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걷는 게 어때서 !

가마솥
2023-10-22 15:05
375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휙~ 돌아 서려다가 거대한 몸집과 부딪혀 몸이 허공에 붕 떴는데, 어떤 자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순간 판단이 늦으니, 유도 초단 실력의 낙법을 사용하지 못하고 팔을 먼저 땅에 집고 떨어졌다. 뼈가 잘 붙지 않는 것인지 거의 두 달간을 깁스하였다. 부상보다도 힘든 것은 팀원 간의 갈등이었다. 젊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가끔은 다른 팀과의 경기도 하다 보니, 경기력 향상으로 분위기가 흐르면서 승부에 집착하는 게임이 늘어났다. 당연히 얼굴 붉히는 일도 자주 생긴다. 몸은 점차 느려지는데, 실력을 요구하면 어쩌라고! 조용히 그만 두는 수밖에.

 

 

 

 

등산, 산이 좋아서 전국의 산을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좋겠다. 나도 한때 아들 놈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르친다고 백두대간을 걸었다. 땀 흘린 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주는 기분, 발아래 탁 트인 가슴 시원한 풍경을 보는 것, 파릇파릇한 생명들의 꿈틀 거림을 느낄 수 있는 기회,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온갖 물감으로 치장하는 단풍들을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무릎이 아파서 등산을 포기했다. 올라 갈 때는 괜찮은데, 내려 오면서 무릎이 아팠다. 대청봉에서 1/3쯤 내려 왔는데, 무릎을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뒤로 걸으며 내려 온 적이 있다. 119를 불러야 하나를 고민하며 밤 11시쯤 하산한 뒤로는 등산을 포기했다. 가까운 청계산도 내려 올 때는 꼭 아프다. 군악병 시절에 뻣뻣 다리로 오랫동안 서 있던 시간들이 무릎연골을 굴곡지게 만들었고, 그 연골이 말썽을 피우는 것이란다. 의사의 처방은 무릎 옆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는 방법뿐이라는데, 그 근육키우는 운동을 하면 무릎이 아프다. 나는 산에 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제는 공차는 것을 그만 두고 공을 친다. 골프. 현역 때에는 골프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첫 째는 일단 시간이 하루 종일 걸린다. 휴일에 다른 재미난 일을 골프 때문에 할 수가 없다. 또 토요일에 축구를 하거나 마당일을 하고 나면,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일요일 골프가 엉망이 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 실력이 이럴 리가 없는데,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쌓인다. 두 번째는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다보니 접대를 하거나 접대를 받는 골프이다. 주말에, 그것도 시원한 필드에서 맘껏 놀지 못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업무의 연속인 것이다. 요즈음에 골프를 자주 나간다. 은퇴 후에 모인 친구들 덕분이다. 접대골프가 아니니 맘껏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소소한 내기를 하며 약간의 긴장감을 넣으니, ‘골친’들끼리 승부가 붙었다. 세상에. 귀찮다고 걷지도 않는 내가 골프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한다. 비거리가 좀 늘면 좋겠지만, 무리하게 휘두르다가 엘보우라도 생기게 되면 이 것도 접어야 하니, 운동삼아! 살살 정교한 거리를 보내는 ‘연습’을 한다.

 

 

 

 

운동해야 한다고 난리인데......

 

몸 움직임이 적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한다. 주로 헬스장을 이용한다. 나도 헬스장을 끊어 본적이 있다. 동천동에서 광화문의 사무실을 나갈 때이다. 남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나가면, 편도로 2시간은 소비해야 한다. 부지런을 떨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헬스를 하는 것이다. 한 달만 해보려고 했는데, 한 달짜리 금액에 조금만 더하면 3개월,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태면 6개월을 이용할 수 있었다. 6개월짜리를 끊고, 한 10일 나갔다가 그만 두었다. 너무 너무 재미없었다. 벤치 프레스 등 기구들을 붙어있는 설명서대로 들어 보았다. 다음 날 뻐근할 뿐이지 근육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무릎옆 근육을 키우는 게 헬스하는 목적이니 주로 이용하는 것이 런닝머신이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일정하게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나를 걷게 하는 것이 싫었고, 땀이 비짓비짓 배어 날 때의 그 찝찝함을 씻어 줄 바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머신을 멈추고 내려오면 매우 어지러웠다. 헬스? 6개월짜리 회원비를 날린 나의 흑역사를 다시 깨우치고 싶지 않다.

