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어떤 돌봄이 최선일까?

가마솥
2024-01-1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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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 ‘혹시 지금 다니는 병원 의사의 전문성 부족 때문인가 싶어서’ 이다. 대학병원에서 내게는 생소한 병명, ‘루이소체 치매’라고 판정한다. 그 간의 병원에서는 파킨슨에 의한 치매가 오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는데, 치매에 의한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노환이 근원이니, 치료가 달라지는 것은 없는 듯하다. 약물 충돌이 있는 것인지, 두 질환에 대해서 우선 완화할 증상을 선택하라고 한다. 파킨슨을 선택하였다. 당신이나 돌봄하는 우리에게 인지보다는 신체의 활동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약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모님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있으려나.

수시로 움직여 자세를 바꾸었다. 하지만, 기저귀 교체가 늦어져서 그런지, 몸이 자주 부었다가 빠지고 해서 그런지 욕창이 생기고 말았다. 인터넷을 찾아서 약품을 준비하고 드레싱을 해 드렸다. 여기 저기 피부가 붉어지는 곳이 늘어난다. 왕진의사를 신청했다. 집에서 조치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전문 간호사를 신청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고맙다.

이제는 식사도 침상에서 떠 먹여 드려야 한다. 최근에는 음식물을 씹으려고 하지 않으셔서 “입을 벌리세요”를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 저작운동(咀嚼運動)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식사에는 항상 국물이 필요하고 가급적 유동식을 드린다.

 

재가(在家)와 시설(施設) 사이에서

 

     주중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칠십이신 고모님이 집에서 주무시면서 도움을 주신다. 힘이 드시는지, 자주 나에게 요양원을 추천하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모님에게 요즘 요양원이 잘 한다고 말씀드리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불평하신다. 고모님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기분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재가 돌봄에서 흔히 있는 보호자가 도와 주시는 분을 돌봐야 하는(?) 형국이다.

물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같은 시설이 있다. 요양병원에는 분야별 전문의사가 있고, 간병인이 있다. 의사가 있지만 환자의 병에 대해서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재활, 혹은 응급시 조치 등을 한다. 대부분 노환에 의한 환자이니 그렇다. 병원이므로 치료비용은 전부 환자가 부담한다.

요양원에는 의사가 없다. 간병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을 가진 요양보호사가 한다. 응급시에는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병원으로 이송한다. 민간의 돌봄 서비스 시설이다. 국가는 환자의 요양등급에 따라서 비용의 일정 비율을 지원한다. 따라서 요양병원보다 비용부담이 적다. 어느 시설을 선택할 것인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보호자가 선택해야 한다. 환자당 간병인 수, 의사 수 등을 고려하지만 결국은 어떤 간병인을 만나느냐에 돌봄의 질이 달렸다.

둘 다 보호자에게는 시설측의 시스템 관리를 위한 제한이 따른다, 예를들면 가장 중요한 환자면회는 횟수로는 일주일에 한번, 주말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일회 면회자 수 등의 제한을 따라야 한다. 집에서처럼 언제든지 보고, 말하며 돌볼 수는 없다.

 

돌봄의 가족회의

 

     장모님의 직계 자손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장모님을 기준으로 딸과 사위인 우리 부부, 며느리와 친손자, 외손녀 부부, 외손자 부부 이렇게 모두 여덟 명이다. 저마다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하고, 이제 돌 지난 증손자 하빈이의 엉덩이 춤 축하쇼(?)로 오랜만에 웃음 가득한 성탄절을 가졌다. 미리 알린 것처럼 가족회의를 열었다.

먼저 내가 제안 발표 형태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장모님의 상태, 도우미 고모님의 상황 그리고 외부 시설들에 관한 정보를 간략히 설명하고, 어떻게 장모님을 돌보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들었다.

