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철학학교] (논란이 있으나) '11주차' 질문들입니다

정군
2021-05-17 13:05
311

질문들

19장 키에르케고르

 

물방울 ▶ 아이러니(내향적인 태도와 개인의 자율성의 상반적 태도를 말하는 것인가? 시대적 배경을 말하는 것인가? 작가의 표현 수단을 말하는 것인가? 세 개 모두인 듯 한데... ) 이중 성찰적 의사소통 (독자이며 저자? 자신과 다른 이들의 성찰적 관계?) (삶에 대한) 열정적 내향적 태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울아 ▶ 키르케고르는 “실존적 시각”을 탑재하고 인간의 실존을 중심으로 삶을 분석하고자 한다.(738p) 고유한 개별자들을 삶의 방식에 따라 심미적, 윤리적, 성찰적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이들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교화적, 종합적, 성찰적이라고 하는데, 이때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행은 실존적 도약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745p) 여기서 도약은 논변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적 성숙을 통해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도약이란 무엇일까?

 

정군 ▶ ‘실존’ 개념은 어떤 배경 하에 등장한 것일까?(헤겔의 정반대’라는 의미를 중심으로)(738쪽)

 

정군 ▶ 키에르케고르에게서 글쓰기의 ‘스타일’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740쪽)

봄날 ▶ 문탁의 친구들이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은 키르케고르가 ‘가명’을 사용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봄날 ▶ (텍스트 743쪽에 예제로 나온 심미적) 삶의 방식은 인터넷상으로 어떤 사건들을 접하고 이에 대해 가볍게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행태와 비슷하지 않나? 아니면 직접 운동을 하지 않고 그 경기를 보면서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것, 혹은 무엇을 직접 만들지 않고 만들어진 것을 선택하여 사는 것을 즐긴다거나 심지어 만드는 과정을 꼭 배워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사람들의 행태와 닮아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심미적 단계에 머물러 자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솥 ▶ 고유한 개별자로서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실존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키에르케고르가 하필 종교적 단계를 가장 고차적 단계로 본 이유는 무엇인가? (749쪽)

 

정군 ▶ 키에르케고르가 ‘주관성이 진리’라고 말할 때의 ‘진리’는 ‘수학적 진리’와 어떻게 다른가?(751쪽)

 

가마솥 ▶ 키에르케고르의 ‘데마고기’론(?)에 따라 보자면, 현대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지배자’가 될 위험이 상존하는 체제다. 이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듯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754쪽)

 

21장 니체

 

인재하 ▶ 지난 번 세미나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듯한데, 위버멘쉬, 즉 초인의 번역을 놓고 논란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위버멘쉬가 (독일어에서)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더불어 지난 번 세미나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듯한데, 위버멘쉬, 즉 초인의 번역을 놓고 논란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위버멘쉬가 (독일어에서)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호수, 요요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었고, 칸트의 형이상학은 경험 너머의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었다고 정리해볼 수 있을 테고 니체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니체의 힘에의 의지(“힘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이 세계”, <선악의 저편> 186)나 영원 회귀 개념은 어떠한 점에서 형이상학이 아닌가? 니체에게 힘에의 의지는 세계의 본질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고, 영원 회귀 개념은 진리가 아닌가?

 

인재하 ▶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 속에 드러나는 감각세계뿐이다”라는 것의 근거는?

 

인재하 ▶ 정말 니체가 자신의 철학의 하나의 ‘실험’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 실험의 가치를 감소시키지는 않는가?

 

가마솥 ▶ 니체에게서 ‘주인’과 ‘노예’란 ‘약자’와 ‘강자’로 바꿔 읽어도 무방한 개념들인가? (780쪽, 니체는 ‘주인’들은 강하지만 ‘노예’들은 그에 비해 훨씬 더 영리하다. ‘노예’들은 ‘주인’들을 감히 광활한 들판에서 마주하려고 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도덕적 평가를 절대적으로 만듦으로써 ‘주인’들을 순치하려고 한다.) (781쪽, ‘약자’가 ‘강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규칙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인재하 ▶ 니체의 “실험적” 철학에 대한 토대들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를테면 인간에 대한 속성(781p), 그리고 주인과 노예에 대한 도덕(780p) 등은 어떤 식으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주인과 노예의 도덕의 경우 앞서 나왔던 홉스나 루소 등의 인간의 자연생태에 대한 사고실험과는 달라 보인다. 이 경우는 위와 같은 경우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요요 ▶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이론(영원회귀)이 위버멘쉬 이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종말인”을 극복하고 “위버멘쉬”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그들이 단지 영원한 주기 속에서 반복되는 인물들일 뿐이라면-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788쪽)

 

호수 ▶ 23장 프로이트 편에서 “프로이트와 니체 둘 다 관습적인 도덕의 과잉과 충동의 요구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었다며, 니체의 위버멘쉬는 성공적인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신경증 환자와 같은 방식으로 자아를 극복했다”(836)는 저자들의 해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자들은 괴테를 “니체의 위버멘쉬 이상에 가장 근접하는 인물”로 놓고 위버멘쉬의 특징을 “이성과 감성과 의지가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자신을 창조”하는 사람, “약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강함에서 나온 관용”을 지닌 사람, “삶을 긍정”하는 사람으로 열거한다.(784) 이러한 위버멘쉬의 특징을 ‘힘에의 의지’로 풀어본다면 저자들의 해석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들이 정리한 힘에의 의지는 “앎에 대한 의지로도, 즉 우리로 하여금 카오스를 정리하고, 우리의 주위 환경을 지배하고 변혁하도록 이끌어주는 충동으로도 표현”(788), “실존 속에 있는 형성적 힘”(789)이다. 괴테의 저 특성들을 ‘힘에의 의지’를 통해 자신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게 된 결과로 놓고 볼 수 있다.

 

요요 ▶ 힘에의 의지가 미래와 관련한 어떤 것에 대한 의지인 한, 이 사유동기도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이론과 충돌하는 것 같다. 이 세 개의 사유동기들[위버멘쉬 이론과 영원회귀 이론 그리고 힘에의 의지 개념]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니체 연구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쟁점이다.(789쪽)

 

호수 ▶ 니체의 진리에 대한 태도는 불가지론인가? 아니면 진리가 존재한다는 명제 자체를 부정했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는 오류이지만 잠정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진술’, 즉 특정한 관점에 따른 해석’(792 침조)이라는 뜻으로 말하자면 진리를 재정의했다고도 할 수 있을까?

 

호수 ▶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실존 속에 있는 형성적 힘”(789)으로도 보았고 이것이 “앎에 대한 의지”(788)도 된다면, 어떤 사태를 해석하거나 거기에 특정한 관점을 적용하는 행위도 그 자체로 힘에의 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백승영 교수의 ‘생기론적 해석’ 참조).

 

요요 ▶ 니체의 사상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여러 관점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니체가 삶을 위한 유용성을 이유로 이 관점을 옹호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무엇이 삶에 유용한 것이며, 누구에게 유용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삶을 긍정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판단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니체는 객관적 판단기준은 단지 “허구”이거나 은폐된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792쪽)‘무의식’을 발생적으로 정의해 본다면? 그러니까 ‘무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재하 ▶ ‘다윈-니체-프로이트’ 이 세 명이 계속해서 기존의 형이상학적/자연관적 토대들을 무너뜨린다. 심지어 책에서도 서로 모여있다. 이러한 돌풍(?)에 대한 숨은 맥락사적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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