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 5회 포세이돈 신전에서 맹자를 낭송하다

기린
2021-01-25 11:52
456

 

 

  1.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열전에서 만나는 그 많은 인물들의 삶이 공자님의 말씀처럼 불편하겠어? 확실히 그렇지는 않았다. 자신을 알아주었던 주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객의 숭고미나 찌질과 위엄을 남나드는 유방의 인간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열전의 인물들로 글쓰기를 했는데 쓸 문장이 없었다. 멋있기는 한데 왜 멋있는지 쓸 수 있는 단어가 너무 빈약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양고전으로 낭송시리즈를 발간하는 팀에 『사기열전』을 풀어쓰는 저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칠십 편의 열전 중에서 낭송하기에 좋은 내용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잘 전달하면서도 말로 하는 맛을 살리는 문장으로 다듬느라 아는 단어를 총동원했다. 원문에 입각해서 단어를 고르다보니 새롭게 써야 하는 글쓰기보다는 좀 수월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스토리들을 축약하다보니 맥락을 놓치기 일쑤였다. 실제로 낭송집이 발간되고 내용이 잘 안 읽힌다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낭송집이 시리즈로 속속 출간되면서 낭송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낭송 페스티벌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하던 세미나에서는 『낭송장자』의 문장을 암송하기로 했다. 일단 문장을 외우기부터 시작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문장을 급하게 읽어치우는 습이 또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늦추고 꼭꼭 씹어가며 외우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다 외웠는데 정작 낭송을 하는 무대에 나서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났다.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낭송하던 흐름이 내 차례에 이르러 뚝 끊기고 말았다.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마저도 다 망친 것 같아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3. 미친 암송단을 만들다

 

  낭송 시리즈를 펴내는데 참여하기 전에도 공동체에서 낭송을 하기는 했다. 어린이 서당에서 『논어』 원문을 암송하는 공부법을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그날 배운 원문을 암송하는 미션을 수행했고, 연말 인문학축제에서 원문 낭송공연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외우느냐는 거부감이 없었다. 원문 한자의 음을 배운 다음, 음대로 소리 내어 반복해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입에 붙으면서 저절로 외워졌다. 조를 짜서 외워보라는 미션에서 원문에 리듬까지 붙여가며 읽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놀이 같기도 했다. 그렇게 공간에 원문 읽는 소리가 가득차면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몸에도 그 리듬이 전해졌다. 동시에 새삼 원문의 뜻을 곱씹게 되곤 했다.

 

  결국 아이들에게만 암송을 시킬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암송을 해봐야겠다고 발심을 하게 되었다. 함께 암송할 친구들도 모았다. 매일 일정 분량의 원문을 암송하고 녹음한 파일을 카톡으로 공유하는 방식이었고 ‘미친(美親)암송단’ 이라고 이름도 정했다. 매일 암송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원문과 좀 더 친숙해지자는 의미였다. 나는 주로 저녁에 잠자기 전에 암송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저녁 약속이라도 잡히면 암송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하루는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외우고 도착해서 역 화장실에서 녹음을 한 적도 있다. 다른 친구들도 여러 변수에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암송을 하고 녹음파일을 올렸다.

 

 

 『논어』를 암송하던 때에는 문장을 암송하면서 자신에게 꽂힌 내용을 글로 써와서 서로 피드백을 했다. 분명 같은 문장을 읽었음에도 새겨지는 내용은 다 달랐다. 그래서 원문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읽히는가에 집중했다는 등의 의견으로 나뉘기도 했다.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썰렁해진 채 피드백을 끝내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쓴 글은 공동체의 홈페이지에 ‘왈가왈부 논어’로 연재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왈가왈부하는 댓글을 기대했지만, 댓글은 고사하고 조회수까지 나날이 줄어들자 우리는 많이 의기소침해졌었다. 그래도 끝까지 『논어』 전문을 암송한 후, 우리는 한 권 전체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만나서 스무 편의 원문을 다 읽고 나니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 목은 아프고 배도 고팠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에 온 몸이 뻐근해오던 기분 좋은 감각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4.암송, 몸에 새기는 공부

 

