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헤이 유교걸 3회] 자의식 부풀리지 않고 SNS 사용하기

고은
2020-12-11 22:26
562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자의식 부풀리지 않고

SNS 사용하기

 

 

 

 

 

 

 

 

 

 

십 년차 SNS 유저

 

   처음에 SNS는 지인과 일상·관심사를 공유하는 장이었지만, 요즘엔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피드가 스타일리시해보이면 그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DM(Direct Massage)을 보낸다. 잘나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려면 SNS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술가의 컨텐츠와 SNS에서 보여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잘 어우러지면 SNS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클릭을 불러일으키는 홍보 매체가 된다.

 

   우리 또래에게 SNS에서 나를 드러내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조건이 됐다. SNS를 하지 않는 것조차 SNS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유저는 셀럽이 아니더라도 셀럽 못지않게 피드를 신경 쓴다. 피드에 뜨는 사진의 색감과 구도, 글의 내용과 길이, 게시물이 올라오는 주기가 그 사람의 얼굴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 계정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등록하고 관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 사람의 일상이 브랜드인 셈이다.

 

   생활 전반에 들어온 SNS는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약 10년간 SNS를 사용해왔지만, 여전히 ‘좋아요’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동했다. 게시글을 올릴 때 말투와 분위기를 검열하고, 게시글이 올라간 직후에는 반응이 얼마나 오는지 체크했다. 친하지 않은 이가 친구 신청을 걸면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로필 페이지를 둘러봤다. 그러다 비대해진 자의식을 발견하면 화들짝 놀라 SNS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내 SNS의 첫 게시글은 린텟이 남긴 안부인사다. 린텟은 고등학교 해외통합기행에서 만났는데, 성인이 되고도 해외에서 2번을 더 봤다.

 

 

 

 

 

 

 

나를 드러내는 것도 예의 문제

 

   나를 드러낼 때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을 두고 오늘날 사람들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는 오히려 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다수의 시선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드러내는 문제에 대한 공자의 생각은 그가 사치와 검소를 왜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살펴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子曰 :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면 공손하지 않고 검소하면 고루하다. 공손하지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7:35)

 

   사치와 검소라 하면 금전적인 영역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당시 사치와 검소는 나를 어떻게 드러낼까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권세가 집 앞마당에서 행사를 치를 때 몇 명의 무용수를 들일 것인가? 천자는 8명씩 8줄을 세울 수 있었고 제후는 6명씩 6줄, 대부는 4명씩 4줄, 사(士)는 2명씩 2줄을 세울 수 있었다.* 대부가 6줄씩 6명, 총 36명의 무용수를 고용한다면 사치이지만 천자가 36명의 무용수를 고용한다면 검소한 것이었다.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의 대부 계환자는 기어코 마당에 무용수를 8명씩 8줄을 세웠고, 공자는 그런 계환자를 보고 “이것이 용인된다면 무엇을 용인하지 못하겠는가”하고 한탄한 적이 있다.

 

奢則不孫
사치하면 공손하지 않다.

 

   ‘奢(사)’는 너무 많아서 정도를 넘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형편에 맞는 정도가 있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그 정도를 넘어서 자신을 부풀린다. 주변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맥락을 따라 앞서가면 상황이나 관계는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 즉 불손하다는 것은 오만함으로 상황이나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奢’에는 오만하다는 뜻도 있다.

 

 

중국 SNS에서 유행하는 사치 인증샷. 사진 찍기 위한 명품 대여 계모임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儉則固
검소하면 고루하다.

 

   ‘儉(검)’의 ‘僉(첨)’은 수갑으로 죈다는 의미다. 제재하고 최대한 덜어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부족하게 하는 것이다. ‘儉’은 딱딱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검소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눈에 불을 켜고 적게 쓸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덜어내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게 된다. 따라서 검소하면 상황이나 관계에 인색해진다. 사치가 본인의 위치를 무리하게 부풀리기 위해 화려하게 보인다면, 검소는 반대로 최대한 덜어내려고 하다 보니 거칠어 보인다.

 

 

'인색함'을 우리말로 하면 '쪼잔함'이 아닐까? '쪼잔함'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단골 소재다.

 

 

與其不孫也, 寧固.
공손하지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당시 공자가 고루하게 덜어내는 것보다 불손하게 과한 것을 더 큰 문제로 삼았던 건 드러내지 않았을 때보다 드러냈을 때 다른 존재에게 미치는 해로움, 즉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자신을 드러낼 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하간 사치와 검소는 모두 적당한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정도를 넘어서 화려하게 보이거나 거칠게 보이게 되면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사치와 검소의 문제는 ‘禮(예)’, 즉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는 것을 ‘禮’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는 나를 드러내는 것 역시 ‘禮’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 귀족층은 적자와 서자를 구별했다. 적자가 자리를 계승했고, 서자는 한 단계 아래의 자리를 받았다. 가령 천자의 맏아들이 천자를 자리를 계승했다면 맏아들의 동생은 제후에 봉해졌다.