 

 

 

 

 

"시설을 이용하자"

 

    먼저 며느리가 나선다. “요양원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돌보는 것은 돌보는 사람과 환자와의 관계가 아주 나빠져서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기게 되었던, 당신 친정집의 사례를 들어서 요양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보O스가 아주 좋은 요양원인데, 당신 가게의 손님도 보O스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데 만족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나는 우선 팩트 체크부터 하였다. 보O스는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이다. 따라서 제법 비용이 들고 또 자리도 부족하여 대기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 자리가 있어도 병원에서 환자를 평가하여 입원을 결정한다. 시설에 가거나 또 어떤 시설을 선택할 것인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일 진데, 며느리의 어머니는 이동과 식사,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셨다. 하지만, 치매 상태에서 당신 며느리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주 심하여 요양원으로 모신 케이스이므로, 지금 장모님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장모님과의 기억을 나쁘게 하고 있지는 않다. 안타까울 뿐이다.

    외손자가 나선다. “나는 할머니에게 맞는 좋은 시설을 찾아서 옮겨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의외였다. 녀석은 엄마가 시설에 보내기 꺼려한다는 것을 알 텐데, 시설을 선택한다. “집에서의 돌봄으로 엄마/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자주 본다. 현재 할머니의 상태는 사실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병환이 아닌 노환으로 인한 생명의 소진이니, 선택하라면 엄마/아빠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아내는 허리가 좋지 않아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그럴 경우에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 했다. “시설에는 자체 관리 시스템으로 환자에게 서비스를 한다.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예를 들면 하루에 두 번 기저귀를 교환하지 집에서 할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수시로 교환해주지는 않는다. 시설에서는 돌봄자가 할머니 한 사람에게 한 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할머니에게 딱 맞는 부드러운 유동식을 별도로 만들지도 않을 것같다. 오히려 음식물을 씹지 못하여 콧줄을 끼우는 환자는 시설에서 받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 때에는 시설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지만, 지금 집에서 돌보는 것처럼 시설에서도 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

 

"일정 요건이상이면 시설을 이용하자"

 

     돌봄을 가정이냐 시설이냐를 선택하는 것 이상의 문제, 즉 주 돌봄자인 엄마의 정서와 할머니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문제로 파악한 외손녀가 말한다. “엄마는 오래도록 할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싶겠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낸다. 예를 들면, “지금 간병을 도와주고 있는 고모 할머니가 그만 둔다든지, 엄마가 체력적인 한계에 이른다든지, 할머니가 콧줄을 끼워야 한다든지, 욕창이 심해진다든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신다든지...... 할머니 입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아프면 누구든지 병원에 가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꼭 시설에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떤 기준을 넘어서면 외부 시설로 옮길 수 있다”는 의견을 낸다.

 

"대세에 따른다"

 

     아무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친손주를 찔렀다. “네 생각은 어떠냐?” 우선 자기가 할 일을 고모가 하고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전제하며, 외손자와 같은 의견으로 시설에 모셔야 한다고 간단한 의견을 낸다. 아내는 내심 놀라는 눈치이다. 왜냐하면 녀석이 4살 때 아빠(아내의 오빠)를 사고로 잃고 난 후, 장모님은 오직 세상에는 단 한사람, 손주밖에 없는 듯이 애지중지 하였다. 하여, 고생스럽더라도 우리 집에서 돌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할머니를 먼저 챙기는 의견을 기대하였다고 한다.

 

 

 

주 돌봄자를 지원하는 것이 상책.

 

     나는 실제로 돌봄에 참여하고 있는 외손주와 그렇지 않은 가족의 의견에는, 같은 선택에도 내용적으로는 무언가 결이 다른 점이 있음을 느꼈다. 외손주의 의견 속에는, 힘들게 기저귀를 갈고, 밥을 떠먹여 드리고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엄마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시설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가족들이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생각에서 시설을 제안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의 가족회의는 자칫하면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 있으니 서둘러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실제로 가장 많이 돌보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아내의 생각을 청했다.

