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목의 문학처방전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너는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를 처방합니다       잠 못 드는 밤, 우울함과 초조함 하루가 저물고 건물의 유리창으로 사무실의 불빛들이 보일 때,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불 켜진 아파트 단지를 바라볼 때, 무수한 칸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마치 수족관의 열대어들을 바라보듯이. 거기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익숙한 익명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다. 거기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거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시에 자라고, 으스대고, 나이 들고, 추레해지는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까?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다를까?   배수아의 중편소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는 “어느 하루가 다른 하루들과 다르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수많은 하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또 왜일까?”(『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414쪽)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배수아의 소설답게 실험적이고, 철학적이고, 우화적이고, 시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꿸 수 없는 소설이다.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대학원생y를 만나고 나서, 나는 y가 좋아한다는 배수아의 소설을 세 권 읽었다. 그 가운데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출간된 책들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도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물음표를 남발하다,...
겸목
2021.08.13 | 조회 572
겸목의 문학처방전
‘세로토닌’과 함께 힙합을 -장 트러블에 백민석의 소설 「멍크의 음악」(『버스킹!』, 창비, 2019년)을 처방합니다       이건 뭐지? 장은 건강하지 않은데, 멘탈은 건강하다 우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장 트러블 분야의 ’대표선수’이다. 장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은 장기이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신경세포가 분포되어 있고, 이 장신경세포들은 뇌의 신경세포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 돼 체하거나 복통으로 고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는 당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고지방 식품, 밀가루 등이 있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이다. 장은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음식들로 장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이십대 초반의 래퍼 우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래퍼로서의 생활에 학교생활이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닌 우현의 라이프스타일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불규칙적이다. 주5일 출근하거나 등교해야 해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상의 강제력이 느슨한 편이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집을 나와 자취를 하고 있는 우현의 식생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춘천 시내에 있는 모든 건물의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언제든 신호가 오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세로토닌’과 함께 힙합을 -장 트러블에 백민석의 소설 「멍크의 음악」(『버스킹!』, 창비, 2019년)을 처방합니다       이건 뭐지? 장은 건강하지 않은데, 멘탈은 건강하다 우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장 트러블 분야의 ’대표선수’이다. 장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은 장기이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세로토닌의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신경세포가 분포되어 있고, 이 장신경세포들은 뇌의 신경세포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더욱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잘 안 돼 체하거나 복통으로 고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는 당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고지방 식품, 밀가루 등이 있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이다. 장은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는 음식들로 장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이십대 초반의 래퍼 우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래퍼로서의 생활에 학교생활이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닌 우현의 라이프스타일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불규칙적이다. 주5일 출근하거나 등교해야 해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일상의 강제력이 느슨한 편이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집을 나와 자취를 하고 있는 우현의 식생활도 균형 있는 식사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고,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춘천 시내에 있는 모든 건물의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언제든 신호가 오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겸목
2021.07.05 | 조회 428
겸목의 문학처방전
조동진의 노래를 듣는 시간 -바람의 유방암에 하명희의 단편소설 「종달리」를 처방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도는 행성이었지만 내가 바람과 알고 지낸 기간은 십여 년이 넘었지만, 바람은 나의 ‘절친’이 아니다.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다른 주기로 도는 행성들처럼 문탁네트워크라는 같은 공간을 다르게 오고 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초록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나타났을 때의 산뜻함, 10박11일 동안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 깔끔한 글씨체로 써내려간 이문서당 노트를 보았을 때의 정갈함, 주방지기를 맡았을 때의 상냥함 등. 대체로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내 생각에 바람은 알고 지내면 좋은 이웃이지만,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는 되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다.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다. 정말 나와는 다른 주기로 돌고 있는 행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부대낄 일은 없는 무해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바람이 남편을 따라 필리핀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기 직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유방암소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람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5~6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바람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바람의 ‘환자’생활이 궁금해졌다. 바람은 수술과 그 이후의 시간을...
조동진의 노래를 듣는 시간 -바람의 유방암에 하명희의 단편소설 「종달리」를 처방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도는 행성이었지만 내가 바람과 알고 지낸 기간은 십여 년이 넘었지만, 바람은 나의 ‘절친’이 아니다. 함께 세미나를 하거나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다른 주기로 도는 행성들처럼 문탁네트워크라는 같은 공간을 다르게 오고 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람의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초록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나타났을 때의 산뜻함, 10박11일 동안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 깔끔한 글씨체로 써내려간 이문서당 노트를 보았을 때의 정갈함, 주방지기를 맡았을 때의 상냥함 등. 대체로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내 생각에 바람은 알고 지내면 좋은 이웃이지만,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는 되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다.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다. 정말 나와는 다른 주기로 돌고 있는 행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부대낄 일은 없는 무해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바람이 남편을 따라 필리핀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기 직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유방암소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바람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5~6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바람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바람의 ‘환자’생활이 궁금해졌다. 바람은 수술과 그 이후의 시간을...
