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연대기 #5 소수자로서의 수치에 관하여

문탁
2023-11-22 13:41
116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생활에서 성정체성으로 인해 무시 당하거나 차별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의 소수자들이 정착하는 대도시들에서만 살았고, 내가 이주한 이후  동성애자의 법적 권리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는 성지향성으로 인한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일터와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일자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성지향성 뿐 아니라 나이, 출신국, 시민권 여부를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퀴어 공동체에서 나의 인종, 국적, 이민자로서의 지위 등이  쉽게 수용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남들과 ‘다름’으로 인해 배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묘한 배제를 경험했다. 당시 게이 남성들은  LGBT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친구를 만들거나  데이트 상대를 만났다. 난 연애 상대를 찾는 상당수의 게시물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 글들은 본인이 찾는 이상적 상대의 조건들을 열거한 후, 마지막에 “흑인과 동양인은 제외”라는 문구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이 끝 문장의 모든 글자들은 대문자로 강조되어 있었다. 왜 카스트로에서 흑인들을 보기 어려운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어떤 이는 내게 시민권자인지 물었다. 만일 시민권이 없다면 골치 아프니 친구나 연애 상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의 피부색과 이방인으로서의 위치로 인한 배제를 경험하면서 내상을 입었다. 머리 속에선 내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공동체 내 소수자 소외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우선 상대의 무지와 배려심 부족에 화가 났다. 실망스러웠다. 특정하기 힘든 감정이 일어났다. 당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수치심이었다. 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나의 성정체성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샌프란 시스코가 여전히 좋았다. 어딜 가든 세상은 완벽할 수 없으니 어쩌다 겪는 부당함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가능한 최선을 다해 피하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이 공동체에서 소수자인 내가, 집단 내 주류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동화되고 싶은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미디어와 책으로 접한 미국의 퀴어 공동체는 연대, 상호 부조, 성적인 자유, 저항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2000년 대 후반 이후 내가 목격한 것은 이와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집, 안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 성공적인 커리어,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의 몸 등을 욕망했다. 중산층 출신의 젊은 백인들, 그 중에서도 전문직이나 안정적 직장을 가진 이들이 접근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성취했거나 바라는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에 민감하고 진보 정치를 옹호하는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이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욕망이 주류 이성애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진 것은, 동성애자 인권의 향상과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확산 등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난 퀴어 공동체 내 이런 주류 문화가 불편했다. 소비주의적 욕망이 과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 또한 거기에 합류하고 싶었다.  양쪽 발이 안되면 한 발이라도 걸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중산층 게이 시민이 되기엔 자격 미달이었다. ‘표준’(?) 신체에 비해 왜소한 몸, 한국식 억양이 들어간 영어,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스펙, (초기) 임시 영주권자로서의 지위. 난 가능한 것들은 노력으로 극복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방법을 모색했다. 미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사회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상태라 힘에 부쳤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학교를 다녔고 일터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나의 한국식 액센트가 의사소통에 별 지장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정하려 했다. 어수룩한 이민자로 보일까 염려되어서였다. 

 

 

 

왼쪽은 실화를 바탕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환기했던 영화 <필라델피아> (1994),

오른쪽은 두 커플의 남성이 서로 사랑해서 원래의 부인과 이혼하고 동성결혼하여 제2의 인생을 사는 내용이 담긴,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

그런데 둘 다 주인공 직업이 변호사이다. 그리고 모두 백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2인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평생 유지하고 싶었다.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관계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가 여러 다양한 관계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퀴어 공동체에는 아직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 주위의 친구들도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들을 쿨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인정 받은 커플이나 장기간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다 ‘도덕적’이라고 여긴다. 나 또한 이러한 암묵적인 도덕 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깊이 생각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의   소수자로서의 조건들에 대해 강한 수치심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왜 그동안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했을까. 수치심을 인정하면 내가 초라하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류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에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난 그것들을 욕망했다. 소수자 공동체 내에서 다시금 소수자가 되도록 하는 나의 정체성들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감추려 했다. 실제로는 내 배경에 부끄러움을 느낀 셈이다. 수치심을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모순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성애 규범이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잔인함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제2언어 구사자, 이민자, 시간제 노동자 등이 겪는 (나도 일부 경험한) 차별이나 어려움들엔 고개를 돌리거나 무감각해졌다. 게이 공동체 내부의 주류적 규범과 생활방식이 그 안의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결국 나 또한 퀴어 공동체의 정상성 규범이 강화되는 데 기여한 셈이다.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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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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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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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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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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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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