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노동자가 아닌 사장이 되다 나에게는 함께 일하는 좋은 동료 직원이 있다. 직원은 작년 봄, 목수 일을 배우고 싶다며 대구에서 밀양까지 나를 찾아왔다. 첫 만남 후에 그는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는 연락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 “보기처럼 멋있지 않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서울에 한 달 다녀와야 할 일이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함께 일하기를 피했다. 일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맡은 일들도 많아지는 상황이었지만 누군가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고용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친동생이나, 동생의 친구들을 잠깐씩 알바로 쓰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그를 불렀다. 전시용 가벽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 보고 싶다니 하루 같이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여태껏 같이 일해 본 초보자들 중에 가장 이해도 빠르고, 손재주도 좋았다. 나는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일 중독자인 나에게 ‘좋은 동료’의 기준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을 잘 하는 것’이다. 나를 쏙 빼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눈치가 빠르고, 성실하고, 끈기도 있고, 악도 있고, 게다가 손재주도 좋은 사람이다. 어느덧 그와...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노동자가 아닌 사장이 되다 나에게는 함께 일하는 좋은 동료 직원이 있다. 직원은 작년 봄, 목수 일을 배우고 싶다며 대구에서 밀양까지 나를 찾아왔다. 첫 만남 후에 그는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는 연락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 “보기처럼 멋있지 않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서울에 한 달 다녀와야 할 일이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함께 일하기를 피했다. 일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맡은 일들도 많아지는 상황이었지만 누군가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고용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친동생이나, 동생의 친구들을 잠깐씩 알바로 쓰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그를 불렀다. 전시용 가벽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 보고 싶다니 하루 같이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여태껏 같이 일해 본 초보자들 중에 가장 이해도 빠르고, 손재주도 좋았다. 나는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일 중독자인 나에게 ‘좋은 동료’의 기준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을 잘 하는 것’이다. 나를 쏙 빼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눈치가 빠르고, 성실하고, 끈기도 있고, 악도 있고, 게다가 손재주도 좋은 사람이다. 어느덧 그와...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