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장애가 만날 때  / 무사

문탁
2023-12-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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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작전 중의 사유가 아닌 이상 심의를 거쳐 전역 조치 된다. 前 보훈청장 방우진 예비역 중령은 현역시절 유방암이 발병하여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의병 전역을 해야만 했고,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지션 과정에서 고환을 절제했다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 ‘군인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따라 군인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군대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유방과 고환이 전투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오랜 기간 복무한 나로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축구 잘하는 군인은 무조건 군 생활 잘 해.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어.” 라던 어느 지휘관의 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유방과 고환이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장애/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란, 비장애중심주의가 작동하는 하나의 기제로 사람들의 육체적 기능이나 외관을 표준화하는 규범이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비장애 신체에 들어맞지 않는 신체를 모두 ‘장애’로 낙인찍는 시스템이다”(246) 국가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군 복무를 신성시하며 여성, 장애인, ‘혼혈’ 남성의 신체를 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로 낙인찍고, 이들을 ‘구성적 외부’로 동원해왔다. ‘병역을 필한 대한민국 남성’의 입장에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징집의 상태를 윤색해 줄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들 또한 기득권의 자장 안에서 ‘구성적 외부’와 위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마치 보상받은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셈이니 말이다. 1999년 ‘제대군인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기 전까지 그 기득권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 유명한 결정은 남성 vs 여성 간 젠더 갈등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지체장애인 3급 3호(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舊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른 것) 남성 장애인도 있었다.

 

 

 

 

‘장애 수행’, ‘트랜스어빌리티’를 통한 에이블리즘 교란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한동안 화제였다. 좀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군의 현실을 대체로 잘 묘사했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을 피하고 싶어하는 입영 대상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실 병역기피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지는 ‘병역필 남성’ 기득권의 허상과 군대의 민낯에 대한 절망은 입영의 문 앞에서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욕망과 만나 ‘장애인’ 되기를 희구하는 집단, ‘다른 장애인’으로 현신이 되어 출현한다. 이들은 병역법에 명시된 신체기준에 ‘살짝 어긋난’ 몸, 딱 그만큼의 ‘장애’를 얻기 위해 애쓴다. 병역법상 ‘신체의 정상성’ 기준이 ‘병역면제’ 기준으로 재전유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최상의 전투력 유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비장애중심주의, ‘군대적 다윈주의’는 비장애인 입영 대상자들의 ‘장애 수행’을 통해 교란된다. 장애를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중심주의와 ‘신체의 정상성’이 규범인 사회에서 ‘장애’가 ‘선망’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 현상은 신체 예술 연구활동가 베서니 스티븐스가 정의한 ‘트랜스어빌리티transability’를 떠올리게 한다. 트랜스어빌리티란 ‘이분화된 신체적 비장애 상태에서 신체적 장애 상태로 전환하려는 욕구나 열망’을 의미한다. 김은정 시러큐스대 여성/젠더학과 교수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트랜스어빌리티 개념을 소개하며, 치유란 의료적 치료를 넘어 “몸, 정동, 사회적/물질적 조건들에 의도적인, 또한 비의도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전환적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성’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몸을 장애가 없는 몸으로 전환하는 것과 그 반대의 과정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그 ‘정상적인 몸’, ‘선호되는 미’라는 관점을 소거한다면, 성형수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몸을 깎아내고 찢고 꿰매는 의료적 ‘치료' 과정이 ‘몸’에 손상을 가하고 ‘장애’를 입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입영을 기피하기 위해 선택한 ‘장애 수행’이 능동적인 ‘트랜스어빌리티’는 아니지만, 두 행위 모두 비장애와 장애라는 이분법 규범을 교란하며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볼 여지는 없을까?

 

