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얼굴들

경덕
2023-10-2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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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얼굴들

 

 

 

비질을 다녀온 후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몸부림, 울부짖음, 가쁜 호흡, 헐떡거림, 충혈된 눈, 절뚝거리는 다리. 그런 몰골로 그들은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비질이 끝나고 나는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와 말끔해졌다. 그들은 부위별로 해체되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멀쩡한 몸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축산농장에서 태어나 좁은 철장 속에서 오물, 악취와 함께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 태어난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마셨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향했을 것이다. 

 

축산업의 세계에서 '6개월'은 효율적인 고기 생산을 위한 기간이다. 그리고 인간의 쓸모에 따라 부여한 돼지의 수명이다.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로 활동한며 <여섯 달>이라는 영화를 만든 김지원 감독은 서울동물영화제(SAFF)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돼지의 수명은 대략 10년에서 15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인간 손아귀에서 고기로 태어난 돼지의 수명은 6개월이죠. (...) 돼지의 '여섯 달'은 결코 흐르는 시간이 아닙니다. 태어남으로써 이미 도축되었으니 그것은 그저 텅 빈 시간 속에서 듣는 이 없이 쌓여갔던 비명의 한 덩이 무덤 같은 것이죠. (...) 그 여섯 달에, 새벽이와 잔디라는 어떤 돼지들은 여전히 살아 삶을 증명하고 있다는 진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1)

 

 

[SAFF 2023 Trailer] 여섯 달 6 Months 캡처 

 

 

도살장 앞에 선 사람들

 

이전에도 도살장 앞을 찾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아니타 크라인크Anita Kranjc는 개와 산책을 하다가 트럭에 가득 실린 돼지들과 마주했다. 근처에는 도살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돼지를 본 건 처음이었고, 그들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이후에 그녀는 토론토 피그 세이브Toronto Pig Save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도살장 앞을 찾아갔다. 2011년 7월 어느 날. 그들은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선 트럭으로 재빨리 다가가 돼지들에게 물과 수박을 주었다. 최초로 비질 모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2)

 

 

이후에 도살장 비질 모임은 국경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미국배우조합상(SAG : Screen Actors Guild)에서 조커로 최우수배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는 시상식 이후에 턱시도를 입은 채로 도살장 앞을 찾아갔다. 동물권 단체(Los Angeles Animal Save)에서 주관하는 비질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비질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류 및 유제품 산업에서 일어나는 고문과 살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았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3)

 

한국에서는 2019년 처음으로 비질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 해 7월에 새벽이가 구조되었다.) 서울애니멀세이브(Seoul Animal Save)와 디엑스이코리아(DxE-Korea) 활동가들은 시민들과 함께 도살장 앞을 찾았다. 섬나리 활동가는 2019년 9월에 있었던 비질 모임을 회고하며 이렇게 썼다. "도살장 앞에서 죽기 직전 동물들의 눈빛을 마주하는 일은 활자와 영상만으로 동물권을 접했던 것과는 달랐다. 두통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악취와 동물들의 비명이 나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몸을 뒤덮은 분변이 내 손에 옮겨 묻자 불쾌함이 느껴졌다.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질수록 나의 기만이 들통나는 것 같았다"4)

 

2021년 12월 <당신의 얼굴 Your soul>이라는 비질 사진전을 기획한 혜린 활동가는 전시 소개글에 이렇게 썼다. "작년 5월 27일 첫 비질을 시작으로 최근 11월 29일까지 나는 29번의 비질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29일은 한국의 농장에서 한 명의 닭이 태어나 도살장에서 살해되기까지의 기간이다. 나는 29일간 비질을 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도 특권을 가진 인간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29일이면 도살되었지만 29일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 그곳 도살장 앞에서 시선의 마주침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목격한 만큼 그들도 나를 목격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증인'으로 불렸지만 내가 아는 진짜 증인들은 모두 죽임 당했다. 내가 마주한 동물들은 모두 용감했고, 모두 울고 있었다. 나는 사진 속 당신들의 얼굴과 몸을 기억한다. 당신들이 어떤 소리를 냈고, 어떤 몸짓으로 말했고, 어떤 표정으로 어떤 온기를 내뿜었는지 기억한다. 소리와 냄새로 만났던 모든 당신들을 기억한다."5)

 

혜린 활동가 인스타그램 계정

 

