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또다시, 새롭게 되풀이될 것이다 <성춘향成春香>(1961) | 감독 : 신상옥 / 주연 : 최은희, 김진규 | 107분 1960년에 개봉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전후 당시 메마르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 있었고, 한편으로 힘든 삶에 약간의 판타지와 대리만족을 채워주는 영화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은 <오발탄>과는 정반대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폭발했던 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1961)이 같은 해 동시 개봉되면서 ‘핫이슈’가 됐었다. 상업영화에 관객평점이 중요한 건 변함이 없다. 두 감독 모두 ‘춘향전’으로 승부를 걸고, 고가의 ‘총천연색’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당시 흥행감독 ‘홍성기 프로덕션’과 ‘신예감독 신상옥’의 대결이 볼만했는데,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압승이었다. 영화 <성춘향>이 ‘대박’나자, 신상옥 감독은 이를 토대로 ‘헐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을 표방한 ‘신필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이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포스터, 오른쪽은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포스터. 이 영화로 두 감독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 아는 이야기일수록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홍성기 감독은 연극무대를 보여주듯이 방 전체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또다시, 새롭게 되풀이될 것이다 <성춘향成春香>(1961) | 감독 : 신상옥 / 주연 : 최은희, 김진규 | 107분 1960년에 개봉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전후 당시 메마르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 있었고, 한편으로 힘든 삶에 약간의 판타지와 대리만족을 채워주는 영화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은 <오발탄>과는 정반대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폭발했던 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1961)이 같은 해 동시 개봉되면서 ‘핫이슈’가 됐었다. 상업영화에 관객평점이 중요한 건 변함이 없다. 두 감독 모두 ‘춘향전’으로 승부를 걸고, 고가의 ‘총천연색’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당시 흥행감독 ‘홍성기 프로덕션’과 ‘신예감독 신상옥’의 대결이 볼만했는데,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압승이었다. 영화 <성춘향>이 ‘대박’나자, 신상옥 감독은 이를 토대로 ‘헐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을 표방한 ‘신필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이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포스터, 오른쪽은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포스터. 이 영화로 두 감독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 아는 이야기일수록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홍성기 감독은 연극무대를 보여주듯이 방 전체를...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께서 계씨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기 집 뜰에서 팔일무(천자 앞에서 추는 춤)를 추니 이런 일까지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팔일, 1」 공자가 살던 당시에 노(魯)나라에는 삼환(三桓)이라고 부르는 세 대부 집안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 환공(桓公/前712~前694)의 후손들로 맹손(孟孫), 숙손(叔孫), 계손(季孫)씨 집안을 이른다. 맹(孟), 숙(叔), 계(季)는 형제들의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맹은 맏이, 숙은 둘째, 계는 막내의 뜻이다. 어찌 보면 한 집안 사람들인 이들은 때로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도와가며 노나라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공자 당대의 군주였던 소공(昭公/前542~前510)은 계씨를 정벌하려다 오히려 삼환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공자는 이러한 상황을 도(道)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진 것도 이렇듯 세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라고 생각했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 그래서 공자는 정치는 무릇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논어』에 등장하는 삼환은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무(八佾舞)는 천자가 연회를 베풀 때 추는 춤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각 신분에 따라 춤의 종류나 춤을 추는 무희의 수가 정해져 있었다. 흔히 팔일무는 여덟 명씩 여덟 줄을 맞추어 총 64명의 무희가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아래로 무희의 숫자가 줄어드는데 제후는 육일무(六佾舞), 대부는 사일무(四佾舞)를 출 수 있었다. 계씨는 대부이므로 예(禮)에 맞게 하려면 사일무를 추어야 했다....
공자께서 계씨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기 집 뜰에서 팔일무(천자 앞에서 추는 춤)를 추니 이런 일까지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팔일, 1」 공자가 살던 당시에 노(魯)나라에는 삼환(三桓)이라고 부르는 세 대부 집안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 환공(桓公/前712~前694)의 후손들로 맹손(孟孫), 숙손(叔孫), 계손(季孫)씨 집안을 이른다. 맹(孟), 숙(叔), 계(季)는 형제들의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맹은 맏이, 숙은 둘째, 계는 막내의 뜻이다. 어찌 보면 한 집안 사람들인 이들은 때로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도와가며 노나라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공자 당대의 군주였던 소공(昭公/前542~前510)은 계씨를 정벌하려다 오히려 삼환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공자는 이러한 상황을 도(道)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진 것도 이렇듯 세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라고 생각했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 그래서 공자는 정치는 무릇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논어』에 등장하는 삼환은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무(八佾舞)는 천자가 연회를 베풀 때 추는 춤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각 신분에 따라 춤의 종류나 춤을 추는 무희의 수가 정해져 있었다. 흔히 팔일무는 여덟 명씩 여덟 줄을 맞추어 총 64명의 무희가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아래로 무희의 숫자가 줄어드는데 제후는 육일무(六佾舞), 대부는 사일무(四佾舞)를 출 수 있었다. 계씨는 대부이므로 예(禮)에 맞게 하려면 사일무를 추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