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 영화 <제너럴>(1927)

청량리
2022-10-23 13:59
366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결과

제너럴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 주연 버스터 키튼, 마리온 맥 | 84분 |

 

 

 

 명절이 되면 으레 티브이에선 머털도사 아니면 성룡의 영화를 방영했었다. 특히 성룡영화는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데 모이게 만드는 인기프로였다. ‘성룡영화’의 특이점은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여주는 ‘NG모음’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각본과 연출에 의해 원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상물이다. 그러니 NG모음은 사실 성룡영화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아슬아슬한 명장면들이 대역도 없이 수많은 반복과 실패 뒤에 나왔다는 사실은 성룡영화에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부여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 오케이가 나올지는 성룡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에 삽입된 하나의 ‘오케이 컷’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된 NG장면 뒤에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NG모음. 카운터를 돌면서 의자를 피하는 장면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요즘처럼 흔한 CG나 와이어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성룡영화는 스턴트 액션영화에 있어서 말 그대로 ‘고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정신적 스승이 바로 ‘버스터 키튼(1895~1966)’이다. 이름이 다소 낯선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의 전성기, 그러니까 1920~30년대 찰리 채플린과 쌍벽을 이뤘던 배우 겸 감독이다.

물론 흑백 무성영화의 아이콘은 ‘찰리 채플린’이었고, 그의 슬랩스틱(slapstick) 코미디는 흑백영화의 대표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무표정’이라 일컫는, 슬랩스틱 보다는 스턴트에 가까운 버스터 키튼의 연기는 코미디보다는 액션영화에 가까웠고, 그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어갔다. 한 컷, 한 컷 재미있고 또 대단한 키튼의 스턴트 장면들은 성룡영화로 짐작건대, 분명 수많은 NG장면들을 통해서 완성되었을 것이다.

 

위대한 무표정(The Great Stone Face)의 배우, 버스터 키튼(본명 : 조셉 프랭크 키튼 Joseph Frank Keaton, 1895 ~ 1966)

 

 찰리 채플린이 스토리나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면, 버스터 키튼은 주로 뛰어난 영화적 기술과 화면 연출로 평가받는다. 반면 영화의 내용은 대개 비슷한 흐름을 갖는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갈등, 사건 해결로 해피엔딩. <제너럴>도 비슷하다. 때는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시대. ‘제너럴’은 조니 그레이(버스터 키튼)가 운전하는 기차의 이름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애너벨이 있었다. 기관사인 조니는 군입대에서 제외되지만 애너벨은 비겁함으로 오해하고 그를 차갑게 대한다. 어느 날, ‘제너럴’이 북군에게 탈취 당하고 공교롭게도 애너벨도 함께 잡혀간다. 조니는 애너벨과 제너럴을 되찾기 위해 뒤를 쫓는다.

 몇 줄로 요약되는 단순한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돌발상황을 해결하는 버스터 키튼의 놀라운 ‘몸’연기 때문이다. 무성영화 시대에 극중 상황과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슬랩스틱이었다. 판토마임과 같은 표정연기와 넘어지고 부딪히며 좌충우돌하는 몸짓으로 배우들은 모든 걸 표현했다.

 반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버스터 키튼의 연기는 스턴트에 가까웠다. 도망치던 북군은 철로 위에 침목을 던져 조니의 추격을 방해한다. 탈선의 위기에서 철로에 뛰어들었지만 무거운 침목은 혼자서 옮기기엔 만만치 않다. 어느 새 그가 타고 있던 기차가 등 뒤에 도달했고 기차의 맨 앞에 엉거주춤 침목을 든 채로 밀려간다. 그 순간, 저만치 철로 위로 또 다른 침목이 눈에 들어오자 당황하는 조니. 과연 그와 기차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대사를 잊어버려 다시 촬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스턴트 액션의 NG는 사고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스턴트의 달인 성룡도 이마가 찢어지고, 팔이 부러지기도 한다. 이 과정이 고스란히 NG모음에 들어가 있다. 보면서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침목을 들고 뛰던 키튼이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기차와 충돌하게 된다. 실패할지도 모르면서 성공확률에 도박처럼 몸을 던지는 걸까? 그리고 수많은 NG와 한 번의 오케이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우연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명사]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그러나 인과 관계가 불확정적이거나 또는 불분명하거나, 우리의 인식 바깥에 있을지라도 어떤 일에는 반드시 인과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연이란 필연적 인과를 통해서(만) 발생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세상은 ‘필연적 우연’으로 가득 찬, 무한히 넓은 그물망과도 같다.

 분명 액션이 들어가기 전 상황은 동일하다. 기차는 다가오고 있고 무거운 침목을 들고 엉거추춤 서 있는 키튼. 원하는 장면은 들고 있는 침목을 던져 철로에 끼인 또 다른 침목을 한 번에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침목은 빗나간다. 한 번, 두 번. 이번에는 기차와의 속도 조절에 실패해 침목을 놓치고 만다. 벌써 여덟 번째 테이크다. 인과 관계로만 봤을 때 조건은 동일해 보인다. 그러나 NG는 계속 일어난다. 그걸 알면서도 키튼은 한 번 더 철로 위에서 스턴트를 준비한다. 다시 또 엉거주춤 침목을 들고 서 있는 키튼 뒤로 기차가 다가온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혼자 들기에 무거운 침목을 들고 기차에 엉거주춤 걸터 앉은 조니. 위기 앞에서도 그의 표정은 변한 적이 없다.  

