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용의 서경리뷰 1회] 『서경(書經)』을 소개합니다!

토용
2024-02-29 11:20
340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근거로 삼고 있는 내용을 『서경』에서 가져온다. 『대학』은 수신과 치국의 도를 밝힌 책이자 사서의 하나로 유가의 핵심저작이다. 이 책의 세 강령 중 첫 번째 강령인 ‘명덕을 밝힌다(明明德)’를 설명할 때 인용한 문장도 모두 『서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서뿐만이 아니다. 『서경』은 제자백가의 많은 문헌에도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렇듯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책을 드디어 직접 읽게 되었다.

 

 

군왕의 언행을 기록하다.

 

『서경』은 진나라 통일 이전에는 주로 『서(書)』라 불렸고, 한나라 이후 『상서(尙書)』, 『서경』으로 불렸는데 공통된 글자는 ‘서’이다. ‘서’의 갑골문과 금문의 형태는 붓을 쥐고 있는 손이 어떤 그릇 위에 놓인 모양으로 본래 뜻은 ‘쓰다’이다. 『한서』 「예문지」에는 “옛날 군왕이 살던 시대에는 사관이 있어서 군왕이 움직이면 반드시 기록하였기 때문에 언행을 삼가고 법도를 밝힐 수 있었다. 좌사는 말을 기록하고 우사는 일을 기록하였으니, 일을 기록한 것이 ‘춘추’이고 말을 기록한 것이 ‘상서’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춘추’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고, ‘상서’는 그와 관련된 군주의 훈계나 맹세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사관이 있어서 군왕의 정치활동과 언행 등을 비롯해서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러한 공식문서를 ‘서’라고 했다. 『서』가 하(夏)・은(殷)・주(周) 삼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자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담은 통치서인 이유는 이렇게 기록된 문서에 바탕 했기 때문이다. 또 한나라의 공안국은 “상(尙)은 상(上)과 통하여 상고시대의 서(書)를 상서라 한다.”고 했는데, 상(尙)에는 오래되어 존숭할 만한 책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서주시대 청동기물이었다. 청동기의 크기와 형태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글자이지만 마치 그림인 듯 했다. 『서경』에는 서주 초기의 문형 형식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즉 내가 보았던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과 『서경』의 문장이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경』의 문장이 보통의 한문 문형과 달라서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묵자』 「귀의」편에 ‘주공 단은 아침에 서 100편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서경』보다 훨씬 편수가 많은데 주공이 읽은 것은 아마도 기록된 공식문서였을 것이다. 훗날 공자가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여 새롭게 편찬했다고 하는데 분서갱유 이전까지 사람들은 공자의 편집본을 읽었을까? 공자가 『시』,『서』,『예』,『악』으로 문인들을 교육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서경』은 공자스쿨의 기본 교과서였다. 공자는 어지러운 세상이 다시 요순과 주공의 정치로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제자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복생수경도 伏生授經圖

 

『서경』의 전승과정과 진위논란

 

현존 『서경』은 58편이다. 전설상의 성군인 요와 순의 사적을 기록한 「우서」 5편, 하나라에 대한 기록인 「하서」 4편, 상나라 기록인 「상서」 17편, 서주시대 기록인 「주서」 3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경』은 진시황의 분서로 인해 소실이 되었고, 이후 발견된 책을 둘러싼 전승과정도 매우 복잡하여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진시황 때의 분서와 협서율(서적을 사사로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던 형법), 항우의 함양궁 방화로 대부분의 유가 문헌이 소실되었다. 한나라 혜제 때 협서율이 폐지되고, 문제와 경제 때 유가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복원하게 된다. 민간에 전해져오던 전적들이 당시 한나라에서 썼던 문자인 예서로 써져 조정에 바쳐지는데 이를 금문경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한나라에서는 문헌의 정리와 주석에 힘을 쏟는 훈고학이 발달하게 된다.

 

『서경』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복원이 된다. 한 문제는 진(秦)나라 박사였던 복생이라는 사람이 『서경』에 능통하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런데 복생은 이미 아흔이 넘은 고령이라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에 문제는 옛 전례(典例)를 담당하던 관리 조조를 보내어 배우게 했다. 이렇게 해서 예서체로 기록된 28편의 『서경』이 복원된다. 이것이 바로 『금문상서(今文尙書)』인데, 이후 무제 때 「진서」편을 집어넣어 총 29편이 된다.

 

유가의 전적들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분서를 피해 여기저기 숨겨두었던 책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서경』도 마찬가지였다. 『금문상서』를 만든 이후 공자의 옛 집에서 예전의 책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진나라 이전의 옛 글자인 과두문자로 써졌는데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많은 45편이었고, 이중 28편은 복생의 것과 일치하였다. 이것이 바로 『고문상서(古文尙書)』이다. 공안국은 이 책을 당시 문자인 예서로 번역해서 읽고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에 이르는 동안 『고문상서』가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동진의 매색이 어떤 책을 공안국이 주석을 달아놓은 『고문상서』라고 하면서 조정에 바친다. 이 책은 『공안국전상서(孔安國傳尙書)』라고도 하는데 『금문상서』 29편을 33편으로 늘리고 25편을 새로 넣어서 58편으로 만든 것이다.