겸목
2021.05.02 | 조회 612
겸목의 문학처방전
마음의 롤러코스터 -권여선의 단편소설 「재」(『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년)를 처방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절편과 식혜, 누룽지와 순두부, 데친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연한 초고추장 또는 발사믹소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학교 개강을 앞두고 바뀐 정보처리시스템이나 학사일정을 확인하면서도, 틈만 나면 ‘뭐 먹지?’라는 생각에 꽂힌다.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언제 먹어도 좋은 도토리묵과 두유가 남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 냉장고 한켠에는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무생채가 한 통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저염 간장과 저염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도 병원 진료 후 받은 영수증과 환자교육용책자가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이번 겨울 나는 만성신부전 3단계 진단을 받았고, 포털사이트에 있는 ‘신장병환우회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 올라오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이런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신장병 환자가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가장 유용하다. 이런 카페에는 광고도 환자가 되면 알아야 하는 환자 전용 식사 대용품이나 전문병원에 관한 것들이 주로 올라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국수집 보너스 푸른 용지였다. 열 개의 칸 중 마지막 칸만 비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빈칸은 그가 들어가 채워야 할 병실의 축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홉 칸에 찍힌 붉은 무늬 스탬프는 작은 병실에서 저마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창을 향해 기어가는 벌레 존재의 궤적처럼도 보였다. 아무 기댈...
마음의 롤러코스터 -권여선의 단편소설 「재」(『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년)를 처방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절편과 식혜, 누룽지와 순두부, 데친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연한 초고추장 또는 발사믹소스……’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먹는 생각뿐이다. 학교 개강을 앞두고 바뀐 정보처리시스템이나 학사일정을 확인하면서도, 틈만 나면 ‘뭐 먹지?’라는 생각에 꽂힌다.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언제 먹어도 좋은 도토리묵과 두유가 남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 냉장고 한켠에는 소금 간을 하지 않은 무생채가 한 통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저염 간장과 저염 소스가 구비되어 있다. 책상 위에도 병원 진료 후 받은 영수증과 환자교육용책자가 아무렇게나 쌓여가고 있다. 이번 겨울 나는 만성신부전 3단계 진단을 받았고, 포털사이트에 있는 ‘신장병환우회카페’에 가입했다. 카페에 올라오는 내용 중에서도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이런 식재료는 어떻게 요리하면 신장병 환자가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가장 유용하다. 이런 카페에는 광고도 환자가 되면 알아야 하는 환자 전용 식사 대용품이나 전문병원에 관한 것들이 주로 올라온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데 무언가 툭 떨어졌다. 국수집 보너스 푸른 용지였다. 열 개의 칸 중 마지막 칸만 비어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빈칸은 그가 들어가 채워야 할 병실의 축도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홉 칸에 찍힌 붉은 무늬 스탬프는 작은 병실에서 저마다 몸을 꿈틀거리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창을 향해 기어가는 벌레 존재의 궤적처럼도 보였다. 아무 기댈...
겸목
2021.03.07 | 조회 850
겸목의 문학처방전
감자전의 ‘초년의 맛’ -감자전님의 거북목에 김세희의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년)을 처방합니다     ‘거북목’ 사회 초년생 올해 작은딸은 ‘N포세대’, ‘자본이 낳은 세대’에 이어 ‘코로나세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딸은 예술전문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작품 상영회도 취소되었다. 상영회때 전시 부스에서 나눠줄 생각으로 만들었던 딸의 명함은 인쇄소에서 온 박스 그대로 집에 보관되어 있다. 딸의 명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필명 ‘감자전’의 느낌이 잘 드러난 명함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에 딸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그 조막만한 것을 만들려고 딸이 잠을 안자고 날밤을 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없다.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박하다. ‘오타쿠’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려고 한다니 지나친 욕심이라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이 명함을 뿌릴 날이 올까?   마지막 학기에 딸은 졸업작품 마무리와 함께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원서를 넣을 데가 있을까 싶었는데, 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웹툰과 게임시장은 언택트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취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를 읽으며 웹툰을 편집하는 일이라면 딸이 잘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넷, 딸의 일생에서 만화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해온 일이다. 그 긴 시간 그 애가 읽어댔던 만화책의 양과 SNS 친구들과 ‘덕질’하며...
감자전의 ‘초년의 맛’ -감자전님의 거북목에 김세희의 단편소설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년)을 처방합니다     ‘거북목’ 사회 초년생 올해 작은딸은 ‘N포세대’, ‘자본이 낳은 세대’에 이어 ‘코로나세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딸은 예술전문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식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졸업작품 상영회도 취소되었다. 상영회때 전시 부스에서 나눠줄 생각으로 만들었던 딸의 명함은 인쇄소에서 온 박스 그대로 집에 보관되어 있다. 딸의 명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필명 ‘감자전’의 느낌이 잘 드러난 명함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칭찬에 딸은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나는 그 조막만한 것을 만들려고 딸이 잠을 안자고 날밤을 샜다는 사실을 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없다. 경제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도 박하다. ‘오타쿠’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려고 한다니 지나친 욕심이라고 세상은 생각하는 것 같다. 딸이 명함을 뿌릴 날이 올까?   마지막 학기에 딸은 졸업작품 마무리와 함께 자소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원서를 넣을 데가 있을까 싶었는데, 딸의 전공과 관련 있는 웹툰과 게임시장은 언택트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딸이 취업을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자소서를 읽으며 웹툰을 편집하는 일이라면 딸이 잘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넷, 딸의 일생에서 만화는 인생의 반을 함께 해온 일이다. 그 긴 시간 그 애가 읽어댔던 만화책의 양과 SNS 친구들과 ‘덕질’하며...
겸목
2021.02.06 | 조회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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