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 1234]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

인디언
2023-06-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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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자신의 기억문제로 생겨난 모든 문제를 내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고,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눈까지 흘기며 나를 의심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가져갔으면 가져갔다고 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분개했다. 의심과 불신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가정도 잘못되었고, 사실도 아닌 주장을 계속 고집할 때는 상황을 해결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름대로 엄마가 왜 그럴까 짐작하면서 엄마에게 좋은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뭔가를 한다. 일을 해결하는데 나의 일방향적 ‘판단’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판단은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한다. ‘상대방 잘못이라고 책임을 돌리거나 자신을 탓하는 상대방을 비난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판단하게 되며, 이것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가로막는다.’(96쪽)

 

 

 

‘판단’이 우선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이다. 치매를 겪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사람을 ‘남들과 똑같이’ 다루려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남들과 똑같이 다룬다.’는 것은 모든 경우에 그날이 인생 최악의 날인 것처럼 다룬다는 뜻이다.‘(59쪽)

 

‘판단’이 일방적이라면, ‘상상력’은 상호적이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세계 안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상상하지 않고서는 그 세계의 입구도 찾을 수 없다. 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저자는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그러면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을 고집이나 집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나와는 다르게 보고 인식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치매인이든 아니든 우리는 인정받고 배려 받고 싶어 한다. 엄마가 나를 불신한다는 판단을 넘어서, 사실은 엄마가 엄마의 문법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 게다가 엄마와 나는 성격상 닮은 부분이 많다. 특히 솔직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렇다. 어쩌면 그런 점이 우리의 상상, 상호적 연결을 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정심 아닌 공감

‘치매를 겪는 사람은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을 건강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비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111쪽)

 

보통 치매에 걸린 사람을 보면 안됐다고 느낀다. 동정심이다. 치매관계에서 동정을 느끼면 치매를 겪는 사람은 불쌍하고 허약하고 어느 정도 모자란 존재의 범주에 넣고, 돌보는 사람은 유능하고 우월한 존재의 범주로 분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관계를 해치게 된다. 한쪽은 의존감이 점점 커지고, 다른 쪽은 모든 책임을 자신이 다 짊어진 것처럼 느껴 부담감이 점점 더 커진다. 이 압박감이 돌보는 이로 하여금 미리 판단하게 만든다.

 

반면, 공감은 연대하는 마음이다. 함께 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가는 것과 관심을 쏟는 것. 문탁 사람들이 전장연 시위 현장이나 팽목항에 가는 마음. 그 마음은 일방적인 동정심이 아니다. 지하철 집회장소와 팽목항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에는 (감정을 기울이는)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 비용은 내가 치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장애인과 세월호 유족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치매환자라고 다를 게 있을까? 엄마와 어떻게 관계 맺을까 하는 것은 이런 ‘태도’를 취하고 난 다음의 문제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은 우리가 같은 인간임을 인식할 때 진실한 것이 된다. 엄마가 ‘힘없고 인생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마곡동 집 문제로 엄마가 수차례 위층 사람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내가 연락을 해서 문제없음을 확인했지만 엄마는 가봐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이건 엄마가 치매환자여서 일어난 일이지만 동시에 집주인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엄마는 집주인으로 인정받고, 그에 대해 기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도 그것이었다. 치매만 보이고 치매 뒤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공감적 상상

‘인생을 안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익숙하게 아는 것이다.’(120쪽)

 

저자는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가져온다.(비폭력 대화의 소통방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느낌, 욕구, 부탁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치매관계에서는 ‘중립적 관찰’ 보다는 ‘공감적 상상’을 시도하라고 한다. 중립적 관찰이 오히려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치매인과의 ‘비폭력 대화’에서 핵심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감적 상상력’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실재 세계’를 나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나아가 그의 경험에 진정한 관심을 표하는 것이다. 저자는 ‘실재 세계’에 대한 ‘공감적 상상’이 원활하게 일어난다면, 이 과정들 자체가 ‘서로의 마음이 가장 깊이 연결되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이해받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없으니까. 만약 내가 이런 태도로 엄마를 대한다면 엄마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할 수 있을까? 치매에서는 느낌이 현실에 더 충실하다는데......