아내는 “엄마의 의학적 상태와 치유가능성을 정확히 몰라서 뭐가 좋은 것인지 잘 모르긴 하다”는 여지를 남기며, “마음은 그냥 가능하면 최대한 집에서 돌보고 싶다”고 한다. 그거야 항상 그렇다. 의학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좋은 시설을 선택해도 장모님을 돌보는 도우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돌봄의 질이 좌우되는 일이니 최대한 집에서 돌보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는 만일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가족들이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엉뚱한 소리를 하더라도 아이 취급하지 말고, 성인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수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떠먹여 주지 말고 내 스스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바꾸어 주라. 치매가 심해지면, 식구들 중 누군가가 매일 나를 돌볼 수 없다. 그것은 식구들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마라. 너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내가 살 새로운 장소를 찾아주라. 시설에 가게 된다면 자주 찾아와 주면 된다. 치매에 걸렸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너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고 가족회의를 마쳤다. 마치 장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실, 지금 장모님 상태는 집에서 돌보는 것보다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좋아지면 좋겠지만 나빠지는 것을 늦출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어서다. 돌보는 우리도 안타까운데, 당사자인 본인은 어떻겠는가. 토의를 하다가 문득, 집과 시설, 두 선택지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하는 생각이 든다. 환자의 여건에 따라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장모님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내 보지 않고도 생명의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 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 장모님은 소녀처럼 눈을 좋아한다. 병상을 창가 쪽으로 돌려서 창문 밖 소나무 가지위에 소복이 쌓여 가는 눈송이를 보여 드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주무시지 않고 창밖을 응시한다.

 

 

 

 

 

 

 

 

 

 

추신 :

    장모님이 음식물을 씹는 저작기능과 목으로 넘기는 연하기능이 많이 떨어 지셨다. 인지기능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알아 보시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욕창이 문제이다. 몇 주 전에 신청한 보O스 병원에서 6환자 3간병인 조건의 병실이 입원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상태가 호전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얼마만이라도 병원에 모시기로 하였다.

다행히 시설과 간호사, 장모님을 돌볼 간병인 모두 매우 친절하다. 특히, 파킨슨 전문의사가 주치의로 배정되었다. 이런 저런 테스트로 치매 정도를 파악하는데, 생각한 것보다 인지기능이 매우 나빴다. 관절 등 몸이 굳는 것이 특징인 ‘루이소체’ 치매로 보이며, 재활 담당의사와 함께 재활운동을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나의 세계와 장모님의 세계가 새로운 형태의 만남을 시작하였다. 부디, 장모님 몸을 굳게 만든 뇌가, 몸을 움직이는 재활운동으로 재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 4
  • 2024-01-19 07:53

    인디언님의 글과 가마솥님의 글은 조금 다른 결이다, 는 느낌이 들어요. 당연한 일이겠죠? 두 분이 같이 돌봄에 대한 글을 써주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4-01-19 13:20

    (죽음을 목전에 둔) 돌봄의 시간을 최대한 유예하고 싶다가도 차라리 나한테 체력과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그 시간이 왔으면 싶은 복잡한 심경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모친과 함께 만들어 가게 될 돌봄의 모양과 시간을 어렴풋이 가늠해보기도 하고 엉성하게나마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하지만…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눠주시는 고민과 글이 큰 위로를 줍니다. 감사합니다.

  • 2024-01-20 11:25

    저희 어머니도 연말부터 게속 아프셔서 매일 집에 갔었어요. 골다공증으로 외상이 없었는데도 척추뼈가 무너졌데요..ㅠ.ㅠ
    아프고 늙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노화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과연 늙음과 죽음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여기 여러 선생님들이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셔서 전 든든합니다.
    계속 부딪히고 또 사유하면서 겪어 나가야겠죠.
    글 잘 읽었습니다.

