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철학학교시즌2] 스피노자 읽기 7주차 질문들

정군
2023-06-21 21:08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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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2023-06-21 21:48

    1. 정리 4 "어떤 실재도 외부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파괴될 수 없다."(92p)

    ☞ 질문1) 각각의 실재가 존속하려는 노력, 즉 코나투스(conatus)는 실재의 현행적 본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자살은 '외부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파괴될 수 없다'는 것과 배치되는 느낌입니다. 스피노자가 자살 역시 인간의 '능동적 선택'이 아닌 '외부 원인'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2. 정리11 주석 "기쁨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수동으로 이해할 것이다. 슬픔은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수동으로 이해할 것이다."(95p)

    ☞ 질문2) 완전성을 '더 큰'과 '더 작은'으로 구분함으로써 완전성에도 일정한 크기가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큰 역량'과 '작은 역량' 정도로 표현해도 됐을 듯 한데 굳이 이렇게 서술한 의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3. 정리15 "어떤 것이든 우연에 의해 기쁨과 슬픔, 욕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98p)

    ☞ 질문3) 스피노자는 '우연에 의해'를 언급함으로써 정서 산출 원인의 '필연적 조건'에 예외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가 우연을 왜 상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 2023-06-21 22:00

    제가 내일 결석이 예상되는 관계로 제 질문은 다루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도 내용에서 뽑았다고는 하지만, 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다룰 필요가 없는 사소한 질문들이라 여겨져서 그렇습니다.

    정리 4~ 7, P92~93, 코나투스에 대한 시비) 가장 근본적인 시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재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실재 안에서 실재를 파괴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외부 원인에 의해서만 파괴되고, 각각의 실재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합니다라고 하면 받아 들일만 한데, 스피노자는 존속하려고 노력한다고 은근슬쩍 노력이란 말을 끼워 넣습니다. 개별 실재(독특한 실재)들은 신의 역량을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실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랑 붙여 보면, 역량 = 노력(코나투스)입니다. 역량이 역량을 펼친다(고 하건 양태들에게서 표현한다고 하건)고 할 경우 우리는 역량이 역량짓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량은 역량짓 하는 중에 노력이란 걸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역량이 곧 노력이어야 할 근거가 어디 있는걸까요? 사사건건 시비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역량이 곧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별 정합적인 설명이 없어 보입니다.

    3부 정리 12 ~13에 이어 나오는 주석, P97) 어떻게 정리 12~13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미움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따라나올까요? 12~13의 정리가 이야기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정신은 신체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을 상상하려고 노력하고, 역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노력도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만) 여기에서 어떻게 사랑은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고 미움은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라는 사실이 나오나요? 아무튼 정념은 수동들이니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에서 나오겠지요. 그러니까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이란 말에는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기쁨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정념이고, 슬픔은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정념입니다.) 12~13에서 사랑과 미움의 당연하 정의가 나오는 데는 어떤 논리 관계가 있다는 걸까요?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 2023-06-21 22:22

    정리8 스피노자는, 유한한 실재의 코나투스는 '무한정한 시간'을 함축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유한한 실재의 존재를 끝낼 '외부원인'이 없다면 유한한 실재는 자신의 현행적 본질(2부 정리7)을 지속할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약간 뜬금없지만, 이 경우 모든 '죽음'은 '외부 원인에 의한 죽음'이 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스스로 존재를 중단시키는 '자살', 세포의 이상 분열로 인한 '암'에 의한 죽음 같은 것일 겁니다. 이는 정리10의 증명에서 언급되는 '우리 신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우리 신체 안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라 이러한 종류의 죽음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합성된 것으로서 ‘복합체’이고, 지금도 쉼없이 복합, 분해 중이라고 한다면, 내부와 외부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 2023-06-21 22:27

