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3회]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 <바보선언(1983)>

띠우
2022-03-14 21:34
240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훗날 이장호는 영화라는 것을 망쳐놓기 위해 영화를 찍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영화 전반부는 실험정신이 가득하다. 뜬금없이 등장한 이장호가 고층 건물위에서 투신자살하고 ‘활동사진멸종위기’라는 소리너머 프로야구 중계소리와 관객의 박수소리가 뒤엉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세상에서 영화감독의 자살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대놓고 울리는 ‘새타령’은 자조적인 모습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30분이 넘도록 대사는 들리지 않는다. 당시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던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말을 하는데도 대사가 들리지 않자 망가진 줄 알고 교환하러 왔다고 한다. 편집이나 소리의 사용은 지금 봐도 실험적이고 세련되었다. 컨베이어 벨트같은 고가를 달리는 차들 행렬이나 이대 앞의 전경을 고속과 저속으로 편집한 장면들은 독창적이다. 청량리역 앞에서 즉흥연기를 했던 배우들은 간혹 카메라 초점에서 어긋나기도 한다. 한참동안의 무의미한 화면전개나 이야기구조는 의식의 흐름을 단절시킨다. 영화 속에서 시각적 단절은 연속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데 최소화한 대사, 장르가 뒤섞인 음악의 사용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왔다. 감독은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다가 차츰 새로운 에너지가 얻게 되었다. 찍는 과정에서 동시대적 문제와 마주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보선언>의 양식적 실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두 개의 죽음을 마주하다

 

똥칠(김명곤)은 자살한 영화감독(이장호)이 남긴 물건들을 훔친 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러다 이대 앞에서 혜영(이보희)에게 반했고, 카센터에서 일하는 육덕(이희성)에게 부탁해 혜영을 납치한다. 그러나 혜영은 여대생이 아니라 매춘부였고, 똥칠과 육덕은 혜영이 사는 집창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울역에서 포주에게 잡혀온 여성을 보고 탈출시키려다 들켜 쫓겨나고 만다. 혜영도 합류하여 함께 길을 떠나 바닷가에서 한동안 지내다 헤어지게 된다. 서울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 똥칠과 육덕은 상류층이 연 파티에서 혜영을 다시 만나지만, 그곳에서 부자들에 의해 혜영은 목숨을 잃는다. 혜영의 장례를 마치고 똥칠은 맨 처음 감독이 자살한 곳에서 투신하지만 육덕이 몸을 던져 그를 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여의도 광장에서 한바탕 춤사위를 벌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영화는 바닷가에서 보낸 시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뉘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찍던 전반부는 영화 자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이장호 감독은 사람들의 무관심속에서 혼자 죽어간다. 흔히 1980년대를 3S시대라고 할 때, 그 속에는 영화도 포함되어 있지만 국가선전물이나 액션 혹은 에로영화들이 영화관을 뒤덮은 현실 속에서 감독은 예술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산업을 부흥시킨다는 정부정책의 이면은 온갖 방법을 통한 검열의 강화였고 대부분의 감독들은 영화판을 떠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이든 사람들의 관심이 강해지면 그것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는 역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우연히 혜영을 매춘부로 등장시키면서 검열관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던 감독은 차츰 모자란 두 인물과 희생당하는 혜영을 통해 시대를 비꼬며 반어적인 영화문법을 선보인다.

 

난삽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는 천민자본주의가 지닌 욕망과 그것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혜영은 스위트홈을 꿈꾸며 신분상승을 위해 애쓰지만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 개봉 당시의 포스터에는 ‘당신의 허위와 삿대질이 그녀를 죽였다’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혜영의 장례제의는 똥칠과 육덕에 의해 구슬프게 열린다. 상투적인 전개임에도 배우들이 보여주는 애도의 몸짓은 죽음을 소비하지 않는다. 전쟁 후 새로운 분위기의 사회를 꿈꾸던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져갔고 좌절감은 사회를 뒤덮었다. 또한 성장중심의 자본주의는 한국사회에 천박한 문화를 가져왔고 많은 이들이 그 속에서 희생당했다. 영화는 두 개의 죽음을 통해 그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똥칠도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육덕이 있어 실패하게 된다.

 

3.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다 전쟁 나는 게 아니냐는 아들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단언했던 것이 엊그제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전염병의 시대도 끝나지 않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집도 한차례 코로나가 휩쓸리면서 각자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립에 익숙해져 가고 감정은 둔화되어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게 죽어가는, 이런 시기에 똥칠과 육덕이 보여준 제의의 모습에서 기억과 애도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죽은 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애도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에 대한 경험이다. 이러한 슬픔은 감정을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며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낳는다. 이때 슬픔이라는 감정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타자와 연결될 수 있다. 세상에서 사라져간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삶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찾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는 동시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19세기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영화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는 바로 그 동시대성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속의 문제의식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감응으로 이어진다. <바보선언>을 처음 보았을 때는 엄혹한 시대 속에서 보여주었던 감독의 독창적인 실험적인 영화기법에 눈이 갔었다. 그런데 요즘 기막힌 죽음의 상황들이 거듭되면서 영화 속에서 만났던 죽음들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혜영의 죽음 앞에서, 전염병의 죽음 앞에서, 전쟁의 죽음 앞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올바른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바보 똥칠이와 육덕이같은 훌륭한 조상들이 계셔서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

