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과로사하는 사람들

문탁
2023-11-13 08:02
279

 

 

 

 

 

 

 

 

 

심장병은 응급실 1순위

두해 전 즈음, 2020년 12월 초 겨울이었다. 11월부터 바깥에서 데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손도 얼고 드릴도 어는 추위가 찾아왔지만 마감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날도 종일 열심히 일했다. 겨울에 종일 바깥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몸이 녹진녹진해지면서 모든 의욕이 다 사라진다.

 

겨울에 바깥에 오래 나가 있으면 몸이 퉁퉁 붓는데, 부었던 몸이 녹을 때까지,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자기 직전에 어쩔 수 없이 씻었다. 씻고 나오는데 식은땀이 나면서 어질어질하길래 ‘어 몸이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며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던 중에 쓰러졌다. 일어나 보니 2ℓ짜리 생수가 거실 바닥에 다 쏟아져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잤던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빨래 바구니에 들어있는 수건을 가져와 방바닥을 닦고 나니, 그제서야 무서웠다.

 

“아…… 나 죽을 뻔했네?”

 

나는 보통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외상이 없으면 병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날은 느낀 적 없던 공포가 찾아왔다. ‘혼자 사는 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쓰러지다가 재수없게 머리를 박았거나 심장이 멈췄더라면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동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부정맥이 의심된다며 대학 병원에 가보라는 의뢰서를 받았다. 뭘 대학 병원까지 가냐, 하는 생각에 집으로 갔다. 그런데 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완전 쫄아 버린 나는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심작 박동을 체크하는 기계(?)가 내 가슴팍에 철썩 달라붙게 되었고, 그 길로 1주일 간 입원해 있으면서 온갖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그렇게 진단된 나의 병명은 ‘원인 불명의 심방세동(부정맥)’이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현상이라고 한다. 의학적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나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병을 얻었다.

나의 첫 노동

 

보통 주위의 또래는 흔하게 겪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나니, 친구들의 걱정이 많아졌다. 그들은 모두, 이 병의 원인이 과로이니 일을 좀 줄이라는 충고를 건넨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일을 너무 많이 하던 와중에 몸이 버티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수긍이나 위로보다는 변명을 하게 된다. 내가 왜 일을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기 바쁘다. 일이 실제로 많아서 노동 시간이 길기도 하지만, 과로는 내가 오래 쌓아 온 습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사회생활부터 나는 지독하게 오랜 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일해버릇 하다 보니, 굳은살이 배기듯 오랜 시간 동안 일을 많이 하는 습관이 생겼다.

10년 전, 밀양에 처음 와서 활동가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출근과 퇴근의 개념조차 없었다. 눈을 붙이고 몸을 누이는 곳은 깊은 산 속 비닐 천막이었고, 눈을 떴을 때는 앞에 경찰 방패가 보였다. 새벽 5시에 운전을 시작해 서울에서 11시 기자 회견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는 일정 내내 운전대를 잡고 꼬박꼬박 졸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긴박하고 시급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렇게 큰 사건들을 마주하던 시간을 부지런하게 보내며 살았다.

 

밀양의 노인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는 일이 그랬다. 마음이 힘든 것을 떠나서라도, 이들은 저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던 할머니들은 농성을 하기 위해 도로로 나갔다. 수년 동안 여름이건 겨울이건 모여들어 하루종일 도로에 앉아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극렬해 보이는 투쟁 현장에도 일상이 있다. 건설을 강행하려는 측과 충돌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에게는 그 산을 지켜야만 하는 일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일했다. 나무가 베어진 송전탑 부지에 세운 비닐 움막일지라도 이를 유지하는 건 집을 가꾸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치고, 쓸고, 먹고, 닦았다. 새벽에 생을 건 싸움을 하고서, 낮에는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감을 땄다.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곁에서 있던 나는 온 삶을 투여해서 사는 방식을 배웠다. 활동가 일은 나에게 임금을 받고 하는 첫 노동이기도 했다. 나의 첫 노동은 진짜 빡셌다.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는 그것, 과로

 

활동가에서 목수로 삶이 바뀌고 나서도 비슷한 나날을 보낸다. 목공 일도 데모 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5㎏은 될 것 같은 못 주머니를 차고 종일 쏘다니면, 하루에 8시간만 일해도 허리가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온갖 악취와 쓴맛이 느껴지는 유해 물질들을 마시다 보면 “몸에 좋은 거 많이 먹어서 오래 살겠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목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목수가 참 멋있고 낭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목수 일은 매우 긴박하면서도 지루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도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잘해 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니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작은 가구 하나를 만들어도 어떤 제작 방식을 택하는가에 따라서 작업 시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각이 많이 진 가구를 만들 때, 미리 마감 칠을 해 놓고 조립을 하면 최종 마감이 조금 편해진다. 하지만 결국에는 결합 때 쓰는 본드 때문에 결합부를 다시 사포질하고 마감하게 되니 두벌일을 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조립을 모두 하고 마감 칠을 하게 된다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완벽하게 마감을 할 수가 없다.

 

이렇듯이 목수는 끊임없이 과정을 생각하면서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부족한 경험치로 인해,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계속 생긴다. 결국에는 그 변수들이 모두 추가되는 노동 시간으로 변한다.

 

이런 과정을 잘 설계하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마감의 품질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도 남아 있다. 누가 봐도 좋아 보이게 만들 수는 있지만, 비용은 정해져 있다. 비용에 따라 제작하더라도 마감 수준의 하한선을 지키려다 보니 또 시간이 든다.

 

그렇게 어떤 선택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과정을 생각하고 행동을 선택한다.

