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장애가 만날 때  / 무사

문탁
2023-12-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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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작전 중의 사유가 아닌 이상 심의를 거쳐 전역 조치 된다. 前 보훈청장 방우진 예비역 중령은 현역시절 유방암이 발병하여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의병 전역을 해야만 했고,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지션 과정에서 고환을 절제했다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 ‘군인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따라 군인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군대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유방과 고환이 전투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오랜 기간 복무한 나로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축구 잘하는 군인은 무조건 군 생활 잘 해.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어.” 라던 어느 지휘관의 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유방과 고환이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장애/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란, 비장애중심주의가 작동하는 하나의 기제로 사람들의 육체적 기능이나 외관을 표준화하는 규범이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비장애 신체에 들어맞지 않는 신체를 모두 ‘장애’로 낙인찍는 시스템이다”(246) 국가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군 복무를 신성시하며 여성, 장애인, ‘혼혈’ 남성의 신체를 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로 낙인찍고, 이들을 ‘구성적 외부’로 동원해왔다. ‘병역을 필한 대한민국 남성’의 입장에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징집의 상태를 윤색해 줄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들 또한 기득권의 자장 안에서 ‘구성적 외부’와 위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마치 보상받은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셈이니 말이다. 1999년 ‘제대군인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기 전까지 그 기득권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 유명한 결정은 남성 vs 여성 간 젠더 갈등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지체장애인 3급 3호(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舊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른 것) 남성 장애인도 있었다.

 

 

 

 

‘장애 수행’, ‘트랜스어빌리티’를 통한 에이블리즘 교란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한동안 화제였다. 좀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군의 현실을 대체로 잘 묘사했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을 피하고 싶어하는 입영 대상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실 병역기피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지는 ‘병역필 남성’ 기득권의 허상과 군대의 민낯에 대한 절망은 입영의 문 앞에서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욕망과 만나 ‘장애인’ 되기를 희구하는 집단, ‘다른 장애인’으로 현신이 되어 출현한다. 이들은 병역법에 명시된 신체기준에 ‘살짝 어긋난’ 몸, 딱 그만큼의 ‘장애’를 얻기 위해 애쓴다. 병역법상 ‘신체의 정상성’ 기준이 ‘병역면제’ 기준으로 재전유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최상의 전투력 유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비장애중심주의, ‘군대적 다윈주의’는 비장애인 입영 대상자들의 ‘장애 수행’을 통해 교란된다. 장애를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중심주의와 ‘신체의 정상성’이 규범인 사회에서 ‘장애’가 ‘선망’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 현상은 신체 예술 연구활동가 베서니 스티븐스가 정의한 ‘트랜스어빌리티transability’를 떠올리게 한다. 트랜스어빌리티란 ‘이분화된 신체적 비장애 상태에서 신체적 장애 상태로 전환하려는 욕구나 열망’을 의미한다. 김은정 시러큐스대 여성/젠더학과 교수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트랜스어빌리티 개념을 소개하며, 치유란 의료적 치료를 넘어 “몸, 정동, 사회적/물질적 조건들에 의도적인, 또한 비의도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전환적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성’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몸을 장애가 없는 몸으로 전환하는 것과 그 반대의 과정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그 ‘정상적인 몸’, ‘선호되는 미’라는 관점을 소거한다면, 성형수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몸을 깎아내고 찢고 꿰매는 의료적 ‘치료' 과정이 ‘몸’에 손상을 가하고 ‘장애’를 입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입영을 기피하기 위해 선택한 ‘장애 수행’이 능동적인 ‘트랜스어빌리티’는 아니지만, 두 행위 모두 비장애와 장애라는 이분법 규범을 교란하며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볼 여지는 없을까?

 

