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밖의 진실 - <0으로 나누면>을 읽고 / 평강

문탁
2023-11-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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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a, b=b

 

초등학교 수학시간에 우리는 ‘등식의 성질’에 관해 배운다. 주어진 등식에 있어서 좌변과 우변 양쪽에 사칙연산을 똑같이 수행해도 등식은 성립한다는 성질이다. 덧셈을 예로 들면 a=b라 전제할 때 a+c=b+c가 성립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눗셈의 연산을 수행하려들면 예외사항을 가르쳐준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임의의 수로 나누어도 등식은 보장하지만 0은 빼고 하란다. 이렇게 금지된 0을 고등과정에서는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어 판단을 보류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고민 없이 이 단순한 등식의 성질을 기반으로한 쪽이 0인 방정식도 장착하고 미적분(f’(x)=0)도 장착하며 나아가 더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을 장착해서 무엇이든 증명하고 안전하게 답에 도달한다. 이런 답들은 절대 섞이지 않는다. 도착지는 a이거나 b이지 a이면서 b일수는 없다.

 

이렇게 안전한 수학체계의 존재를 확신한 수학자가 있었다. 수학적 체계를 엄격하고 세심 히 설계하면 그 체계 내에서는 절대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힐베르트,

 

그는 1930년, 세상 모든 수학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학은 완전한가”. 즉 수학은 세상의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가이고 두 번째 “수학은 일관된가” 로 수학적 체계 내에서 수학은 모순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학은 결정가능한가”는 주어진 어떤 명제가 자명한 공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가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1931년, 쿠르트 괴델의 < 불완전성정리 >를 통해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는 증명도 부정도 되지 않는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수학적 체계가 모순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앨런 튜링이 설계한 튜링머신 을 통해 답을 얻어 낼 수 있었다. 그의 2비트로 설계된 프로그램이 ‘멈출 것인지 아닌지’ 를 우리는 영원히 결정할 수가 없다. 또한 튜링머신에 비유된 많은 명제들이 ‘결정 불가능 성’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괴델은 말한다, “논리적체계안에서 어떤 것들은 수학적으로 참임에도 불구하고 그 체계를 한계 짓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그것이 참임을 증명될 수 없다” 라고.

 

테드 창의 단편 < 0으로 나누면 >은 이 질문에 대한 괴델의 답변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2. aa, bb

 

< 0으로 나누면 >은 병렬구조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9개의 챕터가 있고 앞에 작가의 소재나 주제가 던져지고 각 그 밑으로 a는 르네의 세계, b는 그녀의 남편 칼의 세계가 동시 진행하는 구조이다. 소설은 르네와 칼의 이야기가 각각 8a, 8b까지 진행되다 9a=9b라는 9번째 챕터에서 통합된다. 병렬구조라 하지만 르네의 과거와 현재시간에 힘이 더 실리고 이에 반응하는 칼의 되새김의 시간이 뒤를 따르는 구조다.

 

르네는 뛰어난 수학 적 재능과 연구로 주목받는 수학교수이다. 소설은 자살시도로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르네를생물학자인 그녀의 남편 칼이 퇴원수속을 밟으며 시작한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르네의 자살시도 원인이 그녀의 한 수학적 형식체계의 발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과 두 달 전 스코트랜드로 휴가를 갔을 때만 해도 르네와 칼의 삶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충만했다. 또한 그 시작은 르네 자신조차 사소한 골칫거리정도의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형식체계는 그녀를 누구의 이해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고립시키며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녀가 발견한 형식체계는 무엇이었을까? 소설에서 그것은 어떤 수도 그 이외의 임의의 수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형식체계로써 결국 그것은 1과2는 등가임을 보여주는 것 이었다 이는 다시 1은 a가 될 수도 b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출발점에 대한 의심이며 수학 체계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르네의 증명에는 금지된 어떤 방법도 쓰여지 지 않았다고 하는데 0으로 나누기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 소설속의 표현대로라면 “눈에 안 띄게 숨어있는 0으로 나누기”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직접적이든 숨어 있게 든 0을 소환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0은 무엇인가? 0은 수인가? 아니면 없음을 표기한 단순 기호인가?

