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질문과 요약

마음
2023-08-12 11:38
153

p.609 “칸트는 감각 인상이 외적 실재로부터, 즉 물자체(딩 안 지히)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칸트는 우리가 오직 이미 형식이 부여된 감각 인상들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형식이 부여되지 않은 외적 영향들과 물자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칸트는 어떻게 물자체에 도달하였는지? 이어지는 글에서 “그것은 한편으로는 경험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저도 “물자체” 개념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p.613~614에서 신에 대한 칸트의 얘기도 비슷한듯합니다. 칸트가 이렇게 논증하는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칸트의 방법이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런 부분에서는 그의 논리를 잘 따라가지 못하겠어요ㅠ

칸트는 우리 지성이 어떤 형식과 원리를 지니고 있는지를 탐구하는데요. 그런반면 이러한 형식과 원리가 어떻게 지성에 형성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이 대두된 것은 이후의 일이니까요. 우리의 인식 능력, 도덕률 등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생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니깐요 ㅎ

댓글 6
  • 2023-08-12 11:54

    p.609

    “칸트는 감각 인상이 외적 실재로부터, 즉 물자체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칸트는 우리가 오직 이미 형식이 부여된 감각 인상들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형식이 부여되지 않은 외적 영향들과 물자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이로써 물자체 개념은 문제가 많은 개념이 된다.”
    “칸트의 인식론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물자체, 경험을 넘어서 존재하는 초월적 대상으로부터 기원하는 인상들을 받아들인다고 전제하고 있지 않은가?”(613)

    칸트 철학에 대한 이 반론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칸트는 진리를 대상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주체가 진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증명을 한 것이지 않나? 형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물자체도 당연히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진리를 어떻게 다 규명할 수 있을까?

    p.618

    ‘파악하는 의식’과 ‘파악되는 의식’이 나온다. 파악되는 의식은 인과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파악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각주를 보면 선험적 자아, 물자체로서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p.621

    “정언명령은 전험적이다. 나아가 이 의무는 이성적 존재나 이성적 의지의 개념에 대한 개념 분석을 통해 도출될 수도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적 존재는 선험적 형식을 가진 존재로 이해했고, 이성적 의지=도덕적 의지=자유의지 라고 생각하면 될까? 그리고 합리주의자들의 본유관념으로서의 이성과는 다른 칸트의 ‘이성’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다.

    p.625

    도덕적 세계 질서를 잡아주는 존재로서 신을 가져오는데,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된다면 이것만으로도 도덕적인 질서가 가능한데 따로 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칸트에게 있어 신은 신앙의 대상일 뿐이지 않나?

    p.632

    칸트는 도덕성과 법을 구분해서 도덕성을 법률화하지도 않았고 법을 도덕화하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 기반을 둔 것이 법률 아닌가? 도덕성과 법을 구분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p.637

    판단력은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매개하는 능력이고, 이 매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인식의 판단이 아니라 ‘취향의 판단’이며, 흄처럼 공통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공통의 감정이 올바른 판단의 토대이고, 이 올바른 판단은 보편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편적 도덕 법칙을 만들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고, 또 이성이 있는데 왜 판단력이 필요할까?

  • 2023-08-12 11:56

    p 604. 칸트는 단순하게 우리의 인식의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는 과연 우리인식에 그러한것이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고 어떻게 우리인식에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부분을 설명해 주시고 선체험으로만 인식하기엔 어렵습니다.
    p 609. 칸트는 물자체를 경험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데 물자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p 621.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을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 2023-08-12 11:56

    618쪽 ‘왜냐하면 인과적 결정은 우리의 선험적 형식들에 의해 현상들에 형식이 부여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파악하는 의식 자체는 바로 이러한 선험적 형식들에 종속되어 있지 않지 때문이다. 파악하는 의식은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관련해서 각주 6의 설명을 보자면 ‘따라서 이 경험하고 파악하는 의식, 즉 선험적 자아는 물자체를 나타낸다’라고 말합니다. 즉 ‘파악하는 의식’은 ‘선험적 자아’이며 ‘물자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칸트는 ‘물자체’에 대해 ‘형식이 부여되지 않는 외적 영향들과 물자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물자체’라고 볼 수 있는 ‘선험적 자아’에서 경험적인 것을 연결시켜주는 ‘선험적 지식’이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칸트는 ‘의지’가 두 영역을 매개한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 2023-08-12 13:58

    624-5p.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형식이 부여된 경험과 경험의 형식들 이외에 다른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칸트는 “너는 ~해야 한다”는 의무 원칙을 토대로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의 양심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정한 암시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칸트의 이런 입장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신 존재나 자유의지의 증명이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양심에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암시’라고 그냥 퉁쳐도 되는 건가요?

