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1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존 포드의 <역마차>

띠우
2021-09-26 22:41
570

 

청·띠의 영화일기,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의 <역마차(1939)>

 

 

  1. 서부영화의 목적은 분명했다

 

 

서부영화는 영화 탄생 초기부터 만들어졌던 장르로써, 신대륙의 황야를 다양한 양상으로 포착하여 미국의 건국신화 이미지를 구축해내는 역할을 했다.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는 서부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세계대공황의 여파와 함께 제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될 무렵 아직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던 미국은 뒤늦게 전쟁에 참여했다. 화려하게 세계무대에 오르기 전에 국제적 위상과 관련해 내부 결속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부영화 속에서 주로 다루어진 역사 시기는 남북전쟁 이후부터 문명화되기 전까지였다. 왜냐하면 그 개척사야말로 신대륙이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이며, 평등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가 최초의 유성 서부영화, <역마차(1939)>를 발표하였다.

 

이후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이 된 미국의 힘은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더욱 확장되어간다. 헐리우드 영화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소음이 적고 이동이 간편한 카메라가 이용되었다. 또 정교한 녹음기술은 스크린 위에 광대한 서부의 자연환경을 재현시켜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다. 서부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은 1980년대 주말 TV프로그램인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통해서다. 그 시기 ‘아메리칸 드림’이 열풍을 이루며 한국에도 상륙했고 성조기 티셔츠나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미국이민을 꿈꾸던 친구들이 주변에 흔했다.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1985)>이나 피터 위어 감독의 <그린카드(1991)>같은 영화들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최근 개봉한 <미나리(2020)>의 시대적 배경과도 일치한다. 서부에 대한 팽창주의가 한풀 꺾인 시기에 다시 서부를 소환한 것, 이를 두고 사실적인 역사는 뒤로 하고 미국적 국가주의를 위해 영화가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훗날 미국영화협회에서는 서부영화, 일명 웨스턴을 ‘미국 서부 개척 정신과 이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개척의 종말을 담은 영화 장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보면 <역마차>도 그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역마차를 타고 적대적인 인디언 지역을 통과해 로즈버그로 향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회적 신분을 대표하는데, 몇 사람은 공동체의 가치 체계와 갈등을 겪으며 쫓겨나는 중이다. 이 갈등은 역마차 안에서도 계속되지만 외부의 적인 인디언이 등장하자 타협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생성해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마차가 파괴되거나 적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탑승중인 사람들의 운명 역시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우선 내부 결속이 필요하다. 영화는 아직 불안정한 세계를 묘사하며, 그 속에서 문명과 야만이 부딪히는 순간의 투쟁을 보여준다. 미국은 자국의 무한한 가능성과 막힘없는 전망을 영화 속에서 극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그들의 팽창주의 전략을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여기까지는 서부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2. 존 포드, 질문을 던지다

 

