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파리와 붕당

느티나무
2022-07-15 10:12
157

파리와 붕당

 

  어찌어찌 하여 콩땅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증창승부(파리를 미워하는 부(賦))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곤충들의 계절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특히나 모기와 파리의 계절이다. 근처에 인간 외에 딱히 피를 가진 종족이 보이질 않으니 모기는 차츰 사람들에게 가까워지고 사람들은 그들을 퇴치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발명해 내고 있다. 하지만 파리는 청결을 부르짖는 인간들 탓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보기 드문 곤충이 되어간다. 옛날 길게 늘어진 끈적이에 가득 붙어있던 파리는 추억이 되었고 가끔 음식물 쓰레기 근처에서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글은 구양수의 묘사가 어찌나 자세한지 ‘똥’이 거름이 되던 때, 바야흐로 ‘파리들의 시대’라 불리었을 시기에 그들의 행태가 어떠했는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구양수는 이 집요하고 성가신 파리를 정적들과 비유했다. 북송의 영종 3년에 그의 생부인 ‘복안의왕’의 칭호를 ‘황백’과 ‘황고’ 중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마치 조선시대의 예송논쟁 같다) 구양수는 ‘황고’를 주장했고 반대파들은 그의 주장을 비판했다. 결국엔 태후가 구양수의 손을 들어주자 간관들은 사직을 하고 떠나버렸다. 글을 지은 시기로 짐작컨대 ‘황백’을 주장한 이 간관들을 파리에 비유한 듯하다.

 

파리야, 파리야! 나는 너의 살아가는 모습을 탄식하노라. 벌이나 전갈 같은 독한 꼬리도 없고 또 모기나 등에처럼 날카로운 주둥이도 없으니, 다행히 사람들의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하여 사람들의 기뻐하는 대상이 되지 못한단 말인가.”

  만약 스우파나 쇼미처럼 배틀이 붙었다면 떠나간 간관들은 어떻게 응대했을까? 처음부터 너무 강력한 펀치를 맞고 맥없이 나가떨어지지 않았을까? 파리의 생태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성가시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 하나하나를 참으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사대부의 관찰력과 표현력을 칭찬해야 하는건가... 하지만 그것을 다 비유로 보면 좀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당쟁에 휘말리면 다 그리되는 것일까? 또 파리는 무슨 죈가? 글을 읽다 보면 죄가 아주 많은 것 같지만 그게 파리 탓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저만치 앞에서 읽어야 할 것을 어찌어찌 이번에 읽게 되었는데 절묘하게도 뒤에 읽은 글이 구양수의 ‘붕당론’이다. 지어진 시기는 붕당론이 1044년 이고 증창승부가 1066년으로 22년이나 후에 지어진 것이다. 그때는 구양수가 간관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 쪽이었고 반대파였던 수구세력들이 범중엄, 구양수 등을 무함하여 ‘붕당’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붕당’이라는 명칭은 한나라 원제(元帝)때부터 시작되어 동한때 환관들을 거쳐 당나라 목종때부터 무종에 이르는 40여 년을 지나 송대(宋代)에 까지 이어지는 병폐였다. 붕당정치의 한가운데에 휘말렸던 구양수가 붕당에 대한 론을 쓰고도 22년 후에 파리를 미워하는 글을 쓴 것을 보면 글에 드러난 파리에 대한 실날한 미움이 정적에 대한 미움보다는 붕당의 현실에 대한 염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문강독 세미나는 방학이 있다.  5주 동안의 긴 여름방학이다.  아쉽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다. 진짜 신난다.  

         샘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8월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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