 균열과 교란은 복무 중에도 발생한다. 분명 입영 단계에서 장애인의 징집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복무 중 ‘정신장애’ 등의 사유로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거쳐 병역처분이 변경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장애학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31) 현역복무부적합심의와 병역처분변경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무기력감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군은 ‘등급내 인간’으로 호명한 이들 중 일부를 ‘정상성’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금 ‘등급외 인간’으로, ‘장애인’으로 선별하여 추방한다. 이 과정은 매주, 전군에서 계속된다. ‘장애’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반복 속에서 ‘트랜스에이블드’, ‘장애 수행자’들은 사회가, 제도가 ‘장애’를 만드는 요인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교란의 춤을 추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 젠더, 인종을 넘어 장애까지 닿을까?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이후 군 인권보호 수준은 진일보했다. 금쪽이를 군에 보낸 부모들, 언론,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낸 결과, 인권보호제도가 마련되었고, 장병들의 의식수준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동성애 장병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제한적으로나마 포함되었고, 병사들의 복무기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현재의 복무기간이 유지되고 저출산 흐름이 계속된다면 2040년 이후 입영 대상은 약 15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보다 50%정도 축소되는 공백을 과연 누가 메울까? 국방개혁으로 인한 병력감축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입영 대상자가 줄어들자 군은 현역 복무가 가능한 신체등급 기준을 2급에서 3급으로 조정했다. 여성 군인 선발비율도 늘려 작년 기준으로 여성 군인은 전체의 9%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 국적 다문화 장병의 입영을 허용했다.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산입했다. 당시 글로벌시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특성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병력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채우고 징병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군은 입대자원 부족과 그로 인한 전력 공백을 신체등급 기준 완화, 여성 군인 확대와 다문화 장병 입대로 채우려 하는 등 인원 수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공유된 가치, 신념, 행동, 배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국가, 민족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개념과 달리 최근에는 인종, 성별, 나이, 신체적 장애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일이나 스위스군의 다양성 범주는 한국군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성, 민족, 인종, 성적 지향성, 연령, 장애, 교육배경, 성장배경, 출생지,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국방부 예하에 다양성 관리 전담 부서가 설치 되어 있다. 특히 독일 국방부의 다양성 정책은 개개인의 경험과 가능성, 잠재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군내 구성원에 대한 가치판단, 역할, 직책부여에 있어서 편견을 없애고 존중하려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다양성 정책은 병력 공백을 채우기 위한 양적 보완 수단일 뿐 다양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립한 질적 정책은 아니다. 다양성 관리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양성평등’과 ‘다문화’ 정책도 명명에서부터 이미 협소한 범주 인식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장애 역량을 재사유하기

 

“장애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역량에 주목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상호의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재구축하며 사회질서를 평등과 협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실마리를 장애인의 사회적 존재로부터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문화과학」 115호 “장애와 역량” 발간사 )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0조에는 “군인은…(중략)…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여”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군인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에이블리즘 군대가 ‘장애’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동권과 탈시설은 장애인 운동의 오랜 화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는 ‘비장애인’만을 선별하여 ‘시설’에 가두고 이들의 이동권을 제한함으로써 탈시설의 욕망을 키우고 있다. 군대는 ‘장애를 만든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국제질서는 복잡해졌고 안보위협은 다양해졌다. 안보의 개념이 군사안보에서 인간안보로 바뀌고 있으며, 군의 활동 역시 국가방어만이 아니라 환경보호, 재난 구조, 지역분쟁 해결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요소로 구성된 물리적 전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목도하고 있듯이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군의 전투력에는 물리적 유형력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사기, 연대감, 갈등관리와 같은 무형전력도 포함된다. ‘죽이는’ 실력만이 전투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살리는 것,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한 전력이다. 만일 군대에도 미덕이 있다면, 낯설고 다른 존재(자)와 섞이는 일이 유일하지 않을까? 출신도 자라온 환경도 매우 다른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섞이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블라인드blind 게시판에 “요즘 병사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자조섞인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들이 휴대전화 대신 낯설고 다른, 그래서 불편한, 그러나 서로에게 생명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동료를 바라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용환 육사 교수는 “군에서 다양성 관리를 경험한 장병은 조직 내에서의 성과는 물론 제대 이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의 증가는 조직의 경쟁력, 응집성, 전문성과 같은 실제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윤리적 민감성, 적극적 행동과 같은 규범적 성과가 증대되는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군 여성 군인(조직)은 1950년 500명의 육군 여자의용군으로 창설된 이래 남성 군인의 참전을 각성하게 하는 존재(자)로(1949-1954), 국가총력안보시대의 애국 상징으로(1955-1989), 지식정보화시대 전문직업군인으로(1990 이후) 활용되어 왔다. 전쟁 양상의 변화와 군 활동의 다변화 흐름 속에서 유연함과 잠재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군사적 폭력성을 다소나마 약화시키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젠더화된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여성 군인의 위치성과 관련한 문제적 지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군인은 그동안 군인의 전형으로 상정되어온 ‘남성 군인’과는 ‘다른’ 군인으로 출현하여 군의 전통적인 젠더질서에 교란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던져온 질문들이 그나마 지금의 변화를 견인해왔다.(고 말하고 싶다.) 다문화 장병의 출현을 통해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0년부터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는 “민족” 이라는 표현이 “국민”으로 변경되었다. 다문화 장병들은 4대 종교에 치우쳐 있는 군내 종교 활동 자유의 폭을 넓히고 식습관, 언어, 역사적 배경과 편견 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해야할 필요성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은 의도치않게 군대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다급해진 군은 부족한 입영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여성 군인 비율을 2027년까지 15%로 높이고 다문화 장병의 입대를 적극 장려하고 신체등급 3급으로 한차례 범위를 넓힌 현역 복무 기준을 이제는 4급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동안 군이 내세웠던 ‘신체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는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가족중심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영향으로 보이며,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한다면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안보’를 ‘숫자’에만 맡길 것인가? 

댓글 1
  • 2024-01-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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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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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48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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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75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32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9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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