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 양생 9회> 잠을 처방합니다 (호모 오티우무스 되기②)

문탁
2021-10-12 08:48
419

"타고난 기혈이 약해요. 허약체질이에요.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를 쓸 수가 없죠. 게다가 내성적이고 치밀해서 스트레스에 약하군요."

얼마 전 동네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피곤이 쌓이고 기력이 바닥을 쳐 거의 좀비처럼 며칠을 지낸 후 죽지 않으려면 산에라도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맘을 바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한의원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난 부황, 뜸, 침, 3종 세트의 치료를 받고 겨우 회생했다.

 

타고난 기혈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다음에 번아웃되는 식의 삶은 나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기운을 정미롭게 쓰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인간관계는 단순하고 쇼핑, 관광 같은 번다한 일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 지인의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는 거의 안 한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않는 것, 감정의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양껏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삑사리’가 났다. 부실하나마 수십 년간 잘 지탱해온 삼발이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다. 자주 열이 났고 두통이 왔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졌고, 잇몸은 ‘맛이 갔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났고, 생전 처음 공황장애 비슷한 불안증도 생겼다. 한마디로 면역력이 바닥을 친 것이다. 원인이 뭐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나? 10년 만에 공동체의 구조조정이 있었고, 밥벌이 때문에 강의도 좀 늘리긴 했다.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일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늙었나? 너무 ‘퉁치는’ 느낌이다. 좀 더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했고 결론을 냈다. 문제는 ‘잠’이었다. 올해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난 3대가 선업(善業)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혹은 상당한 수양을 해야 도달할 수 있다는 ‘자의식-없음’을 약간 타고났다. 덕분에 ‘이불 킥’ 없이 누우면 바로 잠이 든다. 낮에 빡세게 일하지만 밤 문화를 즐기지 않으니 자는 시간도 비교적 이르다. 심지어 갱년기도 순하게 와서 수면 트러블을 거의 겪지 않았다. 그런데 이 루틴에 균열이 온 것이다. 2년 전부터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올해에는 강의 준비 때문에 더욱 잠이 부실해졌다. 까다로운 이론가의 책들을 읽어내야 하는 압박, 당대의 맥락 속에서 질문을 재구성해야 하는 부담, 제한된 시간 안에 강의안을 써내야 하는 초조감 때문에 강의 전날은 늘 밤을 새웠다.

 

잠은, 과학자들에 따르면 그 이유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21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라고 한다. 왜냐하면 잠자는 동안에는 먹을 수도 없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걸 해결하기 위한 진화론적 압력을 받아왔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으니 생물학적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잠을 자는 것일까? 어떤 과학자는 잠을 자는 동안 뇌의 시냅스가 줄어드는데 이것을 통해 뇌는 낮 동안의 기억을 정리, 청소하고 다음 날의 새로운 학습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다른 과학자는 아기들이 성인들보다 많이 자는 것을 근거로 잠은 뇌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잠을 잔다. 왼쪽은 낮에 잎을 펴고 있는 자귀나무, 우측은 밤에 잎을 접은 자귀나무 (이미지 -네이버검색)

 

 

잠을 자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는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피부가 까칠해지고 한 발 떼는 것도 무거우며 정신이 멍하고 의욕이 저하된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뭘 자꾸 흘리거나 픽 넘어지기도 한다. 불면증이 계속되면 영화 <인썸니아>의 알 파치오나 <택시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환각과 망상, 불안과 충동 사이에서 자신을 망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의 예도 잘 알고 있다. 감정이 복받치더라도 한숨 자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라앉고 어떤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끙끙댈 때도 한숨 자고 나면 뜻밖의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밤은 확실히 안식과 치유, 회복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잠을 자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불야성(不夜城)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한 불면의 밤”(아도르노)을 보낸다. 산만해진 시간, 분주해진 삶 속에 안식은 없다. 이에 대해 한병철은 “세계를 인간 의지에 따라 조작하고 지배하는 활동적 삶을 인간 존재의 유일무이한 가치로 보는 세계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안은? 지구인의 운명답게 낮과 밤의 시간, 깸과 잠의 리듬, 시작과 종결의 매듭을 회복하는 것일게다. “오직 종결의 시간적 형식들만이 나쁜 무한성에 맞서서 지속을, 즉 의미 있는 충만한 시간을 창출한다. 잠, 숙면 역시 결국은 종결의 형식일 것이다”(한병철, 『시간의 향기』, p30)

