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평소 내가 좋아하는 산책코스는 집 근처에 있는 백운호수였다. 그런데 지난 5월부터는 이 코스가 청계산으로 바뀌었다. 청계산은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야 해서, 백운호수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청계산은 주말에 등산객들이 몰려올 때 빼고는, 어느 시간대에 가도 사람이 적고 한적했다. 아니 사람이 적다기보다는 산자락이 넉넉해 아파트 평수나 따지는 우리의 눈에는 언제나 널찍하고 텅 비어 보였다. 나 하나쯤 왔단 간 흔적조차 남지 않을 만큼 청계산은 ‘쏘쿨’했다. 올해 초, 나는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고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하고 있었다. 소금이 덜 들어간 식단은 입에 맞지 않았고, 하루 일과 가운데 1만보씩 걷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넣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낮에 바빠서 걷지 못한 날에는 하는 수 없이 달밤에 산책을 했다. 이런 강박이 스트레스가 되고 피로가 되었는지, 4월과 5월 검사결과가 좋지 못했다. 한다고 하는데도 검사결과가 나쁘게 나오니 실망이 컸다. ‘한 번 나빠진 신장은 돌이킬 수 없다더니, 진짜구나!’, ‘이제는 더 나빠지는 일만 남은 건가?’. 다시 식단조절을 하고 운동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만 들어봤던 청계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을 때, 나는 의욕부진과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산에 가는 일에 대해 나는 TV프로그램 ‘자연인’을 떠올리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아재’나 ‘루저’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큰둥한 마음과 달리, 청계산에 도착했을 때 내 발걸음은 빨라졌다. 코는 벌렁거리며 산 냄새를 맡고, 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은 단박에...
평소 내가 좋아하는 산책코스는 집 근처에 있는 백운호수였다. 그런데 지난 5월부터는 이 코스가 청계산으로 바뀌었다. 청계산은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야 해서, 백운호수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청계산은 주말에 등산객들이 몰려올 때 빼고는, 어느 시간대에 가도 사람이 적고 한적했다. 아니 사람이 적다기보다는 산자락이 넉넉해 아파트 평수나 따지는 우리의 눈에는 언제나 널찍하고 텅 비어 보였다. 나 하나쯤 왔단 간 흔적조차 남지 않을 만큼 청계산은 ‘쏘쿨’했다. 올해 초, 나는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고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하고 있었다. 소금이 덜 들어간 식단은 입에 맞지 않았고, 하루 일과 가운데 1만보씩 걷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넣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낮에 바빠서 걷지 못한 날에는 하는 수 없이 달밤에 산책을 했다. 이런 강박이 스트레스가 되고 피로가 되었는지, 4월과 5월 검사결과가 좋지 못했다. 한다고 하는데도 검사결과가 나쁘게 나오니 실망이 컸다. ‘한 번 나빠진 신장은 돌이킬 수 없다더니, 진짜구나!’, ‘이제는 더 나빠지는 일만 남은 건가?’. 다시 식단조절을 하고 운동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만 들어봤던 청계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을 때, 나는 의욕부진과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뭔가 일이 안 풀릴 때 산에 가는 일에 대해 나는 TV프로그램 ‘자연인’을 떠올리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아재’나 ‘루저’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큰둥한 마음과 달리, 청계산에 도착했을 때 내 발걸음은 빨라졌다. 코는 벌렁거리며 산 냄새를 맡고, 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은 단박에...
봄날의 주역이야기
** 주역공부 4년차. 여전히 해석도 어렵고 뜻을 알아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나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추동하는 주역은 매력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누려 용기내어 글을 쓴다. 봄날이 픽(pick)한 주역의 말들!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수(需)가 믿음이 있으면 밝게 형통하고 곧으면 길하여,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초구는 교외에서 기다린다. 일정함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구이는 모래사장에서 기다림이다. 약간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할 것이다. 九三, 需于泥, 致寇至 구삼은 진흙에서 기다리니, 도적이 옴을 초래할 것이다. 六四, 需于血, 出自穴 육사는 피에서 기다리나 구덩이로부터 나올 것이다. 九五, 需于酒食, 貞吉 구오는 술과 음식으로 기다리니 바르면 길할 것이다.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 終吉 상육은 구덩이에 들어가는데, 불청객 세 사람이 오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나는 탁구를 좋아한다. 운동삼아 시작한 것이 십 년이 넘었으니 구력(球歷)으로 치자면 고전 공부보다도 오래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나의 탁구 실력은 지지부진하다. 나의 탁구가 신통찮은 가장 큰 원인은, 무게 2.7g, 지름 4cm에 불과한 그 작은 공을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볍고 작은 공은 나의 기다림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 가볍고 작은 공에 늘 진다. 굳이 위로삼아 말하자면, 이것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운동을 하는...
** 주역공부 4년차. 여전히 해석도 어렵고 뜻을 알아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나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추동하는 주역은 매력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누려 용기내어 글을 쓴다. 봄날이 픽(pick)한 주역의 말들!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수(需)가 믿음이 있으면 밝게 형통하고 곧으면 길하여,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초구는 교외에서 기다린다. 일정함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구이는 모래사장에서 기다림이다. 약간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할 것이다. 九三, 需于泥, 致寇至 구삼은 진흙에서 기다리니, 도적이 옴을 초래할 것이다. 六四, 需于血, 出自穴 육사는 피에서 기다리나 구덩이로부터 나올 것이다. 九五, 需于酒食, 貞吉 구오는 술과 음식으로 기다리니 바르면 길할 것이다.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 終吉 상육은 구덩이에 들어가는데, 불청객 세 사람이 오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나는 탁구를 좋아한다. 운동삼아 시작한 것이 십 년이 넘었으니 구력(球歷)으로 치자면 고전 공부보다도 오래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나의 탁구 실력은 지지부진하다. 나의 탁구가 신통찮은 가장 큰 원인은, 무게 2.7g, 지름 4cm에 불과한 그 작은 공을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볍고 작은 공은 나의 기다림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 가볍고 작은 공에 늘 진다. 굳이 위로삼아 말하자면, 이것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운동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