“관객들은 인디언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들은 인디언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디언들이 자신들만의 위대한 문화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존 포드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전통 서부영화는 항상 백인이 주인공이고 인디언이 악당이므로 무의식중에 인종주의를 퍼뜨린다. 인디언을 대놓고 차별하지 않아도 영화 이미지는 그런 효과를 낳는다.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모뉴먼트 밸리를 배경으로 역마차와 인디언들, 그리고 기병대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진다. 이후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온 전신은 오직 ‘제로니모’라는 한 마디 말을 전하고 끊긴다. 제로니모는 1848년 이후, 자신들의 땅에 침범한 멕시코 군과 미국 군대에 맞서 30년 동안 싸웠던 인디언 전사의 우두머리다. 감독은 관객에게 우선 특정 고정 관념을 심어준 후 자신이 바라보는 진실을 영화적 장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역마차>는 제로니모에 대한 공포로 시작하지만, 이후 전개는 인디언과의 대립보다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치열한 갈등 양상은 야만(인디언사회)과 문명(백인사회)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존 포드는 전통적인 초기 서부영화와는 다른 인물유형을 <역마차>에서 선보이고 있다. 초기 영화에 등장했던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이 명확했다. 정의롭게 법질서를 수호하는 백인 주인공은 선이고,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인디언은 악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우선 주인공 링고는 공동체의 법질서를 뒤흔든 탈옥수고, 달라스는 공동체에서 꺼리는 매춘부다. 동시에 정의로움을 가졌고 누구보다 선한 마음을 지녔다. 이들이 타게 된 역마차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았을 때, 그 안에 위기가 닥치자 링고는 영웅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무사히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다시 공동체의 위험요소가 된다.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이 불명확하게 돌아간다.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유형의 등장은 지금 시각으로는 자연스럽지만 당시에는 꽤나 새로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한편, 존 포드는 괴팍하고 반항적인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다음은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매커시즘은 영화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당시 미국감독협회 회장이었던 조셉 맨케비치는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십계>를 연출했던 세실 B. 드밀이다. 그는 협회에 속한 모든 감독들을 향해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자고 주장했다. 서슬퍼런 그 기세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던 그 순간에 존 포드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나는 존 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방에서 세실 B. 드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드밀을 바라보며) 그러나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이 지지하는 것도 싫소. 오늘밤 여기서 당신이 말한 것도 싫소.”

 

영화 이야기와 묘하게 중첩된다. 세실 B. 드밀의 요구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이유는 공산주의를 적으로 규정한 공동체의 법질서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때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였기에 공산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독이었기에 때문에 서부영화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게 된다.

 

3. 협력 자체가 목적인 공동체를 꿈꾸다

 

<역마차>는 두 주인공 링고와 달라스가 모뉴먼트 밸리를 향해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을 배웅하던 보안관은 ‘저들은 문명의 이기로부터 해방되겠군’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문명의 이기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모두 자연이나 사회 환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런데 문명화될수록, 법치화될수록, 자본주의화될수록 공동체는 자신의 근원인 (야만이라 폄하되는) 자연과의 접촉을 점차 잃어가는 것 같다. 이제 그 결과로 마주한 것이 코로나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닥친 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불편을 묻어두고 국가차원의 협력에 돌입하였다. 그렇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나 백신 접종이 근본적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서부영화는 차츰 역사적 반성을 통해 인디언의 고난사와 백인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분법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인간 사회의 힘 구도에 따라서 주류 시각이 바뀔 뿐이지 위계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은 인디언의 자리에 흑인 혹은 여성 등이 자리한다. 이분법의 세계에서는 오늘의 적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적이 생긴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그 너머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존 포드는 선악이 공존하고 문명과 야만이 복합적으로 엉켜있는 사회를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서부영화가 갖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링고는 그 경계를 오가는 인물로서 두 세계 모두와 접촉이 가능했기에 그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찾아올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한 우리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법질서만을 들이미는 것은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 말이다.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에서 우리에게 협력 자체를 목표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기존 공동체의 유지가 목적이 아닌 현재의 삶을 생동감 있게 생성해내는 협력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현재의 질서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비공식적인 협력관계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역마차> 안에서 순간 생성되었던 비공식적인 협력이 떠오른다. 이때 우리가 갖고 있는 경계를 허무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이 달랐던 역마차 안의 사람들이 이전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새로운 가능성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나와 너를 경계 짓기보다 그 사이의 ‘와’에 집중한다면 문제는 의외의 방법으로 풀릴지도 모른다.

 

 

댓글 5
  • 2021-09-27 09:28

    아, 시작되었군요.

