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 예술 6회]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2023-11-30 22:22
379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기르던 것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부러 나무를 작게 만드는 여러 방법이 만들어졌다. 철사로 줄기를 꽁꽁 싸매거나, 일부러 거름을 주지 않거나, 광합성을 하지 못하도록 잎과 가지를 잘라내기도 하는데, 분재를 만들수 있는 수종도 연구되고 있고 섬세하게 가지치기를 하기 위해 분재만을 위한 가위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행위가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분재만의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분재는 엄연한 하나의 장르(!)다. 그 형태가 아름다울수록 귀중하게 여겨지고 때로는 예술작품처럼 비싸게 거래도 되고 있다.  

 

藝의 갑골문

 

  분재의 작고 정돈된 모습과 그 취급을 생각해 보면 ‘예술’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재주는 작은 나무를 길러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것 같다. 藝의 갑골문이 나무가 아니라 농작물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식량이 중요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식물을 길러 원하는 곳에서 싹을 틔우고, 더 큰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게 만들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재주였을 것이다. 이제 막 농경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에 이런 재주야 말로 가장 많은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작물마다 농사법이 모두 다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 작물을 기르는 법을 안다는 것은 실용적인 기술보다는 경이로운 능력이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더 좋게, 혹은 원하는대로 식물을 기를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예술이 시작되었다.

 

 

 

3. 術, 능력을 발산하는 수단과 방법

 

  그렇다면 術은 무엇일까? 術은  行(다닐 행)과 朮(차조, 옥수수 출)이 합쳐진 글자다. 원래는 行이 사거리를 의미하는 문자여서 길가의 옥수수밭를 가리키는 글자라고 하는데 이 옥수수를 의미하는 한자(秫)를 따로 만들고 기존의 문자는 行의 의미가 더 발전되어 수단과 방법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術의 갑골문을 보면 오른손을 의미하는 又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갑골문의 형상이 옥수수朮인지, 손又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주들이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글자를 보면 아예 말도 안되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術에서 알아야 하는 건 그것이 손이든 무엇이든 움직이고 조작하며 무언가를 다루는 ‘기술’을 의미하는 문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術을 사용하게 되면 단순한 능력이나 재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갖춘 ‘기술’이 된다. 나무를 조그맣게 만드는 분재도, 더 많은 수확물을 위해 밭을 일구는 농사일도 ‘예술’이었다니! 식물을 기르는 능력이 고대의 예술이라면 오늘날의 예술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인 것 같다. 그 기술이 탁월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예술적인 감동’이라고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이상 예술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pastedGraphic.png

 術의 갑골문

 

 又의 갑골문

 

 

  <한문이 예술>에는 藝術과 함께 禮術이라는 의미도 함께 있다. 禮는 예절, 예의에 사용되는 한자로, 禮術에 대한 수업은 함께 동양고전을 공부하던 고은이 맡았다. 고은은 나보다 먼저 동양고전을 공부한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오랫동안 예절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지키는 기술이라고 얘기해왔다. 예절에도 기술이 필요한 걸까? 나도 고은과 몇년간 함께 동양고전을 공부해왔지만 하지만 禮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禮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요구하거나 지켜야하는 규율이나 태도같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의를 차리는데 어떤 기술이 필요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 이 다닐 행은 길 도道와 비슷해 보이지만 행은 행동으로 옮기는 의미에 더 가깝고 도는 길, 방법, 이치에 더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한자 모두 ‘길’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유사하면서도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4. 禮, 관계의 기술이자 생존의 기술

 

 예도 례(예)는 문자 자체가 추수한 곡식을 가득 담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禮에서 만들어졌다. 큰집이었던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제사를 준비해와서 그런지 한자만 봐도 명절에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연상됐다. 우리 집은 제사에 엄격한 편은 아니어서 몰랐지만 생각보다도 제사 때문에 많은 갈등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인 제사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 중국고대사회에서는 제사祭祀를 군사軍事와 비교하며 “군사는 유형의 전투이고 제사는 무형의 전투**”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둘 다 안위를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전투가 물리적인 무력을 사용해 다른 이와 싸워 생존의 안전을 구하고자 했던 일이라면, 제사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을 빌어 싸움을 피하거나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사건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노력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왕조가 바뀔 만큼 수없는 전쟁의 기록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전쟁은 시간과 자원같이 유한함이 있는 반면 제사는 형체가 없는 영적인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대한 일로 여겨졌다. 제사 사祀는 중국의 상나라에서 1년 중 가장 마지막에 지내는 제사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동시에 1년 자체를 뜻하는 한자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한시적인 전쟁보다도 더 긴장감있는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손을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정성을 쏟아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했으니 고대 사람들에게 제사는 ‘전투에 임하는 엄중함’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였을 것이다.

 

지난 추석, 우리집은 차례주로 청주 대신 와인을 올렸다. 

 

 

  이런 ‘영적인 힘’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고 여기는데서 일어난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이 제의를 치르던 것이 기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고대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바람, 구름, 비, 천둥, 돌, 강, 나무, 동물, 그리고 죽은 이들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신령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보다 행동이 중요한 오늘날에는 이런 시각을 몰이해로 바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고대사람들이 갖고 있는 영적인 힘, 그 근본에는 인간보다도 자연계를 높이는 섬김의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었기에 모르는 것을 섬기며 받아들이고,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의를 통해 관계를 맺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섬기는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관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 (허진웅 씀, 공희 옮김, 동문선,532쪽)

 

 

 

5. 우리는 동양고전을 통해 무엇을 기를 수 있을까?