    634p.
    천부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아직 여성이나 하인 등의 인권은 언급되지 않았나요? 성별 뿐 아니라 사회계급에 대한 칸트의 언급은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 2023-08-12 15:15

    613쪽) 지난 시간에 <개념뿌리들>에서 보길, 칸트의 이성은 감성-오성-사변 이성 이렇게 셋으로 나눈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책도 그렇고 김상환의 책도 그렇고 조금씩 단어들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저자들은 칸트가 합리주의(형이상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성적 직관에 대해서 가짜 통찰일 뿐이라고 비판한다고 쓴다. “이 지점에서 사변 이성에 대한 칸트의 비판이 시작된다.” 여기서 나온 사변 이성은, 칸트가 합리주의자들의 이성을 비판하면서 하는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감성-(상상)-오성이라는 인식과는 다른 이성(사유/김상환)이라는 것이 갖는 어떤 특징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혹은 설명을 붙이는 말인가?
    “합리주의자들이 경험을 넘어서서 초월적인 것the transcentent에 도달하려고, 즉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것에 도달하려고 한 시도”를 칸트는 비판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식의 조건을 초월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성과 오성의 인식기능으로는 파악할 수 없기에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들은 불가피한데, 이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본성과 관련해서 칸트는 ‘사변 이성’(이정우)=이성(김상환)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들이 이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소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그런가? 614쪽에 의하면, 칸트는 흄의 경험주의를 거부하면서 자연과학과 수학에서 “이성을 구제함”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소박한 믿음의 여지를 남겼다고 쓰는데, 여기서 칸트는 어떻게 이성을 구제하고 있는가?

    618쪽)칸트의 인식론이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을 구분하듯, 그의 도덕철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물자체로서의 인간을 구분하고 있다. 인식론의 틀로 이해하면, 물자체로서의 인간이란, 인식론에서의 선험적인 것 그러니까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 이전의 틀/조건이라고 할 수 있듯, 경험적 자아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험하고 파악하는 의식, 즉 선험적 자아는 물자체를 나타낸다. 경험적 자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물자체로서의 인간=선험적 인간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봐도 되나? 그리고 여기서 선험적 자아는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 2023-08-12 16:48

    질문들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5
[2023 철학입문] 9회차 질문 (6)
토용 | 2023.08.26 | 조회 127
토용 2023.08.26 127
44
[2023 철학입문] 8회차 후기 (4)
토끼와용 | 2023.08.23 | 조회 152
토끼와용 2023.08.23 152
43
[2023 철학입문] 8회차 질문 (6)
토용 | 2023.08.19 | 조회 172
토용 2023.08.19 172
42
7회차 후기 (5)
마음 | 2023.08.17 | 조회 156
마음 2023.08.17 156
41
제15장 질문과 요약 (6)
마음 | 2023.08.12 | 조회 153
마음 2023.08.12 153
40
[2023 철학입문] 6회차 후기 (6)
동화 | 2023.08.08 | 조회 220
동화 2023.08.08 220
39
[2023 철학입문] 6회차 <개념-뿌리들> 7강,15강 질문 (6)
토용 | 2023.08.05 | 조회 145
토용 2023.08.05 145
38
[2023 철학입문] 5회차 후기 (4)
우현 | 2023.08.03 | 조회 159
우현 2023.08.03 159
37
[2023 철학입문] 제5회차 질문 (7)
앙코르석공 | 2023.07.29 | 조회 176
앙코르석공 2023.07.29 176
36
[2023 철학입문]제4회차 후기 (3)
자작나무 | 2023.07.26 | 조회 169
자작나무 2023.07.26 169
35
[2023 철학입문] 시즌2 13장 질문 (7)
토용 | 2023.07.22 | 조회 130
토용 2023.07.22 130
34
[2023 철학입문] 서양철학사 제13장 요약
앙코르석공 | 2023.07.22 | 조회 111
앙코르석공 2023.07.22 111
글쓰기