    (질문 1)
    3부는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해서이다(정서는 감정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죠?).
    스피노자는 많은 정서들 기쁨/슬픔, 쾌감/고통, 유쾌/우울, 사랑/미움, 공감/반감, 희망/공포 등등의 감정들을 우연, 유사, 상상을 동원하여 그 원인을 나의 밖에서 찾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정의1 에서 그 결과의 원인이 자신만에 의해 이해되지 않는 것을 ‘부적합’하다고 하고, 정의2 에서 그것의 ‘적합한’ 원인이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우리의 본성만으로 명석판명하게 따라 나오지 않을 때(부분적인 원인) ‘수동적이다’라고 정의 한다.
    그 다음으로 각각의 실재는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는 노력, Conatus가 있다(정리7)고 하는데, 이는 어떤 실재도 외부원인에 의해서라면 파괴될 수 없기 때문이다(정리4).
    이제 정리11에서 신체의 행위역량을 증대/감소/촉진/억제하는 모든 것에 대한 관념은 우리 정신의 사고역량을 증대/감소/촉진/억제한다고 하여 2부의 신체 정신 평행론을 가져와서, 주석에서 우리의 정서(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수동[정념]이라고 한다.

    요약하면, 나의 정서(감정)은 내가 원인인 적합한 원인이 아닌 부적합한 원인으로 발생한 외부원인이라는 것인데(이는 3부 도입부분 - p86.에서 데카르트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공감이나 반감을 설명하는 정리18에서 ‘인간은 현재의 이미지 뿐만아니라 과거나 미래의 이미지에 의해서도 동일한 기쁨/슬픔의 정서에 의해 변용되는 것’은 나의 원인이지 않나요? 물론 원천인 이미지는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부적합’의 정의를 나의 원인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그러니까 나와 외부의 원인이 섞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부적합’-‘수동적’-감정이 연결되기는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정의하고 설명하는 감정들은 죄다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설명하는 느낌입니다. 관념이 관념을 낳고, 상상이 상상을 낳고 하는 부적합한 것들은 나의 정신작용 아닌가요? 내가 원인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그 부적합함(1종인식)을 끊고 적합한 수준은(3종인식?) 아니더라도 2종인식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질문2)
    P.103. 타인의 불행에서 생겨나는 슬픔을 ‘연민’이라고 하면서, 그 반대인 타인의 행복에서 생겨나는 기쁨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스피노자가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연민과 대비되어 사돈이 땅을 사면 기쁨이 와야 할텐데, 정말 그렇게 느끼나?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그런 단어가 없다는 것은, 그런 감정이 실재하지 않다는 것보다, ‘(니체의 초인정도가 아니면) 타인의 행복에서 기쁨이 생겨나는 인간은 없다’로 읽힙니다. 다행이긴 한데...... 어째 쫌 개운하지 않네요? 어떻습니까?

  • 2023-06-22 00:24

    스피노자는 정리 11의 주석에서 "일차 정서"로 욕망, 기쁨, 슬픔을 듭니다. 이중 기쁨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수동이고, 슬픔은 정신이 저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되는 수동입니다. 그런데 정리 9의 주석에서 설명되는 욕망의 경우, '노력'(정리7의 코나투스)이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련될 때 이 노력은 "인간의 본질 자체와 다르지 않으며 이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인간의 보존을 증진할 수 있는 것들이 따라" 나오고 "이에 따라 인간은 이것들을 하도록 규정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욕망은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규정되는 것이니 욕망은 정서이되 "오직 부적합한 관념들에 의존"하는 수동인 기쁨과 슬픔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2023-06-22 06:28

    정의 2
    "우리가 그것의 적합한 원인인 어떤 것이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생겨날 때, 곧 (앞의 정의 1에 따라)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우리의 본성만으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 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따라 나올 때, 나는 우리가 능동적이다(활동한다)고 말한다. ... "
    결과를 산출했는데 우리의 행위가 적합한 원인이 될 경우에 '우리가 능동적이다'라고 한다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2023-06-22 07:55