암송하려면 일단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매일 매일 하는 암송도 거를 수 없다. 미친 암송단에서 『맹자』를 암송하던 해에 친구들과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그리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이라 들뜨기도 했지만 낯설어 긴장도 되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긴장도 풀 겸 묵었던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그리고 원문 암송도 거르지 않았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 짬을 내어 원문을 암송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징하다고 놀렸다.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에 올랐다.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니온곶 석양이 장관이라는 정보를 접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신전 주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암송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며 가방에서 원문을 꺼내 암송을 시작했다. 포세이돈 신전 기둥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에 내가 원문을 읽는 소리도 실려 가지 않았을까. 그 때 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그 때 그리스 신전 앞에 앉아 『맹자』를 암송하던 나의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암송을 하려면 소리를 내서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눈으로만 읽어서는 외워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서 읽다보면 생각에도 공명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재고되는 질문이 생기고 관점이 이동하기도 한다. 내가 읽는 소리가 귀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나의 앎을 재구성하는 생생한 감각, 그 생생함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런 기쁨을 경험하고 나면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일이 공부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반복은 몸 어디엔가 새겨진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때 그 문장들이 술술 흘러나와 곤란에 처한 상황을 전환시키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인문약방에서 기획한 걷기 캠프 루트를 사전 답사하기 위해서 운탄고도를 걸었다. 길은 평탄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신호가 왔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릎에 점점 통증이 느껴진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날더러 『논어』 원문이라도 낭송해보라고 부추겼다.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 뭐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논어』 첫 편인 ‘학이편’을 낭송했다. 우선 원문을 낭송해주고 연이어 차근차근 뜻을 설명해주었다. 친구들은 나의 낭송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발가락이 쓰라린 감각이 안 느껴진다고 신기해했다. 읽고 또 읽어 입에 붙고 몸에 새겨진 문장으로, 예고 없이 닥친 곤란을 감당할 수도 있었던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삶의 어떤 순간에 빛을 발해 우리가 가는 길을 밝혀주는 공부, 암송은 그 빛을 몸에 새기는 공부다.

 

댓글 7
  • 2021-01-25 14:21

    아~~ 이 글을 읽는데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글의 첫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짧은 기간이 아니었는데, 한 글(혹시 한 페이지 ? ㅋ) 로 정리가 되어버렸네요...
    단락 사이마다 붙여진 말풍선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ㅋㅋ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동안(물론 ~ing 이지만) 의 동양고전 원문 읽기~~~
    논어를 같이 시작한 동학으로 저에게는 인생템이 될 정도의 굵은 공부였습니다.(아~~ 과거형으로 쓰고 있네요.ㅜㅜ) 나중에 암송을 같이 하진 못하였지만...
    사실 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엔 (우리에게 왜곡되어 표면만 전달된, only 효의 이미지로 인해) 논어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요.
    그러나, 동양고전은 일단 원문을 보면 그게 왜 성인의 말씀인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찌어찌 마음열고 읽게 되는 해설본은 너무 쉬운 듯하지만 남는 게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동양고전은 암송이 되었건, 그냥 읽기가 되었건 어떻게 접하건 간에 제 삶에도 깊숙이 파고 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이건 말로 설명이 불가해요 !!!

  • 2021-01-25 14:43

    내논어는 내몸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갈피갈피 뱃살사이에 꼭 박혀 나올 생각을 안하니 ,여전히 나는 난처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난처하고 막막하기만 할뿐 ...
    그래도 언젠가 방구처럼 트림처럼 재채기처럼 나타났음 좋겠다. 그래도 기린님 덕분에 미친 복습단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 2021-01-25 18:43

    아~ 기린샘이 이렇게 공부하셨군요~!!ㅎㅎㅎㅎㅎ 그리스 신전 앞에서 맹자라...?!

  • 2021-01-26 08:25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아침부터 대굴대굴..때굴때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1-26 09:52

    기린을 따라서 미친 암송단, 사서덕후 한게 참 고맙소...^^
    새로운 인문약방에서 펼쳐질 기린의 고전인생을 계~~~속 응원해요!!!

