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현민
2023-11-21 02:07
353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첫 클럽은 베를린의 한 테크노 클럽이었다. 기나긴 줄을 기다려 겨우 입장한 그곳의 첫인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불이 반짝일 때마다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다들 생기 없는 좀비 같았다. 심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모두 양옆으로 몸을 뚝딱뚝딱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껴 어떻게 춤을 출 줄 몰라 당황하는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춤을 추고 있으면서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케이팝의 나라에서 자란 인간으로서 춤을 춘다는 것은 항상 지나친 주목을 받는, 긴장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몸의 긴장을 느슨하게 했다.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입체적일 수 있었다. 사람들 신발 구경하기, 아름다운 사람들 관찰하기, 칭찬을 건네주기, 마음에 드는 디제이 발견하기, 너무 취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주기,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친구가 되기. 클럽에서는 무엇이든지 조금 더 과감해진다.

클럽은 비일상적인 과감함이 무언에 수용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마음껏 무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종종 테크노 클럽에서 예상하지 못할 만큼 PC 한 규정을 발견하면, 그 규정들을 꼼꼼히 읽어보느라 그 앞에 늘 멈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No space for racism, sexism, homophobia, or any kind of discrimination.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의 차별을 위한 자리는 없다.

Being open towards all expressions of sexuality & gender. 모든 표현과 섹슈얼리티&젠더를 향해 열려있자.

No prejudice. More solidarity with others and special needs. 편견 없이, 다른 이들과 함께 더 연대하자.

Let’s take care of each other. 서로를 돌보자.

입장할 때는 핸드폰 앞뒤 카메라에 꼭 스티커를 붙인다. 그건 당신이 이 안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밖으로, 대놓고, 함부로 유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칙 한구석에는 이런 말도 있다. The awareness Team is here for you, if you find yourself in an uncomfortable situation. ‘성폭력을 당했으면 찾아오세요.’가 아니라, ‘네가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팀이 너를 위해 여기 있다’는 문장에서 이 문장을 쓰기 이전에 피해당사자들의 부담감을 앞서 헤아려 봤음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바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막 이 규정의 존재에 대해 감탄하는데, 나의 친구이자 깡마른 독일인 게이 다니엘은 규정이 있어도 문제는 많다며 까탈스럽게 클럽들을 욕한다. 이 남자가 이미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 잔뜩 까탈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의 불만과 함께 이 사회에서 그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안전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본다.

 

오해받지 않는 몸

 

최근에는 특히나 잦은 파티에 갔다 왔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섹스 포지티브 Sex positive 테크노 파티였다. 집사람들과 단체로 갔는데 한 번도 섹스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인도인 플랫 메이트가 입구에서부터 경악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옷이라고 하기엔 천이 너무 부족한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유사 남성의 엉덩이나 성기를 볼 수 있었고, 거의 모든 유사 여성의 가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의 경험이 잦았다. 중학생 때 빨간 립스틱을 발랐는데, 창녀가 될 거냐고 복도가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던 학생주임 선생님처럼. 어떤 이들은 빨간 입술에서 창녀의 삶까지 떠올린다.

그래서인가 클럽에도 잘 가지 않았다. 클럽에 가는 여자에게 씌워지는 걸레 이미지, 낯선 이들에게 외적 조건으로 평가당하는 몇 초, 아름답지 않은 남성들이 저지르는 무례함. 뉴스에서 지겹게 나오는 여성 대상 클럽 성폭행. 몸을 해석하는 모든 시선이 너무나 모욕적이었다.

이곳에서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몸은 삶을 경험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홀딱 벗고 있어도 아무도 서로를 함부로 만지거나 헛소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몸은 야한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내 춤을 추고,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누린다. 사람들은 본 것 이상을 넘겨짚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사람들의 외관이 기이할수록 아름다워 보였다. 수북한 가슴털 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디제잉 하는 게이. 남자친구와 같이 왔지만 귀여운 여자를 볼 때마다 번쩍 들고 딥키스를 갈기는 여자. 한껏 엉덩이를 까고 강하게 욕망하는 게이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커플처럼 서로를 단속하는 레즈들.

맨몸에 하네스만 차고 성기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며 과격한 춤을 추는 늙은 게이 아저씨. 그의 무아지경이 너무 인상 깊어서 이름을 물어봤더니 이름만 말해주고 이어지는 질문은 싹 다 무시당했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무아지경 독무에도, 게이 성생활에도 도움이 별로 안 되니 무시할 만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사실마저 즐거웠다.

 

더럽고, 야하고, 기이해서 금지되었던 이미지들이 눈앞에서 춤췄다. 이 사람들이 자유로운 만큼 나도 자유롭고, 내가 자유로운 만큼 이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우리의 자유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이 벅찼다.

클럽에 입장하기 전, 문지기들은 관례처럼 질문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지, 어떤 디제이를 아는지, 어떤 옷을 준비했는지. 이것은 배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질문이다. 잔뜩 미쳐 보이는 이들도 안전한 곳에서라야 미칠 수 있고, 미친 사람들에게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모두가 미친 곳일 테니 말이다.

언젠가 이런 것들에 대해 나의 플랫 메이트 독일인 니키와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테크노 Techno라는 장르에 대해 감사해.

테크노에는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이 없다. 극단적인 반복 속에 몸과 정신이 구속된다. (테크노 파티에서 정신을 차리면 아침 해가 밝아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니키에 의하면 일렉트로닉 음악이 알려지기 전, 테크노는 레이브 Rave 문화와 함께 퀴어한 장르였다고 한다. 레이브라고 하면 숲속 혹은 공사장 같은 외진 곳에서 벌어지는 불허가의, 날 것의 파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60년대 히피문화와 함께 자유주의, 현실 도피, 쾌락주의의 장소가 되곤 했다. 그곳이 퀴어들에게는 사회적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탐닉하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자유롭기 위해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 기이하고, 입체적이고, 야생적이지만 무례하지 않은 변태들. 그 테크노 속에서 나는 기꺼이 논다. 

 

 

집 지하실에 있는 파티룸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피가 디제잉 중

댓글 5
  • 2023-11-21 11:40

    그 유명한 '베를린 클럽'의 면면을 현민의 글을 통해서 접하니, 더 생생하고 신박하네요^^

    • 2023-11-21 18:17

      ㅋㅋ 비록 저는 독일 내에서 비교적 보수적이라 하는 뮌헨에 있긴하지만.. 언젠가 베를린 클럽에 대해 더 자세히 쓸 수 있길..

  • 2023-11-21 17:43

    와, 나도 안전하게 미치고 팔짝 뛰고 싶다!!!

    • 2023-11-21 18:15

      독일클럽 공짜 투어 해드립니다
      ㅋㅋ대신 독일까지 와야됨..

  • 2023-11-22 19:20

    이런 클럽에 가서 춤추고 싶군요.^^ 무조건 부럽다!!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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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1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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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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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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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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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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