 균열과 교란은 복무 중에도 발생한다. 분명 입영 단계에서 장애인의 징집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복무 중 ‘정신장애’ 등의 사유로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거쳐 병역처분이 변경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장애학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31) 현역복무부적합심의와 병역처분변경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무기력감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군은 ‘등급내 인간’으로 호명한 이들 중 일부를 ‘정상성’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금 ‘등급외 인간’으로, ‘장애인’으로 선별하여 추방한다. 이 과정은 매주, 전군에서 계속된다. ‘장애’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반복 속에서 ‘트랜스에이블드’, ‘장애 수행자’들은 사회가, 제도가 ‘장애’를 만드는 요인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교란의 춤을 추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 젠더, 인종을 넘어 장애까지 닿을까?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이후 군 인권보호 수준은 진일보했다. 금쪽이를 군에 보낸 부모들, 언론,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낸 결과, 인권보호제도가 마련되었고, 장병들의 의식수준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동성애 장병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제한적으로나마 포함되었고, 병사들의 복무기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현재의 복무기간이 유지되고 저출산 흐름이 계속된다면 2040년 이후 입영 대상은 약 15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보다 50%정도 축소되는 공백을 과연 누가 메울까? 국방개혁으로 인한 병력감축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입영 대상자가 줄어들자 군은 현역 복무가 가능한 신체등급 기준을 2급에서 3급으로 조정했다. 여성 군인 선발비율도 늘려 작년 기준으로 여성 군인은 전체의 9%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 국적 다문화 장병의 입영을 허용했다.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산입했다. 당시 글로벌시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특성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병력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채우고 징병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군은 입대자원 부족과 그로 인한 전력 공백을 신체등급 기준 완화, 여성 군인 확대와 다문화 장병 입대로 채우려 하는 등 인원 수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공유된 가치, 신념, 행동, 배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국가, 민족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개념과 달리 최근에는 인종, 성별, 나이, 신체적 장애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일이나 스위스군의 다양성 범주는 한국군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성, 민족, 인종, 성적 지향성, 연령, 장애, 교육배경, 성장배경, 출생지,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국방부 예하에 다양성 관리 전담 부서가 설치 되어 있다. 특히 독일 국방부의 다양성 정책은 개개인의 경험과 가능성, 잠재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군내 구성원에 대한 가치판단, 역할, 직책부여에 있어서 편견을 없애고 존중하려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다양성 정책은 병력 공백을 채우기 위한 양적 보완 수단일 뿐 다양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립한 질적 정책은 아니다. 다양성 관리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양성평등’과 ‘다문화’ 정책도 명명에서부터 이미 협소한 범주 인식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장애 역량을 재사유하기

 

“장애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역량에 주목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상호의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재구축하며 사회질서를 평등과 협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실마리를 장애인의 사회적 존재로부터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문화과학」 115호 “장애와 역량” 발간사 )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0조에는 “군인은…(중략)…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여”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군인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에이블리즘 군대가 ‘장애’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동권과 탈시설은 장애인 운동의 오랜 화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는 ‘비장애인’만을 선별하여 ‘시설’에 가두고 이들의 이동권을 제한함으로써 탈시설의 욕망을 키우고 있다. 군대는 ‘장애를 만든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국제질서는 복잡해졌고 안보위협은 다양해졌다. 안보의 개념이 군사안보에서 인간안보로 바뀌고 있으며, 군의 활동 역시 국가방어만이 아니라 환경보호, 재난 구조, 지역분쟁 해결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요소로 구성된 물리적 전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목도하고 있듯이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군의 전투력에는 물리적 유형력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사기, 연대감, 갈등관리와 같은 무형전력도 포함된다. ‘죽이는’ 실력만이 전투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살리는 것,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한 전력이다. 만일 군대에도 미덕이 있다면, 낯설고 다른 존재(자)와 섞이는 일이 유일하지 않을까? 출신도 자라온 환경도 매우 다른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섞이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블라인드blind 게시판에 “요즘 병사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자조섞인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들이 휴대전화 대신 낯설고 다른, 그래서 불편한, 그러나 서로에게 생명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동료를 바라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용환 육사 교수는 “군에서 다양성 관리를 경험한 장병은 조직 내에서의 성과는 물론 제대 이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의 증가는 조직의 경쟁력, 응집성, 전문성과 같은 실제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윤리적 민감성, 적극적 행동과 같은 규범적 성과가 증대되는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군 여성 군인(조직)은 1950년 500명의 육군 여자의용군으로 창설된 이래 남성 군인의 참전을 각성하게 하는 존재(자)로(1949-1954), 국가총력안보시대의 애국 상징으로(1955-1989), 지식정보화시대 전문직업군인으로(1990 이후) 활용되어 왔다. 전쟁 양상의 변화와 군 활동의 다변화 흐름 속에서 유연함과 잠재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군사적 폭력성을 다소나마 약화시키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젠더화된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여성 군인의 위치성과 관련한 문제적 지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군인은 그동안 군인의 전형으로 상정되어온 ‘남성 군인’과는 ‘다른’ 군인으로 출현하여 군의 전통적인 젠더질서에 교란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던져온 질문들이 그나마 지금의 변화를 견인해왔다.(고 말하고 싶다.) 다문화 장병의 출현을 통해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0년부터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는 “민족” 이라는 표현이 “국민”으로 변경되었다. 다문화 장병들은 4대 종교에 치우쳐 있는 군내 종교 활동 자유의 폭을 넓히고 식습관, 언어, 역사적 배경과 편견 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해야할 필요성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은 의도치않게 군대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다급해진 군은 부족한 입영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여성 군인 비율을 2027년까지 15%로 높이고 다문화 장병의 입대를 적극 장려하고 신체등급 3급으로 한차례 범위를 넓힌 현역 복무 기준을 이제는 4급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동안 군이 내세웠던 ‘신체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는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가족중심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영향으로 보이며,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한다면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안보’를 ‘숫자’에만 맡길 것인가? 

