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 흥? 망? 성? 쇠? (<아젠다> 17호/ 2021년10월 / IN&OUT)

고은
2021-11-25 17:53
330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눴다. ‘피자 툴’은 처음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바탕으로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의 툴이다. 4년 차인 길드다는 지난 활동을 토대로 기대와 방향성을 정리해갔다. 그간 활동을 표로 만들어 ‘가장 좋았던 활동 3개와 그 이유’, ‘가장 좋지 않았던 활동 3개와 그 이유’를 붙이고, 함께 해보고 싶은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도 정리했다. 약 두 달간의 논의 끝에 우리의 ‘피자’를 완성했다. 우리는 스타트업도, 사회적기업도 아니었다.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관계와 역량을 중시하는 팀, 즉 인문학 공부와 활동을 통해 우리가 함께 성장해가는 팀이 길드다였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지난 4년간의 길드다가 말해주었다.

 

 

▲ '피자 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길드다

 

 

 

 

 

2. 이건 마치 비학술적 학술제

 

   ‘피자 툴’의 가장 안쪽, 그러니까 팀의 핵심이 되는 목적purpose에는 ‘지속 가능’이라는 쪽지가 붙었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였다. 나는 개편회의를 하며 길드다를 그만하자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길드다의 4년이 본인에게 의미가 있었다고, 공부가 되었다고, 그래서 이것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재정위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이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생긴 듯했다. 계속하고 싶지만 왜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선 우리의 ‘피자 툴’을 사용해 개편 회의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 길드다의 피자 툴 결과

 

   ‘지속 가능’이라는 목적을 설정되기는 했지만,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공통감각과 비슷한 정도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차이를 확인했다. 길드다 멤버가 얼마나 함께 일상을 보낼 것인가 하는 논의를 할 때도 그랬다.

 

   함께 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야 시너지가 생긴다는 것이 나와 우현의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엔 둘이서만 공간을 채우고 싶지 않고, 또 그럼으로써 길드다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일들을 나눠맡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다. 지원은 일 때문에 더 나오기가 어렵다고 했고, 명식은 길드다와 자신의 삶을 전부 일치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때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였던 건 나와 명식이었다. 나는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을 원했고, 명식은 가장 느슨한 방식의 연결을 원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명식이 길드다와 분리하고 싶어했던 것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작년부터 길드다 활동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들이었다. 이 글을 위해 진행한 개별 멤버 인터뷰에서 명식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명식 : 나는 투-트랙으로 가고 싶다. 지금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들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수입도 있고, 사람들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해보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최근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글들에 흥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인지, 이전에 명식이 일상과 길드다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급격히 명식의 작업에 호의적이게 되었다. (‘어쩌면 명식이 이 일들을 잘 조절하며 건강한 일상 루틴을 만드는 것이 관건 아닐까?’) 그러자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사람이 나와 명식에서 지원과 명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원이 명식의 작업에 반대한 건 아니다. 다만 지원은 자신의 목공 작업과 길드다를 더 깊게 엮고 싶어 했다. 언젠가 지금 하고있는 일을 길드다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길드다에서 하고있는 일을 지금 목공 작업하는 것처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인터뷰에서 지원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원 : 언젠가 새것을 계속 만들고 버리는 방식의 작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경제 관념이 어떤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그것을 바꾸는 것도 내겐 어려운 일이다.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누던 몇 개월 동안 여러 영역에서 의견은 명확하게 갈렸고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각자 특이성이 너무 커서 옆 사람 중 그 누구도 아군이나 적군으로 삼을 수가 없었다. 오직 4개의 상황과 4개의 의견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청년 네트워킹 <비학술적 학술제>와 같았다. 각 개인이 곧 <비학술적 학술제>의 한 단체였다.