    1.
    3부 서문
    "쟈연에서는 자연의 악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돌릴 수 있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항상 똑같으며, 어디에서든 하나의 동일한 미덕 및 행위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3부에서는 인간의 정서 또한 자연의 악덕이나 인간 본성의 악덕이 아니며, 자연의 필연성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미덕 및 행위역량이라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 서문에서 밝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의 미덕 즉 자연의 행위역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미덕이고 무엇이 행위역량인 것일까요?
    행위역량은 곧바로 정의2의 능동/수동과도 관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2는 능동적일 때 활동한다고 말하고, 수동적일 때 활동을 겪는다고 표현합니다. 앞서 서문에서 말한 자연의 행위역량은 능동/수동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적합한 원인으로부터 따라나오는 능동적 활동역량인 것일까요?

    2.
    (정의3)"만악 우리가 이 변용들 중 하나의 적합한 원인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정서를 능동으로 이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동으로 이해한다."
    정의3의 마지막 문장은 이탤릭체로 되어 있네요. 강영계역과 황태연역의 경우는 이렇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진태원샘은 왜 이렇게 단락을 나누고 이탤릭체로 썼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이탤릭체로 되어 있는 이 부분이 저는 문제적이라고 느꼈는데요. 정서를 항상 부적합한 원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정서에 있어서 우리가 적합한 원인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예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정리11 주석에서는 기쁨을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하는 수동'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보면 정의3의 마지막 문장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하는 능동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3.
    (정리7) "각각의 실재가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고 추구하는 노력(conatus)은 실재의 현행적 본질 자체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개념 문제인데요. 여기서 스피노자가 본질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현행적 본질이라고 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저는 현행적 본질과 형상적 본질을 구별하기 때문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보았습니다. 정리9의 주석에서는 "욕구, 욕망은 인간의 본질 자체와 다르지 않다"고도 하는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스피노자의 본질개념과 연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계속 걸리는 것은 1부 정리 17에서는 사람의 본질은 영원진리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현행적 본질 자체와 영원진리를 같은 위상에 놓을 수 있을까요? (이것저것 섞여 있어서 뭘 질문하는지 좀 헷갈리는데..ㅎㅎ 이따 다시 정리를 해볼게요.ㅠ)

  • 2023-06-22 08:30

    ( 3부 서문 )
    정신에 비하여,
    감정 즉 기쁨 슬픔 그리고 욕망은 존재 여부와 함께 量의 차이가 많이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量의 차이는 감정의 본질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

  • 2023-06-22 10:39

    1) 정리21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기쁨이나 슬픔에 의해 변용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이는 기뻐하거나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정서는 그것들이 사랑받는 것 속에서 더 커지거나 작아질수록 사랑하는 이 속에서 더 커지거나 작아질 것이다....일단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말하는 거겠지요? 이것은 두 번째 문장의 그것들과 같은 대상이고, 상상하는 이는 사랑하는 이와 동일한 사람이라면 '그것들이 사랑받는 것' 속에서의 이 이 '것'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걸까요? 문장 해석을 하다보니...이게 정리22의 주석에서 연민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해석이 안되네요.ㅠ

    2) 실재가 자신을 존속하려고 추구하는 노력이 코나투스이고 이것은 실재의 현행적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이 정신에만 관련될 때는 의지,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련될 때는 욕구라고(정리9의 주석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정리10부터는 계속해서 '정신의 코나투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것을 그냥 '의지'로 번역해서 읽어가면 되는 걸까요?

  • 2023-06-22 10:49

    책을 안 가져와서 기억에 의존해 질문을 올립니다. 3부 정리 13~15정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구글링해서 찾아보려고 하는데 잘 못 찾겠네요..)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첫 번째의 적합한 정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과 관련이 없는 부적합한 정서가 딸려 나온다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두 정서가 동시에 나타날 때 "행위역량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정서와, 행위 역량과 관련이 없는 정서가 있다는 점"은 어떠한 예를 들 수 있을까요?