 

(1년 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지네요 ㅠ)

 

감정적 위생 결핍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보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키는 일, ‘자기 공감’의 능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공감 연습은 이를 닦고 자기 몸을 청결히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과에 포함하여 일상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활동이다.’(151쪽)

 

스스로 나는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거나 감정 같은 것은 잘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저 내 ‘생각’ 안에 나를 가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가장 내밀한 감각과 감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편안하지 않은 감정은 단절의 조짐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한다. 자기 몸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지거나 근육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수 있단다. 앗! 요즘 가끔 느닷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귀에서 잉~~하고 이명이 들리곤 했는데. 내가 바로 ‘감정적 위생 결핍’이었던 것일까.

 

감정적 위생 결핍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훈련은 자신의 단정적 사고 경향을 확인한 뒤 그 사고 회로를 더는 따르지 않고 주의를 자기 몸으로 돌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지금 상태가 어떤가? 지금 느껴지는 것이 차가운가 아니면 뜨거운가? 느낌은 통증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주는데, 그 정보가 가리키는 것은 욕구이다. 느낌은 아이처럼 나의 관심을 갈구하고, 마음이 내게 말을 거는데 그 느낌을 무시하면 통증을 무시하여 병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엄마랑 지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엄마의 인지장애가 시작되었을 무렵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적 혼란을 겪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우울인지 죄책감인지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그동안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무척 당황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감정적 격발은 건강한 반응이라고 한다. 내 몸이 자신을 보살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 나도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유쾌한 치매관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엄마를 돌보고 있는 거지? 그래야 하니까. 왜 그래야 하지? 엄마니까 마음이 쓰여서. 어쨌거나 내가 엄마를 돌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엄마와의 일방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관계는 늘 상호적인 것인데 엄마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돌봄에 대해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를 돌본다는 일방적 관계로.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독립적인 엄마는 우리집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왔는데 난 당시의 엄마 마음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좋은 거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엄마를 모셔왔으면 그의 갈증을 달래줘야 하는데, 엄마의 갈증을 달래주겠다면서 물은 내가 마시는 격이랄까. 나는 엄마를 수동적인 위치에 두고서 늘 ‘걱정하지 마, 엄마!’라고 말해 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을 물리적으로 묶는 것과 수동의 자리에 가둬두고 ‘명령’하는 것 모두 폭력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점점 더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가 힘들어지고 특히나 감정이나 느낌을 드러내는 것은 나만큼 못한다. 엄마와 이야기하려면 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나는 점점 더 힘들다고 느낀다. 엄마 말에 귀기울여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그래서 불안, 걱정이 좀 덜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질까봐 불안해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하고 관습은 치워버리고 새로운 대화의 영역를 탐험하면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데, 난 언제나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고 싶은데......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적절한 접촉, 상상력 한 자밤, 그리고 큰 마음이다. 마음이 충분히 크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된다면, 안심해도 된다. 마음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마음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229)

 

그렇다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 한 자밤이네!

 

 

 

댓글 6
  • 2023-06-02 23:02

    울컥.. 뭉클.. 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동정심 아닌 공감!
    공감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대화로의 탐험 !
    마음 깊이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저희 아빠도 감정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으셔서 그 부분이 참 힘들었어요.

    요즘 아빠랑 함께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어요.
    처음엔 아빠의 망각을 늦추고자 시작한 일인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보면 아빠의 속내를 투명하리만큼 진솔하게 술술 얘기하실 때가 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아빠의 진심에 놀라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답니다.
    아빠의 감정을 읽어내려가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했던 감정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사무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회의감이 들때가 있는데
    '안심해도 된다. 마음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마음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인디언샘 글 읽으며 큰 위안과 힘을 얻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2023-06-03 00:07

    좋군요,샘~ 언제든 누구에게든 다가올 수 있는 일을 먼저 경험하고 계신 선배님들로부터 배우는 건 뭐든지 감사한 일이네요.
    감사합니다^^

  • 2023-06-03 07:01

    치매 부모님과 같이 잘살기, 나이듦연구소에서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모임이라도 해볼까요?^^

    • 2023-06-04 09:22

      한달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면
      참 좋겠어요!

