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에

도라지
2023-11-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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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밤은 다음날 있을 불교학교의 숙제를 올려야 하는 밤.

 

공식적인 숙제 마감시간은 밤 10시였던 것 같은데, 서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마감 시간은 사라진지 꽤 오래되었다. 불교학교 '법의 도반'님들은 잘 안다. 우리의 요요쌤은 월요일 밤,  숙제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그만 피곤하여 10시가 되기도 한참 전에 곤한 몸 눕히러 들어가신다는 것을. 우리는 요요쌤이 잠드시고 나면 쌤의 숙면을 빌며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숙제를 달리고 달린다. 요요쌤은 말씀하신다. "여러분~ 숙제를 일찍 쓰기 시작하세요~호호호~"라고 허나 우리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머릿속에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던 어느 월요일 밤엔 노트북에 깜빡거리는 커서만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는 이렇게 적었다.

 

"10시 30분까지 끝내고 와인을 마시자!"

 

 

 

한동안은 노트북 옆에 캔맥주를 놓고 숙제를 하기도 했다. 끝내면 마셔야지! 술은 역시 숙제 올리고 마시는 게 제일 맛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주종을 와인으로 바꿨다. 나는 보통 2만원 후반 (가끔 3만원)대의 와인을 산다. 나에게 큰 돈이므로 와인 한 병을 일주일 동안 아껴 마셔야만 한다. 그래서 절대 한잔 이상 먹으면 안된다. 절제만 잘하면 맥주보다 비용도 덜 들고 뱃속도 편하다. 언젠가 둥글레쌤이 나에게 말했다. "속이 안 좋아서 많이 못 마시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중독됐을 인간이야~~~응~!"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맨날 술 생각만 하는 인간 같다. 노!노! 술은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만 마신다. 나는 절제를 아는 인간이다. 특히 이번 주는 내내 속도 안 좋았고 건강검진도 있어서 숙제를 앞두고 허브통을 꺼냈다. 컨디션에 맞는 적당한 허브를 블랜딩한다.

 

 

 잘 블랜딩한 티를 프렌치 프레스에 넣어 진하게 눌러 마신다. 숙제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숙제만 하면 되는데...

 

 

 

숙제 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베이킹 영상도 하나 보고,

넷플릭스 요금제 변경을 위해 이것 저것 확인도 하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밤늦게 들어오는 큰아들 먹을 파스타도 만들어 놓고.

 

     

 

정말이지 이제 숙제만 하면 되는데...

 

매주 월요일 밤은 길고 짧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댓글 6
  • 2023-11-22 14:46

    크흐...도라지님이 그렇게 와인러버인 줄 몰랐네요.
    어쩜 숙제를 앞에 두면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지....
    다림질할 것이 떠오르는가 하면 냥이들 발톱도 당장 깎아줘야 할 것 같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들이 왜 갑자기 솜뭉치만큼 크게 보이는지....
    늘 숙제마감시각을 놓치는 일인의 극극극 공감 일기네요.

    이제 숙제만 하면 되는데....ㅋㅋㅋ
    책 읽으려다 문스탁그램 이하 이리저리 웹을 뒤지는 나는 뭐니...

  • 2023-11-22 15:56

    아!! 숙제 올라온 거 다 읽은 뒤에 자고 싶어요~~ㅎㅎㅎ

  • 2023-11-23 16:45

    파스타가 참 맛나 보여요!!ㅎㅎ.. 언젠가 정군샘 대신 저녁으로 한번..

    • 2023-11-23 18:16

      어이쿠! 제가 감히 졍셰프의 자리를... ㅎㅎ
      웍을 다루는 스케일이 다를겁니다. ^^

  • 2023-11-24 07:13

    숙제만 하면 되는데.......ㅎㅎㅎ
    울집 아들놈이 초딩 때, 숙제만 하려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었다를 무한 반복...
    보다 못한 누나가 "숙제를 걍 하던가, 아니면 그냥 자고 한대 맞고 말어 !"

    당근, 한대 맞는 것을 선택했답니다. ㅋㅋㅋ

    시험기간만 되면 전혀 눈길도 주지 않던,
    '세계문학전집'이 눈에 들어 오는 애비의 DNA가 이상하게 변주되어 내려가서 그렇다고 생각했죠.

  • 2023-11-25 16:58

    숙제하고 잡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