    첫 연재가 존포드의 <역마차>라......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젊은날의 링컨>과 같은 해인 1939년에 만들어진, 소위 '서부극' (서부극 자체가 논쟁적인 장르이죠)의 시원, 시초, 원형!
    "풍경의 시간"을 영화적으로 발명한 기념비적 저작!!!!!!!!!!!! (아, 상투적 표현...ㅋㅋㅋ)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댓글로 다 못 달겠어요...ㅎㅎㅎ

  • 2021-09-27 11:02

    영화대로에서 영화사를 한 번 훑고 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기네요~

  • 2021-09-27 22:18

    영화로 내는 사이길~~ 두 분의 건필을 기원하며^^ 영화에 대한 찐한 이야기 기대할게요~~

  • 2021-09-28 10:46

    서부영화를 아무생각없이 봤는데 띠우님의 글을 읽어보니 새롭게 보이네요.

    <역마차>에서 읽어 낸 ‘이분법’적 삶의 방식!

    코로나 펜데믹의 원인이고 펜데믹을 극복 못하는 원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2021-09-28 11:31

    저는 영화를 보고나면 금방 잊어버려요.(영화만 그런 건 아닙니다만..ㅋ)

    영상으로 뭐가 잘 입력이 안되는 장치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한 번만 봐서 그런건지..

    이렇게 글로 영화를 보면 좀 더 기억에 남을까요?

    청띠의 영화연재, 재미있게 잘 읽고.. 또 틈나는대로 영화도 찾아서 볼게요.^^

     

     

