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0회]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2016)

청량리
2022-01-30 19:42
311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2016)

 

 

 

 

 

M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은 1993년에 시작됐으니, 그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요즘엔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옛날 사람들이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한다. 1998년에 시작된 CBS의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방송의 초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화를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소개하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신영음>이 20년 이상, 지금도 여전히 애청된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트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숨어 영화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요.”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말이다. 결국 영화를 ‘듣는다’는 건 아지트에 숨어들어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또 다른 영화감상법이다.

영화에서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라는 말은 영화에 쓰이는 모든 ‘소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녹음하는 자연의 소리도 은수(이영애)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영화에 흐르는 ‘음악’으로 한정하여 말한다(OST,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 영화음악).

영화음악은 다시 ‘노래’가 있고 없음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노래 없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순수 연주음악을 ‘필름 스코어(film score)’ 혹은 ‘오리지날 스코어(original score)’라고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두 가지에 대해 구별 없이 영화음악상을 시상하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각 부문으로 나눠서 시상한다. 영화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2016)은 제목처럼 (오리지날)스코어를 다룬 영화음악 다큐멘터리다.

 

영화 <스코어>에는 수많은 오리지널 스코어와 그 작곡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탁월한 인물은 ‘존 윌리엄스’다. <죠스>, <스타 워즈>, <슈퍼맨>,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등 한 음절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영화 속 음악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천재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단 두 개의 음, 빠~~~밤으로 만든 <죠스>음악을 듣고선 처음엔 그를 미쳤다고 했을 정도였다. 존 윌리엄스는 영화음악을 새롭게 개척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피아노 앞 존 윌리엄스(오른쪽)가 스필버그(왼쪽)에게 조스의 컨셉을 들려주는 모습>

 

7~80년대를 휩쓴 존 윌리엄스를 대신해 최근 주목을 받는 영화음악 작곡가는 단연 ‘한스 짐머’다. 존 윌리엄스를 보며 “영화음악이 클래식처럼 위대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한스 짐머는 영화 속 이미지들을 영상보다 더 강렬하게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인셉션>,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등 그의 음악은 오히려 영화를 압도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더욱 시적으로 만들고, 품격을 높이는데 사용된 한스 짐머의 음악은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현악기를 기타처럼 연주”하며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걸 재창조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한스 짐머의 작업실 모습>

 

영화에는 등장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매트릭스1>의 OST앨범(음악: 돈 데이비스)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자매’가 됐지만, 워쇼스키 ‘형제’시절에 만든 <매트릭스1>(1999)은 개봉하기 전 음악으로 먼저 만난 영화다. 그 OST 앨범은 마를린 맨슨의 <롹 이즈 덷>를 시작으로, 프로디지의 <마인필즈> 등 당시 최고의 헤비메탈과 일렉트로닉을 담고 있었다.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모르는 그룹들의 음악임에도 그들의 거칠고 폭발적인, 음침하고 어두운 사운드트랙을 듣다보니 이미 영화를 상상해버렸다.

영화음악은 영상매체인 영화를 ‘음악’으로 ‘듣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어쩌면 이 당연한 전제를 통해 우리는 영화음악이 갖는 특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영화음악은 영화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의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은 메인장면이 없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스포일러로 작동한다. 분명 내가 본 영화 같은데 사실은 <출발, 비디오여행>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화 속 음악들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전혀 정보로 전달되지 않는다. 스팅의 <쉐잎 옵 마이 핱>은 불후의 명곡이지만, 그걸 많이 듣는다 해서 <레옹>(1994)의 줄거리를 알 수는 없다.

또한 영화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순간 영화는 즉각 ‘소환’된다. 물론 같은 노래를 들어도 떠오르는 영화나 장면은 각각 다르며, 영화가 전혀 안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맘보댄스로 유명한 곡, 사비에르 쿠가트의 빠-빠빠빠빱빠~ <마리아 엘레나>를 들으면 장국영의 허리와 엉덩이가 눈앞에 흔들거리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불행히도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으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좋은 싫든, 엉뚱하게도 <킬링필드>(1984)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영화대로 42길 8회 참조).