 

 

한병철, <시간의 향기>(문학과 지성사>

 

 

최근 난 나에게 잠을 처방했다. 가능한 10시엔 모든 일을 마감하고 제대로 씻고 공자님처럼 꼭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눕는다. 물론 마무리 못 한 일이 태반이지만 그냥 잔다. 나 역시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활동’이 이념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성실성을 관성과 헷갈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책임감이 욕심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생각한다. 혹시 알아? 밤에 우렁각시가 와서 나 대신 일을 해놓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잠자는 동안 봉인 해제된 나의 창조적 무의식이 다음 날 나를 훨씬 멋지게 부활시킬지, 라고. 밤, 내가 잠든 그 무위(無爲)의 시간이,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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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양생 – 호모 오티우무스 되기

1차 – 여음(餘音), 그리고 휴가같은 삶

2잠을 처방합니다

3차 – 문즈가든(Moon’s garden) : 식물하는 마음

4차 – 21세기,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5차 – 피로사회와 산책

댓글 6
  • 2021-10-13 09:17

    우렁각시는 몰라도

    하여간 잠은 잘 자야됩니다 ㅎㅎㅎ

  • 2021-10-14 08:33

    밤 10시에는 이불 갈고 누워서 약간 엎치락뒤치락하다 11시에는 잠 들 수 있는데, 10시에 눕는 게 잘 안되네요. 뭔가 안까운 생각이 들어서. 어제도 tv예능 기웃거리다 11시에 누웠네요. 오늘 밤엔 꼭 10시에 자야지!!

  • 2021-10-14 22:27

    저도 한 동안 새벽에 깨는 바람에... 갱년기 때문인가.. 했는데  요 며칠 안 깨서.. 음.. 자전거를 타서 몸이 좀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있긴 한데... 어쨌든 잠이 보약이란 말은 맞나 봐요^^ 샘의 잠자리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 2021-10-14 22:29

    저는 잠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급진파입니다.^^

  • 2021-10-19 00:04

    급 파자마를 사고 싶어졌어요~

  • 2021-10-26 17:34

    공자님처럼 꼭 잠옷을 입고^^ (맘에 든 문장!)

    문탁샘처럼 10시 전에 자고 (푹 잘~자고)

