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musa
2023-10-31 21:02
395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여행은 '또 와야지'하는 막연한 제주앓이로 끝났었는데, 이번 여행은 '2024 제주 일년살이!!'라는 야심찬 계획으로 이어졌다.

매일 아침 숙소 앞 바닷가 산책을 했다. 임수가 많이 좋아했다.

 

우리의 소원은 토일~​

 

올 3월 2일로 기억한다. 백수가 된 지 1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 산책을 다녀와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각자 출근복(임수)과 일상복(정화)으로 갈아입었다. 그 순간 망연자실해하던 임수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 표정에는 아마도 '정화가 진짜 퇴직을 하긴 했구나. 나만 출근을 해야하는구나. 흑ㅜㅜ' 같은 심정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퇴직 이후 한동안은 표정관리를 했다. 내딴에는 임수가 부러워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왜 아니겠는가? 나 역시 직장인이었을 때 소원은 통일, 아니 토일(토요일, 일요일)이었으니 말이다.

제주에서 1년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임수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퇴직 후 둘이 함께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략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꾸릴 당시만 해도 임수의 이른 퇴직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번내쓴'을 전제로 한다면 내가 그동안 저축한 돈은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다. 내친김에 은퇴 후 예상되는 한 달 생활비를 헤아려 보았다. 역시 지금 가진 자산만으로 우리 둘이 함께 생활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정임합목 톡방 공지사항에도 내역을 올려놓았다. 분명 임수도 보았을텐데 이틀동안 이렇다할 언급이 없었다. 사흘이 지나고나서야 임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살짝 현타가 왔다고. 퇴직하고픈 마음이 앞서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객관적 수치로 정리된 표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고. 미안한 맘도 들었다고 했다. 정화가 직장생활하는 내내 아껴 모은 돈인데... 혼자 쓰면 좀 더 여유있게 쓸 수 있을텐데...라며.

 

 

2023 백수 오딧세이​

 

많은 것이 불투명했던 직장 신입 시절. 그래도 2023년에 꼭 퇴직하겠다는 결심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내가 쓰는 아이디나 메일 주소에 '2023'이 붙어있는 이유다. D-5000부터 디데이 카운트를 했던 것 같다. 신입 때는 월급의 50%를 저축하기도 힘에 부쳤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연봉이 오르면서부터는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할 수 있었다. 백수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모았고 마침내 올해 퇴직할 수 있었다. 반면 임수는 대학원을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한지 이제 9년. 임수 역시 누구보다 아끼며 저축했지만, 재직기간이 길지 않다보니 우리 둘의 저축액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몇년 전 집을 사느라 대부분 지출했고, 대출도 받았다. 그래도 우리 성실한 임수는 내년 8월이면 남아있는 대출금을 다 갚는다.

현상분석을 끝내고보니 '2024 제주 일년살이'의 꿈은 조금 멀어져 있었다. 열망에 취한 나머지 우리 둘다 현실감이 떨어져 있었나보다.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임수의 퇴직을 위해서는 세 가지 선결 과제가 있었다. 우선, 백수 두 마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고, 다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줄이는 것,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미안해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둘다 물욕이 강하지 않다. 유행에 둔감하며, 편하고 부담없는 물건을 좋아하는 실용파다. 일년 전 이사오면서 인테리어도 최소한만했다. 떡하니 멀쩡하게 붙어있는 타일을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뜯어낼 수는 없었다. 썩지도 않을 폐기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중력에 못이겨 떨어질 때까지는 쓰기로 했다. 신기하게 각자 쓰던 전자제품도 냉장고 빼고는 겹치지 않아서 버리거나 교체하지 않고 합방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정화에게는 통돌이 세탁기가, 임수에게는 건조기가 있는 식이었다. 새 물건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다는 것, 돈을 벌어서 얻고 싶은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른 퇴직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과 함수관계이니 욕망을 줄이면 필요한 돈의 양 역시 줄어들 것이다.

우리집엔 그 흔한 꽃병 하나가 없다. 잼병이다.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두번째와 세번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임합목 공동퇴직을 위한 프로젝트. 이름하야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 무진장이란 문탁네트워크에서 실험 중인 비자본주의적 공동생활기금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를 흔들기 위해 2016년 11월(정식출범 2017년 4월) 문탁회원 24명이 각 50만원씩을 추렴하여 조직했다.(<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122-123)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꾸리고 살림을 합치면서 기존에 쓰던 전자제품을 자연스레 합방시킨 것처럼 자산을 넘어 마음까지 합방하는 퍼포먼스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있는만큼 내놓고 함께 쓰려면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놓는 마음도 쓰는 마음도 모두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해야 지속가능하다. 이역시 그간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증여와 순환의 정신이면서 정임합목이 함께 살며 터득한 돌봄의 기술이기도 하다.

