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 4회]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지원
2020-11-09 15:56
544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목공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목공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할 만 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목공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론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겠지만, 요즘처럼 충분히 정보화된 세상에서 그런 정보는 접근이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때로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던 도중 그가 느닷없이 가구의 구조와 수축 팽창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담 전 이미 원목 가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들을 찾아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가 알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우위에 설 수 없음을 뜻한다.

 

다만 실제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도구를 다루어 그가 생각하고,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하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일은 정보를 찾는 일에 비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두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활용해야할지, 이 도구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물론 ‘정보’에 속하지만, 그것은 영상을 한 번 본다고 해서 곧바로 따라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대패를 예로 들어보자. 대패는 목공 도구 중에서도 악명 높은 도구로, 목수들 사이에 ‘대패를 쓰는 일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많이 든다’는 말이 있다. 대패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기술이 필요한데, 하나는 날을 가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날을 쓰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언제나 연동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날은 아무리 좋은 쓰는 기술도 의미 없게 만들고, 쓰는 기술이 없으면 그는 목수가 아니라 오히려 칼갈이라 불려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기술 모두 반복을 통해서 ‘감’을 익혀야 하는 종류의 것이라는 데 있다. 갈 때는 일정한 각도에 맞추어 속도와 힘을 조절하며 갈고, 쓸 때는 날의 두께와 속도, 힘을 고려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말이나 글로 잘 설명이 안 된다. 날 가르쳐 주신 목수님도 나에게 대패를 사용할 때 날을 ‘머리카락 두께 만큼 빼라’고 말씀해주셨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머리카락 두께라니, 대팻날을 쳐올리면서 한쪽 눈을 감고 날을 올렸다 내렸다 하자면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이 머리카락 두께를 맞추고 대패를 당길 때 대패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 전에 날이 충분히 날카롭게 갈려 있어야 한다. 우리의 버럭 반장님은 매번 대패를 사용하기 전마다 대패를 꺼내서 간다. 대패를 현장에서 갈기 위해 페트병을 개조해 만든 ‘숫돌 함’도 가지고 계신다. 버럭 반장님은 날을 갈며 늘 중얼중얼 거리시는데, ‘요즘 목수들은 날 갈 줄을 모르지…’하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곤 나를 쳐다보며 “한 번을 제대로 쓰려면 매일 한 시간씩 날을 갈아줘야 해!”라고 비장하게 말한다. 마치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단 한 번의 칼부림을 위해 평생 동안 칼을 가는 아들의 눈빛이다.

 

 

시간과 돈

 

내가 대패를 쓰는 감을 알게 된 것은 목수 일을 한지 3년이나 되었을 때다. 그러나 여전히 날을 가는 데에는 서툴다. 대팻날을 못 갈면 목수가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목수라면 매일 대팻날을 갈아야한다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시간을 들일 여유가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정보화를 포함한 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노력의 절대량마저 단축시킨다.

 

최근 들어 보급형 CNC가 많이 생산되며 목재 뿐 아니라 플라스틱, 유리, 철재 등 다양한 재료를 컴퓨터로 입력한 도면에 따라 재단해주는 비용이 엄청나게 싸졌다. CNC는 드릴 날이 공중에 설치된 X, Y축을 따라 움직이며 부재를 재단한다. 큰 가구공장들은 더 이상 최소 숙련 기술자 1인을 함께 고용해야 하는 거대한 원형 톱을 사용하지 않는다. 간단한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알면 누구나 CNC를 조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인건비 뿐 아니라 재료비를 감축하는 효과도 크다. 기존의 원형 톱은 부재를 한 번 재단할 때 끝까지 잘라야 하지만, CNC는 그러한 제약 없이 원하는 부위를 원하는 크기로 재단할 수 있다. 나 또한 독립 후 목재를 직접 재단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대패를 가는 시간에 도면 한 장이라도 더 치는 것이 돈을 번다.

