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의 나이듦 리뷰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장자>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장자>           1.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문탁
2022.10.04 | 조회 1000
문탁의 나이듦 리뷰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나이듦,  상실에 맞서는 글쓰기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1. 나는, 올해, 늙어버렸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책날개를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반문화, 페미니즘 열풍에 온몸으로 화답”했다고 하니 68세대임이 틀림없고, MIT에서 가르치다가 2010년에 퇴직했으니 어림잡아 7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물론, 미국엔 고용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정년제도가 없다^^) 그녀가 쓴, “늙음에 관한 시적이고 우아한 결코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그 여름, 그녀는 더 숨이 찼고 더 빨리 헉헉거렸다.”라는 문장이, 그다음 페이지에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점점 더 자주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날이면 날마다, 온 사방의 젊은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 여름에 그녀는 노인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 문장은 틀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노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이가 의식될 때 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나이는 특정한 배치나 계기를 통해 주관적으로 실감되지 않는 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임과 동시에 특정 사건을 경유하여 형성된 주관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의 저자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어느 날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문탁
2022.08.20 | 조회 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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