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잘 부탁해, 우현 혹은 코코펠리! (아젠다 7호 / 20201220)
문탁
2020-12-20 12:28
105
길드다 막내 우현. 스물을 갓 넘겼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그래서 힙한 래퍼이다. 코코펠리 혹은 김왈리라는 두 개의 자아로 활동하고 있는데 솔직히 난 그 둘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도 운전 중에는 종종 그의 랩을 틀어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탄다. 난 이 친구의 래핑과 플로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윤미래와 리쌍을 좋아했고 쇼미더머니를 오랫동안 본방 사수해왔고 요즘은 래퍼 이영지에 푹 빠져 있긴 하지만, 힙합에 대한 그 정도의 취향으로는 우현의 랩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기도 힘들고 그 친구의 음악을 프로듀싱하기도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현에게 인문학공부를 시키는 일, 철학공부를 하라고 글을 쓰라고 독려하고 배치를 만들어주는 일,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뻔한 래퍼의 길 (쇼미더머니에 나가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닌 색다른 래퍼의 길을 모색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반이 아니라 음악–책(music-book)을 내보는 건 어때? 전형적인 랩 공연이 아니라 랩-인문학 공연을 해보는 건 어때? 라는 말들을 툭툭 던지곤 한다. 때론 돈도 벌어야 하니 마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과 결합된 랩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막연한 제안, 컨셉은 있지만 어디에도 모델을 찾아볼 수 없는 제안을 하거나 단순한 아이디어를 툭 던지면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말하는 것은 내가 우현한테만 하는 일은 아니다. 20대 젊은 여성 두 명이 가장 오래된 고전인 논어를 읽으면 뭔가 신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겠니? 목공을 취미나 기술이 아닌 사유로 접근한다면 어떤 글쓰기가 가능할까? 내년부터는 무조건 강의하자! 이런 식의 제안, 나도 잘 모르는 이런 저런 막 던지기를 나는 길드다가 만들어진 이래 꾸준히 해왔다. 그래도 청년들은 내가 던진 그 막연한 컨셉이나 단어 하나를 실마리 삼아 좌충우돌해가면서 그것을 현실화, 물질화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일의 순서를 잡아주거나 활동의 디테일들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청년들이 자신의 길을 내는 데 조력해왔다. 그렇게 글의 목차가 나오고 책이 만들어지고 강의가 기획되고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현실화되었다. 물론 엎어진 것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청년들의 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작심했다. 그래도 청년들과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면 그들이 구체화시키거나 혹은 그들이 그림을 그리면 내가 세부내용을 채워 넣거나 하는 방식으로, 민주적이지만 위계가 있고 위계가 있더라도 수직적이지는 않은 방식으로 몇 년 째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작년에 들어온 막내 우현은 좀 달랐다. 예를 들면 내가 청소년 랩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면 그 순간 에너지 넘치고 끼 많은 평상시의 우현은 사라지고 일단 표정이 애매해진다. 난 처음에는 이 표정이 도무지 읽히지 않아서 힘들었다. 싫다는 것인가?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인가? 해보겠다는 것인가?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수줍은 친구가 아닌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리고 다음회의에 기획안을 만들어오긴 한다. 나는 피드백을 해주고 고쳐오라고 한다. 그럼 또 예의 그 애매한 표정이 나온다. 난 또 속으로 ‘뭐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는 못할 것 같다고 포기선언을 해버린다. 헐~~ 언젠가는 나에게 야단을 맞고 홀랑 집으로 가버린 적도 있다. 쩝!!
아, 이건 뭘까? 이 뜬금없는 개김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툴툴, 삐침, 개김에 내가 적절히 대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길드다 청년 한명이 골질을 하다가 문탁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나한테 혼난 적이 있다. 어디서 집에서 하는 골질을 여기서 하냐고? 내가 니 엄마냐고? 그러나 우현의 작은 골질에는 내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건 걔가 상처받을까봐 겁내는 것도 아니고 걔가 막내라서 웬만한 건 봐주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아이가 낯! 설! 다!!
시간이 가면서 그 아이의 상태나 마음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부터 가르쳐야 할지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일러줘야 할지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요즘엔 아예 우현을 다른 길드다 청년들에게 떠넘긴다. 우현의 공모사업 지원서는 명식이가 좀 봐줘라. 우현의 앨범 디렉팅은 지원이가 좀 해라.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단계가 따로 없다. ㅋ
<90년생이 온다>는 책이 있다. 이들은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을 신입사원으로 맞아야 하고 또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연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의미로 “90년생이 온다”를 느끼고 있다. 툴툴거리고 삐치고 개기면서 일을 하는 우현을 보면서, 불안, 불행, 공포, 외로움이라는 단어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에세이를 쓴 청년을 마주하면서, 대화를 하려하면 눈물부터 흘리는 또 다른 청년들과 일을 하면서, 나는 내 앞에도 “90년생이 온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있다.
이들과 난 공생할 수 있을까? 난 조금이라도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든 의문. 우현이가 90년생 맞나? 혹시 2000년생 아냐? 카톡을 보냈다. 너 몇 년생이니? 답이 왔다. 1999년생이에요. 아, 다행이닷! 그리곤 피식 웃음.
어쨌든 우현부터. 우현과 다단계 말고 우정을!! 잘해보자 송우현 혹은 코코팰리 혹은 김왈리! 내년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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