 

 

 

 

 

 

 

좌충우돌 SNS 사용기

 

   본격적으로 SNS를 사용한 건 길드다 계정의 운영을 맡으면서부터였다. SNS는 또래와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창구다. 힙한 사진을 얻기 위해 몇 번이고 셔텨를 눌렀고, 그럴싸한 게시글을 이틀에 한 번씩 올렸다. 길드다 계정과 나의 불편한 마음은 같이 성장해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에 자의식이 비대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하기 위해 개인 계정을 만들었다. 좋아요와 댓글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게시글을 올릴 때도 중요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 나의 계정은 일기장이 되었고, SNS 관계는 협소해졌다.

 

   공자의 말마따나 과하게 꾸미는 일은 상황과 관계를 어그러지게 만들었다. 나는 길드다의 모습을 부풀렸고, 그 과정에서 과해진 나의 자의식 때문에 길드다 계정 운영을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 내 개인 계정에서 나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평소에 연락을 자주 못 했던 사람들과 반갑게 교류할 수도 있었다. 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식을 알리면서 다른 이들과 협업할 기회를 엿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에 불을 켜고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할 수 있는 일까지도 최대한 덜어내려 애씀으로써 내 계정은 인색해졌다. 자연스레 다른 존재와 관계 맺지 못하고 고립되면서 자의식이 몸집을 키워갔다.

 

   우리는 SNS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SNS는 플랫폼은 유저가 어떤 시간대에 주로 접속하는지, 어떤 게시글에서 얼마나 머무는지, 어떤 관계망에 속한 사람인지를 분석한다. 미묘한 활동까지 포착하고, 그에 따라 제공되는 맞춤형 피드를 통해 SNS는 온통 ‘나’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이미 청년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SNS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공자의 말마따나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고 아등바등하기 보단, 거꾸로 SNS에서 벌어지는 일을 적극적으로 관계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나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것도 아니다. 공자가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구성하기 쉽지 않으니 더욱 힘써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요즘, 내 SNS 계정에 길드다 활동과 취미로 찍은 필름사진을 자주 올리고 있다. 덕분에 소통의 물꼬가 트여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지만, SNS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는 아직이다. SNS를 10년째 써왔지만 잘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좌충우돌 SNS 사용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 SNS 근황. 길드다 활동(좌측)과 필름사진(우측)을 열심히 올리고 있다.

 

 

 

 

 

 

댓글 3
  • 2020-12-16 14:44

    SNS와 친할 것 같은 청춘들에게도 SNS는 쉽지 않군요.^^

  • 2020-12-16 20:45

    sns와 奢, 儉을 이렇게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군요.
    奢와 儉 사이의 균형을 잘 찾길.... 응원합니다^^

  • 2020-12-19 09:06

    이번 글에선 sns보다 구우우우우우웃모닝에 올린다는 필카 사진이 궁금해 지네요~
    요즘 토이카메라도 유행이 지난 것 같은데, 필름 산 지도 넘 오래 됐네요.
    대다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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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파스텔색의 청년   P-14. C가 새벽마다 타는 마을버스다. 이제 막 기점에서 출발한 버스는 텅 비어있다. 대학교에 가려면 그가 사는 아바나 끝자락에서 버스로 두 시간은 달려야 한다.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사 년째 통학하고 있다. 그간 C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는 법을 익혔다.   곧 버스는 형형색색의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한 버스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카리브해 쿠바는 원색의 땅이다. 물, 자동차,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색도 번쩍번쩍하다. 호피무늬 레깅스를 입은 할머니, 머리띠부터 드레스까지 핑크색으로 통일하고 아침 강의를 나가는 교수, 금빛 목걸이와 귀걸이를 뽐내며 일터로 가는 청년. 맨살을 훤히 드러내는 것은 이 뜨거운 나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C는 홀로 파스텔색인 것처럼 옅게 존재한다. 청바지, 단정한 티셔츠, 검은 운동화에 검은 책가방이 그의 복장이다. 한여름 더위에 나시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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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12.25 | 조회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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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0.12.20 | 조회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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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2020.12.11 | 조회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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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12.01 | 조회 465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목공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목공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할 만 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목공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론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겠지만, 요즘처럼 충분히 정보화된 세상에서 그런 정보는 접근이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때로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던 도중 그가 느닷없이 가구의 구조와 수축 팽창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담 전 이미 원목 가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들을 찾아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가 알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우위에 설 수 없음을 뜻한다.   다만 실제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도구를 다루어 그가 생각하고,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하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일은 정보를 찾는 일에 비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두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활용해야할지, 이 도구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물론 ‘정보’에 속하지만, 그것은 영상을 한 번 본다고...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목공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목공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할 만 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목공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론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겠지만, 요즘처럼 충분히 정보화된 세상에서 그런 정보는 접근이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때로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던 도중 그가 느닷없이 가구의 구조와 수축 팽창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담 전 이미 원목 가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들을 찾아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가 알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우위에 설 수 없음을 뜻한다.   다만 실제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도구를 다루어 그가 생각하고,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하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일은 정보를 찾는 일에 비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두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활용해야할지, 이 도구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물론 ‘정보’에 속하지만, 그것은 영상을 한 번 본다고...
지원
2020.11.09 | 조회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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