2022년 10월 비질 모임에 참여한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돼지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곳의 돼지들은 저를 볼 때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 초점이 딱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늘 만난 돼지들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 기억에 남아요." 같은 날 비질에 처음으로 참여한 청소년 활동가도 있었다. "어쩐지 멍한 상태예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잘 들지 않아요. 트럭 안에 있는 돼지들을 봤을 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가까이서 보니 잘린 꼬리 같은 몸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왔고요. 돼지가 저한테 와서 제 손 냄새를 맡게 해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숨이 되게 따뜻했어요.”6)

 

 

돌봄과 비질

 

비질에 참여했던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들이 다시 모였다. 비질에서 경험한 세계를 비질 바깥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의 당혹감, 우울감, 회의감이 우리를 다시 모이게 했다. 돼지들과의 마주침 이후의 비틀린 감각, 상처 입은 마음을 공유하고, 일상에서 겪은 감정의 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돌봄 활동가들은 자체적으로 비질 모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혜리 활동가가 새벽이생추어리 비질(dawn_vigil_)이라는 이름의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7) 프로필에는 "비질을 기록하고 마음을 나눕니다."라는 한 줄 설명을 달았다.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모임을 소개할 수 있는 낭독문8)도 작성하기로 했다. 나는 초안을 맡았고 이후에 그린 활동가와 회의를 거쳐 수정, 보완했다. 새벽, 잔디를 만나온 우리를 묶어줄 수 있는 공통 키워드로 나는 '돌봄'을 떠올렸다. 새벽이생추어리 돌봄은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과 밀접 접촉하여 서로의 냄새와 분비물을 묻히고, 서로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살피는 상호의존적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돌봄 활동가들은 서로의 돌봄 행위를 일지를 통해 공유해왔다. 나는 새벽, 잔디와 함께 비인간 동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활동가들의 지속적이고 섬세한 실천을 지켜보며 종종 감탄했다. 비질에서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돼지들과 신체적 관계를 맺는다. 그들에게 물과 음식을 건내며 그들과 돌봄 관계로 뒤얽힌다. 나는 비질과 돌봄이 교차하는 자리에 우리가 서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초심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가 릴레이로 지속해온 '돌봄'을 떠올리기를 희망했다.

 

낭독문은 비질 모임이 진행되고 활동가들의 피드백을 거쳐 계속 수정되고, 보완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기록하기

 

2023년 10월 10일. 나는 두 번째로 비질에 참여했다. 새벽이생추어리 비질(dawn vigil)에서 여는 첫 모임이기도 했다. 도착해서 처음으로 목격한 트럭은 밖에서 정차하지 않고 바로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고 입구 쪽에 대기하고 있어서 우리는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돼지들을 만났다. 페트병을 꾸욱 눌러 돼지들에게 물을 주기 시작하는데 어떤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물 주면 안 돼. 물을 주면 키로수가 틀려진다고. 다 달아서 이거 돈 주는 건데. 돈이 다 틀려지는 거라고. 돈이. 저울에 딱 달아놨는데 물 준만큼 숫자가 올라가면 돼지 값이 올라가는 거야. 보고 그러는 건 괜찮지만 물 주면 안돼. 그리고 여기 들어오지 말어. 저기까지 가라고."9) 트럭은 곧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갓길에 서서 다음 트럭을 기다렸다.

 

돼지에게 물을 주다 보면 얼굴에 이물질이 튀기도 한다. 생강 활동가는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입에 물을 주다가 돼지 몸에 맞고 튀긴 오물물이 내 얼굴에 옷에 묻었다. 처음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점차 마음이 편해지며 피하지 않게 되었다. 잠시나마 우리가 같은 오물을 묻히고 같은 냄새가 나서 나는 덜 부끄러워졌다."10)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돼지를 바라보며 가만히 기도를 하던 재현 활동가는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그저 손을 모으고 절을 해요. 이 도로로 끌려왔고 곧 공장으로 끌려갈 동물들이 그들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사회의 도덕을 뚫고 감각과 의식의 영토 위로 불쑥 솟아나 기어코 타자의 자리를 쟁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11) 영인 활동가는 절을 하다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정신없이 사진 찍고 물을 주느라 잊고 있었는데,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있으니 꼭 내가 저들을 살려달라고 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생명은 살리려고 애쓰고, 어떤 생명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죽이려고 애쓰는 세상이 슬프고 비참해서 눈물이 났다."12) 그러면서도 우리의 '이상한' 행동이 기쁘게 느껴졌다고 썼다. "갑자기 나랑 이 사람들(비질 식구들)이 굉장히 ‘이상한’걸 하고 있구나 실감이 났다. 수없이 많은 돼지가 빽빽하게 트럭에 실려와서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당연한 세상에서 그 목숨들을 애도하는 것이 사회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 같고, 그래서 기뻣다…"

 

 

 

 

 

 

 

 

 

 

 

영인, 다큐 <231010 비질> 캡처 

 

그리고 우리는 낭독문을 함께 읽었다.

