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 1234]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우현
2023-11-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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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는 갈수록 젊은 세대들의 명철함이 떨어진다며 한탄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태어난 세대를 기반으로 사회를 분석하려는 ‘세대적 사고’는 주로 특정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만들고, 지나친 일반화와 각종 오해들을 낳는다.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오늘날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대적 사고를 폐기하고 나이에 따른 구분을 멈추어야 할까? 그럼에도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세대 갈등은 언제나 있어왔다

 인구학자 노먼 라이더는 세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인구학적 신진대사’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회는 변화가 불가피한 유기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에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고 전임자가 지속적으로 철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끝없는 야만인의 침략’의 의해 두 진영 사이의 문화적 긴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연구들과 발굴되는 기록들을 토대로 사회에서의 세대 갈등은 필연적이고, 비슷한 구도로 반복되어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야만인의 침략’과 함께 발생하는 도덕적 공황 상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기 거의 한 세기 전인 1906년에는 “싸구려 소설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또한 지금의 MZ세대들에 대한 비판처럼, 20년 전에는 밀레니얼 세대들도 나약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비판을 똑같이 받았었다. 그런 걸 보면 역사적으로 ‘새로운 젊은이’들과 ‘보수적인 어른들’의 갈등은 항상 있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각 세대들의 특수성을 지운 채 오늘날의 세대 갈등을 그저 역사의 반복으로만 치부하게 된다. 이에 『세대 감각』의 저자 바비 더피는 보다 유연한 세대적 사고를 위해 세 가지 영향을 구분하여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시대적 영향’으로,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큰 사건들을 통해 영향을 받은 세대의 분위기를 말한다. 두 번째는 ‘코호트(cohort)적 영향’이다. 이는 각 세대들의 조건에서부터 형성된 태도, 신념, 행동의 영향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신체조건 등을 설명하는 ‘생애 주기적 영향’이 있다. 더피는 이 세 가지 영향을 토대로 자산, 주거, 건강, 문화, 정치, 사생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오늘날의 세대 갈등이 왜 심화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짚는다.

 

‘절망’의 세대

 그렇다면 MZ세대만의 특성은 무엇일까? 책에서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거친 분석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점은 더 이상 세대의 진보가 생활 수준의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자산은 갈수록 줄고, 주거 환경 또한 안 좋아지고 있다. 유럽의 한 기관에서는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전쟁 전 세대’와 1945~65년에 출생한 ‘베이비 부머’, 1966년~79년에 출생한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총 네 개의 코호트를 대상으로 평균 실질 가처분 소득(인플레이션을 감안하고 주거비를 공제한 소득)을 비교했다. 그들이 30대였을 때, 40대였을 때, 60세였을 때 각각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 세대가 내려갈수록 소득은 계속 감소했다. 이 밖에도 더피는 주거나 행복지수에 대한 통계, 교육 수준과 의료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에 노동 환경과 수익은 줄어들었다는 통계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급의 편차는 커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해석을 이끌어 냈다.

 그에 따라 미국 젊은 세대들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1990년대부터 2017년까지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들의 자살률은 약 3배가 증가해 왔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백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각 코호트들의 상황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5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보다 6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가 자살,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이 50퍼센트 높았고, 7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는 60년대 출생한 코호트보다 다시 두 배가 높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은 이 현상을 ‘절망의 죽음’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20세기에 일어난 건강과 생활수준에서의 진보는 세기말까지 계속됐다. 사람들은 진보가 계속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갖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의 삶에도 진보라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그뿐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래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꾸준하게 오래 지속된 나머지 미래 세대가 현 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전망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세대 감각』, 바비 더피, 어크로스, 153쪽

 

그러니까 세대 진보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금융위기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MZ세대를 ‘절망의 세대’라고 보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세대 전쟁’