 

가구를 만들거나 인테리어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구매하기 위해 큰 철물점에 가면 한쪽 코너에 주루룩 대패가 걸려있다. 버럭 반장님에 따르면 옛날과는 다른 풍경이다. 대패는 한 번 사면 평생을 갈고 다듬으며 쓰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수요가 없었다. 이렇게 대패가 많이 걸려 있는 것은 요즘 목수들이 대패를 가는 시간에 새 대패를 사고 버리기 때문이다. 대패 가격은 충분히 낮아졌고, 목수들은 늘 시간에 쫓긴다. 기술이 돈과 시간을 벌어다 주는 것이 아니라, 돈과 시간이 기술을 강요한다.

 

마찰과 저항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일일까? 대패를 가는 목수는 분명 구시대의 산물이다. 때로 이런 특별한 기술들은 전문가의 불평등한, 혹은 불친절한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오늘날 전문가는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장인이 아니며,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불평등의 경험을 최소화하며 원한다면 누구나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도구와 기술이 인간과 맺는 관계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책 『짓기와 거주하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것에 있는 악마는 ‘사용자 친화적’ 테크놀로지라 불리는 것이다. 그것은 열정을 앗아간다.” 사용하는 사람에게 마찰과 저항을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기술, 사용자 친화성은 사용자들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한다. “마찰 없음을 지향하는 사조는 복잡한 장소의 특정한 사항들에 집중하는 초점 관심을 사소한 수준에서도 유보한다. 예컨대,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있는 어떤 지역 카페에 굳이 가지 않고 그냥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식이다. 더 심각한 예를 들자면, 마찰 없음은 흑인이나 무슬림 같은 타자의 전형성만 알아본다. 그 전형성에 맞지 않는 흑인 남자나 무슬림 여성의 특수성을 식별하려면 감정적 노동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버튼을 누르면 켜지고, 또 한 번 버튼을 누르면 저절로 무언가 완성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편리한 기술은 우리 삶을 점점 더 매끄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매끄러운 세상에 익숙해진 우리는 낯설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났을 때 그것을 들여다보기보다 눈을 감고 그것을 해결해줄만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다린다. 쉽고 편리해진만큼 더 잘 알게 된 것 같지만, 실상 우리는 버튼을 누르는 행위 외에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질문들

 

오류가 없는 매끄러운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면, 기술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더욱 더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동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기술의 도구가 된다.

 

생각해보면 대패를 갈고, 나무를 깎는 일은 그 자체로 마찰과 저항에 직접 부딪히는 일이다. 세상에 같은 결을 가진 나무는 없으며, 같은 강도를 가진 대팻날도, 숫돌도 없다. 오늘날의 결을 갈아 없애버린 나무 조각들과 간단하게 컴퓨터에 입력만 하면 금세 출력이 되는 기술의 입장에서 이것은 언제나 예외적 상황이다. 세넷은 사용자 친화성이 “열정을 앗아간다.”고 덧붙였다. 열정? 나는 그의 문맥을 살필 때 열정을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같지 않은 결이 대팻날에 ‘턱’ 하고 걸릴 때, 우리는 질문을 가진다. ‘왜 걸릴까?’ 그 답을 찾아가는 매 과정이 우리를 더 많은 경우에서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해결할 능력을 준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지 않은 세상, 단순한 입력=출력의 세상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우리는 그 어떤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죽는다. 자본은 이러한 조건을 창출한 뒤, 인공호흡기를 달아주고 목숨 값을 흥정한다. 이때 도구는 더 이상 우리의 삶을 돕지 않는다.

 

모두가 대패를 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처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패는 언제나 오류를 마주하고, 오류는 우리에게 질문하도록 한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는 질문들만이 기술을 우리에게 유용한 도구로, 우리를 우리 삶의 주체로 만들 것이다.

댓글 7
  • 2020-11-12 13:12

    대패를 보니 몟날에 농방에서 아재들이 대패 갈던 생각이 나네요 그 대패로 거친나무를 밀면 파마머리처럼 몽글몽글하고 빛나는 종이처럼 얇은 나무... 그걸 한아름 갖고 놀았어요.
    저는 철물점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문방구를 좋아하는 것 처럼요.
    철물점에는 기계가 아닌 도구들이 많이 있지요
    어떤때 필요한 물건인지 호기심 만땅이지요.
    잘읽었습니다

    • 2020-11-15 13:57

      감사합니다?