 

  예술禮術 수업을 맡은 고은은 아이들과 사서삼경이나 논어같이 동양고전에서 이야기하는 관계와 생활 속 태도를 전했다. 왜 동양고전이었을까? 한자가 사용된 텍스트여서? 그것이 유일한 이유였다면 우리 수업에서 예술禮術수업은 없었을 것이다.

 

見善從之知過必改 친구의 장점을 보면 따르고 나의 단점을 알면 반드시 고쳐라

行勿慢步 坐勿倚身 걸을 때 흐느적거리지 말고, 앉을 때 몸을 기대지 마라.

作事謀始 出言顧行 일을 시작할 때는 신중히 하고, 말을 할 때는 행동을 돌아보아라 

(사자소학에서)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훌륭한 질문이로다! 예란 사치하는 것이 검소함만 못하고, 장례는 주도면밀하게 잘하는 것이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만 못하다."

(논어, 팔일에서)

 

  고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대 사람들이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섬세하게 살폈는지를 알 수 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라거나, 똑바로 걸으라거나, 절약하라거나… 때로는 그 내용이 사소하고 너무 당연해서 고리타분한 말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위가 곧 마음을 다하는 태도였다. 마음은 곧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제사는 곧 사람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행위였다. 

 

  하지만 영적인 힘의 영향력이 많이 적어진 오늘날***에 국가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제사의 효용성을 돌이키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생존은 고대와 같은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존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생존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주변과 관계를 맺고 이에 따르는 행동을 해야하며 상대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관계를 맺는 것은 오늘날 여전히 생존의 방식이 된다. 고은이가 예를 관계를 맺는 기술이라고 했던 건 규칙과 규범으로 정해지지 않는 오늘날의 생존의 방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예술이 더이상 식물을 기르는 능력이 아니라 요리, 음악, 미술, 문학같이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니 예禮도 그만큼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르친 예술禮術을 ‘관계를 기르는 기술’이라고 하면 어떨까? 관계를 맺는 다양한 기술을 고민해본다면 익절과 손절만 남은 오늘날의 관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여기서 말하는 영향력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실제’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거나 신령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고대에 제사는 제사를 치르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따랐지만 오늘날에는 더이상 제사가 국가를 지탱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제사를 치르기 위한 여러 노동이나 제도, 문화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영향력이 적어졌다는 것은 이런 변화를 이야기한다. 

 

 

댓글 6
  • 2023-12-02 17:28

    禮-術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관계의 기술'이라고 하니 또 그런 듯^^
    2024년의 '한문이 예술' 프로그램이 기대 됩니다

  • 2023-12-04 13:42

    아, 그렇군요! <한문이 예술>에 이렇게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 있을 줄이야!

  • 2023-12-05 12:26

    차례주로 와인이라ᆢ 넘 괜찮은데요^^

  • 2023-12-06 09:20

    '익절'이라는 말도 있어요?

    • 2023-12-06 21:54

      손절은 ‘손해보고 끊어낸다’고 익절은 ‘이익보고 끊어낸다’에요 ㅋㅋㅋ

  • 2023-12-07 15:14

    藝術과 禮術... 재밌네요^^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223
한문이예술
  한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동은       1. 한자의 느낌적인 느낌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말 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서서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게 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 고유어와 한자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유람’과 ‘유랑’은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어감이 비슷해보이지만 각각 놀 유遊와 흐를 류流로 다른 한자가 사용되어 ‘놀면서 돌아다니다’와 ‘목적없이 물 흐르듯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 그 의미를 밝혀놓은 책’으로 말씀 사辭와 책 전典을 쓰는데, ‘백과사전’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압축해 분류하고 모아 현상과 상태 자체를 모아 설명해 놓은 것’이라 이 때는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이 事는 원래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였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일事’이 포괄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한자 하나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중국 철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 학문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철학을 중국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던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 사유』에서 한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단어는 하나의 개념에 부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순한 기호도 아니며, 문법이나 통사의 기교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추상적 기호도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단음절 형식과 중성적 양상 속에 작용을 미치는 데 필요한...
  한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동은       1. 한자의 느낌적인 느낌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말 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서서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게 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 고유어와 한자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유람’과 ‘유랑’은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어감이 비슷해보이지만 각각 놀 유遊와 흐를 류流로 다른 한자가 사용되어 ‘놀면서 돌아다니다’와 ‘목적없이 물 흐르듯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 그 의미를 밝혀놓은 책’으로 말씀 사辭와 책 전典을 쓰는데, ‘백과사전’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압축해 분류하고 모아 현상과 상태 자체를 모아 설명해 놓은 것’이라 이 때는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이 事는 원래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였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일事’이 포괄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한자 하나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중국 철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 학문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철학을 중국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던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 사유』에서 한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단어는 하나의 개념에 부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순한 기호도 아니며, 문법이나 통사의 기교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추상적 기호도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단음절 형식과 중성적 양상 속에 작용을 미치는 데 필요한...
동은
2024.01.11 | 조회 259
한문이예술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동은
2023.11.30 | 조회 379
한문이예술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동은
2023.09.21 | 조회 535
한문이예술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동은
2023.08.18 | 조회 55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