보면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일들을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때가 많다. 그러면 문제는 깊게 숨어버리고, 겉으로는 여전히 ‘기쁜 우리 사이’의 상태가 지속된다. 고괘는 그렇게 깊게 가라앉았던 문제가 분출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산풍고괘의 물상을 보면 고괘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더 쉽게 알 수 있다. 고괘는 위는 산, 아래는 바람의 형상을 가진다. 산에 가로막혀 바람이 길을 열지 못하고 한곳에 갇혀있으면 생기는 일. 바람은 어딘가로부터 흘러와서 어딘가로 흘러가야 한다. 잠시도 쉼없이 불어야 할 바람이 갇히면 그 자리에서 요동친다. 위아래가 뒤섞이고,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보면 밑바닥에 깊숙하게 가라앉아 있던 옛날 것들이 바깥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매일 보는 나무의 푸르름에만 마음이 한껏 기쁘다가, 문득 나무의 밑둥이 검게 썩어들어가는 것을 봤을 때, 마찬가지로, 좋은 사이인 줄 알았던 우리 관계에 건널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의 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것이 모두 산에 가로막혀 들끓던 바람이 한 일이다.

 

고괘의 때에는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그렇게 가라앉았던 문제들이 일제히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뜻밖의 상황(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고괘인데, 그 괘사는 의외로 ‘형통하다’고 말한다. 왜 형통하다고 했을까.

 

“고(蠱)는 크게 형통하여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에 앞서 삼일을 하며 갑(甲)의 뒤에 삼일을 한다.(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蠱)라는 것은 산 아래 바람이 불어서 불거진 (생각하지 못했던)일들을 상징한다. 크게 형통하다는 것은 일단 기운이 세다는 표현이다. 많은 일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또 그 일이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것에 힘이 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산풍고괘가 가리키는 이 일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 계기가 생기고 자라나, 바로 지금 드러난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의 일, 사건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것들이 마무리되는 지점이고, 또 어떤 일이 바로 지금 새로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말이다. 쌀벌레로 말하자면 쌀독 안에 벌레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고, 벌레가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이 마쳐짐과 동시에 벌레가 생긴 이후 과정을 모두 아울러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아리에서 벌어진 다툼은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한 한 사람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결국 일어날지도 모르는 문제를 계속해서 봉합해온 것에 나, 너를 막론하고 동아리 회원 모두가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또 어느 한 사람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결국 모두가 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고, 그러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도 모두가 개입해야 한다. 괘사의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방향으로나 아무 방식으로나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행동은 ‘선갑삼일 후갑삼일’에 기반해야 한다.

 

굴양식을 하는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양식에는 천혜의 조건이 필요하다. 수질이 깨끗한 청정한 앞바다가 있어야 하고, 물살이 세지 않아 어린 굴들이 조개껍질에 잘 붙어야 한다. 몇 년이고 이렇게 달라붙어서 굴이 조금씩 자란다. 자연조건에 맞추는 일이다 보니, 늘 기상상황이나 바다의 변화에 신경이 쓰인다. 여름에 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몇 년 동안 공들여 키운 굴들을 다 못쓰게 돼버리는 일도 더러 겪는다. 그런데 그 지인은 이 태풍이 원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큰 태풍은 육지만이 아니라 바닷속도 위아래 할 것 없이 마구 헤집는데, 이렇게 한번 바닷속을 크게 뒤집어 놓고 나면 당장의 양식에는 피해가 있을지 몰라도 바닷속은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고요했던 양식장 깊은 바닷물이 태풍으로 뒤집히는 통에, 어린 굴들은 여태까지 자신이 의지했던 조개나 미역줄기를 잃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다시 건강을 되찾은 바닷속,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이것을 가리켜 단전은 ‘하늘이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갑삼일 후갑삼일한다는 것은 마치면 곧 비롯함이 있는 것이니 하늘이 행하는 것이다(先甲三日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선갑삼일 후갑삼일’할 것인가. 우선 선갑삼일 후갑삼일의 대상은 무엇이고, 그 방법은 무엇인지를 따져보자. 정이천은 이것을 해석하면서 ”마치는 것은 선대(先代)의 일이요, 시작하는 것은 당대(當代)의 일이다”라고 했다. 말하자면 현재 시점에서 벌어진 일은 이전부터 지속되는 어떤 흐름 속에 있고, 그 일은 또 지금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사건은 그 앞뒤로 감당하고 고려해야 할 (감추어진)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한꺼번에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산풍고괘의 효사가 부모자식 관계로 묘사되는 것은 잘 따져볼 일이다.