 

 우연은 뜻하지 않게 일어난다. 인과 관계가 같아 보여도 결과는 또 달라질 수 있다. <매트릭스>를 설계한 아키텍트는 네오를 보고 여섯 번째 ‘변수’라고 했다. 0과 1로 계산된 매트릭스에서도 결과는 달라진다. 예측불가능성, 불확정성, 불분명한 속성에서 보자면 우연은 하나의 ‘변수’인 셈이다. 성룡이나 키튼의 스턴트는 그런 면에서 그 변수에, 우연에 기대고 있다.

 우연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들이 결과를 만들어낸다. 처음부터 인간에게 그 인과 관계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 몸을 던져 ‘실패’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성룡과 키튼은 그 우연의 발생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될 거라고. 우연히, 뜻하지 않게 오케이가 날 거라고.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NG의 반복 속에서 우연에 대한 믿음이 그들의 오케이 컷을 만들어낸다.

 버스터 키튼의 전성기는 찰리 채플린에 비해 너무도 짧았기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졌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으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외면 받은 비운의 영화 <제너럴>(1927)은 그의 몰락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이후 키튼은 자신의 영화사를 접고 대형 제작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기와 겹쳐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뒤늦게 인정받아 1965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제너럴>은 재상영 되었고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키튼의 재발견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상소감에서 ‘박수소리는 근사하지만 너무 늦었다’며 무표정 속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버스터 키튼은 그 다음해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지금도 평론가들 사이에선 채플린과 키튼 중 누가 더 위대한지는 논쟁이 되곤 한다.

 복잡한 설정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는 건 주어진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영화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카더라’와 미래에 ‘그럴 걸’이라는 설명은 군더더기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우리가 궁금한 건 신이나 알법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필연적 우연 속에 살고 있기에 누군가의 삶을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키튼이나 성룡의 고난도 스턴트 액션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건 매일의 일상처럼 되풀이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무엇이다. 우연히 만난 골목길, 우연히 읽게 된 책, 우연히 알게 된 사람, 우연히 하게 된 공부. 삶과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은 그저 운이 좋아서 얻어 걸리는 게 아니다. 무수한 NG의 반복 속에서 얻게 되는 소중한 ‘오케이 컷’이다. 지금 당신 일상 옆으로 어떤 ‘우연’이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 3
  • 2022-10-24 15:13

    지나가는 우연을 붙잡으란 말씀!! 잘 읽었습니다~

  • 2022-10-25 15:48

    무수한 NG가 있는 일상을 살아갑시다~

  • 2022-10-25 17:03

    *몸을 던져 실패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저는 이말이 참 좋네요. 실패하지 않으려 꼼수 쓰다 인생 엉망으로 살았더라구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지난 글 보기 : <우연이라는 결과> 링크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지난 글 보기 : <우연이라는 결과> 링크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청량리
2022.11.21 | 조회 51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흑백영화를 보러갔다! 3부작 중 1편 키노-아이(Kino-eye), 세상을 담는 눈   F.W 무르나우 <마지막 웃음Der Letzte Mann, The Last Laugh(1924)>   “나는 너희 인간들이 결코 믿지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자리 언저리에서 불타 침몰하던 전함, 탄호이저 게이트 부근의 어둠 속에서 빛나던 섬광도 보았지. 이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때가 온 거야.”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에서 리플리컨트였던 로이(룻거 하우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읊조렸던 대사를 기억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았던 로이, 그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과거를 주마등처럼 흘려보내고 있다. 인간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인체의 모든 감각 중 70% 이상이 눈에 의해서 세상을 인식한 결과라고 한다. 삶을 끝내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뭔가를 본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감각임과 동시에 인식의 순간이다. 러시아 출신의 지가 베르토프 감독은 ‘키노-아이(kino eye)’라는 독특한 개념을 만들었다. ‘키노-아이’란 ‘영화의 눈’이란 뜻으로, 즉 ‘카메라의 눈’을 의미한다. 베르토프는 카메라 렌즈를 불완전한 인간의 눈과 대비해, 대중들에게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자는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카메라, 세상을 향한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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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11.06 | 조회 46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결과 제너럴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 주연 버스터 키튼, 마리온 맥 | 84분 |        명절이 되면 으레 티브이에선 머털도사 아니면 성룡의 영화를 방영했었다. 특히 성룡영화는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데 모이게 만드는 인기프로였다. ‘성룡영화’의 특이점은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여주는 ‘NG모음’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각본과 연출에 의해 원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상물이다. 그러니 NG모음은 사실 성룡영화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아슬아슬한 명장면들이 대역도 없이 수많은 반복과 실패 뒤에 나왔다는 사실은 성룡영화에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부여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 오케이가 나올지는 성룡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에 삽입된 하나의 ‘오케이 컷’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된 NG장면 뒤에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NG모음. 카운터를 돌면서 의자를 피하는 장면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요즘처럼 흔한 CG나 와이어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성룡영화는 스턴트 액션영화에 있어서 말 그대로 ‘고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결과 제너럴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 주연 버스터 키튼, 마리온 맥 | 84분 |        명절이 되면 으레 티브이에선 머털도사 아니면 성룡의 영화를 방영했었다. 특히 성룡영화는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데 모이게 만드는 인기프로였다. ‘성룡영화’의 특이점은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여주는 ‘NG모음’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각본과 연출에 의해 원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상물이다. 그러니 NG모음은 사실 성룡영화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아슬아슬한 명장면들이 대역도 없이 수많은 반복과 실패 뒤에 나왔다는 사실은 성룡영화에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부여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 오케이가 나올지는 성룡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에 삽입된 하나의 ‘오케이 컷’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된 NG장면 뒤에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NG모음. 카운터를 돌면서 의자를 피하는 장면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요즘처럼 흔한 CG나 와이어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성룡영화는 스턴트 액션영화에 있어서 말 그대로 ‘고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청량리
2022.10.23 | 조회 3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청량리
2022.05.29 | 조회 32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띠우
2022.05.17 | 조회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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