복잡다단한 과정들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실행해야만 하는 삶이 계속되지만, 내 경험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노하우가 없어 밤을 새고 나서야 ‘아 이렇게 하면 힘들구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 참 슬프다.

 

스스로 변수들을 통제하고 나면 일을 좀 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거의 모든 순간, 어제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5년 전보다는 훨씬 많은 경험이 쌓였다. 그렇다면 내가 이 일을 잘 해내려 애쓰는 과정은 목 뒤 근육이 뚝 하면서 경직되거나 온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몸에 엄청난 무리를 가할 것이 예상되는 일정의 일이더라도 “하겠다”고 번번이 외치는 나의 선택 때문일까? 하지만 이 일을 받지 않으면 다음 주에 할 일이 없으니…… 흔쾌히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이 끊겨 생계가 흔들리는 것보다는, 일의 성격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단가는 안 좋고 마감은 바빠 밤을 새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좋은 일만 골라 할 팔자가 아니다. 나에게 그런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도 넉넉하고 마감 기한도 충분한 일은, 나 같은 별볼 일 없는 실력을 가진 기술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결국 주에 60~80시간을 오가는 이 길고 긴 노동 시간은 내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일을 배운 방식과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너무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집착하는 가구의 품질과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고. 그런 태도와 집중력은 작게 일하더라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핵심은 이러한 질문들에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일들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만큼 고려되는가.

세상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노동으로 얼마 만큼의 돈을 벌려 하는가.

업무의 책임이 한 곳으로 쏠린다면 그건 괜찮은 구조인가.

사람은 너무 많이 일하고 있을 때 멈춰야 한다고 충분히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기도 하고, 그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과로사로 죽는다.

▲ 목공소 캘린더

이번 여름에는 목공소가 일이 많다.

7~8월 일정을 정리하는데, 광복절 이전까지 2일 놀면 대박인 거고, 딱 1일이라도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력의 수많은 점들이 더위만큼이나 숨을 턱턱 막히게 할 것이 분명하다.

잘게 나눈 책임

요즘 세상에, 일을 많이 해서 맞이하는 죽음이란 참 이상하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워라밸을 최고 가치로 치는 시대에 믿기지 않겠지만, 여전히 과로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해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2020년 한 해에만 택배 노동자 22명이 과로로 죽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대형 트럭에서 쏟아지는 택배 수천건을 분류하고 밤늦게까지 계단을 달리며 물건을 배송하다 쓰러졌다. 하루에 18시간씩 화물차를 몰고 인천에서 부산을 오가는 노동자가 졸음운전으로 죽는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외쳤던 그들의 파업은 탄압과 조롱을 받았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물류 센터에서 까대기1를 하던 노동자는 열사병으로 죽는다. 너무 늦게까지 야근하던 직장인들이 저도 모르게 쓰러진다. 나 같은 자영업자들은 과로 때문인지도 모르고 죽는다. 작년에 봤던 어느 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동안 업무상 재해 인정자 중 뇌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만 2,503명 이라고 한다. 1년에 500명이 뇌 심혈관 문제 때문에 죽는 꼴이다.2산재처럼 사회 보험망 안에서 파악되는 수치만 해도 이렇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랜 노동으로 병들고, 쓰러진다.

 

모두들 세상이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잠깐 파업이라도 하면 세상은 ‘저 놈들은 배부른 소리 하는 놈들’이라며 난리를 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이 멈추면 삶은 굴러가지 않으니까. 그들이 쓰러지더라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만 세상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주간 노동 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자고 말하고, 최저 임금이 최고 임금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실업 급여를 ‘시럽 급여’라고 이야기하는 치들이 있다. 이 자들에게 계속 마이크가 가고, 권력을 휘두를 힘이 계속 실리고 있다. 나에게 정치란, 마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더욱 더 공고해졌으면 하는 큰 욕망덩어리’로 보인다. 힘있는 자들이 힘이 없는 자들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무력감이 든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돕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아간다. 그런 힘으로 때로는 더 재밌게, 때로는 미친듯이 열심히 일할 수 있기도 하다. 집중력 있는 노동에는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가 만드는 매력이 있다. 몰입감이 넘치는 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다.

또 우리는 때로, 한마디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생계의 책임이나 현장에서의 책임이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몰입 때문이든 피하지 못할 책임이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앓거나 죽는 것은 너무 슬프고 억울하다. 잘 살아 보려고 하는 것이 일인데, 바로 그 일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런 고통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게 돌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책임을 잘게 나눌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하여 나도 주말에는 쉬고, 저녁에는 일찍 마치고 씻고 밥 먹은 후 산책도 하고 싶다.

 

 

1까대기: 물류업 현장에서, 지게차 파레트에 있는 물건을 풀어서 분류 롤러 위로 올리는 작업을 이르는 말.

2노컷뉴스〉, 2022. 07. 15.

댓글 4
  • 2023-11-13 09:21

    잘살려고 일하는데 그 일때문에 죽는 ㅠ
    한세대 두세대가 지나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건 우리책임일텐데 ㅠㅠ

  • 2023-11-13 09:31

    과로인지 알아차리기도기리 전에.... 죽는 현실, 어진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착찹하네요 ㅠ

  • 2023-11-17 08:14

    날씨가 쌀쌀해집니다.
    몸을 살피는 일도 정신줄을 바짝 잡아야 하는 현실...
    뭘 어째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저 작은 마음이라도 어진님의 마음에 보태고 싶어집니다.
    글 고맙습니다.

  • 2023-11-21 17:40

    어진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내년에도 드립커피 내려주세요. 감 열심히 딸게요!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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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1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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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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