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공방> 3회차 후기

진달래
2016-03-04 00:17
519

대학 경 1장

 

드디어 경1장을 합니다.  분명 한 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인데 오늘 끝까지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大人에서부터 걸리기 시작합니다.

 대인이 소학을 끝내고 벼슬에 오른 사람들을 이야기를 하는 건지

그냥 15세 이상의 어른을 의미하는 것인지

일단 신유학의 등장으로 벼슬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士가 등장하는 걸로 봐서

관직에 오른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닌걸로

<맹자>에 대인이 꽤 많이 나옵니다. 진심 상 19에

有大人者 正己而物正者也 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대인이 되려고 하는 학문'이라는 번역도 될 것 같은데요.

 

氣稟과 人의 문제 역시 한참 논의가 되었습니다.

기질에 가려진 마음으로 사물의 무궁한 변화에 접한다면 여러가지 욕구 즉 인욕이 덕을 해치는 것을 어떻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했지만 제가 생각할 때 기질을 다르게 받았기 때문에 인욕에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는데 이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

주희는 理와 氣가 있는데 형질적인 氣는 보편적인 理와 달리 正 偏 通 차이가 있고,

이 중 인간은 바르고 통하는 기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이 되었지만

淸, 濁, 美, 惡의 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智, 愚, 賢, 不肖의 구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욕이 적고 어리석은 사람이 인욕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을지....

 

그런데 제가 <맹자>에 '명덕'  단어 찾기를 치니까 안 나옵니다.

그래도 明德은 맹자의 性善을 말합니다.

 

주자가 이야기한 心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철학사>에 '영명한 기능(靈處)'은 心이고 性이 아니며 性은 理일 뿐이라고 

일체 사물은 그 리가 있으므로 지각도 지각의 리가 있다. 그러나 지각의 리는 단지 리일 뿐이고, 지각의 구체적 사례는 

반드시 '리와 기'가 결합해야' 비로소 생길 수 있다. - 알듯 모를듯해서 이렇게 정리해서는 잘 모를 것 같습니다. p553~555

<중국철학사>를 다시 꼼꼼이 읽고 정리를 해야 겠습니다. 

 

虛靈不昧가 불교의 용어이지만 올라가보면 도가의 용어에서 시작합니다.

 

노자 16장은

 

致虛極 守靜篤

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靜曰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全 全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쓰다보니 대학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發에 대해서는 마음의 싹은 드러나 발현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사용된 것

 

止와 至는 止는 不遷의 문제로 至는 極으로 연결됩니다.

至善을 최고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여기서 지선은 가장 적중한 그래서 事理當然의 極으로 중용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어>에서 이야기하는 時中과 같은 의미입니다. 

 

명명덕과 신민과 지어지선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주희는 단계를 말하고 있다고 하는데 명덕을 밝히고 신민하고 지어지선하는 건가? 

아니면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봐야 하는 건가? 

제 생각에는 명덕과 신민에는 순서가 있다고 봅니다. 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봤다는 것이 

내가 명덕하고 다른 사람을 신민하겠다는 것 아닐까요? 

친민이라면 명덕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과 친민할 수 있지만 신민은 내가 명덕한다고 저절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모두 지선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은 순서의 문제는 아닌 걸로...

그런데 여기서 게으르니샘이 '우리가 잘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글쎄요... 지선은 시중과 마찬가지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안회정도 되어야 3개월 仁에 머무를 수 있다는데, 지선의 순간을 계속 유지하면 명덕이 되는 건데.....

 

3강령을 끝내고 8조목에 들어갔습니다.

8조목의 맨 처음은 知止입니다. 그칠 곳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주자의 주지주의적 입장이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일단 지선의 방향으로 뜻을 두어야 靜도 되고, 安도 되고, 慮도 되고, 得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物은 本末이 있고, 事에는 終始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本은 좋고 末이 그 다음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先後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앞의 3강령과 8조목의 두 문장의 뜻을 맺는 것입니다. 

8조목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이어서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유학의 心에 대해서도 필기는 했지만 정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후기는 아무래도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댓글 7
  • 2016-03-04 08:06

    하하하...이번 주 업데이트는 그냥 이거 죽  긁어다 붙여도 될 듯하네요.

    모범적인 후기.

     

    요즘 고전공방은....거의 아수라장이죠.

    근데 저는 재밌습니다.

    요러큼 정리를 해 나가면.... 연구기획팀의 소망대로....가을쯤엔 뭔가 중간 갈무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각자도생' (올해 고전공방의 모토! ㅋㅋㅋㅋ....) 잘 하고 계신가요?

  • 2016-03-04 08:10

    아, 한가지 덧붙일게 있는데

    '허령불매'는 심과 관련된 이론적 차원의 문제이고 (맹자의 '심'을 본체론적으로 입론한 송명유학의 '심' 사이에 불교의 '심'의 논의가 있는 것이죠)

    노자16장은 '허정' (다시 말해 靜) , 즉 수양법의 계보학을 논의하면서 언급된 것입니다.

  • 2016-03-04 10:04

    "8조목의 맨 처음은 知止입니다"

    ㅋ 이거 혹시 오타 아닐까요?

    제가 알기로 8조목은 격물,치지, 정심, 수기, 치인, 치국, 평천하 인걸로 아는데요^^

    그렇다면 2회차에서는 8조목까지 못 가지 않았나요? ㅋㅋ

    아닌가?