  • 2023-06-22 10:57

    # [능동적]일 수 있는 인간 vs [필연적] 원인인 의지

    정의2 (p.87)
    우리가 그것의 적합한 원인인 어떤 것이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생겨날 때,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우리의 본성만으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따라 나올 때, 나는 우리가 [능동적]이다고 말한다. 
    &정리1(p.88)
    우리의 정신은 어떤 것은 능동적으로 행하지만,~~~~한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것을 "행"하지만, ~~~~한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것을 "겪"는다. 

    vs
     
    1부 정리 32(p.28) 
    의지는 자유원인이라 불릴 수 없으며, 단지 "필연적" 원인이라 불릴 수 있다. 
    & 1부 정리28(p.25)
    모든 독특한 실재는,~~~,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될 수 없으며,~~~

    =>위에 따르면 "인간이 능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할터인데(1부 정리32의 따름정리1에 따르면 신도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그렇다면 "능동적"이라는 것은 어떤 차원(그 개념의 적용 범위등등의 차원에서)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 안에서나 우리 밖에서 우리의 본성만으로 명석 판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어떤 것"은 가령 어떤 것일까요?
    ===>[의지]가 "필연적이다"(그래서 자유의지일 수 없는)라는 정리를 통해 "우연성"와 "필연성"의 차원(1부 정리 29_자연 안에는 우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을 확인하고, 
    [능동적]이라는 것을 "행한다"와 "겪는다"의 차이에서 이해한다면, 
    능동적 "의지"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능동적 "???"은 성립한다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가령 "???"은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 1부 정리 31_현행적 지성은, 의지, 욕망, 사랑 등과 마찬가지로 "능산적" 자연이 아니라 "소산적" 자연과 관련되어야 한다)

    • 2023-06-22 18:11

      질문 요약,,

      3부 정의2 (p.87)에 따르면 "인간이 능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
      1부 정리28(p.25)에 따르면 모든 독특한 실재는, 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능동적일 수 없다는 것 (자유의지의 부정) 으로 이해됩니다.

      질문 : 상반되어 보이는 3부 정의2와 1부 정리28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2023-06-22 11:54

    3부 서문 마지막 줄에서 스피노자는 "인간의 행위 및 욕구를 마치 선과 면, 물체들의 문제인 것처럼 간주"하겠다고 선포했다. 아마도 이와 관련한 정리는 4와 5의 물리학적 운동론(외부원인에 의한 충돌이 아닌 이상 내부적으로는 운동을 지속하려는 것)을 근거로 정리6과 7의 코나투스로 이어지는 것 같다. 2부 자연학소론 파트에서는 본성이라고 했고, 여기서는 코나투스가 현행적 본질 그 자체라고 하며 본성과 본질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2부에서 자연학소론은 정신(의 본성)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신체의 변용을 알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3부에서는 운동 중인 물체(실재)가 외부 원인이 없는 한 계속 운동한다는 것으로부터 스피노자는 코나투스의 어떤 점을 드러내고자 했을까? 스피노자는 2부와 3부에서 실재들, 그 중 인간 신체를 물리학적 운동만으로도 설명하려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코나투스가 정리9 주석에서처럼 "의식적인 노력"도 아니라는 점과, 2부 정리13 주석에서 "물체의 정신화"라는 측면을 정신에만 관련된 "의지"로 풀어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굴러가는 공은 "의식적인 노력"도 "의지"도 없지만 코나투스를 가지고 계속 굴러감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위해 싸운다(정리6 증명)는 것이다. 굴러가는 공 같은 인간! 스피노자는 물체의 관성운동으로 코나투스를 설명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헤치는 것은 오직 외부원인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운동을 존속하려는 코나투스의 영향력이 제대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 2023-06-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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