 

 

 

 

 

 

3. 바쁘지만 활력은 없는 아이러니

 

   그러나 ‘피자 툴’이 끝나고 이야기는 더 진척되지 않았다. 모두 바쁘다고 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는 올해 연말에도 우리는 비학술적 학술제를 준비하고, 도서관협회의 강의 영상을 제작했다. 게다가 명식은 상을 치렀고 지원은 인테리어 작업이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다시 난감해졌다. 나는 <아젠다>에 실릴 이 글을 쓰며 멈춘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바쁘다”라는 말에서부터 말이다. 바쁨이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길드다를 지칭하는 수식어가 되기 시작했던 건 길드다가 생긴 바로 직후부터였다. 1년 차 워크샵에서 명식은 공식 안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 2019년 길드다의 1년차 워크샵

 

명식 : 이처럼 빡빡한 스케줄은 … 홍보 과정에서 미흡함을 … 상호 피드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 일정이 지연되었다. 스케줄과는 별개로 단일 프로그램 내에서도 한 사람이 맡아야 할 몫이 너무나 많아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기 쉽다. (<2019 길드다 워크샵 자료집> 中)

 

   길드다에서 나는 “바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바쁘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러니까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여 현실을 소외시킴으로써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젠 모두의 입에 “바쁘다”는 말이 붙어버렸다. 바쁘다고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 문탁 선생님들에게 우리 안부를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신다고 했다. “○○이? ○○이 바뻐~” 하기로 했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밀리면 회의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 “너무 바빠서요….” 바쁘다는 말 뒤엔 그렇다니 다음에, 그럼 어쩔 수 없지 같은 말로 대화가 급하게 마무리 된다. 얼핏 바쁜 것과 활력이 없다는 것은 상반되어 보인다. 그러나 바쁘다는 말이 모든 말의 끝마다 붙었던 것과 길드다 활력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터뷰에서 우현은 이렇게 말했다.

 

우현 : 공간과 길드다라는 그룹의 활력이 많이 없다. 나는 이 공간에 매일 나와서 그런지, 그렇게 느낀다. 새로운 사람이 정말 없고 정체되어있는 느낌이다. 올해는 길드다 공간을 스튜디오화 했음에도 활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부터 나의 개인적인 우울과 외로움이 오기도 한다.

 

   모두 자신이 바쁘다고 이야기하며 공간에 잘 나오지 않았고, 회의에선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따지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럼 같이 한번 생각해볼까?”라거나 “내가 도와줄게”라며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느낀다. 어쩌면 “바쁘다”는 말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의 입장을 조금씩 내려놓고 마음을 더 내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혹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보다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하는 데 더 큰 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문탁쌤은 인터뷰에서 최근 우리의 회의와 움직임이 더욱 형식적이게 되고 있다며, 관료주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문탁쌤 : 지금은 담당자만 애를 쓰고 일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자주 나와서 팀워크가 생기고, 싸우더라도 공동으로 일을 도모하며 기뻐하고, 그러면서 활동이 늘어야 한다. 나부터 즐겁게, 마음을 곡진히 써서 바로 내 옆 사람을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4. 우현과 고은과 지원과 명식

 

   논의는 아직 진행중이고, 길드다가 흥-성할지 망-쇠할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길드다 개편과정에 대한 글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앞으로 잘해보자며 의지적으로 파이팅을 외치거나 조심하지 않으면 이지러질 것이라며 어림짐작하여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이 글 마지막에서 우리가 함께 할 때, 무엇을 즐겁게 잘할 수 있는지 써보고 싶다. 인터뷰는 네 사람과 진행했지만, 압도적으로 긴 시간이 걸린 건 우현과의 인터뷰였다. 우현은 거진 10살 차이가 나는 형 둘, 5살 차이가 나는 누나 하나와 함께 일하는 23살이다. 2년 차에 들어와 누구보다 빡세게 일을 배우고 공부를 하고 공간을 지키는 친구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을, 그래서 때로는 자기 검열을 하고 때로는 답답함도 느낄, 덕분에 메타적으로 길드다를 바라보게 되었을 우현의 시선을 빌리기로 했다.

 

나 : 강한 특이성을 가진 우리 네 사람이 함께 할 때, 각자가 어떤 일을 가장 즐겁게 잘하는 것 같은가?