    기린샘처럼 아침에 논어암송하고 책읽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일.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일찍 누워도 잠이 안와서^^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올해 초 54에서 53킬로그램 정도 나가던 몸무게가 이제 50에서 49킬로그램 정도이니, 5킬로그램 정도 감량했다. ‘신장병환우회카페’에 올라오는 빠른 회복에 대한 간증들 가운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 체중감량이었다. 하루 2만보에서 3만보쯤 걷고, 하루 두 끼 저염저단백식단을 칼같이 지켰더니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졌고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등등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간증의 주인공들은 대개 중년 남성들이다(10킬로그램을 감량하고도 괜찮으려면 과체중 상태여야 한다). 불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음주와 흡연으로 이어졌던 중년 남성들에게 질병은 체중감량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모두 대만족이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성인병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체중감량을 위해 일단 국물을 포기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미역국, 육개장, 감자탕, 순댓국……이 밥상에서 떠나갔다. 국물 없이 마른 밥을 먹는 일이 뻑뻑하기는 했지만 염분은 확실히 줄여줬다. 염분을 줄이니 몸의 붓기는 저절로 빠졌다. 그 다음 저염저단백 식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웠다. 아예 소금과 단백질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줄여서’ 먹으라는 것인데 도대체 얼마를 줄여야 할까? 물론 병원에서 나눠준 책자에는 하루 적정 소금의 양을 5그램(티스푼 1개), 단백질의 양을 40그램으로 알려줬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양인지 실제로 감을 잡기는 어려웠다. 그걸 또 세 끼에 나누어 먹으려면 어느 정도여야 할까? 이제는 안다. 그 소금의 양은 거의 무염에 가깝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우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이고, 두부는 1/6모, 달걀 1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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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목
2021.11.22 | 조회 404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두세 달 전 친구 S가 인슐린 저항성과 혈압에 대해 물어온 적이 있었다. S는 자신이 왜 고혈압인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이 비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짜게 먹지도 않는데 왜 고혈압이냐며 약간의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사실 고혈압의 경우는 원인이 확실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S의 고혈압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우연히 방문한 한 약국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고혈압의 원인이라며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는 건강식품을 권해서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간단히 말해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서 세포 속으로 포도당을 넣어주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결국 당뇨가 생긴다. S가 당뇨는 아니고 해서 난 알아본다고 하고 잊어버렸다.      그러다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갱년기 편에서 실시한 세미나를 하다 그녀의 질문이 문득 생각났다. 세미나 텍스트였던 크리스티안 노스럽의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는 갱년기의 다양한 심리적, 신체적 증상들 및 대처법 등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세미나에 참여한 여러 여성들의 갱년기에 대한 ‘간증’을 들으면서, 훨씬 입체적으로 갱년기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들이 갱년기나 폐경으로 몸의 증상들을 퉁쳐버리고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갱년기 세미나를 통해서 내가 주목하게 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에스트로겐 저하뿐만 아니라 프로게스테론의 저하가 가져오는 몸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갱년기에 늘어나는 체지방이 갖는 장단점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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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2021.11.09 | 조회 448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올해 초 인문약방 활동의 확장으로 일리치 약국을 열었다. 상담을 주로 하는 약국에서 한약처방전일 경우 계량하고 달이고 포장하는 일 등을 내가 맡기로 했다. 약국 영업시간인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근무시간도 정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정규직으로 일했던 이십 개월 이후 삼십 여년 만에 다시 사대보험이 되는 정규직에 취업을 한 셈이다. 약국을 개업하기 이전에도 대부분 열시 전에 공동체 안에 있는 공부방으로 출근했다. 밥벌이는 물론 공동체에서 벌이는 다종다양한 일에 연루되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세미나 준비는 미흡해서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약국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아홉 시간의 근무시간이 정해졌다. 약국의 일상과 인문약방의 활동, 세미나 공부 등으로 활용해야 했다. 출근해서 닥치는 일부터 해내다보면 책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퇴근시간을 맞았다. 게다가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는 에코와 관련 활동이 펼쳐지고 용기내 가게가 열려 있고 약국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공부방에서처럼 책을 읽는 일은 그야말로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공간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공부 좀 하자,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등등 언쟁까지 붙으니 피곤이 점점 가중되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몸은 여전히 예전 공부방의 환경을 원했다. 더구나 그 시절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왜 이러고 사는지 나 자신한테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기도 했다. 그렇게 정념에 휩싸이면 일상에서의 집중력은 더 떨어졌다.     예전이라면 해야 할 일을 끝내면 공부방에 자리 잡고 세미나...