  • 2021-01-26 12:45

    기린이 공부의 인연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덕을 많이 쌓았다는 걸 댓글보고 알았습니다.
    쌓는 줄도 모르고 쌓는 공덕이야말로 최고의 공덕 아니겠습니까?ㅎㅎㅎ

  • 2021-01-28 23:02

    발가락 물집 이야기 들었었는데 글로 읽으니 더욱 감동이구먼요~~

    그거 알아요? 기린쌤의 '무대뽀' 예전엔 좀 무서웠는데 요새는 그게 매력적인거...ㅋㅋ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기린
2021.04.19 | 조회 568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나의 ‘돈’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봄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어머니는 여행가서 쓸 용돈으로 만 원을 주셨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천 원 정도 생각했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념품 같은 거 선물이랍시고 사오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속으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꼭 사와야지 생각했다. 또래들과 가는 첫 여행,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용돈도 두둑 하겠다 맛있는 군것질거리들에 자꾸만 손이 갔다. 야금야금 쓰다 보니 이틀도 되기 전에 바닥이 보였다. 받을 때 이렇게 많이 라는 놀라움이 애걔 이렇게 쓸게 없다니 로 바뀌었다. 기념품 사오겠다고 큰소리 안 쳤던 게 다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써보니 순식간이더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셨다. 그 때 알았다. 돈 쓰기 참 쉬웠다.       스무 살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전봇대에 붙은 판촉직을 구한다는 문어발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서 취직을 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던, 지금처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2년 쯤 일했는데, 매달 월급을 받는 재미 빼면 낙이 없었다. 회사에 판촉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경리 언니가 퇴직금을 정산해주면서 이제 뭘 먹고 살거냐 한 걱정을 했다. 그 후 가족들에게 빌붙어서 그럭저럭 살았다. 대부분 쪼들렸고 직장인일 때 만들었던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결제를 하면서 이십대를 보냈다. 삼십대 이후 학원 강사로 일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만족도가 낮은 일이었다. 수업 시간만큼 월급을...
나의 ‘돈’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봄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어머니는 여행가서 쓸 용돈으로 만 원을 주셨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천 원 정도 생각했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념품 같은 거 선물이랍시고 사오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속으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꼭 사와야지 생각했다. 또래들과 가는 첫 여행,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용돈도 두둑 하겠다 맛있는 군것질거리들에 자꾸만 손이 갔다. 야금야금 쓰다 보니 이틀도 되기 전에 바닥이 보였다. 받을 때 이렇게 많이 라는 놀라움이 애걔 이렇게 쓸게 없다니 로 바뀌었다. 기념품 사오겠다고 큰소리 안 쳤던 게 다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써보니 순식간이더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셨다. 그 때 알았다. 돈 쓰기 참 쉬웠다.       스무 살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전봇대에 붙은 판촉직을 구한다는 문어발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서 취직을 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던, 지금처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2년 쯤 일했는데, 매달 월급을 받는 재미 빼면 낙이 없었다. 회사에 판촉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경리 언니가 퇴직금을 정산해주면서 이제 뭘 먹고 살거냐 한 걱정을 했다. 그 후 가족들에게 빌붙어서 그럭저럭 살았다. 대부분 쪼들렸고 직장인일 때 만들었던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결제를 하면서 이십대를 보냈다. 삼십대 이후 학원 강사로 일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만족도가 낮은 일이었다. 수업 시간만큼 월급을...
기린
2021.03.22 | 조회 745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날씬함이 정상이라고?    신문에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칼럼의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제목 참 절묘하다싶었다. 뚱뚱한 몸의 삶을 정말 리얼하게 대변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뚱뚱한 몸으로 습관처럼 저렇게 다짐하고 매번 어기고 마는 익숙함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굶지 않는’ 다이어트라는 제목을 보면 일단 클릭해본다. 굶고 자야한다는 다짐과 굶고 싶지 않은 욕망이 충돌하는 일상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딸은 둘만 되어도 천대받는다고 생각했다는 어머니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고 만족하셨다고 한다. 단 하나뿐인 딸을 곱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데 점점 뚱뚱해지는 걸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간다는데 옷집에서 맞는 사이즈가 없는 곤란이 계속되자, 예쁘고 자시고 일단 큰 사이즈가 눈에 띄면 사게 되었다. 그래서 식욕이 왕성한 나를 보면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일삼아 하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초리를 피해 급하게 많이 먹어치우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먹는데도 나의 위장은 거뜬하게 소화해 주었고 그만큼 정직하게 뚱뚱해졌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만 해도 ‘비만’이 그리 흔치 않던 시대였다. 그래서 대놓고 놀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뚱뚱한 여자라는 외모는 비호감이라는 눈치는 챌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한’ 걸로 인정받기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 바람대로 잘 되지 않았고 식욕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뚱뚱한 몸은 정상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나에게 공부를 잘해서 똑똑해지는...
