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감 따고 왔어요!

경덕
2023-11-0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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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님 인스타그램에 밀양 가을농활 모집 포스터가 올라왔다.
 
 
 
 
어진  :  감밭에는 감이 굴러다녀요. 귀엽지?! 확인하러 와. 얼른 와. 빨리 와. 가을이랑 같이 와.
              2023 밀양 가을농활 10.7 ~~~ 감 끝날 때까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농활에 참여했다. 고은, 우현, 건화, 경덕, 바딤, 다섯 명이 올 해의 농활 멤버로 정해졌다. 나는 작년처럼 무궁화호를 미리 예매했는데(다섯 시간 동안 클래식 기차의  낭만을 즐겨보자!) 문탁 연대기금에서 교통비를 지원을 해주신다는 소식에.... 낭만은 나중으로 미루고 냉큼 KTX로 갈아탔다. (연대 기금 감사합니다!!!)
 
다섯 명의 농활 멤버가 무사히 밀양역에 모였다. 우리는 마중 나온 어진님의 승합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비건이 세 명이어서(고은, 바딤, 경덕) 매 끼니에 비건 옵션(혹은 논비건 옵션?)이 있었다. 첫 식사는 시래기국이었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후루룩 식사를 마치고 감나무밭으로 출발했다. 도착해보니 작년과 같은 밭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밭에서 만난 선생님도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겨주셨다.
 
올 해는 비가 많이 와서 농사가 썩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땅에 떨어진 홍시가 많았다. 모르고 밟을 때마다 신발 밑창이 감 범벅이 되었다. 작년에는 높은 곳에 있는 감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땄었는데 올해는 다칠 수 있으니 손 닿는 감만 따라고 했다. 감을 따다 보면 감 꼭지 움푹 파인 부분에 무당벌레나 작은 거미가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후 불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바딤님은 작은 생명들을 매번 반기며 안전한 곳에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중간에 쉬면서 어르신이 가져다 준 간식을 먹고 있는데 순찰(?)을 돌던 어진님이 나타나 벌써 쉬냐고 했다. 고은님이 어진님과 찐친 케미로 맞붙었다. 주로 어진님이 구박했고 고은님이 방어했다.
 
이미 홍시가 되었거나 검은 멍이 든 감은 수확할 수 없다고 했다. 작년에 어떤 선생님이 버려질 홍시를 따서 한 입 주셨던 게 생각나 홍시를 발견하면 슬쩍 따서 한 입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 홍시를 맛보다가 갑자기 위에서 떨어지는 무언가에 맞았다. 물컹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내려갔다. 가지를 흔들다가 높은 곳에 있던 홍시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감이 온 몸에 묻었다. 씻을 곳도 없어서 감 잎으로 대충 닦았다. 사람들은 감 범벅이 된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
 
감화된 사람. 감 인간. 감 폭탄 맞은 사람.
Gam Bomb!
 
 
 
 
 
 
 
 
감나무밭 어르신 댁에도 잠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잘 익은 홍시를 나눠주셨고 내년에 또 보자며 하셨다. 귀영샘 댁에서 저녁을 먹었다. 작년에 나는 비건 카레 식탁에 앉아서 옆에 앉은 현민님을 따라 페스코 비건을 선언했었다. 이번에도 멸치 육수가 아닌 비건 시래기국 식탁에 앉았지만 뭘 선언하지는 않았다. 귀영샘은 젓갈 들어간 김치도 안 먹냐며 반찬을 다른 식탁으로 옮기셨다. 하지만 다른 나물 반찬을 더 꺼내주시면서 비건 식탁을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식사 후에 건화샘과 같이 설거지를 했다. 귀영샘은 남자 둘이 부엌에 들어가는 거냐며 못미더워 하셨지만 우리는 말끔하게 잘 해냈다. 귀영샘도 흡족해하셨(을 거라고 믿는)다.
 
후식을 먹을 때 은숙샘이 오셨다. 어진님이 요즘 몸 어디가 안좋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귀 상태를 유심히 보셨다. 그리고 어떤 이름 모를 스티커를 꺼내 응급 처치(?)를 해주셨다. 그리고 어진님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의 귀를 봐주셨다. 몸에 좋다는 스티커(?)를 귀 안쪽에 붙여주시면서 누구는 장이 안 좋네, 누구는 위가 안 좋네 하셨다. 케어를 해주시는데 귀에 열이 살짝 올랐고 노곤 노곤 잠이 들 것 같았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귀에 스티커가 붙었다. 
 