  • 2023-06-04 07:50

    유쾌한 치매관계......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가? ? ?

  • 2023-06-07 01:38

    치매관계라는 단어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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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생명으로   장자에 대해 내가 읽은 것이라곤 『낭송장자』와 왕보의 『장자를 읽다』가 전부이다. 『장자』는 백 명이 읽으면 백 명의 장자가 나온다는 말처럼 그 해석의 폭이 넓고 어려운 텍스트인데다, 나는 그 지난한 원문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장자를 읽었으되, 장자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다 5년 만에 『장자를 읽다』를 다시 읽었다. 그동안 주역공부를 그럭저럭 이어왔고, 새로 서양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같은 공부의 지평에서 다시 장자를 읽으면, 처음 장자를 대했을 때 받았던 감동의 근거를 알 수 있을까. 이 글은 장자 내편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왕보를 따라 가면서, 그것을 찾아 나서는 여정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장자의 전체 내용을 다루는 건 어림도 없다. 여기서는 인간, 생명의 보존을 다루는 <인간세>와 현실세계를 떠난 마음을 다루는 <소요유>편을 주로 다루면서 왕보가 장자를 해석하면서 발견한 특이점을 찾아내 보려 한다.   몸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장자를 읽다』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등 총 33편으로 되어 있는 전체 내용 중에서 ‘장자 중의 장자’로 인정받는 내편 7편을 다루고 있다. 그 내편 7편도 원래의 순서와는 다르게 재배열되었다. 왕보는 왜 <소요유(逍遙遊)>로부터 시작해 <응제왕(應帝王)>으로 끝나는 원래의 차례를 무시하고, <인간세>로부터 『장자』를 풀어나갔을까? 그는 <인간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소요유>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실제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장자의 철학을 ‘생명의 철학’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생존’은 인간 세상 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관점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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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06.07 | 조회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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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감의『장자철학』 (도와 소요론을 중심으로)   『장자철학』은 유소감의 박사논문이다. 그는 장자 철학이 노자에 기원하고 있으며, 장자에 이르러 도가 학파가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입장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소요유>의 절대 자유가 도(道)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장자의 도에 대한 혼동이 장자 철학 전반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 천(天), 명(命) 등을 철학적인 범주로 분석하고, 이를 안명론(安命論), 소요론(逍遙論), 제물론(濟物論 )등 사상적(학설)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내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장자의 도 개념과 소요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둘 간의 관련성에 관해서이다. 먼저 지난 번 1234에서 다뤘던 장자의 해체 전략을 간략히 정리하고 여기서 내가 건진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보자.     장자의 해체 전략 저자 정용선은 『장자』의 <소요유>편이 해체 전략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대붕우화로 시작해 무하유지향으로 끝을 맺는 이 편은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거대 담론을 첫 머리에 배치한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시각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한 해체 전략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여기서 “대붕의 비상”은 시각을 달리하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장적 비유’이다. 따라서 해체 전략에 따르면, 비상이나 소요(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치를 초과하는 어떤 상태(경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초탈적 자유’이며, ‘매순간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만 있을 뿐 절대자나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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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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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인디언
2023.06.02 | 조회 39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공동체 속 인간의 행복한 삶     뜬금없는 행복 얼마 전 문탁 점심에 연잎밥과 장아찌를 비롯한 여러 반찬들, 디저트로 사과정과, 오디정과가 차려졌다. 동은이가 주방에 들어와 차려진 상을 보더니 “행복해!”라고 외쳤다. 순간 ‘별게 다 행복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꽤 무거운데, 동은이에게는 한없이 경쾌하고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게 신기했다. 동은이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와 좀 의아했다. 윤리학 책에 갑자기 웬 행복론?   행복은 보통 처한 현실에 비추어 결여된 것이 충족되었을 때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병이 들었을 때는 건강을 행복이라 여기고, 가난한데 로또라도 맞으면 최상의 행복을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를 얻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 얻기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느끼는 최고조의 감정 상태가 행복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확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행복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만족, 기쁨과 같은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뭐가됐든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단순히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묻는다. 인간에게 좋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 속에서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좋음이다. 좋음에는 그 자체로 좋은 것과 좋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좋은 것이...