날씬함이 정상이라고?    신문에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라는 칼럼의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제목 참 절묘하다싶었다. 뚱뚱한 몸의 삶을 정말 리얼하게 대변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뚱뚱한 몸으로 습관처럼 저렇게 다짐하고 매번 어기고 마는 익숙함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굶지 않는’ 다이어트라는 제목을 보면 일단 클릭해본다. 굶고 자야한다는 다짐과 굶고 싶지 않은 욕망이 충돌하는 일상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딸은 둘만 되어도 천대받는다고 생각했다는 어머니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고 만족하셨다고 한다. 단 하나뿐인 딸을 곱게 키울 자신이 있었는데 점점 뚱뚱해지는 걸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간다는데 옷집에서 맞는 사이즈가 없는 곤란이 계속되자, 예쁘고 자시고 일단 큰 사이즈가 눈에 띄면 사게 되었다. 그래서 식욕이 왕성한 나를 보면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일삼아 하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초리를 피해 급하게 많이 먹어치우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먹는데도 나의 위장은 거뜬하게 소화해 주었고 그만큼 정직하게 뚱뚱해졌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만 해도 ‘비만’이 그리 흔치 않던 시대였다. 그래서 대놓고 놀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뚱뚱한 여자라는 외모는 비호감이라는 눈치는 챌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한’ 걸로 인정받기로 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 바람대로 잘 되지 않았고 식욕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상식’이 통용되고 뚱뚱한 몸은 정상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날씬한 몸이 정상이라고? 나에게 공부를 잘해서 똑똑해지는...
기린
2021.02.22 | 조회 48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기린
2021.01.25 | 조회 45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    문탁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문탁샘이 청소년인 악어떼들을 데리고 직업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전 시간이 비는 틈에 악어떼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묻는데 녀석들이 도통 대답을 안 했다. 답답해진 나의 음성이 커졌던지 지나가던 문탁샘은 “애들이랑 얘기 좀 해 보랬더니 싸우고 있냐?”고 했다. 싸우기까지야 싶었지만 여튼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어린이 서당에서 수업을 맡은 후, 문탁의 청소년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 운영하는 ‘주권없는 학교’(이하 주학) 활동까지 겸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에 있다 보면 적성운운 할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학은 문탁에서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유익한 배움의 장을 함께 만드는 실험”을 하려는 활동 단위였다. 당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친구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학교에서 연령별로 나누는 제도를 넘고, 청소년은 공부 어른은 일이라는 분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함께 경험하는 활동을 비전으로 삼았다. 동시에 흔히 좋은 교육이라는 표상에 맞서 “사심 가득하고 당파성이 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공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주학 프로그램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학생기록부에 쓸 수 있는 이력을 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신청했다. 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데 그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주중에 그들이 모여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도 만들고 자기 삶의...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    문탁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문탁샘이 청소년인 악어떼들을 데리고 직업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전 시간이 비는 틈에 악어떼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묻는데 녀석들이 도통 대답을 안 했다. 답답해진 나의 음성이 커졌던지 지나가던 문탁샘은 “애들이랑 얘기 좀 해 보랬더니 싸우고 있냐?”고 했다. 싸우기까지야 싶었지만 여튼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어린이 서당에서 수업을 맡은 후, 문탁의 청소년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 운영하는 ‘주권없는 학교’(이하 주학) 활동까지 겸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에 있다 보면 적성운운 할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학은 문탁에서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유익한 배움의 장을 함께 만드는 실험”을 하려는 활동 단위였다. 당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친구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학교에서 연령별로 나누는 제도를 넘고, 청소년은 공부 어른은 일이라는 분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함께 경험하는 활동을 비전으로 삼았다. 동시에 흔히 좋은 교육이라는 표상에 맞서 “사심 가득하고 당파성이 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공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주학 프로그램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학생기록부에 쓸 수 있는 이력을 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신청했다. 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데 그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주중에 그들이 모여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도 만들고 자기 삶의...
기린
2020.10.31 | 조회 57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