  • 2024-01-30 17:47

    뭉클합니다. 치매에 걸렸어도 나는 여전히 너희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먹여주려 하지말고 내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라는 말씀이 특히 남네요.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항상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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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5 | 조회 54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김윤경~단순삶
2024.01.20 | 조회 612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가마솥
2024.01.18 | 조회 412
인문약방 에세이
          비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약국. 동네 사랑방 같은 약국. 마을 건강 플랫폼. 호모큐라스들의 네트워크. 이런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고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 약국을 열었다. 내 삶의 계획 안에는 없었지만 약국을 기꺼이 오픈하게 된 이유는 친구들과 삶을 함께 도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 캐치프레이즈들이 말하듯 내 업에서도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었다. 약 3년 동안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매출 곡선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우리는 먹고살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약국이 공유지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받지 않고도, 한 사람과 2시간이 넘게 상담하고도, 저렴하게 약을 지으면서도 아직 망하지 않았다. 또 우리가 지은 약(주로 쌍화탕)은 다른 인문학 네트워크로, 연대의 현장으로 선물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내 머리와 마음은 분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약국 알바로 살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돈 벌 때는 상품 경제를, 공동체에서 활동할 때는 선물 경제만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적자일 때 매출을 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했고,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고민과 노력이 선물 경제로 작동되는 공유지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또 친구들과의 대화가 주로 매출에 대한 이야기로 흐를 때 동학이 아닌 직장 동료 같아서 가끔 헛헛하다. 공부할 시간도 줄었다. 약국 알바 때 보다 수입이 줄어 내 삶이 더 불안정해졌다는 점도 무시할...
          비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약국. 동네 사랑방 같은 약국. 마을 건강 플랫폼. 호모큐라스들의 네트워크. 이런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고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 약국을 열었다. 내 삶의 계획 안에는 없었지만 약국을 기꺼이 오픈하게 된 이유는 친구들과 삶을 함께 도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 캐치프레이즈들이 말하듯 내 업에서도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었다. 약 3년 동안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매출 곡선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우리는 먹고살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약국이 공유지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받지 않고도, 한 사람과 2시간이 넘게 상담하고도, 저렴하게 약을 지으면서도 아직 망하지 않았다. 또 우리가 지은 약(주로 쌍화탕)은 다른 인문학 네트워크로, 연대의 현장으로 선물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내 머리와 마음은 분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약국 알바로 살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돈 벌 때는 상품 경제를, 공동체에서 활동할 때는 선물 경제만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적자일 때 매출을 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했고,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고민과 노력이 선물 경제로 작동되는 공유지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또 친구들과의 대화가 주로 매출에 대한 이야기로 흐를 때 동학이 아닌 직장 동료 같아서 가끔 헛헛하다. 공부할 시간도 줄었다. 약국 알바 때 보다 수입이 줄어 내 삶이 더 불안정해졌다는 점도 무시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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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 | 조회 196
인문약방 에세이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자본주의를 연구한 책이다. 나에게 자본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마르크스이다. 그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나 칭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폐허가 된 숲과 그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연구했다. 이 세계에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비인간을 너머 얽혀있는 다종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애나 칭을 따라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가 보자.     1.오염에서 창발로   20세기 초 오리건 주의 데슈츠강을 따라 철도가 건설되었다. 숲에서 벌목된 폰데로사 소나무는 철도에 실려 먼 곳까지 팔려나갔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된 숲은 폐허가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좇아 국제무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맞았을 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생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에 의해 성장했다. 일본의 무역회사는 “해외 공급사슬 파트너에게 대출이나 장비, 기술적...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자본주의를 연구한 책이다. 나에게 자본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마르크스이다. 그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나 칭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폐허가 된 숲과 그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연구했다. 이 세계에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비인간을 너머 얽혀있는 다종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애나 칭을 따라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가 보자.     1.오염에서 창발로   20세기 초 오리건 주의 데슈츠강을 따라 철도가 건설되었다. 숲에서 벌목된 폰데로사 소나무는 철도에 실려 먼 곳까지 팔려나갔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된 숲은 폐허가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좇아 국제무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맞았을 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생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에 의해 성장했다. 일본의 무역회사는 “해외 공급사슬 파트너에게 대출이나 장비, 기술적...
기린
2024.01.13 | 조회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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