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4회] 제 경공, 임금답다는 것

진달래
2023-12-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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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논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을 듣고 제 경공은 몹시 기뻤다.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경공은 공자를 바로 등용하겠다고 말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대우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계씨와 같이 대우할 수는 없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대우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경공이 말했다.

“내가 늙어서 그대를 등용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셨다. (齊景公待孔子曰 若季氏 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미자,3」

 

당시 노나라의 권력자였던 계씨만큼은 안 되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는 대우해 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한 경공, 하지만 그는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다. 경공의 최측근인 안자(晏子)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머쓱해진 경공은 공자를 만나 자기가 늙어서 그렇다며 말을 돌린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 중 제 경공의 모습

 

  1. 패셔니스타, 제 경공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은 『사기』나, 『춘추좌전』보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안자춘추』는 안자(晏嬰)에 대한 기록이지만 안자가 제 경공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경공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경공에게 안자가 간언하는 내용 등을 통해 경공의 됨됨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안자춘추』 앞부분에는 연달아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경공은 술꾼이었던 것 같다. 대부들의 집까지 찾아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아침 조회에 늦는가 하면, 술자리에서 신하들과 너무 허물없이 어울리자, 안자가 경공에게 잔소리(?)를 한다.

경공은 옷차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과한 패션으로 안자에게 또 잔소리를 듣는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에도 모피를 잔뜩 두른 제 경공이 노 정공과 회담을 하러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안자춘추』에 따르면 경공은 호백구(狐白裘)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여우 가죽으로 만든 흰 무스탕으로 이 당시에도 무척 고급 의상이었다. 어느 추운 날, 다들 추위에 떨고 있는데 호백구를 입은 경공이 자긴 하나도 안 춥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안자가 백성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군주가 좋은 옷을 입고 안 춥다고 하는 건 군주가 가질 태도가 아니라고 간언한다. 그럼에도 경공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날에는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옷을 입고, 때로는 옥 장식을 잔뜩 한 금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이번에는 발이 시리다고 했다.

경공의 사치스러움은 비단 옷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궁전의 건물을 새로 짓고, 사냥개나 말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다. 경공이 즉위한지 32년이 되던 해, 혜성이 나타났다. 경공이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아, 이렇게 훌륭하고 당당한 나라를 누가 가지게 될까?” 이 말을 듣고 대신들이 다들 울고 있는데 안자 혼자 웃었다. 경공이 화를 내며 혜성이 나타나 제나라에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인데 왜 웃느냐고 물었다. 안자가 이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나 짓고 연못을 만들면서 세금을 못 걷을까 걱정하니 혜성이 나타난 게 무슨 대수이겠냐며, 백성들의 원망이 이렇게 높으니 뭐가 재앙이겠냐며 핀잔을 줬다.

술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제 경공은 정치에 그닥 관심이 없는 듯하고, 군주가 지녀야 하는 위엄 같은 것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즉위 과정을 보면 이런 태도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자기 의지로 군주가 되었다기보다, 최저에 의해 옹립된 그는 아마도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제나라는 대부들의 권력이 군주를 능가했고, 심지어 군주를 갈아치우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1. 환공을 닮고 싶었던 제 경공

 

그러나 『논어』에 보이는 공자와의 대화를 보면 경공이 정치에 아주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진 않다. 또 제 경공의 재위 기간이 58년이나 되고, 그 사이 별 다른 큰 사건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정치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치를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을 듯하다. 제 경공의 치적은 여러 모로 제 환공과 비견되는데, 제 환공과 관중, 제 경공과 안자는 100여년을 사이에 두고 가장 안정된 국력과 위상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경공에게 공자가 한 대답, 즉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하는 이 말은 당시 군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제 경공에게 속이 시원한 말이었을 수 있다. 혹 공자의 대답을 듣고 경공은 명군(名君)까지는 아니어도 제대로 군주 노릇을 한 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지 않았을까? 아니 제 환공과 같은 패자가 되어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공자의 등용을 흔쾌히 약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자와 같은 유자(儒者)의 정치를 번거롭게 여긴 안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편 여기에는 공자와 같은 외부 세력이 들어오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대부들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져, 나라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는 안자의 걱정도 들어 있었다.

제 경공의 치세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안자였다. 그는 다른 대부들에게 휩쓸리지 않았고, 경공의 칭찬이나, 비난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군주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던 안자는 경공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심지어 그만두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 경공이 가장 잘 한일은 무엇일까? 그건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것이다.