 

 

▲ 명식과 고은

 

   우현이 가장 대답하기 쉬워했던 이는 명식이었다. 그는 명식을 ‘답안지’같다고 말했다. 길드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명식은 특히 우현이 글을 쓸 때 엉킨 생각을 푸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비교적 자기 시간이 확보되기를 바라는 명식이 길드다의 글을 본격적으로 담당한다면 여유시간을 가지면서 즐겁게 일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현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워했던 이는 나다. (바로 앞에 있어서…?) 우현은 내가 자기 관점으로 현상이나 사람을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섬세하게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아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다. 명식과 나는 둘 다 문제 제기를 잘하는데, 명식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과속방지턱 역할을 하고 나는 놓친 부분을 짚어 변화를 촉발시키는 차이가 있댔다.

 

 

▲ 지원과 우현

 

   지원과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우현이 지원을 특출나다 느낄 때는 그만의 방식으로 절충안을 제시할 때다. 문제가 되는 지점에서 타협점을 제시하는 모습이 마치 타협가와 같다는 것이다. 유연하게 일할 때 즐거워하는 지원이 어떻게 하면 더 유의미하게 길드다의 상황을 조율해볼 수 있을까? 우현은 스스로를 ‘괴짜’라고 불렀다.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영감을 찾아내는 우현은 그것을 바로 아이디어로 전환 시키고, 즉흥적으로 실현시키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길드다에서 하라는 것을 하며 지내고 있단다. 자신은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우현이 길드다에서 더 통통 튀는 에너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드다는 이런 우현이, 고은이, 지원이, 명식이 활동하는 단위의 이름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곳은 각자 가지고 있는 맥락과 능력, 성향이 징하게 부딪히는 현장이었다. 그것을 조율해주던 문탁쌤이 결정구조에서 빠지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서로의 특이성을 살리고 맞춰가며 리듬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근 길드다의 팀워크와 활력에 의구심을 품은 것과 별개로, 즐겁게 리듬을 맞추던 때도 많았다. 흩날리던 쌀밥 같았던 4년 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어떤 결과로 향해 가더라도, 설령 길드다가 사라지더라도, 거기까지 함께 가는 과정이 모두에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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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차명식     2018년, 길드다가 ‘청년 인문학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첫 기치를 올렸다.    2020년, 길드다의 목소리로서 ‘아젠다’의 첫 호가 발간됐다.     그리고 길드다 5년 차, 아젠다 3년 차인 올해 길드다와 아젠다는 함께 그 첫 장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에 임한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자면 길드다는 ‘청년’, ‘인문학’,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행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의 토양이었다. 이 표현은 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길드다를 만들 당시의 소개 글을 살펴보면 “길드다는 대학도 회사도 아니지만 우정으로 맺어진 일과 지식의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제도 교육)과는 다른 형태로 함께 공부하는’ 네트워크이자 ‘회사와는 다른 형태로 함께 일하며 자립을 추구하는’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즉 학문의 탐구와 물질적 삶의 조건들(물론 후자는 경제적 측면을 포함한다)을 한데 추구하되 이미 널리 알려지고 확립되어 있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겠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길드다는 모든 면에서 실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으로 돈을 어떻게 벌 것인지, 번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모자라는 수입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 업무를 어떻게 분담하고 또 협업할 것인지……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보통 다 그렇게 한다’가 근거가 될 수 없는 시도들이었기에 길드다의 활동은 항상 예상치 못했던 기쁨의 순간들과 그보다 좀 더 많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을 맞닥뜨렸다. 마지막으로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활동을 되새기면서 길드다-아젠다 1.0을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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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2.03.25 | 조회 225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재빵        <길드다>가 출범한 이후로 텍스트랩과 공산품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일요일마다 길드다에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 재영아 일요일에 뭐 하니 시간 되면 잠깐 볼까? - 아 나 일요일마다 하는 세미나가 있어 - 아 맞다 너 ‘문탁’ 가지      분명히 내가 ‘길드다’라는 단어를 몇 년간 사용해왔음에도 여전히 친구들의 인식 속에서는 ‘길드다’가 ‘문탁’의 대체 단어가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탁’이라는 단어가 시간상 더 오랜 기간 입력된 단어였고, 공간적인 의미로도 ‘문탁’이라는 단어가 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혹 친구들이 수지구 수풍로 131번길 5*에 찾아올 일이 있는 경우에 나는 매번 지도 어플에서 ‘문탁네트워크’를 검색하고 오라고 설명해 주었다(지금 알았는데 ‘길드다’도 어플에 검색하니 나온다!). 그리고 소신 발언을 하자면 ‘문탁’이라는 단어가 ‘길드다’라는 단어보다는 부르기에도 외우기에도 편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리매김에 실패한 가장 큰 까닭은 내가 ‘길드다’라는 공간 혹은 네트워크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지금 다시 설명해 보라고 해도 나는 온전히 설명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청년’, ‘생존’, ‘다름’, ‘같이’, ‘회사’, ‘공동체’라는 단어들을 섞어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던 것 같다. 실제로 특정 상황 속에서 길드다 멤버들이 길드다에 대해서 소개할 때 그들도 ‘음... 