 

당나라 공영달은 매색의 책을 저본으로 『상서정의(尙書正義)』를 지었는데, 이것이 『서경』에 대한 최초의 깊이 있는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상서정의』는 당나라의 관찬서인 오경정의(五經正義) 체제에 따라 편찬이 된 것으로 경(經)에 주(注)를 쓰고 다시 주에 소(疏)를 다는 방식이다. 『상서정의』는 공안국 전, 공영달 소로 되어있다. 이후 송나라 때 주희의 제자 채침은 새롭게 주석을 모아 『서경집전(書經集傳)』을 편찬한다.

 

『서경』은 여러 판본 때문에 오랜 시간 위서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주희도 매색이 바친 『고문상서』의 진위를 의심했고, 청대 고증학자들 특히 염약거는 『고문상서소증』을 지어 매색의 『고문상서』가 위서임을 밝혔다. 이것은 청대 고증학의 최대 업적이라 평가받는데 이후 매색의 『고문상서』를 『위고문상서』 즉 가짜 『고문상서』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경』이 복원되는 복잡한 과정과 그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위고문상서』를 저본으로 한 『상서정의』는 국학의 기본서이자 필수적인 경학서였다. 『서경집전』은 오랜 시간 국정교과서였다. 이 두 책은 유가의 핵심 경전으로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채침은 『서경집전』 서문에서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서경집전』에 수록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학자들은 『서경』을 통치의 바이블로 삼아 치국평천하의 실현을 꿈꾸었다. 그들은 통치자의 자질로 도덕적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러한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델을 『서경』에서 찾았다. 『위고문상서』를 읽고 자신들만의 정치철학을 개진해온 수많은 학자들의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서경』 다시 읽기

 

“나는 토용이 『서경』으로 포도밭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어.” 살림회의 중에 너무나 인자한 얼굴표정과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요요샘이 말씀하신다. 그동안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더는 안 되겠다 생각하셨는지 책까지 콕 찍어 주신다. ‘아! 이 일을 어쩌나~’

 

한문강독세미나에서 『서경집전』을 읽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2019년 2월에 처음 읽기 시작하여 2021년 7월에 끝이 났다. 『서경』을 읽는 동안 코로나로 세 달 가량 쉬었었고, 이후 방역상황에 맞춰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읽었다. 다른 책도 어렵긴 마찬가지나 특히 『서경』은 난해하여 읽기에 까다로웠다. 이렇게 혼자서는 감히 읽을 수도 없는 책들을 세미나를 이끌어주신 예심샘과 요요샘 두 선생님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만 싶었던 포도밭 글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두 선생님을 비롯해서 같이 공부한 세미나 동학들 때문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있던 공부가 아니었기에 함께 해 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글쓰기로 갚는 것도 공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강독했던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서경』이다. 『서경』을 읽으면서 공자가 그렇게도 흠모하고 칭송하던 주공의 정치와 그의 입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천년에 걸쳐 유가의 정치를 지배해온 기본 사상은 『서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덕이 있는 군주, 이상적인 군주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러한 군주가 펼치는 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대와 왕조는 달라도 기본 전제는 『서경』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고대의 정치사상이 현재와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 포도밭 글쓰기를 통해서 찾아보고 싶다.

 

『춘추』가 사건의 기록이라면 『서경』은 그 사건 속에서 길어 올린 교훈의 말이다. 그렇다고 훈계와 교훈만 있는 고리타분한 책은 아니다.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글재주가 없어 『서경』의 에피소드들을 얼마나 재미있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용기내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댓글 12
  • 2024-02-29 15:21

    토용님의 '서경' 글쓰기! 궁금해집니다~

  • 2024-02-29 15:39

    서경에 대한 논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해 주셨네요^^
    앞으로 나올 서경의 이야기들도 궁금합니다.~

  • 2024-02-29 15:40

    토용샘이 가장 재밌었다는 서경, 을 직접 읽지는 못 해도 포도밭에서 맛 볼 수 있군요~응원합니다!

  • 2024-02-29 15:48

    저도 원문은 못읽어도 여기서 열씸히 읽겠습니다. 앗싸~!!

  • 2024-02-29 18:43

    토용선생^^ 화이팅!!! 입니다
    서경 제대로 못읽었는데 글이라도 잘 읽어볼께요~~^^

  • 2024-02-29 20:17

    시작이군요~ 앞으로 손꼽으며 기다리게 될듯^^

  • 2024-02-29 22:36

    토용선생, 따따봉~~

  • 2024-03-01 07:53

    벌써 재밌어요^^♥

  • 2024-03-01 08:16

    우와
    1.
    " 내가 보았던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과 『서경』의 문장이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경』의 문장이 보통의 한문 문형과 달라서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잉,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을 박물관에서 다 읽고 다닌다는거죠? 앞으로 여행은 요요님과 가시면 될듯해요. ㅋㅋㅋ
    2.
    저도 "너무나 인자한 얼굴표정과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제가 글 쓰라고 하는거, 고쳐오라고 하는 거, 다 잘 들어줄까유? ㅋㅋㅋㅋ

    샘이 글 써서 넘 좋아요

  • 2024-03-01 08:48

    훈계와 교훈을 넘어 재미로의 전진~~~토용님이 재독해할 서경 읽기, 조아요~~~

  • 2024-03-01 11:31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읽으면 정리가 진짜 많이 될것 같습니다

  • 2024-03-12 10:14

    토용샘이 쓰시는 서경 ᆢ 기대돼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206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34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조회 32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청량리
2024.02.19 | 조회 198
논어 카메오 열전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진달래
2024.02.08 | 조회 30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