작년보다 인원은 적었지만 가까이 앉아 조곤 조곤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귀영샘이 못 온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하셨다. 고은님이 내년 1월에 다른 선생님들과 다시 올 거라고 전했다. 밤이 늦어 우리는 샘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어진님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순서대로 씻었다. 마지막으로 어진 님이 일어났다. 원래 오전 농활을 갈 생각이었는데 시간을 보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일단 우리는 귀영샘이 주신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어진님이 왜 적극적으로 자기를 깨우지 않았냐고 물었다. 옆에서 같이 잔 우현님이 흔들어 깨웠는데 안 일어났다고 말했다. 어진님은 알람을 듣고도 가뿐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목수 노동자의 피로를 아냐고 물었다. 그럼 근처에 갈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강이 좋은지 절이 좋은지, 어진님의 공장을 같이 가보는 건 어떤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어진님이 내려주는 드립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아젠다 글쓰기, 자기돌봄 연재, 유교걸 작가의 신간, 공동체 안팎의 친구들, 밀양과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을 먹기 전까지 우리는 식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밀양에 오기 전 어진님 인스타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밀양에 온 지 오늘이 딱 10년입니다. 첫날 아수라장이 된 산 속 비탈길에서 쭈그리고 앉아 밤새 이슬을 맞았는데, 오늘 밤에도 이슬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 왜 아직밀양에 남아 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과, 부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쉬어가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멈추면 죽는 자영업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도 일을 하러 갑니다. 그다음 20년이 되기까지 살아있으면 좋겠어요." (어진님 인스타그램, 10월 1일)
 
문탁 서생원에 꽃혀 있는 책들을 구경하다가 발견한 자료집 안에서는 이런 글을 보았다. "앞으로 밀양과 문탁은 어떻게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여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을까? 밀양이 오랫동안 문탁의 화두였던 것처럼 문탁이 밀양의 새로운 질문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번에는 밀양이 응답해야 하는 차례인지도 모르겠다." 문탁, 우리에게 밀양은 (2018 문탁네트워크 인문학 축제)
 
내 방 책장에는 2016년에 만난 이재각님의 사진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꽂혀 있다. 천막을 치고 비장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어르신들, 경찰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장면들, 초목이 우거진 숲과 철조망, 그 뒤로 우뚝 서있는 송전탑 사진이 떠오른다. 밀양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진님이 알려준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 : 온라인 기록관 _ http://my765kvout.org/>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다. 
 
투쟁의 시간을 살아낸(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기록들을 뒤늦게 들춰보는 나에게 밀양 농활은 어떤 질문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 밀양은 어떤 응답을 줄까? 일단 이번 농활에서는 'Gam Bomb'이 떠오를 것 같다. 온 몸에 감 냄새를 입혀 준 감나무의 응답을 마음에도 새겨본다. 
 
 
** 인솔해주고 집에서 재워주고 마지막 점심까지 제공해준 어진님 감사합니다. 담에는 더 길고 근면하게 감을 따보겠습니다. 
** 기차 예매해준 고은님,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지원해주신 선생님들, 연대기금 감사드려요! (덕분에 무궁화호의 낭만은 나중으로...)
 
댓글 4
  • 2023-11-02 16:44

    우리도 고맙네^^
    밀양 가고 싶다~~

  • 2023-11-02 19:07

    귀영샘과 은숙샘, 사진으로보니 반갑습니다!
    농활가서 빡세게 일하지 않은 것 같다고 우현이에게 눈치를 주었는데..
    청년들의 교류의 시간도 밀양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군요.ㅎ
    그래도 내년에는 좀 더 빡세게!!ㅋㅋ

  • 2023-11-05 17:46

    헐렁한 농활이지만 다녀온게 소중하죠
    고맙네요^^
    내년에는 갈 수 있을까요? ㅜㅜ

  • 2023-11-05 22:52

    소중한 경험을 하셨네요.(감화되는…ㅎ)

    경덕쌤 글을 문스탁으로 보니 더 친밀해진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