 

고괘의 효사는 상효를 뺀 모든 효가 ‘아버지의 일(幹父之蠱)’이나 ‘어머니의 일(幹母之蠱)’로 표현된다. 즉, 산풍고, 그릇에 벌레가 먹은 사건은 부모자식간의 일처럼 불가피하다는 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장하니, 자식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가 허물이 없을 것이니, 위태롭게 여겨야 마침내 길할 것이다.

구이는 어머니의 일을 주장하니, 가히 곧게 하지만은 못한다.

구삼은 아버지의 일을 주장하니, 조금 후회가 있으나 크게 허물은 없을 것이다.

육사는 아버지의 일을 여유롭게 하니, 가면 인색함을 볼 것이다.

육오는 아버지의 일을 주장하니, 명예로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명(天命)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 내가 무엇을 어찌할 수 없다. 고(蠱)의 상황은 이천의 말대로 선대(先代)로부터 후대(後代)로 이어지는 일인데, 부모 자식처럼 이미 놓여진 관계 속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나는 것이라, 피하거나 막으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동아리 중의 누군가가 현명하고 신중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하고 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괘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이렇게 세대를 거치면서 계기가 되고 결국 터진 일은 ‘일단 터진 일이다’라고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선을 긋고 현재의 국면을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바꿔나갈 근력을 다질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일을 매듭짓는 동시에, 지금부터 변용해나갈 나를 마주하는 것. 새로운 시작점에서 어린 굴이 자신이 매달렸던 조개나 태풍을 원망하거나 그리워하지 않고, 바닷속을 유영하며 새로운 의지처를 찾는 굴로 변용하듯이, 나는 새로운 동아리 회원으로의 변용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변용의 지점을 뜻하는  갑(甲)은 일이 시작되는 시점인 동시에, 이전의 일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된다는 것을 함께 말한다. 갑(甲)을 ‘일의 마침이자 시작’이라고 한 것은 60갑자를 기준으로 하는 책력에 기인한다. ‘책력(冊曆)’은 오래 전부터 동양에서 때의 변화를 구분할 때 쓰이던 달력같은 것인데, 하늘의 단위인 천간(天干)과 땅의 단위인 지지(地支)를 교차시키면서 모두 60단위가 만들어진다. 이때 ‘갑자’는 그 첫 단위이다. 햇수로 따지면 한 갑자는 60년이 되고, 일수로 따지면 60일이 되는 것이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에서 ‘삼일(三日)’은 갑을 기점으로 전후를 가리키며, 주역에서 표현하는 많은 숫자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특정한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전후 삼일이라고 해서 이전과 이후의 비중이 똑같다는 뜻도 아니다. 결국 이 말(선갑삼일 후갑삼일)은 현재의 일을 고찰하는 데 있어 충분히 신중하고 꼼꼼하게 앞뒤를 살피라는 뜻이다.

 

천천히 예민하게 후갑삼일하기

사건이 있고 몇 주 뒤,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동아리MT를 다녀왔다. 약속이 있어 빠진 회원도 있었지만, 우리들 간에는 뭔가 이전보다 훨씬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오갔던 것 같다. MT를 다녀온 후, 좀 오글거리기는 했지만 나도 몇몇 회원들과 전화나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냥 안부를 묻기도 하고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 일상 속의 대화였지만,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인 것은 나나 상대방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한 사람이 동아리를 탈퇴하면서 한동안 난감하고 우울 비슷한 정서에 휩싸여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신입회원의 닉네임은 ‘예민한 달팽이’였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냥 그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그 별명처럼 하는 것이 ‘후갑삼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는 느리다.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천천히 움직이면 빨리 움직일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많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거기에 예민함까지 갖추다니. 우리는 좀더 예민하게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해야 하며, 결코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우리 스스로 변용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후갑삼일의 과제 앞에서, 나는 “우리 서로 예민한 달팽이가 되어보자”고 말할 결심을 세웠다.