 

 

10.10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낭독문
 
 
- 비질은 도살장 앞을 찾아가 종차별주의 사회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함께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입니다.
 
- 비질(Vigil)은 본래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정치적인 집단행동을 의미하지만,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가 도살장 앞에서 동물들을 애도하는 비질을 시작하면서 풀뿌리 동물 해방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DxE-korea와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처음으로 비질을 시작했습니다.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활동가들은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정기적으로 돌보면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계와 착취를 예의주시하고, 종간 경계를 뛰어넘는 신체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돌봄은 시혜적 태도로는 참여할 수 없는 '상호의존적 활동'이고, 인간 또한 동등한 동물로서 그들과 연대하는 모두의 '동물해방운동'입니다.
 
- 돌봄은 비질로 이어집니다. 새벽이, 잔디와 접촉하며 연결된 돌봄의 감각으로 도살장 앞을 찾아갑니다. 죽음 직전의 동물들에게 물과 음식을 건네며 그들과 짧은 순간이나마 돌봄 관계로 뒤얽힙니다. 그들의 눈을 응시하고, 그들의 살을 만지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습니다.
 
- 새벽이생추어리 비질에서는 돌봄과 비질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동물들을 마주하고, 죽은 동물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기로 태어난 동물들의 비극적 현실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그 자리로부터 전해진 장면과 이야기를 퍼뜨리고, 우리에게 공유된 마음을 나누고 기록할 것입니다.

 

 

목격과 증언

 

비질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이 기록되고 있다. 비질을 목격한다는 건 비인간 동물 당사자들의 고통과 더불어, 그 경계를 뛰어넘어 고통에 전염된 활동가들의 마음까지 살핀다는 의미로 생각해본다. 비질을 증언한다는 건 도살장 앞에서 목격한 장면과 동물과의 지속적인 마주침으로 변해가는 우리의 행동과 언어를 함께 기록하는 실천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비질은 새벽, 잔디와 함께 새벽이생추어리를 만들어가는 돌봄 네트워크와 끊임없이 연결되고, 그 밖의 장소에서 고통 받는 인간/비인간 동물들과 연대하며, 그들을 맞아들이는 환대의 모임이라고 생각해본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난다. 도살장 앞의 동물들과 마주한다. 마주침 이후의 언어와 행동을 기록한다.

당신들의 나이듦을 충분히 목격하고, 증언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고 싶다. 

 

 

이사 레슈코, <사로잡는 얼굴들>

VIOLET, POTBELLIED PIG, AGE 12, ll

 

 


 

1) 서울동물영화제, <여섯 달> 김지원 감독과의 인터뷰

https://www.instagram.com/p/Cyr_8uFgXDx/?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2) ANITA KRAJNC, BRINGING THE WORLD TOGETHER TO BEAR WITNESS

https://unboundproject.org/anita-krajnc/

3) Joaquin Phoenix Followed SAG Awards With Vigil for Pigs: “I Have to Be Here”

https://www.hollywoodreporter.com/news/general-news/joaquin-phoenix-followed-sag-awards-vigil-pigs-i-have-be-here-1271468/

4) 더는 뺏길 게 없는 도살장 앞 흰 소…‘비질’은 계속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32789

5) <당신의 얼굴 Your soul> 비질 사진전, 2021. 12. 10. - 12. 23.

https://godehr98.wixsite.com/-site-1

6) 생명의 경계에서 - 비질 참여 현장 (2)

https://www.bigissue.kr/magazine/new/312/2016

7)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https://www.instagram.com/dawn_vigil_/

8)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낭독문, 231010

https://www.instagram.com/p/CySrjuWO3r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9) 영인, 다큐 <231010 비질> 

10) 생강, 231010,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https://www.instagram.com/p/CyksLNRJW8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11) 재현, 231010,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https://www.instagram.com/p/Cya4-zBLatT/?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12) 영인, 231010,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https://www.instagram.com/p/Cykpw2KpPsZ/?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댓글 4
  • 2023-10-23 14:04

    경덕님을 통해서나마 비인간동물들과 인간동물의 관계를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그들을 위해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 2023-10-24 14:38

    목격자들의 증언을 나도 모르게 숨죽이며 읽게 되는군요.

  • 2023-10-24 21:18

    <사로잡는 얼굴들>의 사진을 한참 보게 되네요....

  • 2023-10-25 19:07

    조아라..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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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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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의 근사한 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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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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