댓글 1
  • 2024-01-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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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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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5 | 조회 52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김윤경~단순삶
2024.01.20 | 조회 588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가마솥
2024.01.18 | 조회 399
인문약방 에세이
          비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약국. 동네 사랑방 같은 약국. 마을 건강 플랫폼. 호모큐라스들의 네트워크. 이런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고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 약국을 열었다. 내 삶의 계획 안에는 없었지만 약국을 기꺼이 오픈하게 된 이유는 친구들과 삶을 함께 도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 캐치프레이즈들이 말하듯 내 업에서도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었다. 약 3년 동안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매출 곡선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우리는 먹고살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약국이 공유지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받지 않고도, 한 사람과 2시간이 넘게 상담하고도, 저렴하게 약을 지으면서도 아직 망하지 않았다. 또 우리가 지은 약(주로 쌍화탕)은 다른 인문학 네트워크로, 연대의 현장으로 선물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내 머리와 마음은 분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약국 알바로 살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돈 벌 때는 상품 경제를, 공동체에서 활동할 때는 선물 경제만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적자일 때 매출을 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했고,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고민과 노력이 선물 경제로 작동되는 공유지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또 친구들과의 대화가 주로 매출에 대한 이야기로 흐를 때 동학이 아닌 직장 동료 같아서 가끔 헛헛하다. 공부할 시간도 줄었다. 약국 알바 때 보다 수입이 줄어 내 삶이 더 불안정해졌다는 점도 무시할...
          비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약국. 동네 사랑방 같은 약국. 마을 건강 플랫폼. 호모큐라스들의 네트워크. 이런 캐치프레이즈들을 내걸고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 약국을 열었다. 내 삶의 계획 안에는 없었지만 약국을 기꺼이 오픈하게 된 이유는 친구들과 삶을 함께 도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 캐치프레이즈들이 말하듯 내 업에서도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었다. 약 3년 동안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매출 곡선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우리는 먹고살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약국이 공유지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받지 않고도, 한 사람과 2시간이 넘게 상담하고도, 저렴하게 약을 지으면서도 아직 망하지 않았다. 또 우리가 지은 약(주로 쌍화탕)은 다른 인문학 네트워크로, 연대의 현장으로 선물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내 머리와 마음은 분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약국 알바로 살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돈 벌 때는 상품 경제를, 공동체에서 활동할 때는 선물 경제만 생각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적자일 때 매출을 올릴 방안을 고민해야 했고,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고민과 노력이 선물 경제로 작동되는 공유지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또 친구들과의 대화가 주로 매출에 대한 이야기로 흐를 때 동학이 아닌 직장 동료 같아서 가끔 헛헛하다. 공부할 시간도 줄었다. 약국 알바 때 보다 수입이 줄어 내 삶이 더 불안정해졌다는 점도 무시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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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 | 조회 179
인문약방 에세이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자본주의를 연구한 책이다. 나에게 자본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마르크스이다. 그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나 칭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폐허가 된 숲과 그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연구했다. 이 세계에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비인간을 너머 얽혀있는 다종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애나 칭을 따라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가 보자.     1.오염에서 창발로   20세기 초 오리건 주의 데슈츠강을 따라 철도가 건설되었다. 숲에서 벌목된 폰데로사 소나무는 철도에 실려 먼 곳까지 팔려나갔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된 숲은 폐허가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좇아 국제무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맞았을 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생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에 의해 성장했다. 일본의 무역회사는 “해외 공급사슬 파트너에게 대출이나 장비, 기술적...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자본주의를 연구한 책이다. 나에게 자본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마르크스이다. 그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나 칭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폐허가 된 숲과 그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연구했다. 이 세계에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비인간을 너머 얽혀있는 다종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애나 칭을 따라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가 보자.     1.오염에서 창발로   20세기 초 오리건 주의 데슈츠강을 따라 철도가 건설되었다. 숲에서 벌목된 폰데로사 소나무는 철도에 실려 먼 곳까지 팔려나갔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된 숲은 폐허가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좇아 국제무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맞았을 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생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에 의해 성장했다. 일본의 무역회사는 “해외 공급사슬 파트너에게 대출이나 장비, 기술적...
기린
2024.01.13 | 조회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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