요요와 불교산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71)   『무소의 뿔 경』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 구절은 독립, 자유, 결단, 마이 웨이와 같은 이미지와 결부된다.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라, 이런저런 주위의 시선과 기대 따위 훌훌 털어 버리고 네 식대로 살아도 좋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일 게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제 살 길 외에는 관심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얽히고설켜서 잘 사는 방법을 찾아도 모자랄 판인데 불교마저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이해들은 다소간 오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를 감행하라,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제 갈 길 가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라, 라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가(出家), 익숙한 습속을 떠나라 먼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난 출가사문들을 향한 말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출가사문이란, 붓다의 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에 고대인도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비판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믿어져온 성스러운 『베다』의 가르침과 제식주의에 이의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제계급인 바라문들이 주관하는, 수많은 희생동물을 바치는 거대한 제사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71)   『무소의 뿔 경』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 구절은 독립, 자유, 결단, 마이 웨이와 같은 이미지와 결부된다.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라, 이런저런 주위의 시선과 기대 따위 훌훌 털어 버리고 네 식대로 살아도 좋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일 게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제 살 길 외에는 관심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얽히고설켜서 잘 사는 방법을 찾아도 모자랄 판인데 불교마저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이해들은 다소간 오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를 감행하라,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제 갈 길 가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라, 라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가(出家), 익숙한 습속을 떠나라 먼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난 출가사문들을 향한 말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출가사문이란, 붓다의 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에 고대인도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비판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믿어져온 성스러운 『베다』의 가르침과 제식주의에 이의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제계급인 바라문들이 주관하는, 수많은 희생동물을 바치는 거대한 제사가...
요요
2021.10.20 | 조회 620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타고난 기혈이 약해요. 허약체질이에요.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를 쓸 수가 없죠. 게다가 내성적이고 치밀해서 스트레스에 약하군요." 얼마 전 동네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피곤이 쌓이고 기력이 바닥을 쳐 거의 좀비처럼 며칠을 지낸 후 죽지 않으려면 산에라도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맘을 바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한의원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난 부황, 뜸, 침, 3종 세트의 치료를 받고 겨우 회생했다.   타고난 기혈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다음에 번아웃되는 식의 삶은 나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기운을 정미롭게 쓰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인간관계는 단순하고 쇼핑, 관광 같은 번다한 일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 지인의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는 거의 안 한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않는 것, 감정의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양껏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삑사리’가 났다. 부실하나마 수십 년간 잘 지탱해온 삼발이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다. 자주 열이 났고 두통이 왔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졌고, 잇몸은 ‘맛이 갔다’. 별 것 아닌...
"타고난 기혈이 약해요. 허약체질이에요. 비위가 약해서 잘 못 먹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를 쓸 수가 없죠. 게다가 내성적이고 치밀해서 스트레스에 약하군요." 얼마 전 동네 한의원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피곤이 쌓이고 기력이 바닥을 쳐 거의 좀비처럼 며칠을 지낸 후 죽지 않으려면 산에라도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맘을 바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한의원으로 간 날이었다. 그날 난 부황, 뜸, 침, 3종 세트의 치료를 받고 겨우 회생했다.   타고난 기혈이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도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감당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순간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다음에 번아웃되는 식의 삶은 나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기운을 정미롭게 쓰는 방식을 터득해왔다. 인간관계는 단순하고 쇼핑, 관광 같은 번다한 일에도 힘을 쏟지 않는다. 지인의 생일 등 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는 거의 안 한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지 않는 것, 감정의 잉여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이 저질 체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양껏 하면서 살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올해 ‘삑사리’가 났다. 부실하나마 수십 년간 잘 지탱해온 삼발이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느낌이다. 자주 열이 났고 두통이 왔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의 알레르기가 심해졌고, 잇몸은 ‘맛이 갔다’. 별 것 아닌...
문탁
2021.10.12 | 조회 41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으며,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         [영화대로 42길, 2]   멋대로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네 멋대로 해라 | À bout de souffle, Breathless 장 뤽 고다르 감독 | 1960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는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이자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를 소개하는 책마다 언급되는 대표작으로 대개 비슷한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혁신적인 영화형식’이라든가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기법의 교과서’라는 평가는 ‘영화사상 최초의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어쩐지 형식과 기법의 한계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당시에는 굉장히 새로운 실험이었으나 지난 60여 년 동안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이미 봐왔던 터라 더 이상 혁신적이거나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자’ 고다르가 누벨바그의 친구들과 함께 내세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러므로 아쉽지만 낡은(?) ‘점프컷’과 ‘핸드헬드’는 버리고 이 영화 <네 멋대로 해라>도 '제로'에서 다시 읽어보자.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      두 번의 유럽전쟁(이른바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으며,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         [영화대로 42길, 2]   멋대로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네 멋대로 해라 | À bout de souffle, Breathless 장 뤽 고다르 감독 | 1960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는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이자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를 소개하는 책마다 언급되는 대표작으로 대개 비슷한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혁신적인 영화형식’이라든가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기법의 교과서’라는 평가는 ‘영화사상 최초의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어쩐지 형식과 기법의 한계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당시에는 굉장히 새로운 실험이었으나 지난 60여 년 동안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이미 봐왔던 터라 더 이상 혁신적이거나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자’ 고다르가 누벨바그의 친구들과 함께 내세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러므로 아쉽지만 낡은(?) ‘점프컷’과 ‘핸드헬드’는 버리고 이 영화 <네 멋대로 해라>도 '제로'에서 다시 읽어보자.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      두 번의 유럽전쟁(이른바 세계대전) 이후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청량리