이는 제 환공과 제 경공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중의 말을 잘 들은 환공,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경공.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관중과 안자가 죽은 이후에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였고, 그들 사후에 제나라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1. 임금답다는 것

 

한편 제 경공이 공자의 말을 듣고 좋아했다고 했으나, 정말 그가 공자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임금이 임금답다’는 말은 무엇일까? 『대학』에 왕의 도성에는 백성들이 살고, 울창한 산언덕에는 꾀꼬리가 산다는 말이 있다. 새도 자기가 머물 곳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자기가 있을 곳을 알지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성왕(聖王)으로 알려진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의 처신에 대해 말한다.

 

“다른 사람의 군주가 되어서는 인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는 경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애에 머물렀으며, 나라 사람들과 사귐에는 신에 머무르셨도다”(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대학』 전3장

 

포인트는 문왕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것이 제 경공의 처지에서 보자면 ‘임금다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58년이나 되는 재위 기간을 별 탈 없이 보낸 것은 아닐까. 하지만 ‘00이 00답기’ 위해서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세가 필요하다. 즉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군주답다는 것은 어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군주답기 위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안자가 꾸준히 경공에게 한 간언이 모두 그를 군주답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었다. 신하들과 허물없이 술을 마시지 말고, 백성들은 춥고 배고파하는데 혼자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과시하지 말고, 세금을 많이 걷지 말고, 등등. 그러나 제 경공은 안자가 말을 하면 자기 태도를 반성하고 고치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지는 못했다.

그러한 제 경공에 대하여 『논어』에 공자의 한 줄 평이 남았다.

 

“제나라 경공이 말을 사천 필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이 그의 덕을 칭송하지 않았다.”(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계씨,12」

댓글 3
  • 2023-12-06 09:16

    제경공이 패셔니스타였군요. ㅎㅎㅎ

    그러게요....제 경공은 어떤 임금이었을까요?
    아니, 그 시절에 어떤 종류의 임금이 가능했을까요?

    다시 춘추전국시대 왕노릇이 궁금해집니다.

  • 2023-12-07 15:08

    춘추전국시대에는 군주보다 재상이 더 중요했을 것도 같네요.
    그럼에도 경공이 그리 오랫동안 왕자리를 지킨 것도 참 신기하기도 해요.
    대부들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게 그만큼 중요했었나봐요.

  • 2023-12-08 11:03

    패셔니스타 제경공^^ 재밋게 잘 읽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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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카메오 열전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진달래
2024.02.08 | 조회 284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아 테스형!” 삶의 지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은 합당할까? : <철학 입문>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이유       ‘깨달은 자’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 나훈아는 3년 전 자신의 신곡에서 이렇게 외쳤다.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냐는 질문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한 나훈아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가사로 더욱 이슈가 됐었다. 특히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힘든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던가, <독서가 테크트리>에서 다룰만한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전형으로, 머나먼 인생의 선배이자 ‘진리를 깨달은 자’의 의미의 ‘테스형’으로 쓰였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용법은 흔한 편이다. 나도 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다보면, 드물게 ‘소크라테스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유저를 만나곤 한다. 닉네임을 ‘Socrates’로 짓고, 칭호를 ‘철학가’나 ‘깨달은 자’로 달고, 게임 내내 채팅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만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세상 만사를 깨달은 ‘철학자’의 아이콘이며, 근엄하고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일반적 이미지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철학사에서 다뤄지는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점이 다를까?     나훈아의 <테스형!> 무대. 배경 이미지로 올림푸스 신전과 소크라테스의 그래픽이 나타나는 게 나의 '웃음벨'이었다.     ‘철학의 아버지’, 그리고 ‘슈퍼스타’  우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자연...
  “아 테스형!” 삶의 지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은 합당할까? : <철학 입문>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이유       ‘깨달은 자’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 나훈아는 3년 전 자신의 신곡에서 이렇게 외쳤다.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냐는 질문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한 나훈아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가사로 더욱 이슈가 됐었다. 특히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힘든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던가, <독서가 테크트리>에서 다룰만한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전형으로, 머나먼 인생의 선배이자 ‘진리를 깨달은 자’의 의미의 ‘테스형’으로 쓰였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용법은 흔한 편이다. 나도 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다보면, 드물게 ‘소크라테스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유저를 만나곤 한다. 닉네임을 ‘Socrates’로 짓고, 칭호를 ‘철학가’나 ‘깨달은 자’로 달고, 게임 내내 채팅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만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세상 만사를 깨달은 ‘철학자’의 아이콘이며, 근엄하고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일반적 이미지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철학사에서 다뤄지는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점이 다를까?     나훈아의 <테스형!> 무대. 배경 이미지로 올림푸스 신전과 소크라테스의 그래픽이 나타나는 게 나의 '웃음벨'이었다.     ‘철학의 아버지’, 그리고 ‘슈퍼스타’  우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자연...
우현
2024.02.05 |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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