내년 8월 임수가 대출을 다 갚는 시점으로부터 3년을 기산하기로 했다. 그 3년 동안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저축금으로 생활비를 쓰고, 임수의 월급은 최소한의 용돈과 공부비용을 제외하고는 저축을 하기로 했다. 목표금액을 모으는 것보다 막연한 불안함과 미안함을 없애기 위한 퍼포먼스의 의미가 더 강하다.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임수야말로 '70% 저축'에 최적화된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임수에게는 저축을 방해하는 이른바 '저축 5적'이 없으니까. 1) 식사 후 마시는 커피습관이 없다. 2)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아~ 입을 옷이 없어"라는 말은 사실 "아~ 신상이 없어"라는 말이라던데, 임수의 옷장에는 정말 입을 옷이 없다. 진짜 없다.ㅎㅎ(11월 9일 주워가게를 노려봐야겠다!!) 3)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4) SNS를 별로 하지 않는다. 5) 무엇보다 저축의 목적(이른 퇴직!!)이 확고하다.

 

 

3년동안 우리는 함께 생활비 가계부를 쓰면서 소비패턴을 체크해나갈 것이고, 더불어 공부와 대화를 통해 마음의 상태도 살필 것이다.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겠지만, "돈도 섞고 마음도 섞으면서 함께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131) 문탁 공동체 무진장의 앞선 발걸음에 기대며 가보기로 했다.

결국 '2024 제주 일년살이'의 꿈은 장렬히 전사했지만, 대신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을 낳았다. 실험을 마칠즈음이면, '2027 제주 일년살이' 혹은 다른 무엇으로 변용되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3년후쯤 정임합목 구성원은 전원 퇴직한다. 우리는 3년이라는 완충의 시간, 중간 지대를 건너며 잊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돈은 욕망과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 불안함과 두려움의 대상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드문 변수이며, 보통은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무엇보다 마음을 모으기로한 우리의 고민과 선택의 무게를 말이다.

 

댓글 12
  • 2023-10-31 22:33

    와앙~~~무진장이 정임들에게 이렇게 영감과 실험을 주다니요~~완전감동동~😍

    • 2023-11-01 10:34

      무진장을 소개해주시고 통찰을 주신 나은영 작가님~ 스페셜 땡스^^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두번째 읽으니 글이 더 더 좋네요^^

  • 2023-11-01 08:04

    늘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퇴직하기위한 선결과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있었어요. 퇴직은 하고싶은데 선의를 받아드릴 마음도 온전하지 않다는 점을 이번 일로 알게되었습니다~미안함을 넘어 이상한 자존심마져도 함께 풀어야하는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먹고산다는건 돈만이 아니고 마음도 함께 섞여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어요~!
    중간지대 퍼포먼스에 의미를 부여해준 정화에게도, 영감을 준 무진장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

  • 2023-11-01 09:24

    그대들, 진짜 힙하다!!
    완죤 리스펙^^

    글구 내가 뭐라도 보탤게. 임수옷장 채우기? 꽃병 나눠주기? 언젠가 제주일년살이에 보태기?(이건 사적 야심이 들어가있음..ㅋㅋ)

  • 2023-11-01 09:40

    와~ 멋집니다!
    그런데 비급하나 더 알려드려요.
    무진장 만이 아니라 연대기금, 길위기금, 문탁의 회계 거의 모든 곳에서 서로의 돈을 섞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오셔서 자세히 보시면 더 많은 영감을 얻으실 듯.^^
    그러니.. 간혹 공부방에도 왕림해 주시옵기를..ㅎㅎㅎ

  • 2023-11-01 09:51

    와~~~~~
    두분 넘 멋져요!!

  • 2023-11-01 10:41

    정임합이 목이 되어가네요! 진짜 멋져부러~~~~^^

  • 2023-11-01 11:04

    두 분 넘 멋지네요! 제주도 응원합니다(사심가득?)!!
    D-5000 이라니. . 대단하십니다!

  • 2023-11-01 13:47

    무진장에서 오히려 배우러 가야 될 거 같아요. 응원합니다^^

  • 2023-11-01 14:31

    그렇게 체계적으로다가 난잡해질 수 있는 두분의 우정이 너무 부럽네요~ 저도 응원 보냅니다^^

  • 2023-11-02 14:09

    진짜 대단하네요^^ 2027년 제주 일년 살이 화이팅!

  • 2023-11-05 17:33

    그야말로 긴장감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이야기네요~
    읽으면서 응원도 하게 되고 기대도 하게 됩니다!
    멋져요~~~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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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1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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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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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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