 

<영화는 몰라도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음악. 그리고 떠오르는 그 사람>

 

사람을 듣는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호구조사를 뜻하는 게 아니듯, ‘듣는다’는 건 그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캐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심지어 배경지식이 없다 해도 그 사람을 들을 수 있다. 영화음악도 분명 그러하다. <시네마 천국>(1988)의 정확한 줄거리정보가 기억나지 않아도,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통해 우리는 토토의 옆자리에 앉아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린다. 영화음악을 듣는다는 건 허구적인 영화 속 주인공에게 우리의 마음이 향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영화음악은 영화의 심장이자 영혼”을 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코어>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너무 많은 음악과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다소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건 아쉬웠다. 수많은 영화와 거기에 사용된 영화음악, 그리고 그 음악의 작곡가들과 관련된 영화제작자들, 심지어 영화음악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자(!)까지 등장한다. 게다가 안 본 영화의 경우, 그 음악으로 바로 ‘소환’되는 장면이 없기에 온전히 흐름에 집중하기 어렵다.

또한 영화 <스코어>가 보여주는 오리지널 스코어의 제작과정은 결국 대자본이 투입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가능한 건 아닌가라는 질문도 든다. 영화에 적합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유명 작곡가에게 주문하고,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스튜디오에서 90명이 넘는 뮤지션들과 녹음을 하는 과정이 꼭 좋은 영화를 담보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 <스코어>는 내가 몰랐던 영화음악의 세계를 선물했다. 영화음악의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자는 지금 시대에 “유일하게 남은 오케스트라 음악가”라는 한스 짐머의 말이 깊게 와 닿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단으로 비틀즈의 노래를 사용해 거액의 소송이 걸린 국내영화 <비트>(1997)의 흑역사나, 작곡자와 영화제작자가 직접 계약하게 된 게 불과 10년이 안 된 국내 영화음악시장은 영화 <스코어>에 비해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 '기생충'의 오리지날 스코어의 작곡가 정재일. '기생충'외에도 최근에는 '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영화 <기생충>이 촬영되기도 전에 봉준호 감독은 정재일 작곡가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영화음악에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영화가 있다면 줄거리를 설명하기 보다는 한 곡의 영화음악을 들려주는 건 어떨까?

 

 

 

 

댓글 6
  • 2022-01-31 10:33

    얼마전 <덩케르크>를 봤어요. 기억에 남는것중 하나는 한스짐머의 필름 스코어.

    필름 스코어. 그냥 하나의 악세사리같지만 이게 빠진다면 음.....아주 심심하쥬^^

    잘 읽었어요~

  • 2022-01-31 11:53

    찌찌뽕인가요? 저도 며칠 전에 덩케르크 봤어요ㅋ

    영화에서 적은 독일군이 아니라 음악이 아닌가 싶더군요.. 덕분에 영화를 볼 때 전보다 소리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 2022-01-31 15:42

    음.. 필름 스코어라는 말도 있군요.^^ 영알못, 음알못인 저도 아는 한스 짐머!

    어쩌다 가는 영화관이지만 얼마전 영화관에서 본 듄에서는 주인공이 음악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하더군요..ㅎㅎ 

     

  • 2022-01-31 20:39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음악, 음향을 잘 썼는가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글이네요! 아무리 스토리가 구려도 음악 퀄리티가 좋으면 갑자기 작품 퀄리티가 올라가는...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면서 소리가 주는 힘은 참 강렬하구나 생각했어요.

  • 2022-02-01 21:37

    제목이나 작곡가는 몰라도 넓은 영화관에서 듣는 영화 속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영화관의 소리는 스피커의 울림에 의한 진동의 비중도 높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다'가 정말 적당한 표현일수도 있겠어요.

