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헤겔-역사와 변증법 후기

요요
2021-04-24 08:55
271

일주일이 후딱 갔네요. 이번주에 공사 다망하여 후기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ㅠ

 

발제를 준비하면서 17장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 두루뭉실한 걸 읽고 어떻게 발제를 하지? 

아마도 나는 '역사와 변증법'이라는 제목 아래 헤겔의 핵심개념들이 쫀쫀하게 요약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기대가 헤겔을 날로 먹으려는 심보라는 걸 곧 깨달았다. 30쪽으로 그런 요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기대가 사실은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헤겔에게서 뽑은 핵심개념어는 무엇일까?

소제목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성찰, 변증법, 경험/ 주인과 노예-인정 투쟁과 사회적 정체성/이성으로서의 전통-보편과 개별 간의 긴장/ 가족,시민사회 그리고 국가

이 네 개의 키워드가 저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헤겔의 얼굴인 것이다.

 

첫번째 챕터는 성찰, 변증법, 경험이라는 키워드로 헤겔철학의 특이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 나를 괴롭힌 문장은 674쪽의 첫번째 패러그래프에 나오는 문장이다. 

요약하면 '칸트의 현상-물자체의 구분을 넘어서기 위해 헤겔이 가져온 대안은 인간과 세계간의 상호관계이다. 그런데 이 상호관계는 가상과 존재 간의 갈등을 시사한다. 그리고 가상과 존재간의 역동적 긴장이 변증법적 사유에 있어 근본적이다.'

참으로 불친절하게 아무런 설명없이 던져진 가상과 존재라는 개념!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철학사전인데...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런 고급한 책이 없었던 것이다!(정군님, 어쩌죠? 추천부탁^^)

다행히 친정집 서가에 80년대에 공부좀 하던 동생이 읽던 헤겔철학해설서들을 발견하고 꺼내 여기저기 펴서 읽다 알게 된 사실.

헉! 가상은 <논리학> 2부 본질론에 나오는 개념이라는 것.

 

"본질존재로부터 발달된 이상 모름지기 그것은 바로 이 존재에 대립해있는 듯이 보이거니와 하여간에 이러한 직접적 존재비본질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두번째로는 이와같은 존재가 비단 비본질적인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본질도 갖추지 못한 존재, 즉 가상인 셈이다. 세째로 다시 이 가상은 한낱 외면적인 것, 따라서 본질과 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본질 스스로의 가상일 뿐이다. 이렇듯 본질이 자기자체내에서 가현되는 것이 곧 반성이다."

 

가상과 반성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거구나.. 헤겔의 가상은 내가 아는 가상이 아니었다. 이건 완전 점입가경인 신세계구나!!

본질, 존재, 가상, 반성.. 으윽!(헤겔의 개념어 반성-reflection이 텍스트에서의 성찰이라고 정군님이 알려주었다.감사^^)

결국 첫번째 챕터는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개념들을 깔아주고 있는 거였다.

처음 일독할 때는 음.. 그렇군, 하며 읽었던 문장과 단어 하나 하나가 2독에서부터 턱턱 걸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어서 나오는 헤겔의 경험이라는 개념이 뭔지도 파헤쳐야 했다.

우리 텍스트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헤겔의 경험개념은 어떤 면에서 경험이 우리 자신의 활동과 연계되어 있는 일상적 경험개념에 더 가깝다. 헤겔에게는 수동적 주체도 수동적 객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과 실재는 상호간에 서로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험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일상용어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단어인 이 경험이라는 것이 뭔가 평범한 게 아닌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활동도?

여기서 경험은 아마도 경험주의자들의 경험과 칸트의 경험을 넘어서는 헤겔의 경험의 의미를 파악해야 할 듯 싶었다. 패쓰!

 

게다가 세번째 챕터의 제목도 요상했다. '이성으로서의 전통-보편과 개별 간의 긴장'.

아무리 눈씻고 쳐다봐도 이 챕터에는 보편과 개별의 긴장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있지도 않다.

'이성으로서의 전통'이 보편(공동체)과 개별(개인)의 긴장을 종합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그리고 헤겔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모두로부터 거리를 취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헤겔의 '국가론'으로 넘어간다.

이건 또 <법철학>의 중요한 주제인데, 여기서 국가를 이야기 한 다음

다음 챕터가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음..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에서 국가야말로 보편과 개별의 긴장을 해결하는 인륜성의 최고발달형태가 아닌가!

그런데 이 챕터에서는 가족과 시민사회 이야기만 하고 마친다. 인륜성의 완성태로 국가를 이야기 하려면 순서를 바꿔야 하나?

 

발제를 시작도 못하고 있던 나는 중대결단을 내렸다. 

이책저책 뒤적일수록 알게 되는게 느는게 아니라 모르는 것, 궁금한 것만 늘어나니 더 이상 다른 책을 보지말자!

저자들이 헤겔의 개념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전유하고 배치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것으로 멈추자!

그러니 발제는 텍스트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만큼만 잘 정리하는 것에 역점을 두자.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번째 챕터의 제목을 그대로 쓸수는 없는 만큼

보편과 개별의 긴장이라는 제목으로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를 통합해서 기술하자.

 

점점 글이 세미나 후기가 아니라 발제후기가 되고 있다.(아, 다시 쓸 수도 없고.. 아무도 안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ㅠㅠ)

세미나 후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의식의 흐름체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ㅎㅎ

나는 솔직한 후기를 쓰고 있다고.. 창피해하지 말라고 이 아침에 스스로를 다독인다.ㅋ

 

헤겔이 철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헤겔은 이후 철학사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어떻게 부정되었을까.

아마도 그 키워드가 '역사와 변증법'이라고 우리의 저자들은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우리 세미나에서의 토론도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세미나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그래서 세미나에서는 후기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뒷담화에 각자의 진실이 담겨있는 경우도 많다.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헤겔과 관련해 나에게는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헤겔의 존재론(가상, 존재, 본질 등등)도 궁금하고

헤겔의 부정과 스피노자의 긍정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흄과 칸트의 경험과 헤겔의 경험은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정리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언제할 수 있을까. 일단 이런 생각들을 킵해두기로 한다.

아무튼 철학사 세미나는 그 다음 철학자로 나아가야 하는 운명이니.. 정해진 커리큘럼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후기에서 주절거린 말도 조만간 잊혀질테니.. 모든 잊혀지는 것들에 축복을!!

 

 

 

 

 

댓글 1
  • 2021-04-24 13:27

    ㅎㅎㅎ 정말 헤겔 부분은... 조금 과하게 말해서 '헤겔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기 보다는 군-닐이 '헤겔에 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겔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면 훨씬 정합적으로 요약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헤겔' 부분에서 여러 주제들이 떠올랐던 건 좋았습니다.

    저는, '철학 담론' 안에서 헤겔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인문학'이 그동안 누렸던 '총체적 학문'으로서의 지위가 꺾인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문 체계 안에서, 대중 담론 안에서 '인문학'의 위상이 바뀌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적 (인문) 정신'의 학으로서 '철학'을 말한 헤겔의 주장이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으로 '헤겔'을 다시 읽어보면, 오늘의 '인문학'을 새롭게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또 '아휴, 그걸 또 언제 읽고 있어' 하는 생각도 매우 강려크하게 들기도 합니다. ㅎㅎㅎ(역시 다음 철학자로 나가야만 하는 게 참 다행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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