올해 초 인문약방 활동의 확장으로 일리치 약국을 열었다. 상담을 주로 하는 약국에서 한약처방전일 경우 계량하고 달이고 포장하는 일 등을 내가 맡기로 했다. 약국 영업시간인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근무시간도 정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정규직으로 일했던 이십 개월 이후 삼십 여년 만에 다시 사대보험이 되는 정규직에 취업을 한 셈이다. 약국을 개업하기 이전에도 대부분 열시 전에 공동체 안에 있는 공부방으로 출근했다. 밥벌이는 물론 공동체에서 벌이는 다종다양한 일에 연루되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세미나 준비는 미흡해서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약국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아홉 시간의 근무시간이 정해졌다. 약국의 일상과 인문약방의 활동, 세미나 공부 등으로 활용해야 했다. 출근해서 닥치는 일부터 해내다보면 책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퇴근시간을 맞았다. 게다가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는 에코와 관련 활동이 펼쳐지고 용기내 가게가 열려 있고 약국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공부방에서처럼 책을 읽는 일은 그야말로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공간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공부 좀 하자,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등등 언쟁까지 붙으니 피곤이 점점 가중되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몸은 여전히 예전 공부방의 환경을 원했다. 더구나 그 시절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왜 이러고 사는지 나 자신한테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기도 했다. 그렇게 정념에 휩싸이면 일상에서의 집중력은 더 떨어졌다.     예전이라면 해야 할 일을 끝내면 공부방에 자리 잡고 세미나...
기린
2021.10.26 | 조회 468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영화 <노회찬 6411>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회찬 6411>이 개봉되었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봐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한때 몸담았던 진영과 옛 동지들에 대한 의리, 그와의 개인적 인연, 노회찬 재단에서 애쓰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 그러나 걱정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격과 관련된 것.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 회고? 애도? 질문? 회고라고 하기에는 그를,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다룰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공적 애도와 관련해서도 그의 죽음 직후의 거대한 애도 행렬, 신문과 방송에서의 각종 특집이 이미 있었다. 혹시 이 영화가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는 손석희의 그 유명한 앵커 브리핑 4분53초를 127분으로 늘려놓은 것이면 어쩌지? 이런 것들과 연결된 것이지만 노회찬 지지자들에 의한 노회찬의 재현이 노무현 지지자들에 의한 노무현의 재현, 혹은 박정희 지지자들에 의한 박정희 재현과 정말 다른 것일 수 있을까, 라는 영화적 질문도 있었다. 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나는 그 영화의 수많은 인터뷰이처럼 그와 일정 기간 사적으로, 공적으로 깊이 연루된 관객이다. 회고와 애도 없이 그를 이야기하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 울지 않고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추억과 감성을 소비하지 않는 영화 보기가 가능할까? 그런데 울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일까?  그러나 그 모든 사려(思慮)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봉 당일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움이 모든 걸 압도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려한 만큼 나쁘진 않았다. 영웅서사나 신파를 배제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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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10.20 | 조회 345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타고난 기혈이 약해요. 허약체질이에요.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를 쓸 수가 없죠. 게다가 내성적이고 치밀해서 스트레스에 약하군요." 얼마 전 동네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피곤이 쌓이고 기력이 바닥을 쳐 거의 좀비처럼 며칠을 지낸 후 죽지 않으려면 산에라도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맘을 바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한의원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난 부황, 뜸, 침, 3종 세트의 치료를 받고 겨우 회생했다.   타고난 기혈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다음에 번아웃되는 식의 삶은 나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기운을 정미롭게 쓰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인간관계는 단순하고 쇼핑, 관광 같은 번다한 일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 지인의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는 거의 안 한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않는 것, 감정의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양껏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삑사리’가 났다. 부실하나마 수십 년간 잘 지탱해온 삼발이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다. 자주 열이 났고 두통이 왔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졌고, 잇몸은 ‘맛이 갔다’. 별 것 아닌...
"타고난 기혈이 약해요. 허약체질이에요.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를 쓸 수가 없죠. 게다가 내성적이고 치밀해서 스트레스에 약하군요." 얼마 전 동네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피곤이 쌓이고 기력이 바닥을 쳐 거의 좀비처럼 며칠을 지낸 후 죽지 않으려면 산에라도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맘을 바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한의원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난 부황, 뜸, 침, 3종 세트의 치료를 받고 겨우 회생했다.   타고난 기혈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다음에 번아웃되는 식의 삶은 나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기운을 정미롭게 쓰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인간관계는 단순하고 쇼핑, 관광 같은 번다한 일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 지인의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는 거의 안 한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않는 것, 감정의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양껏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삑사리’가 났다. 부실하나마 수십 년간 잘 지탱해온 삼발이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다. 자주 열이 났고 두통이 왔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졌고, 잇몸은 ‘맛이 갔다’. 별 것 아닌...
문탁
2021.10.12 | 조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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