 

마지막에 선언하듯 울려퍼지는 아이의 나레이션이다. 이 울림은 사적 차원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시대에나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관습이라는 것이 있다. 이때 리추얼(ritual)이란 종교상의 의식 절차나 제의적 의례, 혹은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례적인 일을 뜻한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요즘 MZ세대가 추구하는 '리추얼 라이프'는 일상생활에서 일정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작은 행복들을 추구해가는 것을 말한다. 간단하게는 물 마시기나 계단 오르내리기부터 온갖 챌린지들도 해당된다. 소박한 행복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의미있지만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소비 형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리추얼도 이런 맥락에서 멈춰버린 것이 아닐까. 타자의 죽음에 관심갖지 않는 시대, 슬픔이 사라져버린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듣는 이를 울컥하게 만드는 저 선언에서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연대에 대한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

 

 

댓글 3
  • 2022-03-16 09:04

    어제인가…장례식장을 찾지못해 어쩔 수 없이 4일장을 치루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슬픔과 애도가 살아진 시대에 육덕과 똥칠처럼 슬퍼하는 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2022-03-16 10:40

    바보선언....너무 오래 되었지만 ...몇 장면은 생각날듯도 해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

    왜 이장호 감독은 영화판의 조용필처럼 되지 못했을까? 

  • 2022-03-23 07:25

    <바보선언>을 어떻게 봤는지 어쨌든 본 기억은 나는데 

    그 때는 뭔 얘긴가 그랬던 기억만 남았네요.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 있으니

    바보라는 말을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럼 무슨 말로 바뀌었을까... '시대와 불화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지난 글 보기 : <우연이라는 결과> 링크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지난 글 보기 : <우연이라는 결과> 링크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청량리
2022.11.21 | 조회 52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흑백영화를 보러갔다! 3부작 중 1편 키노-아이(Kino-eye), 세상을 담는 눈   F.W 무르나우 <마지막 웃음Der Letzte Mann, The Last Laugh(1924)>   “나는 너희 인간들이 결코 믿지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자리 언저리에서 불타 침몰하던 전함, 탄호이저 게이트 부근의 어둠 속에서 빛나던 섬광도 보았지. 이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때가 온 거야.”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에서 리플리컨트였던 로이(룻거 하우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읊조렸던 대사를 기억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았던 로이, 그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과거를 주마등처럼 흘려보내고 있다. 인간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인체의 모든 감각 중 70% 이상이 눈에 의해서 세상을 인식한 결과라고 한다. 삶을 끝내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뭔가를 본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감각임과 동시에 인식의 순간이다. 러시아 출신의 지가 베르토프 감독은 ‘키노-아이(kino eye)’라는 독특한 개념을 만들었다. ‘키노-아이’란 ‘영화의 눈’이란 뜻으로, 즉 ‘카메라의 눈’을 의미한다. 베르토프는 카메라 렌즈를 불완전한 인간의 눈과 대비해, 대중들에게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자는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카메라, 세상을 향한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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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11.06 | 조회 47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결과 제너럴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 주연 버스터 키튼, 마리온 맥 | 84분 |        명절이 되면 으레 티브이에선 머털도사 아니면 성룡의 영화를 방영했었다. 특히 성룡영화는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데 모이게 만드는 인기프로였다. ‘성룡영화’의 특이점은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여주는 ‘NG모음’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각본과 연출에 의해 원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상물이다. 그러니 NG모음은 사실 성룡영화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아슬아슬한 명장면들이 대역도 없이 수많은 반복과 실패 뒤에 나왔다는 사실은 성룡영화에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부여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 오케이가 나올지는 성룡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에 삽입된 하나의 ‘오케이 컷’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된 NG장면 뒤에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NG모음. 카운터를 돌면서 의자를 피하는 장면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요즘처럼 흔한 CG나 와이어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성룡영화는 스턴트 액션영화에 있어서 말 그대로 ‘고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결과 제너럴 The General (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 주연 버스터 키튼, 마리온 맥 | 84분 |        명절이 되면 으레 티브이에선 머털도사 아니면 성룡의 영화를 방영했었다. 특히 성룡영화는 집안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데 모이게 만드는 인기프로였다. ‘성룡영화’의 특이점은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여주는 ‘NG모음’이었다. 영화라는 게 원래 각본과 연출에 의해 원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상물이다. 그러니 NG모음은 사실 성룡영화만의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나 위험해 보이고 아슬아슬한 명장면들이 대역도 없이 수많은 반복과 실패 뒤에 나왔다는 사실은 성룡영화에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부여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던지지만 이번에 오케이가 나올지는 성룡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에 삽입된 하나의 ‘오케이 컷’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수없이 반복된 NG장면 뒤에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NG모음. 카운터를 돌면서 의자를 피하는 장면인데,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요즘처럼 흔한 CG나 와이어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펼치는 성룡영화는 스턴트 액션영화에 있어서 말 그대로 ‘고전’의 위상을 갖는다. 그런데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청량리
2022.10.23 | 조회 39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청량리
2022.05.29 | 조회 33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띠우
2022.05.17 | 조회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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