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풍로 131번길의 말들

정군
2023-07-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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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폭염에... 아침에 나갈 기회를 놓쳐서 그냥 집에서 자전거를 타버렸습니다... 나가고 싶어요. 화요일에 폭우가 온다고 하니, 수요일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많을 듯 합니다. 아니면 엄청 습하거나요. 그러면 수요일에도 집에서 타고, 집에서 타고... 아마 9월에나 나가게 되려나요. 더위 따위 상관없이 타고 싶기는 합니다만, 이 무슨 선수도 아니고... 주중에 그래도 두번은 문탁에 간다고 마음까지 먹고 있으니 몸을 사리게 됩니다. 

어쨌든,두 시간을 타야지 마음 먹고 자전거에 올랐고, 한시간을 넘길 무렵부터, 문득 '오늘 뭘 까먹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지? 뭐지?' 이게 꼭 생각이 나야해요. 생각이 안 나면 제가 잠을 못잡니다 ㅠㅠ 한 시간 삼십분이 되자 현관 밖에서 툭하는 소리가 들리고, 까먹었던 그 일이 생각났지 뭡니까! ㅎㅎㅎ(역시 운동을 해야 정신능력도 향상됩니다) 네, 그것은 예상하신 것처럼 문스탁그램을 올리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무슨 조화인지, 뭘 잘못 눌렀는지, 오늘따라 즈위프트 영상까지 녹화가 되어있더라고요. 보시다시피 세계인이 저런 곳(가상의 자전거천국 와토피아)에 모여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습니다. 제 캐릭터에게 양말을 신겨줘야 한다는 걸 자꾸 까먹어서 오늘도 맨발로 타고 말았군요...

 

그런데, 이 글을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 '현관 밖의 툭 소리'였습니다. 오늘의 본론이기도 하고요. 알라딘 기사님께서 현관 앞에 책을 내려놓고 가시는 소리였습니다. 책을 한 두번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소리가 딱히 특별할 것도 아니지만, 오늘의 그 소리는 약간 특별하기도 합니다. ㅎㅎㅎ

 

이제 7월입니다. '7월'은 저에게, 작년부터 꽤 의미있는 달이 되었습니다. 작년 7월부터 경기도 용인 수지에 일주일에 두서너번씩 오고 있으니까요. 어느새 1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흑. 흑흑. 그 와중에 공부방의 여러 선생님들, 파지사유의 선생님들, 게임동호회의 상근2인조(+1)과 전에 없던 '관계'를 맺게 되었고요. 가끔, 아니 컨디션에 따라 자주할 때도 있지만, 뭐 어쨌거나,  '아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ㅎㅎㅎ 그럼에도 그렇게 표면의식에 드러나는 회한과 후회보다 큰 긍정적 감정이 있죠.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기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삶'에 관해 이야기해 볼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 투쟁심, 호승심, 욱함(아 이건 아닌가) 뭐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는 누가 '너 나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양생 세미나 에세이 데이에 갔었습니다(그게 가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너무 떠들었다는 후회는 좀 있습니다...). 이 역시도 '의무감'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의무'가 아니었고, '흥미'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저 매주 양생 세미나 준비를 하고 계신 둥샘을 목격했을 뿐이고, 지난 주 목요일 금천구에서 했던 강의에 큰 도움을 주셨던 윤경샘을 작년부터 봐왔으며, 종종 들었던 '일이 너무 많다'는 문탁샘의 토로 속에 등장하는 '양생 세미나'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합당한 이유나, 근거 너머의 어떤 윤리('다른 이의 공부를 목격해야 한다')의 부름이었달까요? 부름에는 응답해야죠. ㅎㅎㅎ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떠들었다는 생각에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가길 잘했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두 권의 책을 주문 했습니다. 

 

 

양생 세미나에서 선생님들이 읽으신 책들은 아닌 것 같지만, 에세이데이에 말씀들 나누셨던 그 주제에는 충실할 듯 하여, 책소개를 면밀히 보고 골랐죠. ㅎㅎ

여전히, 짙게 풍기는 그 헤겔향 속에서, 버틀러를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겉핥기라도, 수풍로 131번길에서 매해 생겨나고 있는 공통의 언어는 조금씩이나마 함께 따라가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상호의존성', '취약한 신체', '새로운 상상계의 창출' 같은 말들이 그런 말이겠죠. 그 말들은 누군가의 일상어 속에, 어딘가에 들고갈 피켓에, 언젠가 쓰여질 누군가의 에세이에 다시 등장할테고요. 요컨대 버틀러 때문이 아니라, 실체없는 그 부름에 다시금 답하려면, 역시 겉으로라도 핥아봐야겠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중국고전과 불교가 남아있군요.... 녜... 뭐 부름도 부름 나름이라 고비사막과 히말라야 산맥 너머로는 가는 데 좀 오래 걸립니다....

그 에세이 발표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안 찍었네요... 궁금하시면 여기로 https://moontaknet.com/?page_id=5254&mod=document&uid=39327

 

그리고 오늘 저는... 북쿨라용 책을 골랐습니다. 1진은 이것저것 섞어서 가져갔고, 이번엔 오직 SF소설만 가져갑니다. 

북쿨라는 여기로 

https://moontaknet.com/?page_id=8380&mod=document&uid=39284

 

우현이 줄 책도 가져가야하고... 내일은 짐이 많겠군요....

댓글 6
  • 2023-07-04 08:45

    하하...제가 그날 나눠드린 갤러리용 3쪽짜리 써머리 페이퍼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권력의 정신적 삶>은 9.11 이전의 책입니다. 젠더 이론에서 일반적인 예속적 주체화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어떤 변곡점?이 되는 책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설명하기도 그런 연장선 상에 있구요.

    저도 버틀러를 읽을 때, 헤겔, 라캉, 특히 프로이드 (전 심지어 레비나스꺼정) 에 대한 그녀의 독해 앞에서 멈칫 하는게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 자기 식으로, 자기 문제 의식 속에서 읽어나가는 것 같아요.

    배세진 선생은 버틀러를 헤겔, 라캉, 프로이드...이런 계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완전히 포스트 구조주의 (그러니까 푸코, 들뢰즈)의 계보에 서 있다...이걸 열심히 주장하시는 모양이더라구요. 전 뭐 그런 계보를 따지는 게 글케 중요한가, 이런 생각이지만요.

    신유물론(인류학적 전회 포함)과 포스트페미니즘(아, 이것도 넘 광범위해서리)...어쨌든...지금 사상적 지형은 이런 것들이 선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내년에는 푸코와 버틀러를 엮어서 1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합니다. ㅎㅎㅎ)

  • 2023-07-04 13:42

    저희도 철학학교 에세이데이에 놀러갈게요^^

  • 2023-07-04 13:43

    정군님이 참석해서 풍성?했달까? ㅋㅋㅋㅋㅋ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공부한 사람으로서는 즐거웠어요~~~^^

  • 2023-07-04 18:18

    북쿨라에서 이 여름에 읽을 SF 소설 한 권 특템하고 싶군여. 찜!!ㅎㅎㅎ

  • 2023-07-05 12:00

    가상자전거에 끌려 읽어가다 보니 어느새 정군샘이 내놓은 SF소설을 들여다보고 있는 봄날을 발견하곤 '헉'하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정군샘과 함께 하는 '부정기적인 만찬모임'(^^) 멤버로서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안이 궁금해지는 그의 밑천이 바닥나는 날이 올까요?ㅎㅎ

  • 2023-07-10 20:06

    우와 !!! 자전거를 가상으로 탄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