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에서 '정신'과 '마음'의 차이

세븐
2023-07-07 20:54
360

 

어제 세미나에서 나온 '마음의 역량'은 '정신의 역량'과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요요샘과 호수샘이 비슷한 질문을 하셨는데, 정신과 마음의 차이에 대한 진태원샘의 용어 해설이 있어 공유합니다.

 

정신과 마음으로 각각 번역한 멘스(mens)와 아니무스(animus)와 17세기 철학에서 매우 널리 사용된 심리학 용어 중 일부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고유한 어휘를 창안해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 대신 당대에 널리 사용되던 라틴어 어휘들을 빌려 와 그것들에 자신의 고유한 의미를 부여해 사용했다.

 

두 개념 중 더 많이 논의되는 mens는 데카르트 철학이 이룩한 혁신의 상징으로 사유와 연장,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즉 데카르트에게 mens는 순수하게 '사유하는 실재'를 가리킨다.

정신적인 실체인 mens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말하는 신체의 형상인 영혼(animus)과 달리 물질적 기능과 분리돼 있다.
데카르트는 아울러 신학적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기는 하지만 <성찰>에서 '영혼 불멸' 관련 부분에서 '영혼'의 의미를 지닌 anima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또 <정념론>의 제목(Passiones animae)에서도 역시 정념들의 관점에서 파악된 정신으로 anima를 사용했다.

 

반면 스피노자는 mens 개념 안에 인식론적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하려고 했으며, 이 점이 스피노자 mens 개념의 독창적인 측면 중 하나다. 곧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데카르트처럼 사고와 관련된 정신적 실체로서 mens와 정념 및 삶의 보존 일반과 관련된 영혼으로서 anima를 분리하지 않고, mens를 유일한 정신적 실재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적 실재로서 mens 안에서 사고와 정서가 함께 포함돼 있기 때문에 둘이 상호 배제적이거나 외재적 관계를 맺지 않게 되며, 정서 역시 수동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인 정서로 전환될 수 있게 된다. mens 개념은 <윤리학>의 중심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animus는 정치학의 저술들, 특히 <신학정치론>에서 여러 번 사용되고 있는데, <윤리학>에서도 74번이나 사용될 정도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
animus는 <윤리학>에서 정신적 실재가 아니라 mens의 어떤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예컨대 마음의 동요(fluctato)나 마음의 만족, 마음의 자유, 마음의 무기력 등 표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윤리학> 같은 경우는 animus를 '심정'으로 번역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신학정치론>의 용법까지 고려한다면 '마음'으로 번역하는 게 가장 무난할 것 같다. 그리고 mens는 '정신'으로 번역하는 게 여러 가지 점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영역본의 경우 mens는 mind로 번역하지만, animus의 경우는 합의된 번역어가 없고, 경우마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어 혼란스러운 느낌을 준다.
(진태원샘의 <스피노자와 정치> 중 용어해설(300p)에서) 

댓글 3
  • 2023-07-07 21:17

    와!! 자세한 정리 감사합니다!!
    <스피노자와 정치> 꺼내어 용어해설 살펴보니 정신/마음 외에도 1,2,3부 세미나하면서 자주 논의했던 주요개념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세븐샘 덕분에 꼼꼼한 복습이 될 것 같군요.ㅎ

  • 2023-07-10 09:51

    고맙습니다 세븐샘. 마침 또 한주를 거르고 다시 다소 하드코어한 댓글을 달게 되네요....ㅎㅎ 지난 수요일에 전정 신경염인지 뭔지로 엄청난 고생을 하고 목요일을 맞아서 그런지 마지막 요요샘 질문에서는 그야말로 방전 상태였어요. 사실 이전에 형상적 본질과 현행적 본질이 다른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 저는 아직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정군샘이 형상적 본질을 어떤 범위값으로서의 본질로 설명하실 때 저는 이게 들뢰즈의 잠재적 다양체로서 이념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튼 스피노자의 철학이 보완이 되는 해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난 시간에 방전 상태인 와중에 말씀들을 들으면서도 사유의 현행적 역량과 마음의 역량이 과연 다른 것일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일단 제가 듣기에는 사유의 현행적 역량은 수동 정서(정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마음의 역량은 적합한 관념에 따른 역량, 능동적 역량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는데 일단 사유의 현행적 역량이 곧 정신이자 마음의 역량이어야 하지 않을까, 둘을 그렇게 구분해도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듭니다만.... 가령 적합한 인식을 하게 되면 동시에 능동 정서가 발생하고 이것은 역시 동시에 현행적 역량이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지 능동적 역량이 구성되고 발현되는 다른 기제나 경로가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스피노자가 정리 56의 주석에서 절제, 절도, 정결은 정서나 정념이 아니고 정서를 제어하는 마음의 역량이라고 말할 때는 분명 능동적 역량을 별개로 이야기하며 강조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습니다. 정군샘이 말씀하신 potestas/potentia 용어와 관련해 이 부분을 앞으로 더 유심히 봐야겠습니다.

    덧붙여, 장이 전환될 때마다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매번 탁월히 감지해내시는 요요샘과 이렇게 평소의 공부를 같이 나누어주시는 세븐샘 덕분에 읽기가 더 풍성해집니다. 거듭 감사해요.

  • 2023-07-11 00:49

    제가 드릴 말씀은 이미 앞의 두분이 다 해주셨고, 게다가 방학이라 저는 안 진지할 계획입니다.
    부처님 사진이 넘 귀엽고 시원해서 하루 한두번씩 이 하드코어 댓글용 게시물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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