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예술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동은
2023.08.18 | 조회 561
한문이예술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동은
2023.07.04 | 조회 362
한문이예술
#2.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 : 한자의 색色에서 몸짓祭까지     동은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   <한문이 예술>은 한문으로 예술藝術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미술 활동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정작 수업을 여는 나는 미술, 예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한자도 주입식으로 암기해왔던 내가 어쩌다가 초등한자-미술수업이라는 퓨전수업을 만들어 냈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한자를 보며 막연히 갖고 있던 상상을 시각화 한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천자문>의 원문을 읽다가 비슷한 시기에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천자 중에 한자>를 기획하게 되었고 모두 합쳐 7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은 그야말로 ‘재미’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한자를 하고 싶은 대로 옮겨서 그걸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들을 청聽은 한자를 악보기호로 대치하고 인연 연緣은 부수로 사용된 실 사糸를 살려 실로 마구 엮어 형태를 만들고, 즐거울 락樂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춤추듯이 썼다.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긍정적인 반응을 수업까지 옮겨보려고 했지만, <한문이 예술> 수업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첫 수업시연날, 자신감에 차서 친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지만 유치하고(헉!)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강의 내용과 활동이 연계되는 과정에 설득력이 부족했고 맥락을 찾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2.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문제에 부닥치니 '미술수업'이라고 생각했던 수업의 컨셉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술수업도, 한자수업도 아닌...
#2.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 : 한자의 색色에서 몸짓祭까지     동은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   <한문이 예술>은 한문으로 예술藝術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미술 활동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정작 수업을 여는 나는 미술, 예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한자도 주입식으로 암기해왔던 내가 어쩌다가 초등한자-미술수업이라는 퓨전수업을 만들어 냈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한자를 보며 막연히 갖고 있던 상상을 시각화 한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천자문>의 원문을 읽다가 비슷한 시기에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천자 중에 한자>를 기획하게 되었고 모두 합쳐 7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은 그야말로 ‘재미’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한자를 하고 싶은 대로 옮겨서 그걸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들을 청聽은 한자를 악보기호로 대치하고 인연 연緣은 부수로 사용된 실 사糸를 살려 실로 마구 엮어 형태를 만들고, 즐거울 락樂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춤추듯이 썼다.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긍정적인 반응을 수업까지 옮겨보려고 했지만, <한문이 예술> 수업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첫 수업시연날, 자신감에 차서 친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지만 유치하고(헉!)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강의 내용과 활동이 연계되는 과정에 설득력이 부족했고 맥락을 찾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2.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문제에 부닥치니 '미술수업'이라고 생각했던 수업의 컨셉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술수업도, 한자수업도 아닌...
동은
2023.05.24 | 조회 312
한문이예술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동은
2023.04.21 | 조회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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