공동체 속 인간의 행복한 삶     뜬금없는 행복 얼마 전 문탁 점심에 연잎밥과 장아찌를 비롯한 여러 반찬들, 디저트로 사과정과, 오디정과가 차려졌다. 동은이가 주방에 들어와 차려진 상을 보더니 “행복해!”라고 외쳤다. 순간 ‘별게 다 행복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꽤 무거운데, 동은이에게는 한없이 경쾌하고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게 신기했다. 동은이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와 좀 의아했다. 윤리학 책에 갑자기 웬 행복론?   행복은 보통 처한 현실에 비추어 결여된 것이 충족되었을 때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병이 들었을 때는 건강을 행복이라 여기고, 가난한데 로또라도 맞으면 최상의 행복을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를 얻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 얻기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느끼는 최고조의 감정 상태가 행복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확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행복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만족, 기쁨과 같은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뭐가됐든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단순히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묻는다. 인간에게 좋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 속에서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좋음이다. 좋음에는 그 자체로 좋은 것과 좋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좋은 것이...
토용
2023.06.01 | 조회 27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 정군 노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소비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갑작스러운 고금리, 통화량 긴축을 견디지 못한 은행들의 연쇄 파산일 것이다. 그 뿐인가? 이른바 ‘영끌족’들은 매수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영혼을 지불 중이다. 생물학적 전염병의 유행이 일시적으로 멈춤과 동시에 사회적 전염병으로서 빈곤은 쉼 없이 감염자 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세계가 얼어붙을수록 이른바 선진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이 와중에 지구를 덮친 때 이른 더위와 태풍은 이 세계의 끝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마치 사람들의 ‘돈 걱정’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기관인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돈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체제의 ‘위기’는 워낙 만성적이어서 오늘날 닥쳐온 것과 같은,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 같은 위기가 와도 걱정은 되지만 생생하게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체감이 그런 것과 실제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 위기는 이전에 자본주의가 겪었던 몇몇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선진국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로 케인즈주의가 박살났을 때, 자본은 선진국의 산업을 기술, 금융,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공간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했다1). 기술, 금융, 서비스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나의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90년대, 2000년대 내내 우리 집이 왜 그렇게나 힘들었던...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 정군 노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소비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갑작스러운 고금리, 통화량 긴축을 견디지 못한 은행들의 연쇄 파산일 것이다. 그 뿐인가? 이른바 ‘영끌족’들은 매수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영혼을 지불 중이다. 생물학적 전염병의 유행이 일시적으로 멈춤과 동시에 사회적 전염병으로서 빈곤은 쉼 없이 감염자 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세계가 얼어붙을수록 이른바 선진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이 와중에 지구를 덮친 때 이른 더위와 태풍은 이 세계의 끝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마치 사람들의 ‘돈 걱정’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기관인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돈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체제의 ‘위기’는 워낙 만성적이어서 오늘날 닥쳐온 것과 같은,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 같은 위기가 와도 걱정은 되지만 생생하게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체감이 그런 것과 실제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 위기는 이전에 자본주의가 겪었던 몇몇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선진국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로 케인즈주의가 박살났을 때, 자본은 선진국의 산업을 기술, 금융,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공간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했다1). 기술, 금융, 서비스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나의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90년대, 2000년대 내내 우리 집이 왜 그렇게나 힘들었던...
정군
2023.05.30 | 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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