     

    덧붙여  善을 '잘 한다'라고 본다면

    지선의 경지는 곧 잘하는 경지에 이르러 계속 守(지킨다) 해도 무방할텐데요^^

    그러나 그 '잘 하는' 모습은 상황 상황마다 다를텐데

    그것의 極을 매순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문탁샘의 요지는 "그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였고

    저는 안다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면

    현재 제가 움직이고 있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들이

    모르기 떄문에 벌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게 할까?

    주자는 <논어>의 첫 문장을 주석을 달기에 學에 대해 '본받는다'고 풀었습니다.

    그럼 함께 움직이는 이들 사이에서 본받기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 공부라면

    문탁샘의 질문은 "너는 왜 본받지 않니?"  라고 바꾸어도 무방할까요?

    질문은 또 생기죠? 동학의 하는 바를 보며 누구는 저건 본받을 만한? 저건 아닌?

    ㅋ 이렇게 질문을 밀다보니 <논어>에서 세 사람이 함께 간다면 배우는 것이 있다 했던가요?

    좋은 것은 배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의 모습에서 고칠 바로 또 배우고...

    즉, '본받는다'는 것은 좋은 점은 더 잘하도록,  아닌 것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모두 '본받는' 것이군요!

     

    저는 아마 주희가 계속 理를 궁구하여야 한다는 말이

    계속 배우면 뭐하냐 안 달라지면 말짱 꽝이지... 라는 어깃장이 생겨서

    그런 질문이 생긴듯도 하지만!

    앎은 드러남이라면 .... 주희가 궁구하라는 理 또한 살아내는 것과 함께 가는....

    주희의 理는 텍스트 탐구를 넘어서는?

    하긴 주희는 텍스트 또한 읽고 읽고 읽고.... 하라 했던

    뭔가 후기에 댓글을 단다 해놓고 딴 소리 하고 있는 듯한...

    여튼 정리 좀 하자면

    안다는 것은 드러나는 것이고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을 때

    그 앎을 궁구하는 방법 또한 다르게 궁구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정도로 하겠습니다.

    더불어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至善에 머무름에 있어

    안회처럼 得一善卽拳拳服應 하지는 못하더라도

    0.1초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 싶습니다^^

    ㅋ 어쩌면 루쉰의 '희망'이 바로 이것? ㅎㅎㅎㅎㅎ

    • 2016-03-04 20:51

      그러네요. 8조목은 격물, 치지........ 군요.

      저는 善이 그렇게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뭔가 善이 멀어 보이네요.......^^

  • 2016-03-05 15:32

    학이당에서 읽었던 진고응의 노자/ 영남대학출판부에 16장의 내용과 관련하여 설명이 되어 있어서

    공부방에 프린트를 해 두었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은 프린트를 해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2016-03-07 12:04

    2012년 학이당 최종에세이때 제가 정리한 대인 관련 문장 공유합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논어로 읽어보는 시도를 했었습니다~

    참고로 대인의 용례는 논어에도 나옵니다.

    LY1608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

    <논어>에서 대학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대부(大夫)나 태사(大師)처럼 직분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나 대국(大國), 대신(大臣), 대현(大賢), 대인(大人), 대덕(大德) 등과 같은 용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대부는 국정을 맡는 관리직, 태사는 고대 악관(樂官)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대국은 주왕실로부터 일천승의 전차를 허락받은 제후국을 가리키며, 대신은 머릿수만 채우는 무능한 신하라는 의미의 구신(具臣)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로써 임금을 섬기는 신하로 묘사된다. 대현은 현자(賢者)를 의미하며, 오늘날은 대현군자(大賢君子)라는 용어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대인은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 중 하나로 천명(天命), 성인(聖人)의 말씀과 비견되는데, 단순히 소인(小人)과 대비되는 개념 이상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상 살펴본 <논어> 자는 다양한 단어들과 결합하여, 명사화됨을 유추할 수 있다. ‘대학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위대한 학문이겠지만, <예기> 편명 중 하나로 쓰일 정도로 당시 보통명사로 쓰였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 <예기> 학기편에는 대학의 공부 방법이나 입학(入學) 등이 구체적으로 다뤄진 것으로 보아 적어도 한나라 때는 소학(小學)’과 같은 교육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도<대학>이 갖는 학제의 지향점, 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 2016-03-07 12:29

    그리고 당시 저는 에세이에서 논어를 바탕으로 친민으로 해석했지만,

    주희 당대에는 오십대국으로 갈라진 중국대륙에 대한 통일이후 민을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가 위정자들의 관건이였기 때문에

    신민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국경지역은 하루 아침에도 이쪽저쪽으로 갈라질 정도로 불안했다고 하니,

    어제의 오랑캐도 명덕을 깨달으면 오늘의 신민으로 거듭난다는 것!

    이외 명덕과 지선에 대해서.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

    위 논어 문장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덕을 고립시키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명덕은 백성들이 기꺼이 고개 숙이는 위정이덕에 가깝고,

    지선은 맹자의 성선설의 선이라기 보다는 예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LY1533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에세이 발췌

    앞서 말했듯이 至善은 사후나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덕과 예로써 실현가능한 최선(最善)의 상태이다. 그러니까 공자는 인으로 지키고, 신중하게 임하더라도, ‘()’를 갖춰 백성을 교화하지 않으면(動之不以禮) ‘한 정치가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의 기준점이다. (), (), (), () 같은 덕목들은 에 부합해야 한다. 이 덕목들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매사 중용(中庸)의 덕을 좇아야 한다.至善은 옛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으면 심오한 경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부단히 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첨부파일로 에세이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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