    요즘은 오히려 음악이 과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아서 좀 아쉽기도 합니다 ㅋㅋ

    영화인문학에서 같이 감상했던 '스코어'가 떠오르는 글.. 잘 읽었습니다~~

     

  • 2022-02-03 17:17

    어렸을 때 영화 ost 테입, 씨디 엄청 사서 들었었죠.

    주로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었었는데 필름 스코어라는 말을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덩케르크, 듄 모두 아이맥스로 봤는데 화면 크기만큼이나 한스 짐머의 음악도 한 몫했어요~~

    단, 자리 잘 못 잡으면 귀가 아플 수 있어요 ㅋ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울의 시대, 더욱 필요한 웃음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 감독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 Laughter is the tonic, the relief, the surcease for pain - 찰리 채플린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담다 1974년, 장 피에르 주네는 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감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르크 카로와 처음 만났다. 둘은 함께 독특한 CF촬영과 단편을 찍으며 영화적 감각을 익혀나갔고,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만나면서 그 만화적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첫 작품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1990년 도쿄영화제 영시네마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영화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일본만화원작). 그런데 실제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포스터만 보고 당시 유행하던 컬트영화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컬트영화는 금기에 도전하고 논리를 파괴하면서 기성세대를 비웃고 관객의 기대도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기존의 표현방식과 다르긴 하지만, 컬트로 보기에는 영상이나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거기에 감독의 독특한 유머코드까지 들어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델리카트슨’은 햄이나 소세지, 치즈 등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인육을 파는 정육점 건물의 이름이다. 세상은 핵전쟁 이후에 심각한 식량난으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울의 시대, 더욱 필요한 웃음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 감독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 Laughter is the tonic, the relief, the surcease for pain - 찰리 채플린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담다 1974년, 장 피에르 주네는 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감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르크 카로와 처음 만났다. 둘은 함께 독특한 CF촬영과 단편을 찍으며 영화적 감각을 익혀나갔고,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만나면서 그 만화적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첫 작품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1990년 도쿄영화제 영시네마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영화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일본만화원작). 그런데 실제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포스터만 보고 당시 유행하던 컬트영화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컬트영화는 금기에 도전하고 논리를 파괴하면서 기성세대를 비웃고 관객의 기대도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기존의 표현방식과 다르긴 하지만, 컬트로 보기에는 영상이나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거기에 감독의 독특한 유머코드까지 들어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델리카트슨’은 햄이나 소세지, 치즈 등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인육을 파는 정육점 건물의 이름이다. 세상은 핵전쟁 이후에 심각한 식량난으로...
띠우
2022.02.14 | 조회 32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2016)           M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은 1993년에 시작됐으니, 그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요즘엔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옛날 사람들이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한다. 1998년에 시작된 CBS의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방송의 초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화를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소개하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신영음>이 20년 이상, 지금도 여전히 애청된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트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숨어 영화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요.”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말이다. 결국 영화를 ‘듣는다’는 건 아지트에 숨어들어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또 다른 영화감상법이다. 영화에서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라는 말은 영화에 쓰이는 모든 ‘소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녹음하는 자연의 소리도 은수(이영애)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영화에 흐르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2016)           M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은 1993년에 시작됐으니, 그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요즘엔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옛날 사람들이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한다. 1998년에 시작된 CBS의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방송의 초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화를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소개하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신영음>이 20년 이상, 지금도 여전히 애청된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트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숨어 영화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요.”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말이다. 결국 영화를 ‘듣는다’는 건 아지트에 숨어들어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또 다른 영화감상법이다. 영화에서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라는 말은 영화에 쓰이는 모든 ‘소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녹음하는 자연의 소리도 은수(이영애)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영화에 흐르는...
청량리
2022.01.30 | 조회 31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띠우
2022.01.17 | 조회 31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청량리
2022.01.03 | 조회 29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띠우
2021.12.19 | 조회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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