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맑스에세이 발표 후기

여울아
2016-12-24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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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맑스에세이 오전발표만 듣고 집에 부리나케 오느라.. 후기가 맥락이 잘 이어질런지 모르겠네요. 

눈발까지 날리는 날이라 시작은 조금 늦었졌습니다. 

1차 발표는 장지혜샘과 요요팀(게으르니, 띠우, 진달래 포함)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장지혜샘은 맑스의 국가론을 돌아보며, 파리꼬뮨이후 계급투쟁의 장으로써 국가를 설명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는 환상공동체이며, 보편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묻는다.

장지혜샘은 동천동 마을에서 보편자를 창조하자고 글을 맺었다. 

이에 고병권샘이 먼저 어느 날 대통령이 없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 글에서 국가를 사물화하고, 국가 물신주의가 내보여진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 모든 상상이 가능한지를 알려면, 내 삶을 놓고 보면 질문이 생길거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요요샘은 협동조합에 대한 브뤼메르 18일과 내전 두 글의 입장이 같은지를 묻고, 

파리꼬뮨은 중앙집권적 조직원리가 작동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조직하느냐는 중요하다는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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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팀은 공산당 선언을 재해석한 에세이였습니다. 

국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요요), 비계급적 프롤레타리아가 되어(띠우)

낡은 것과 결별하자(진달래) 바틀비처럼!(게으르니)

질문은 주로 과연 오늘날의 프리터족을 바틀비의 수동적 혁명성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였고, 

게쌤은 순응하는 신체에 길들여진 자신에게 '모든 것에 반대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고

청년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이들의 게으름을 다르게 해석해보려는 노력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고쌤은 맑스의 서재에서 사위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나왔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를 지적했다. 

아마도 게으름은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노동을 신성시 하는 것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었으리라. 

게쌤의 '자기 자신의 폐기'라는 표현은 맑스가 욕망을 생산하고 이로써 주체를 생산할 것을 주장한데 비해

상당히 무욕적으로 읽히는 점을 경계했다. 문탁쌤은 오히려 바틀비 대신 노자로 혁명적 수동성을 풀어볼 것을 제안했다. 

2차 발표는 '가보지 않은 길' 눈/오영/코스모스/청우팀, 고은이와 동은이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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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사가 반복되지만 그 때마다 차이가 생성되고 어떤 역사도 새롭다며, 

오늘의 촛불광장은 87항쟁과는 다를 것이라며 희망을 노래했다. 

코스모스는 에세이를 쓰며 다섯시간을 함께 보낸 팀원들과 뭔가 역사를 쓴 느낌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후로 질문이 쏟아졌다. 역사는 전진만 있는가? 즉, 모두 혁명적인가? 

새로운 역사는 없다. 반복만 있을 뿐이라는 의견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혁명이 보편적인 것인가? 맑스의 파리꼬뮨과 오늘날의 상황이 비견될 수 있는가. 등

87년의 망령에 시달리던 내게 이들의 주제는 가장 흥미있었다. 하지만 내게 위로가 되지는 못 했다. 

보나빠르뜨와 연옥을 지나는 혁명이 우리 시대의 역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했다면 좋았겠다.

동은이와 고은이의 글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고찰이 잘 드러나는 글이었다. 

왜 우린 모두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야 하지? 난 싸우기 싫은데. 동은이의 발랄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차근히 시민사회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룬 독일 이데올로기를 소개한다. 

보편적 이해로부터 소외당하면서도 사회를 떠받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어떻게 환상 공동체로부터 탈주할 것인가. 

프롤레타리아트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다. 당당히 나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가 되겠다 고 이들은 선언한다.

고쌤은 땀냄새가 느껴지는 글이라는 평과 예전 길바닥 강의를 떠올리셨다. 

진리와 정의라고 믿어지는 것들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이들에게는 길바닥이라는 장소성이 있으며, 

이로써 신체성과 유령과 같이 떠도는 특수성이을 갖는다. 

보편자는 결코 장소성을 가질 수 없으니 신체성도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해소를 통해 혁명적 대중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라는 말씀도!

다들 이 두 청년의 글의 수준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며 두런두런 거릴 뿐 질문은 좀 적었다. 

특히 동은이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뉴욕 다녀와 합류해서 이 정도까지 사고를 넓혔다는 것이, 놀랍다. 

1년간 거의 30명에 가까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마지막엔 함께 글을 쓰고, 이제 대장정을 마쳤다. 

오후와 저녁엔 얼마나 더 열띠게 주고 받았을 지 궁금하다. 

다음 후기, 후기 나와주세요~

댓글 1
  • 2016-12-24 19:21

    맑스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서고

    싶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좀더 명확하게 글로 우리의 뜻을 나타내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이야기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