 하지만 유독 이런 절망의 분위기가 오늘날 MZ세대 전반의 분위기로 확산되고, 세대 격차에 따른 갈등이 가속화되는 원인은 다른 시대적 영향에 있다. 스마트 기기들의 등장과 소셜 미디어의 환경이 그것이다. 스마트폰은 전 세대에 걸쳐 빠르게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과거 산업혁명기의 발명들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이 세계적으로 채택되는 데에는 1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4명은 한 달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반려견이나 파트너를 만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자료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현대인들의 애착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놓여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유 여부와는 다르게 스마트폰 사용에 있어서는 세대별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영국의 통신 규제 기관인 오프컴에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밀레니얼 세대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매주 평균 약 1500분(약 25시간)에 달했다. 그러나 X세대의 사용 시간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55세 이상의 집단은 다시 그 절반인 300분정도의 주간 사용시간을 보여주었다. 이는 스마트폰 자체는 대중화 되었지만, 스마트폰이 삶에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코호트마다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소셜 미디어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Z세대 10명 중 9명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반면 전쟁 전 세대는 7퍼센트, 베이비부머들은 19퍼센트 정도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했다. 젊은 세대와 나이든 사람들이 기술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실제 생활에서의 단절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더피는 보고 있다. 게다가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의 종류도 각각 다르다. 소셜 미디어는 각자가 개인과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고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정체성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 같은 네트워크를 공유하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세대 별로 각각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게 된다.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페이스북은 전쟁 전 세대와 베이비부머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앱이었고, 다른 앱에 비해 세대 간 사용 편차가 가장 적은 앱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스타그램은 Z세대의 70퍼센트, 밀레니얼 세대의 50퍼센트가 사용하고 있었고, 전쟁 전 세대는 1퍼센트, 베이비부머는 8퍼센트 정도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세대 간 사용률의 편차가 두 번째로 큰 앱이었다.(참고로 제일 격차가 큰 앱은 미국의 인기 메신저 ‘스냅챗’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가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은 소셜 미디어가 세대 간의 차이를 ‘깨어 있음의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성평등, 동성애 등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깨어 있음’과 ‘뒤처짐’으로 구분 짓고, 미디어는 조회수를 위해 그게 곧 세대들의 특징인 것처럼 범주화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을 단순한 ‘인구학적 신진대사’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카카오스토리와 네이버 밴드의 사용률이 높아 주로 이 다섯 플랫폼의 통계를 비교한다.(출처 : 노컷뉴스)

 

 

타자화 :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대 갈등을 MZ세대의 ‘절망’과 소셜 미디어가 엮이면서 벌어지는 ‘세대 전쟁’의 징조라고까지 봐야할까? 더피는 기본적으로 세대 갈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세대 갈등에 관해 다방면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피에겐 세대 갈등이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화될 수 없다고 낙관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며, 언젠간 Z세대들도 ‘노인 세대’의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을 줄이고 젊은이들에게 집중하자는 식의 의견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노인 세대가 됐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며, 극단적인 갈등의 상황을 억누른다. 가족과 유대를 떠올리며 다른 세대와도 유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피는 ‘인터넷 세계’와 각종 통계자료를 비교하면서, 인터넷에서 비춰지는 것만큼 세대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1984년에 진행한 설문에서 ‘정부가 노인들에게 적절한 기준의 생활을 보장해 줄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90퍼센트 이상이 동의했다. 이는 2016년에 진행한 동일한 질문에도 결과가 같았으며, 세대별 격차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몇 년 전 팬데믹 시기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세대 갈등이 심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더 타임스>에 실린 한 젊은이의 편지처럼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며 노인 세대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며 낙관한다.

 

도와주십시오! 저는 오늘 신문을 펴다가 81세가 되신 우리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 코로나19로 심각한 상황이 되면 호흡기를 떼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양식이 있는 결정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아직 수학 개인 지도를 하시고, 주민 협회를 운영하시고, 개들과 손주들에게 응급 치료를 해주시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크리스마스 케익을 만드신다는 것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80세 이상 노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사회에 대한 그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애정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필요합니다.