 

 ‘나이 먹을수록 젊게 살자’는 말이 있다. 그 동안 이 말은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나이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게 살자며 나이 든 사람이 나와서 운동기구를 들며 복근 자랑하는 것이나 아직도 ‘팔팔’하다고 외치는 광고들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나이 먹은 사람도 ‘젊게 살자’는 것은 생각을 젊게 가지자는 말일텐데, ‘육체적인 젊음’에 방점이 찍힌 의미로 말하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목적없이 걷기를 싫어하는 것은 ‘나이 들면 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용한 광고 속의 사회적 정언명령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혹은, 나의 내면에서 이제는 나의 몸도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가 사회적 은퇴를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것처럼 나이 먹은 나의 몸의 변화를 부정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노쇠와 노화

 

 그런데, 요즈음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마당일하고 나면 다음 날 손가락 마디가 관절염 걸린 사람처럼 뻣뻣해 진다. 한참을 쥐락펴락해야 쓸 수 있게 된다. 손가락만이 아니다. 마당에서 땀 흘리고 일하다가 어질어질한 순간을 맞이한 적도 있다. 무조건 한참을 쉬어야 수습이 된다. 저혈압이라서 그렇단다. 다른 방법은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단다. 참나...... 움직이지 말고, 숨만 쉬라고?

 

몇 십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의 얼굴은 살아온 이력이 묻어나는 모습일텐데, 너무도 나이 먹은 티가 난다. 나는 ‘하나도 안 변했다’는 소리도 듣는다. 고등학교 때 내가 그렇게 늙어 보였나? 그럴 리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의 몸의 변화와 나의 몸의 변화가 별반 다르지 않다. 관절, 노안, 야뇨증, 달리기, 어지러움, 약간의 당뇨, 콜레스트롤 등등.

 

똑같은 ‘노화’를 겪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서 ‘노쇠’함이 보인다. 사전에서 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 기능 쇠퇴인데, 노쇠는 개체의 노화로 조직이나 기관의 퇴행이란다. 노화는 막을 수는 없지만, 노쇠함을 막아 보자는 방법으로 운동을 권한다. 운동으로 조직이나 기관의 퇴행을 막아 보자는 것이다. 늦춰 보자는 말일게다. 그나마 이 정도 얼굴모습을 가진 것도 숨을 헐떡이며 뛰는 축구를 최근까지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힘들지만......

 

 

 

 

 

 

격한 스포츠 대신에 걸어 볼까?

 

친한 친구들 중에 두엇 친구가 걷기를 즐겨 한다. 그날 그날의 달성도를 보여주는 앱 정보를 캡쳐해서 그룹 카톡에 경쟁하듯이 올린다. 하루에 일만 보를 걷는 게 그들의 목표이다. 만보기 회사를 광고하는 것도 아닐텐데, 꼭 만보를 채우느라 늦은 밤에도 나가서 걸었노라고 후기까지 올린다.  그 들은 노년건강을 위해서 노쇠를 막는 자기관리를 하는 중일게다.

 

그렇게 걸음 수에 목숨 걸고 걸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격한 스포츠를 통해서 운동하던 몸은 지난 것은 분명하다. 또, 은퇴 뒤에 목적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한 물간 사람의 행동같이 느껴져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인위적인 운동을 무작정 거부하였다. 이제 그럴 때가 아닌 듯하다. 내 몸의 세포들이 자기 수명동안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하려면 일부러라도 움직여 주어야 할 나이임을 인정하는 것이 솔직한  일이다.

 

사실, 그 동안 Door to Door를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걷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어려운 수학문제를 생각하며 뚝방 길을 걸었고 곧잘 풀린 기억을 꺼내 보면, 꼭 건강을 위해서만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난해한 철학서 한 문장을 들고 걸어 봐도 좋을 듯하다. 책상에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불현 듯 ‘번쩍’할 수도 있는 일이지 않는가.  좋아하는 음악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걸어도 좋겠지.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직립보행이 인간다움의 시작이라고 말하는데, 내 안에 고개 숙이고 있는 DNA가 깨어날 지도 모른다. 요즘 거의 스스로 걷지 못하여 삶의 질의 형편없어진 장모님을 보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엄청난 행복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스스로 걷지 못할 때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에, 무엇에 서두를 필요없이 아무런 구속도 받지 말고 마음껏 걸어 보자.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댓글 4
  • 2023-10-25 20:47

    와우 ~~가마솥님 미남이시군요~~ 각잡고 걸으러 나가면 3만보쯤 걸어야 후련한 저로서는 ㅋㅋㅋ 샘의 걷기를 응원합니다~~

  • 2023-10-27 21:10

    운동, 건강, 뭐 이런 것과 상관없이.. 걸으면.. 정말 좋은데!!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까요?ㅎㅎㅎ

  • 2023-11-11 20:45

    앗! 아침 손가락 뻗뻗 증상과 저혈압 증상ᆢ 마솥샘 저랑 같은 증상 ^^
    웃을 일이 아니네요. 전 손주도 없는데ᆢ ㅜ

    하여 저도 걸어보겠습니다! 즐기며~~~~

  • 2023-12-12 00:43

    이제서야 읽네요^^ 넘 좋은 글~감사해요~~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2024.01.10 | 조회 431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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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28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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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30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7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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