어떻게 얘기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를 앞에 깔아두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걸 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렇게 나는 <길드다>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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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2.03.25 | 조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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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길드다)      보다 큰 선을 위한 투표     돌이켜보면 내게 선거권이 생긴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선거에서 크게 고민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 선거마다 내게는 당연히 찍어야 할 당과 후보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최소한 당연히 찍지 말아야 할 당과 후보들이 있었다. 그것은 딱히 후보의 공약이나 약력을 샅샅이 훑지 않더라도, 선거판마다 쏟아지기 마련인 뉴스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더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선거란 인물이나 당에 대한지지 이전에 내가 지지하는 가치 - 선善을 증명하고 확인받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훌륭한 선, 이 사회를 위한 공동의 선이 무엇인지는 내게 항상 명확했기 때문이며, 자연히 어디에 표를 던지는 것이 ‘옳은’ 일인가도 항상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나뿐이 아니리라 확신한다. 역사를 보아도 보다 큰 선을 향한 지향은 각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여러 사람들의 협력과 공동행동을 이끌어내며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이는 몇몇 사가들이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충성으로 여겼던 일본의 ‘무사도’와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더 큰 선으로 군주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충성이라 여겼던 조선의 ‘선비정신’의 차이를 논하면서 언제나 더 큰 선을 향해 ‘일치단결’했던 한국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일제강점기에 그 더 큰 선이란 일본제국이란 열강에 대한 투쟁과 민족의 독립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분단기에는 경제 발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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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2.02.24 | 조회 399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대선이 이슈다. 이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대선에 관심이 없고, 정치나 시사 이슈들에 어둡다. 그런 내가 대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다니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런 김에 내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내 주변의 2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 삶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정치 자체에 비관적이라기보다는 정치와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낀다. 파란색 정권일 때나 빨간색 정권일 때나 내 삶에서 체감한 차이는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정책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그걸 정권의 영향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나는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오히려 법을 이용하면서 군대도 면제받았으니(중졸 학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장기 대기자로 면제처리를 받았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려나? 아니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는 정책을 펼쳐도 관심 없는 호구?      반면 내가 처한 환경은 좀 특이하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문탁 주변 사람들은 왼쪽 성향이 강한데, 내가 자주 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향 친구들은 완전 오른쪽이다. 진보, 보수 같은 키워드만으로 두 집단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봐온 왼쪽은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념적으로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오른쪽은 모두가 잘사는 삶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대선이 이슈다. 이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대선에 관심이 없고, 정치나 시사 이슈들에 어둡다. 그런 내가 대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다니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런 김에 내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내 주변의 2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 삶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정치 자체에 비관적이라기보다는 정치와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낀다. 파란색 정권일 때나 빨간색 정권일 때나 내 삶에서 체감한 차이는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정책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그걸 정권의 영향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나는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오히려 법을 이용하면서 군대도 면제받았으니(중졸 학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장기 대기자로 면제처리를 받았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려나? 아니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는 정책을 펼쳐도 관심 없는 호구?      반면 내가 처한 환경은 좀 특이하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문탁 주변 사람들은 왼쪽 성향이 강한데, 내가 자주 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향 친구들은 완전 오른쪽이다. 진보, 보수 같은 키워드만으로 두 집단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봐온 왼쪽은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념적으로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오른쪽은 모두가 잘사는 삶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송우현(코코팰리 혹은 김왈리)
2022.01.23 | 조회 401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고은
2021.11.25 |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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