『세대 감각』, 바비 더피, 어크로스, 331쪽

 

 더피에 따르면 오늘날의 문제는 꼭 세대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두드러지게 느끼는 문제는 문화의 파편화와 타자화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 발전과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은 각 세대뿐 아니라 각 세대 안에서도 수많은 집단을 만들었다. 더 이상 대부분의 가족이 TV의 같은 채널을 보지 않으며, 50세를 넘긴 유재석은 마지막 ‘국민 MC’가 되었다. 이제는 각자의 핸드폰에서, 각자의 알고리즘으로 나타나는 그들만의 ‘국민 MC’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와 다른 집단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타자화를 통한 혐오와 개인주의는 세대 갈등뿐 아니라 젠더 갈등, 계급 갈등, 동물권 갈등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되고 있기에, 우리는 세대 간 유대의 사례를 보며 낙관할 게 아니라 더피의 말대로 ‘다방면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세대적 사고’에서 가능성을 찾고 싶다. 이렇게 파편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피가 짚었듯이 죽지 않은 한 우리는 모두 늙는다. 젠더 갈등, 동물권 갈등 등에서 요청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상상력은 꼭 필요하지만, 신체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세대적 사고를 통한 필연적인 나이 듦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 좋은 수단이 아닐까? 누구나 생애 주기적 공통 감각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절망이 아닌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댓글 1
  • 2023-11-23 09:37

    뭔가, 늙어가는 나와 더 사이좋게 지내보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AI 시대가 열렸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삶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우려가 현실화 된다. 러시아가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적을 식별해 전투하는 AI 기반의 무인전투차량 ‘마르케르’(Marker)를 투입하며 AI의 판단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시대가 열렸다. 우려하였던 것처럼 AI 알고리즘의 활동반경이 챗GPT로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제 고도화된 AI는 자유와 정의 같은 보편적 가치들과도 좋든 나쁘든 간에 상호작용을 시작했다. AI를 더는 기술과 편리의 영역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I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은 어떤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고 결과는 인간의 의지에 좌우된다는 낙관론이 여전히 과학계를 지배한다. ‘AI 윤리’는 (인간의, 프로그래머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영향은 아직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AI를 상대하는 이런 인류의 안일함에 반기를 든다. 저명한 기술철학자인 저자는 “AI는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적”이라고 지적한다. AI 알고리즘을 정치적 맥락에서 개념화하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인간이 AI에 권력을 뺏기고 종속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가 100여 년 전 쓴 소설 『소송』에서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던 요제프 K를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그와 비슷하게 최근 미국의 평범한 흑인 남성이 고급 의류 매장에서 물건을 훔쳤단 혐의로 가족 앞에서 강압적으로 경찰에게 체포됐다 풀려난 사건을 환기시킨다. 안면인식 알고리즘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생긴 일인데, 이를 두고 형사는 “컴퓨터가 틀렸나 봅니다”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여러 인구 집단 중 백인 남성의 얼굴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는...
AI 시대가 열렸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삶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우려가 현실화 된다. 러시아가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적을 식별해 전투하는 AI 기반의 무인전투차량 ‘마르케르’(Marker)를 투입하며 AI의 판단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시대가 열렸다. 우려하였던 것처럼 AI 알고리즘의 활동반경이 챗GPT로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제 고도화된 AI는 자유와 정의 같은 보편적 가치들과도 좋든 나쁘든 간에 상호작용을 시작했다. AI를 더는 기술과 편리의 영역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I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은 어떤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고 결과는 인간의 의지에 좌우된다는 낙관론이 여전히 과학계를 지배한다. ‘AI 윤리’는 (인간의, 프로그래머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영향은 아직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AI를 상대하는 이런 인류의 안일함에 반기를 든다. 저명한 기술철학자인 저자는 “AI는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적”이라고 지적한다. AI 알고리즘을 정치적 맥락에서 개념화하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인간이 AI에 권력을 뺏기고 종속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가 100여 년 전 쓴 소설 『소송』에서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던 요제프 K를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그와 비슷하게 최근 미국의 평범한 흑인 남성이 고급 의류 매장에서 물건을 훔쳤단 혐의로 가족 앞에서 강압적으로 경찰에게 체포됐다 풀려난 사건을 환기시킨다. 안면인식 알고리즘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생긴 일인데, 이를 두고 형사는 “컴퓨터가 틀렸나 봅니다”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여러 인구 집단 중 백인 남성의 얼굴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는...
가마솥
2023.11.26 | 조회 23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정군
2023.11.26 | 조회 354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우현
2023.11.21 | 조회 22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스르륵
2023.11.21 | 조회 31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요요
2023.11.20 | 조회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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