 

댓글 4
  • 2023-07-04 08:47

    재밌네요. 그 동아리가 어딘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근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명(天命)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 내가 무엇을 어찌할 수 없다. 고(蠱)의 상황은 이천의 말대로 선대(先代)로부터 후대(後代)로 이어지는 일인데, 부모 자식처럼 이미 놓여진 관계 속에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겨나는 것이라, 피하거나 막으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동아리 중의 누군가가 현명하고 신중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하고 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괘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에서, 특히

    "우리 동아리 중의 누군가가 현명하고 신중해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하고 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게 좀 그래요. 그냥 어쩔수 없는 건가요? 우리가 기미를 포착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요?

    • 2023-07-04 16:37

      문제는 산풍고괘가 제시하는 상황은 '이미 벌어진 사건'이라는 데 있죠. 기미를 살피고 미리 방비하는 상황은 산풍고괘가 다룰 '일'이 아니라는....저는 그렇게 해석했어요. 그래서 산풍고괘는 일단 벌어진 일을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데 오히려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 같아요.

  • 2023-07-04 09:30

    고괘가 이번 주역팀에서 발표할 괘이라 부연하자면, 가부장제 사회를 예를 들면 이러하다 해요.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세습할 때, 권력이나 부와 관련된 주변관계들이 문제 되는 상황인거지요.
    아버지의 권력관계, 즉 가신들과 협력과 대립관계, 뭐 이런 것들이 있을텐데, 아들도 자신의 관계가 있을테고
    결국 이런 관계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조율할 것인가하는 거지요.
    부자관계가 천명이란 거는 이게 딱 끊을 수 있는거는 아니고, 바꾸자니 그만큼 어렵고 그런 것인거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지형의 변화가 명확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떄의 일이므로
    아마 모든 관계성을 재조립할 정도, 송구영신해야 하는 괘인 것 같아요.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기미 또는 미리 준비하는 것과 새로 시작할 때 앞의 끝을 귀감으로 삼아 재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 2023-07-14 11:50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삼년은 바꾸지 말라는... 이런게 생각나네요
    그만큼 재조직하는데 뭔가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겠죠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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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3.09.11 | 조회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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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3.09.11 | 조회 16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진달래
2023.09.11 | 조회 19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정군
2023.09.11 | 조회 211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달관주의와 신비주의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자사가 문병을 가서 자여를 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그대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로 가서 자신을 비춰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자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습니다. “아니네, 그럴 리가 있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이 점점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올빼미를 잡아 구워먹겠네. 내 꼬리뼈가 점점 변해 수레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이 된다면, 그것을 탈 테니 따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 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이네.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였네. 그런데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사물이 자연의 이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장자』내편, <대종사(大宗師)>)   이 책의 제목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가 연유한 부분이다. 『장자』 <대종사>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호접몽(胡蝶夢)의 구절 못지않게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의 근대철학자 호적(胡適)은 이 부분을 한 마디로 ‘낙천입명(樂天立命)’이라고 비판했다. 낙천입명은 하늘의 명을 따라 즐기고 이에 순응한다는 뜻의 ‘낙천지명(樂天之命)’과 같은...
달관주의와 신비주의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자사가 문병을 가서 자여를 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그대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로 가서 자신을 비춰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자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습니다. “아니네, 그럴 리가 있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이 점점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올빼미를 잡아 구워먹겠네. 내 꼬리뼈가 점점 변해 수레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이 된다면, 그것을 탈 테니 따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 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이네.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 옛사람은 이를 일러 ‘하늘이 내린 형벌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였네. 그런데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사물이 자연의 이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된 진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장자』내편, <대종사(大宗師)>)   이 책의 제목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가 연유한 부분이다. 『장자』 <대종사>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호접몽(胡蝶夢)의 구절 못지않게 해석이 분분하다. 중국의 근대철학자 호적(胡適)은 이 부분을 한 마디로 ‘낙천입명(樂天立命)’이라고 비판했다. 낙천입명은 하늘의 명을 따라 즐기고 이에 순응한다는 뜻의 ‘낙천지명(樂天之命)’과 같은...
봄날
2023.09.05 | 조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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