 

0은 이 ‘수’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의 상식을 배반한다. 도대체 어느 수가 무 한히 더해도 커지지 않으며, 곱하면 자신으로 복귀하며 나눗셈에서는 사용조차 금지 당한 다는 말인가? 작가는 글머리에서 나눗셈은 곱셈의 역이기에 “어떤 수를 0으로 나누어도 그 값이 무한대가 되는 경우는 없다”라고 명확하게 정의하지만 그것은 마치 무한대에 도달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선언처럼 읽혀진다. 1을 0.1로 나누면 10, 0.01로 나누면 100, 0.001로 나누면 1000, 또 0.0001로 나누면 10000..........이렇게 계속 분모를 0에 가깝게 접근해 나가면 우리가 도착하는 수는 무한한 양의 값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드디어 0으로 나누는 순간 우리는 무한대에 도달한다. 이 무한대 또한 엄밀히 수가 아니다. 무한히 커지 는 상태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무한히 접근하면 이라는 표현을 수학적으로 허용하면 a/0=∞로 무한이며 b/0=∞도 무한, 계산하는 문제마다 무한을 내놓는다.

 

 

 

 

 

모든 것은 무한히 커지는 상태에서 같아진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a와 b는 더 이상 개별 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제 모두 무한에서 만난다. 르네의 “난 더 이상 마음속에 뚜렷한 양 의 개념을 유지할 수 없어 모든 게 똑같이 느껴지거든” 라는 말은 그녀가 자신의 증명을 계측을 넘어 이것을 맨몸으로 감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에게 모든 물리적 세계는 등가이다. a는 더 이상 a가 아니며 b가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다시 그 꽃은 나비가 되고, 나비는 구름이 그리고 그 구름은 비가 되어 바 다가 된다. 모든 경계는 허물어지고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르네는 여기에 서 있다. 0으로 무너진 논리세계의 끝에.

 

 

3.  9a=9b

 

칼은 자신도 자살시도를 했었고 그 시간에서 자신을 구제한 한 여인의 사랑을 소중히 여 긴다. 때문에 칼은 르네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스스로 무너뜨린 수학체계 앞에서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한 채 고통 받고 있는 르네에게 칼은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는 어떤 도움도 받아들이질 않았다.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의 감정은 9번째 마지막 챕터에서 9a=9b로 만나 비로서 마주한다. 그러나 이것은 둘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지를 보여주는 슬픈 만남이요, 헤어짐을 위한 만남이다. 하나가 되는 순간의 시간이 지나면 둘은 a=a, b=b로 돌아갈 것 임을 암시한다. 르네의 삶은 르네의 삶대로, 칼의 삶은 칼의 삶대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4. 다시 a=a, b=b

 

그녀에게 수학은 우주에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해석학이었다. 그녀가 발견한 형 식체계는 해석할 대상과 주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수학적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 계의 문을 열게 한 것이다. a/0=∞ 이며 a/∞=0 이다. 0과 무한은 연결되어있다. 0의 문 을 열면 무한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무한의 문을 열면 0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무한 의 공간으로 들어가 깊은 차원의 세계를 직관하고 있다. 물질세계의 이면 속으로 속으로 들어갔고 그녀가 도달한 곳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세계이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1호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창백한 푸른빛”으 로 빛나는 한 점, 외로운 지구가 있다. 저 별을 직접 감각한다면 우리의 시간이 이전의 시 간과 같을 수 있을 까? 테드 창의 < 0으로 나누면 >은 우리가 ‘한계를 넘으면’ 어떤 시간 을 살게 될지 상상하게 만든다. 경계에 있는 문제들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거나 더 거대 한 세계로 발을 디뎌야 비로서 그 답을 보여준다. 그녀는 지금 그 경계에 있고 그녀의 고통은 끝날 것이다. 한계 밖의 세상에서 귀환하여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경험하며 두 세계를 연결하고 해석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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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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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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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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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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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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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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