  • 2020-11-13 13:39

    맞아요. 터럭 걸렸을 때 질문하게 돼요. 왜 걸렸지? 어떻게 하지?
    세넷의 열정을 질문으로 지원이가 바꿔 읽은 게 이 글의 신의 한수인 듯^^

    • 2020-11-15 13:58

      세넷 책 너무 좋아요. 목공인문학의 교과서!!

  • 2020-11-13 13:56

    우리집 부엌칼을 갈 때가 되었는데 미뤄두다가 이 글 읽은 기념으로 마트 가서 칼 가는 거 하나 사야겠어요!

    • 2020-11-13 17:54

      갑자기 切蹉琢磨 가 떠오르네요. ㅋㅋ

    • 2020-11-15 14:01

      저도 글쓰고 오랜만에 대팻날을 갈아보았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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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짱어탕’을 끓이듯이 마감하기     몇 번이나?   목공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마감과 관련한 것이다. 가구의 마감은 보통 칠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결을 덮는 페인트칠을 할 때도 있고,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주기 위해 오일을 칠하기도 한다. 나뭇결이 보이면서도 좀 더 진한 색상이나 다른 톤의 색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테인을 칠한다. 이처럼 칠은 물론 미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원목 가구의 경우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칠을 하지 않은 목재를 흔히들 ‘백골’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잘 건조되어 허연 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백골 상태의 목재는 이물질을 바로 흡수해버린다. 칠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건조된 상태의 목재가 뭐든지 흡수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식탁에 물 컵을 올려뒀을 때 컵 밑단의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 특히 겨울철 등산하다가 잘못 잡아 사고가 나기 십상인 바짝 마른 줄기처럼 나무는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칠은 이렇게 취약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단단해지도록 한다.   칠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물성이 그렇듯 목재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이 사이를 채우고 있던 수분들이 날아가며 목재가 변형을 겪는다. 수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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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문탁
2021.08.20 | 조회 246
요요와 불교산책
  건너가기 위하여 너희 비구는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아야 한다. 법도 응당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금강경』)   뗏목의 비유 여행자가 있다. 길을 가다가 큰물이 넘치는 강을 만났다. 위험하고 두려운 이편 언덕에서 안온하고 두려움 없는 저편 언덕으로 건너가려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를 도와줄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여행자는 나뭇가지와 풀잎을 모아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넜다.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뗏목을 놓아두고 가려니 아깝다.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가는 건 어떨까?”   불교경전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다. 이 비유가 설해진 배경은 이렇다. 수행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수행자가 다른 해석을 내 놓았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의견차이로 논쟁하는 것은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으니 수행자들은 서로의 주장의 근거를 대며 네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옳다고 옥신각신 하지 않았을까?   상황을 들은 붓다는 수행자들을 불러 모아 먼저 자신의 가르침이 어떤 뜻이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런 뒤 이 비유를 설했다.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물었다. ‘여행자가 어떻게 뗏목을 처리해야 하겠느냐?’고. 모두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강물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밝히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일 텐데 붓다는 왜 ‘뗏목을...
  건너가기 위하여 너희 비구는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아야 한다. 법도 응당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금강경』)   뗏목의 비유 여행자가 있다. 길을 가다가 큰물이 넘치는 강을 만났다. 위험하고 두려운 이편 언덕에서 안온하고 두려움 없는 저편 언덕으로 건너가려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를 도와줄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여행자는 나뭇가지와 풀잎을 모아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넜다.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뗏목을 놓아두고 가려니 아깝다.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가는 건 어떨까?”   불교경전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다. 이 비유가 설해진 배경은 이렇다. 수행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수행자가 다른 해석을 내 놓았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의견차이로 논쟁하는 것은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으니 수행자들은 서로의 주장의 근거를 대며 네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옳다고 옥신각신 하지 않았을까?   상황을 들은 붓다는 수행자들을 불러 모아 먼저 자신의 가르침이 어떤 뜻이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런 뒤 이 비유를 설했다.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물었다. ‘여행자가 어떻게 뗏목을 처리해야 하겠느냐?’고. 모두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강물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밝히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일 텐데 붓다는 왜 ‘뗏목을...
요요
2021.08.12 | 조회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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