梓人傳 후기 : 내 똥 내가 치우자

콩땅
2022-04-07 10:52
209

梓人傳

재인(梓人)전 들어가는 맨 앞 주석을 보면 재인전의 규모가 <여씨춘추>에서 온 것 같다고 했는데, <여씨춘추>를 읽으신 학인들께서는 무엇이 <여씨춘추>에서 왔는지 잘 모르겠으나, 스토리가 방만하고 주저리 주저리 반복하는 것은 <여씨춘추>와 같다고 하였다.

재인전은 중국 당나라 문인 유종원이 재인(일명 도목수)를 모델로 그 역량과 역할이 재상과 같음을 서술한 것이다. 재인은 목수를 뜻한다. 스토리는 유종원의 매부집에 세를 사는 도목수 이야기다. 도목수가 집짓는 일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방의 침상 다리하나도 스스로 고치지 않고 다른 목수를 불러 고친다고 하니, 유종원은 비웃으며 재능은 없으면서 녹만 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도목수가 일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담장에 도면 한 장 그려놓고 여러 직공을 불러 모아 이리 저리 지휘 감독하며 집을 완성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정치가인 재상이 지녀야 할 덕목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도목수는 현재의 직업으로 얘기하자면, 건축설계사이자, 현장소장이다. 집 짓는 전체의 과정을 책임지고, 총괄하는 자이다. 그러니 건축주, 즉 집을 짓고자 하는 자가 사사로운 지혜로 재인의 생각을 침범하고 지켜온 법을 빼앗는다면, 집짓다가 떠나버려도 죄가 아니며, 오히려 자기의 도를 굽히지 않는 것이 훌륭한 재인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고기동에 집짓던 때가 생각난다. 시행사가 땅을 분할하여 땅을 판다. 그 분할된 땅 한 부지를 산다. 건축설계사를 만나 설계한다. 설계가 끝나면 시공사와 계약하고 담당 현장 소장이 파견된다. 공사와 더불어 설계사가 설계대로 짓는지 감사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건축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설계사는 설계대로 지어라. 현장 소장은 현실에 맞게 설계가 되어야지 예술하냐? 기초공사팀, 목수팀, 도장팀, 도배팀, 전기팀 등등 옥신각신하면서 우리집은 완성을 했건만, 앞집 현장 소장은 어느 날 도망을 가버렸다. 건너편 집 현장 소장도 주차장 짓다가 도망갔다. 그 바람에 앞집과 건너편집 건축주는 준공하기까지 개고생을 했다.

요즘은 자신의 법도대로 소신대로 뜻을 지키는 자를 바라기에는 하나의 공정에 너무 많은 전문가들이 관여를 해서인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창피해하지 않고 남 탓을 한다.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우면 좋겠다.

 

댓글 1
  • 2022-04-07 23:43

    잘은 모르겠으나, 여씨춘추 구성이 12기(紀), 8람(覽), 6론(論) 되어 있어요. 

    목수를 재상에 비유하여 글을 쓴 것이 아마도 6론의 글쓰기와 비슷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우재는 조선 인조시대 학자인데 당시 조선에서는 여씨춘추를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봐요.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주 생생한 후기였네요. 

    근데  앞집과 건너편 집 현장소장은 '자기의 도를 굽히지 않고' 떠난 것일까요?  이제 그런 도목수는 없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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