2021.10.10 | 조회 371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정크스페이스, 뒤편으로 쫓겨난 흐름들     공기순환의 N차방정식   내가 열 평 남짓 되는 작은 식당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공기의 순환’이다. 작은 가게인 만큼 요리를 위해 불을 쓰면 가게 내부가 금세 후끈 달아오르고, 물만 끓여도 습도가 몇 분 만에 60%를 상회한다. 음식을 하면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도 큰 문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방에서 발생하는 열과 습기, 냄새와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팬fan을 단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공간은 매우 ‘골 때리는’ n차방정식에 돌입하게 된다.   작은 가게의 미닫이 혹은 여닫이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열과 습도를 가게 내부에서 외부로 방출하는 팬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가져가지 않고, 가게 내부의 공기를 밖으로 가져간다.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외부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와 줘야만 한다. 누구도 가게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조그만 가게에 출입문을 제외하고 별도의 창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공기만큼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출입문을 밀며 들어온다. 다시 말해 팬을 틀면, 마치 여닫이문을 누가 당기고 있는 것처럼 가게 내부 방향으로 빨려 들어오는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가 유입된다. 이렇게...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정크스페이스, 뒤편으로 쫓겨난 흐름들     공기순환의 N차방정식   내가 열 평 남짓 되는 작은 식당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공기의 순환’이다. 작은 가게인 만큼 요리를 위해 불을 쓰면 가게 내부가 금세 후끈 달아오르고, 물만 끓여도 습도가 몇 분 만에 60%를 상회한다. 음식을 하면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도 큰 문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방에서 발생하는 열과 습기, 냄새와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팬fan을 단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공간은 매우 ‘골 때리는’ n차방정식에 돌입하게 된다.   작은 가게의 미닫이 혹은 여닫이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열과 습도를 가게 내부에서 외부로 방출하는 팬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가져가지 않고, 가게 내부의 공기를 밖으로 가져간다.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외부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와 줘야만 한다. 누구도 가게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조그만 가게에 출입문을 제외하고 별도의 창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공기만큼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출입문을 밀며 들어온다. 다시 말해 팬을 틀면, 마치 여닫이문을 누가 당기고 있는 것처럼 가게 내부 방향으로 빨려 들어오는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가 유입된다. 이렇게...
지원
2021.10.07 | 조회 608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그때의 내 심정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한 어그로였을까? 한동안 페이스북에 심란한 문장들을 올렸다. “오르막길 내리막길마다 생각이 바뀌고 지금 나는 뭔가를 비우는 중인가 채우는 중인가?”, “눈물이 났다. 이 슬픔은 뭔가? 생각해보니 아쉬움이다. 이제 뭔가 좀 해볼만하다는 감이 왔는데,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게 아쉽다.” 이런 글이 올라간 다음엔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눈빛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게 불편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내가 너무 ‘인간적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사진 오르막길을 걸을 땐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했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이 미끄러워서 짜증이 났고, 내 인생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라는 자학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수월히 내리막길을 내려올 땐 인생의 내리막길은 참 빠르구나! 하는 허무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이런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울창한 나무와 푸르른 잎사귀,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에서 내 마음은 홀로 재난을 겪고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질투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감정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그 마음을 내심 모르는 척하려고도 했다.   국사봉에서 이수봉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었을 때 쏴아악 쏴아악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쏴아악 쏴아악 나뭇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바람소리가 너무 좋아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뭇가지들이 기우뚱 휘청이며 내는 바람소리는 죽비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려왔다. ‘별거 아냐’,...
  그때의 내 심정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한 어그로였을까? 한동안 페이스북에 심란한 문장들을 올렸다. “오르막길 내리막길마다 생각이 바뀌고 지금 나는 뭔가를 비우는 중인가 채우는 중인가?”, “눈물이 났다. 이 슬픔은 뭔가? 생각해보니 아쉬움이다. 이제 뭔가 좀 해볼만하다는 감이 왔는데,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게 아쉽다.” 이런 글이 올라간 다음엔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눈빛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게 불편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내가 너무 ‘인간적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사진 오르막길을 걸을 땐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했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들이 미끄러워서 짜증이 났고, 내 인생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라는 자학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수월히 내리막길을 내려올 땐 인생의 내리막길은 참 빠르구나! 하는 허무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이런 구질구질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울창한 나무와 푸르른 잎사귀,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에서 내 마음은 홀로 재난을 겪고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질투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감정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그 마음을 내심 모르는 척하려고도 했다.   국사봉에서 이수봉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었을 때 쏴아악 쏴아악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쏴아악 쏴아악 나뭇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바람소리가 너무 좋아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뭇가지들이 기우뚱 휘청이며 내는 바람소리는 죽비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려왔다. ‘별거 아냐’,...
겸목
2021.09.27 | 조회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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